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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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철을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관중제장이 보고한 암담한 소식에 한수는 대노하여 목에 핏대를 세웠다.
분명 복수를 꾀할 터.
제 아버지와 형을 잃었으니 절치부심을 다짐하면서 복수의 기회를 엿볼 게 틀림없었다.
“놓쳤다고? 다 잡은 놈을 놓쳐버렸단 말인가! 관중을 대표하는 숙장이라는 자들이 실로 한심하군! 그깟 애송이 하나를 붙잡지 못하다니!!”
한수의 모욕적인 언행에 관중제장은 분기가 치밀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마등을 교살하고서 세력을 흡수한 한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떨치는 대군벌에 등극했다.
그를 거역했다간 목이 달아날 터.
성공영이 눈빛을 번뜩이자 관중제장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걱정 마십시오! 놈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곧장 추격에 나섰으니 피투성이가 된 애송이를 잡을 수 있을 걸세!”
한수군과 관중제장 세력의 급습으로 마철은 싸움에서 입은 부상을 동여맬 겨를도 없이 도망쳤다.
맹렬하게 배후를 추격해오는 기병부대를 피해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입장이니 부상이 더욱 악화되겠지.
결국 추격대에 추살되거나.
아니면 부상이 악화되어 목숨을 잃을 터.
구사일생으로 도망쳤지만 마철은 사실상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관중제장의 이어진 말에 한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쓸모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기회를 봐서 이 박쥐같은 것들을 정리해야겠군.’
한수는 거사에 가담했던 관중제장 세력을 척살하여 서량의 지배권을 거머쥐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서량의 대군벌을 죽였다.
뒤이어 양두구육한 배신자들을 척결할 차례였다.
그리고 조조군에게 충성의 표시로서 마등과 관중제장의 수급들을 모두 바칠 생각이었다. 장안성을 불태운 역적들과 무관함을 보이기 위함이다.
“주군.”
곽헌이 군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에 한수는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치면서 관중제장을 내보냈다.
“무위군의 마씨 놈들을 모두 끝장냈습니다.”
기병부대를 이끌고 진격했던 염행은 무위군의 군현들을 샅샅이 수색하여 마씨 일가를 모두 추살했다.
도망쳤던 마철까지 죽인다면 복파장군 마원의 명맥은 완전히 끊어지게 되리라.
후우….
한수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대의를 맹세했던 의형제의 가솔들을 모두 살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한수는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마초는 어찌 되었는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마초. 마대. 방덕.
함양에서 패주한 이후부터 행방이 묘연했다.
“시체를 발견하진 못했습니다만…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결국 조조군에게 추살되지 않았겠습니까.”
“아닐세. 그렇게 단정할 순 없네. 마초는 지독한 년일세.”
조조군의 추격을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분명 척살되었을 것이다.
일부러 조조군이 놓아주지 않는 이상에야 지금까지 살아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한수는 그럼에도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는지 함양 방면에 척후들을 투입시켰다. 어떻게든 마초의 시체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어르신!”
성공영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들어섰다.
“대장군 이성휘가 어르신에게 장안성에 입성하라는 통보를 보내왔습니다.”
“뭣…!”
한수가 놀라 소리쳤다.
장안성에 들어오라니.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라는 격이 아닌가.
마등을 진천으로 유인하여 주살했던 한수였기에 당연히 이성휘의 명령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 한문약을 죽이려는 술수인가…! 감히 그런 가당찮은 명령을 내리다니!’
한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의심하는 것은 당연했다.
두려움을 금치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비열한 함정으로 의형제를 살해한 한수였기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게다가 본인도 마등과 마찬가지로 학살을 방관했던 전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한수는 대장군 이성휘의 명령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분명 나를 꾀어내어 죽이려는 수작일 터…!”
“그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한수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성공영이 엄정한 표정으로 물었다.
“도처에 숨은 마등의 잔당들을 처리하느라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전해라. 일단 마등 일가의 수급들과 금은보화를 함께 보내어 설득할 수밖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복병을 만난 탓일까.
어설픈 대응을 내놓았다.
서량의 모략가인 한수답지 않은 얄팍한 잔꾀였다.
이성휘의 예상이 적중했다.
무리한 명령을 내리자마자 한수는 탐욕스러운 늑대의 본성을 드러냈다. 압도적인 위세에 잠시 복종하는 모습을 보일 뿐이라는 반골의 의지를 표출했다.
“이성휘가 불복종을 명분으로 쳐들어오더라도 서량으로 도망치면 그뿐이다. 제아무리 놈이 날고 기어도 황량한 벌판을 건너진 못할 테니.”
건조한 모래바람과 황량한 벌판은 열사로 만들어진 죽음의 땅이다.
반란을 진압하고자 출정했던 수많은 조정군이 열사의 지옥에 갇혀 패배했다.
한나라의 명장이었던 황보숭도 결국 혹독한 열기에 말머리를 돌리지 않았던가. 당시 반란을 주도했던 인물이 한수였기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관중제장 놈들이 조조군에게 빌붙어 앞잡이 노릇을 할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놈들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작자입니다.”
