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477화 (477/616)

<477화>

==============================

모략의 바람이 황야를 어지럽혔다.

마등이 죽었다.

서량을 제패했던 대군벌이 시살되었다.

함정에 빠져들었던 마등과 마휴는 사력을 휘두르면서 저항했지만 결국 살해당하고 말았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발겨지는 수모를 당했던 마씨 부자의 주검은 황량한 벌판에 버려졌다. 황야를 떠도는 짐승들의 먹이로 던져준 것이었다.

함께 대의를 맹세했던 의형제에게 잔인무도한 치욕을 안긴 한수의 만행에 관중제장은 아연실색한 채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야 했다.

“마등이 죽었다!”

“서량에 재액을 몰고 온 원흉이 사라졌다!”

한수의 심복들이 칼끝을 치켜들면서 소리쳤다.

마침내 마등군을 꺾었다.

드디어 주군께서 서량의 지배자로 등극하셨다.

우두머리를 잃은 마등군은 연약한 양떼와 다름없었다. 또한 마초마저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였기에 마등군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저기 마철이 있다!”

“어딜 도망가느냐! 네 애비는 이미 죽었거늘!”

곧이어 한수군은 병마들을 이끌고 마등군을 공격했다. 이미 마등군은 관중제장 세력의 파상공세에 무너지고 있었다.

한수군과 관중제장 세력의 공격에 마등군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컥!”

“배신이다! 놈들이 배신했다!”

사방에서 화살세례가 쏟아졌다.

놈들은 미리 매복을 하고 있었다.

한수의 명령이 떨어지마자 학살극이 벌어졌다.

한수군과 관중제장 세력의 파상공세에 마등군은 패퇴할 수밖에 없었다. 함양에서 시작된 강행군으로 크게 지친 상태였던 마등군은 공세에 너무도 취약했다.

“한수 숙부가… 아버지를! 한수, 네 이놈!!”

숙부가 배신했다.

관중제장이 모두 돌아섰다.

마철은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적들을 노려보았다.

“죽여 버릴 테다! 이 더러운 배신자들아!!”

아버지가 죽었다.

함께 둔영으로 들어간 형도 죽었을 터.

존경하던 아버지와 형을 모두 잃고 말았다.

마철이 비분강개가 뒤섞인 오열을 쏟아내면서 칼자루를 뽑아들었다. 더러운 배신자들을 모두 죽여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겠다며 고함을 내질렀다.

“안 됩니다, 도련님!”

“일단 퇴각하셔야 합니다…!”

동귀어진을 결단하려는 마철에게 여러 무관들이 달려들어 겨우 제지했다.

전선이 무너졌다.

함양의 군세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한수에게 가담한 관중제장 세력은 집요하게 마등군을 공격하면서 궁지에 내몰았다. 결국 한수를 따르기로 결심했는지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다.

“마철은 썩 나오너라!”

“네 애비의 곁으로 보내주겠다!”

총공세를 지휘하던 장횡과 양추가 마등군 장졸들에게 창검을 겨누면서 소리쳤다.

마철,

마등의 차남을 죽여야 한다.

조조군의 맹공에 생사불명이 되어버린 마초가 필시 죽었을 것이라고 판단한 한수군과 관중제장은 마지막 화근인 마철을 없애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어서 도련님을 뫼시게!”

“우리들이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보겠네!”

관중지장의 치열한 추격에 마등군의 무관들은 목숨을 다해 막아섰다.

충성스러운 부하들의 안타까운 희생에 마철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크게 오열했다. 통한의 눈물을 쏟아내면서 짐승처럼 고함을 내질렀다.

“으아아!! 으아아아아아──!!”

아버지의 대망이 무너졌다.

아버지의 충성스러운 장졸들이 처참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실로 끔찍한 참상이다.

서량을 호령했던 호걸들이 모두 전멸하고 말았다.

처참한 결말을 마주한 마철은 구사일생으로 심복들과 함께 전장을 빠져나갔다. 눈 먼 화살에 어깨를 맞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마철은 이를 빠득 갈면서 복수만을 다짐했다.

