<4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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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등군의 잔당들을 본영으로 압송한 이성휘는 마초를 내보내고서 심사숙고에 빠져들었다.
죄를 물어 처형할 것인가.
아니면 항장으로서 예우할 것인가.
가볍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전광석화처럼 관중과 관서를 모두 정복하는 기염을 토해낸 조조군은 전열을 가다듬으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후우, 대장군께선 어떤 결정을 내리실까요?”
양수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그에 여포는 손을 휙휙 내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미녀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신 분이잖아. 결국 휘하로 받아들일 거라고.”
그것을 증명하는 산증인들이 바로 지금의 대장군부가 아니던가.
여포를 포함한 수많은 장수들은 일기당천의 맹장이 결국 휘하로 편입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압도적인 맹위와 무력을 겸비한 서량의 금마초는 당연히 탐을 낼 수밖에 없는 맹장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비단처럼 아름다운 용모를 자랑하는 미녀라는 점이 가장 컸다.
“하지만 반발이 극심하지 않을까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여포와는 정반대로 양수는 마등군의 귀순에 많은 우려를 표시했다.
마등군이 장안성의 대규모 학살에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전장에서 서량 연합군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 바로 마등이었기에 주모자로 여겨졌다.
“음, 확실히 감당해야 할 게 많긴 함.”
인형처럼 아기자기한 용모를 자랑하는 소녀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꾸벅 끄덕였다.
맹주 마등의 딸.
마등군의 잔존세력.
두 팔 벌려 받아들이기엔 부담이 우려스럽다.
유주를 평정했던 맹장과 대등하게 자웅을 겨루었던 일가당천의 용사를 휘하에 두는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지만 말이다.
“일가친척을 모두 잃은 장안성 백성들은 마초를 철천지원수로 생각하고 있을 거임.”
“장안성 백성들은 반란군의 거센 공세에 맞서 끝까지 항전을 이어갔어요. 만약 대장군부가 마초를 휘하로 들인다면 백성들은 깊은 모멸감을 느끼겠죠.”
사마의와 양수가 합창하듯이 동시에 난제들을 언급했다.
장안성의 민심을 잃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서량 연합군의 공세에 시달렸던 삼보(三輔) 지역의 민심까지 요동칠 위험이 있다.
섣불리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사마의와 양수는 심사숙고에 빠진 이성휘에게 우려를 보냈다.
“뭐, 알아서 잘하겠지.”
툭툭.
여포가 책상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병장기를 버리고 귀순해온 마등군의 잔당들을 휘하에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는 의중이 내비쳤다.
본인 또한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일까.
의지할 피난처가 없는 고립무원의 외톨이가 되어버린 마초에게 연민을 보냈다.
“저도 봉선 님과 동일한 생각입니다.”
장료 또한 여포와 마찬가지였다.
서량을 대표하는 일가당천의 맹장에게 일군을 맡긴다면 전장에서 압도적인 역량을 발휘할 터.
죽이기엔 아깝다.
서량의 반란군 세력을 토벌하기 위해서라도 마등군의 힘이 필요했다.
“이미 영예로운 주군의 결정이 보이옵니다만….”
가후가 말했다.
“다들 주군께서 어떤 결정을 내리실지 대충 짐작하고 계시잖아요?”
순유도 말을 덧붙였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군막에 집결한 장수와 참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끼리 머리를 맞대고서 설왕설래를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주군의 의중에 달린 것을.
“흐흐흥.”
순유가 유쾌함이 담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
익살스러운 매력이 담긴 눈웃음을 지었다.
“…….”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순유의 모습에 가후는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 * *
조조군이 관중과 관서를 점령하면서 기염을 토해낼 때마다 한수군과 관중제장 세력은 천근만근처럼 무거운 중압감을 짊어져야 했다.
관중을 빼앗겼다.
심지어 한양군과 안정군마저 넘어갔다.
게걸스럽게 영역들을 점령한 조조군은 기어코 서량을 노릴 것이 분명했다. 위기감을 느낀 관중제장 세력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한수에게 찾아와 대책을 주문했다.
“놈들이 관서를 차지했습니다!”
“분명 대군을 동원하여 서량으로 몰려들 겁니다!”
군막으로 들어선 장횡과 성의가 아연실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비관이 뒤섞인 절망을 토해냈다.
관중과 관서를 속전속결로 정복한 조조군의 진격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7만에 이르는 대군을 지휘하는 사내는 천하제일검 이성휘였다.
“진정하게. 저들은 결국 물러나게 될 것이니.”
한수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무더운 열기.
시야를 가리는 건조한 모래폭풍.
바깥의 적들을 절망에 빠트리는 메마른 황야.
반란을 진입하고자 황야를 가로질렀던 수많은 조정군은 결국 열사의 지옥에 갇힌 채 몰살되었다.
중원을 제패하는 무명을 떨쳤던 조조군이라도 결국열사의 모래무덤에 매장되었던 조정군과 똑같은 실책을 밟게 될 터였다.
“하지만 놈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조조군이 만약 금성(金城)마저 돌파하기라도 한다면…!”
장횡이 근심을 표시했다.
그에 한수가 두 눈을 날카롭게 떴다.