관중제장 세력이 조조군에 가세하여 열사의 지옥을 건널 수 있게끔 조력한다면 큰 낭패를 당하게 된다.
한 번 배신한 놈들이다.
설마 두 번이라고 배신을 못하겠는가.
성공영은 먼저 내부의 배신자들부터 경계했다.
“그건 걱정 말게. 이미 방책을 마련해뒀으니.”
부하의 우려에 한수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 * *
마초는 우여곡절 끝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함양에서 탈출하여 오장원에 도착한 마초는 집결지인 진천으로 향했다. 지금쯤 아버지와 동생들이 함양의 군세들을 이끌고 진천에 무사히 도착했을 테니.
최악만큼은 피했다.
마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제장들과 발걸음을 움직였다.
“아가씨, 조조군이 물러간 모양입니다.”
“거머리처럼 계속 들러붙을 줄 알았는데… 설마 이렇게 쉽게 포기하다니.”
배후를 추격하던 조조군의 기병들이 돌연 말머리를 돌리면서 본진으로 퇴각했다.
조조군이 추격을 중단하고 철수한 덕분에 마등군의 패잔병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마초는 조조군의 동태에 수상쩍음을 느끼면서도 병마들을 재촉하여 양주를 가로질렀다.
“그래도 다들 무사해서 천만다행입니다.”
마대가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전장에서 많은 병력을 잃었다.
하지만 본대가 빠르게 퇴각할 수 있었다.
지금쯤 관중제장 세력과 연계하여 조조군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으리라. 본대에 합류하여 숙부를 보필해야 했기에 최대한 서둘렀다.
‘그래, 그 말이 맞아. 지금은 일단 아버지와 합류하는 것만을 생각할 때야.’
사촌동생의 말에 마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이 우선이다.
무엇보다 가족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참담하게 쓰러진 전우들의 죽음에 슬퍼하면서도 꿋꿋하게 나아갔다. 가문의 명운을 짊어진 장녀로서 가족들에게 항상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강인한 의지 때문이었다.
“내가 만약에 둘째나 셋째였다면 결국 주저앉고 말았을 거야. 하지만 첫째니까 절대 포기하지 않아.”
“하하핫! 누님다우십니다.”
마초가 호언장담하듯 말했다.
그에 마대는 피로한 와중에도 웃음을 터트렸다.
“아가씨, 이제 안정군입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악전고투에서 치러졌던 강행군 끝에 마초는 안정군(安定郡)에 도달하게 되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이제 곧 진천에 당도할 수 있을 터였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음에 강행군을 반복했던 마등군 병사들은 기쁨을 토해냈다. 둔영에 도착하면 전우들에게 찬사를 받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드디어 아버지와 만날 수 있어…! 딸의 무사귀환에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하시겠지.’
병사들처럼 뜨거운 기대감을 떠안은 마초가 마지막 강행군을 서둘렀다.
그런데 그때,
누더기 차림을 한 남성이 불쑥 나타났다.
야인처럼 보이는 남성은 마초의 무리들이 안정군에 도달하자마자 두 팔을 뻗으면서 앞을 가로막았다.
“매, 맹기 님…! 맹기 님이 맞으십니까?! 아, 안 됩니다…! 더 이상 가셔선 안 됩니다!!”
사내가 침을 튀기면서 크게 소리쳤다.
마치 귀신이 들리기라도 한 듯,
처참한 몰골의 사내는 횡설수설하듯 말하면서 마초에게 경고를 보냈다.
“한수가 배신했습니다! 관중제장 놈들이 한수와 손을 잡고 우리를 공격했습니다!”
극적으로 등장하여 마초를 가로막은 사내는 마철을 호위하던 마등군의 무관이었다.
하늘이 도운 것일까.
한수가 보낸 척후들보다도 먼저 마초와 조우했다.
척후들에게 들킬까 두려웠던 무관은 마초와 무리들을 은신처로 이끌었다. 아버지를 따르는 무관이 분명했기에 마초는 뒤를 계속 따라갔다.
“맹기 님!”
“드디어 오셨군요!”
무관이 안내한 장소는 어느 야산의 산기슭이었다.
수십 명의 장졸들이 있었다.
그들 모두 패잔병처럼 처참한 몰골이었다.
산기슭에 도착한 마초의 모습을 발견하자 장졸들은 오열을 금치 못했다. 죄인처럼 통한의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면서 고개를 조아렸다.
“누… 누, 누님…!”
장졸들의 호위를 받던 소년이 몸은 일으켰다.
소년은 피투성이였다.
온몸에 넝마처럼 너덜너덜한 붕대를 감고 있었다.
죽기 직전의 망자처럼 창백한 낯빛을 한 소년은 힘겹게 목소리를 토해내면서 누이에게 손을 뻗었다.
“죄송, 죄송… 합니다… 누님…!”
그 모습에 마초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동생 마철이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을 헐떡이는 소년은 분명 둘째 동생이었다.
“아버지와 형님을…! 결국 지키지 못했습니다…!!”
쿨럭쿨럭-!
통한을 부르짖던 마철이 이윽고 피를 토해냈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했다.
동생의 위태로운 모습에 마초는 경악을 토해내면서 힘겹게 뻗은 손길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