교활한 살의가 느껴졌다.
의형제를 교살했을 때 보였던 그 눈빛이었다.
무언의 경고에 소스라치게 놀란 장횡은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우리들이 서로 일치단결하여 결사항전을 벌인다면 서량을 위협하는 외적들을 물리칠 수 있을 걸세.”
파상공세를 계속 이어나가는 조조군을 서량의 외적으로 규정한 한수는 관중제장에게 협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실상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항명했다간 죽음을 피하지 못할 터.
무위군의 마씨 일가가 한수군에게 몰살당하지 않았던가.
두려움에 휩싸인 관중제장은 굴종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내심 한수의 공포정치에 불만을 품었다.
“어르신.”
장창을 치켜든 사내가 군막 안으로 들어섰다.
교위(校尉) 염행.
한수의 오랜 심복인 서평군의 맹장이었다.
무위군의 마씨 일족을 무자비하게 참살했던 장수가 들어서자 장횡과 성의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서량의 제장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알겠네.”
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네들도 함께 나가도록 하지.”
한수의 지시에 꺼림칙함이 느껴졌지만 바로 옆에서 염행이 두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결국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한수를 뒤따르게 되었다.
“으음!”
“아니, 자네들까지 왔는가…?!”
한수를 뒤따르면서 도착한 둔영에는 여러 군벌들이 모여 있었다.
부름을 받고 소집된 것일까.
서량을 호령하는 관중제장이 한수군의 둔영에 모두 집결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한수의 심복인 성공영으로부터 전갈을 받고 달려온 이감이 관중제장을 대표하여 입을 열었다.
분명 조조군을 격파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함일 터.
조조군은 외적이다.
반드시 물리쳐야 할 적수였다.
그렇기에 전갈을 받자마자 달려온 것이었다.
“어, 어찌된 일입니까…!”
“갑작스러운 부름이 참으로 당혹스러웠소.”
정서장군 마등을 본영으로 유인하여 참살하지 않았던가.
둔영에 소집된 군벌들이 불안감을 드러냈다.
“우리들의 영역을 빼앗으려는 오만방자한 조조군을 몰아내기 위해선 단결이 가장 중요하오. 결코 흔들리지 않는 의기 말이오!”
“…….”
“그런데 우리들 중에는 저만 살겠다고 조조군과 내통한 비열한 반역자가 있었소이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군벌들에게 일치단결을 호소하던 한수가 대뜸 조조군과 내통하는 반역자가 군중에 있음을 밝혔다.
성공영과 염행이 들어섰다.
뒤이어 창검을 무장한 장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난데없이 중무장한 병사들이 들이닥치자 한수의 발언을 듣던 군벌들은 크게 경악하면서 물러섰다.
“후선.”
한수가 온몸을 벌벌 떨던 군벌의 이름을 불렀다.
“커헉-! 크, 커헉!”
후선이 입에서 핏물을 토해냈다.
염행이 달려들어 복부를 찔렀다.
날카로운 창끝에 관통당한 후선은 핏물을 울컥울컥 쏟아내면서 쓰러졌다.
“정은. 양추.”
한수가 재차 호명했다.
이번에는 언월도를 치켜든 성공영이 달려들어 정은과 양추의 목을 베어버렸다.
툴썩-!
세 명의 군벌들이 목숨을 잃었다.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군벌들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으아악!”
“후선 장군…! 양추 장군…!”
조조군과 내통한 배신자로 지목된 군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황야를 호령하던 군벌들이 가축처럼 피를 쏟으면서 죽고 말았다.
죽음의 공포를 토해냈다.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하의 패권을 거머쥔 세력에게 귀순하고자 작당을 모의했던 군벌들은 자신은 발각되지 않았음에 안도감을 느꼈다.
“서량을 외적들에게 팔아넘기려는 비열한 배신자에게는 오직 죽음뿐이네!”
조조군은 서량을 모른다.
뜨거운 모래의 공포를,
살인적인 햇볕의 두려움을 알지 못한다.
사방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장대하게 펼쳐진 황량한 사막은 조조군의 무덤이 될 터.
열사의 지옥을 횡단하여 무위군과 서평군에 도달하기 위해선 서량의 풍토와 지리에 능통한 길잡이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기에 한수는 심복들을 모두 동원하여 관중제장을 철저히 감시했다. 물샐틈없는 경계망을 넓게 펼치면서 영향력을 강화해나갔다.
* * *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조조군이 다시 진군을 시작했다.
한양군과 안정군을 정복한 이성휘는 기병부대를 동원하여 양주를 들이쳤다. 양주로 들어서는 입구 역할을 하는 금성군(金城郡)이 참화에 휩싸이게 되었다.
“더러운 배신자들을 모두 죽여라!”
대장군으로부터 선봉장에 임명된 여걸이 거센 고함을 내지르면서 전장을 질주했다.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
그 용맹한 모습을 목격한 한수군 병사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경악을 토해냈다.
돌아왔다…!
서량의 금마초가,
양주 제일의 맹장이 귀신이 되어 돌아왔다.
간교한 함정으로 마등을 주살했던 한수군은 복수귀가 되어 돌아온 마초의 모습에 절규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