* * *

의형제를 숙청한 한수의 칼끝은 의형제의 혈육들을 향하게 되었다.

마휴를 참살했다.

마철을 죽이고자 추격부대를 보냈다.

그리고 심복들을 급파하여 마등의 혈족들을 모조리 죽이도록 명령했다. 후환이 될 여지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한수의 광기를 엿볼 수 있었다.

“다 죽여라!”

“예외는 없다! 마씨 일가를 멸족시켜라!”

염행이 지휘하는 기병부대가 마등군의 영토였던 무위군(武威郡)을 습격했다.

무위군에서 지옥이 펼쳐졌다.

날카로운 창검을 늘어뜨린 기병부대가 마씨 일가가 거주하는 집성촌에 불을 지르면서 학살을 시작했다.

“아아악!”

“엄마! 엄마아!!”

주군의 명령을 받든 기병들은 여성과 어린아이까지도 무자비하게 척살했다.

날카로운 창검에 베였다.

무거운 말발굽에 짓밟히고 말았다.

불길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던 마씨 일가는 기병들에게 결국 붙잡혔다. 시가지로 끌려나온 마씨 일가는 한수군 병사들에게 목이 떨어졌다.

“모두 목을 베어라!”

“쥐새끼처럼 달아나는 꼴이 우습군!”

불길이 거침없이 솟구쳤다.

먹구름처럼 시커먼 연기가 고을을 둘러쌌다.

외진 공간에 숨어들었던 마등의 친족들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을 참지 못하고 바깥에 뛰쳐나왔다.

산불에 놀라 갈팡질팡하는 산짐승처럼 모습을 드러낸 마씨 일족은 결국 창검을 피하지 못했다. 그들 또한 시산혈해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장군, 그래도 복파장군 마원의 후예인데… 모조리 다 죽여도 괜찮겠습니까?”

핏물을 울컥 토해내면서 죽어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에 동정을 느꼈는지 무관이 우려를 표했다.

그에 염행이 대노하여 외쳤다.

“우리들은 주군의 명을 따를 뿐이다! 감히 네놈 따위가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겠다는 건가!”

감히 엄명을 거스를 수 없었던 무관들은 계속 학살에 동조해야 했다.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염행에게 죽임을 당할 터. 그것이 두려웠던 한수군은 짐승처럼 마씨 일가를 멸족시키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아아악!”

날아든 철퇴에 어린아이가 툴썩 쓰러졌다.

“제, 제발! 아이만큼은…!”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여인이 간곡하게 호소했음에도 날카로운 창검이 날아들었다.

“마씨 일가를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참살하라. 절대 화근을 남겨둬선 안 된다. 주변 지역들을 모두 수색하여 마등의 피붙이들을 죽여라.”

무위군의 학살은 장안성에서 벌어졌던 무자비한 살육을 연상시켰다.

마씨 일가가 모두 살해당했다.

불길에 새카맣게 타버린 흔적이 학살극의 처참함을 말해주었다.

억울하게 살해당한 장안성의 망령들이 결국 마등의 핏줄을 끊어버린 것이리라.

학살극의 흔적을 목격한 백성들은 장안성의 원한이 인과응보처럼 마씨 일가에 날아든 것이라며 두려워했다.

* * *

함양을 점령한 이성휘는 진서장군 한수에게 장안성에 입성할 것을 명령했다.

즉시 황명을 받들라.

전령을 보내어 명령을 하달했다.

과연 한수는 대장군의 부름에 응답할 것인가.

여포와 장료는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한수의 대응을 기다렸다. 한수의 대응에 따라 앞으로의 방침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수는 의심이 많고 신중한 성정이옵니다. 주군의 부름에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이옵니다. 도리어 주군의 저의를 계속 의심하지 않겠사옵니까?”

가후가 우려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섣부른 결정이다.

화근이 될 수 있는 판단이었다.

조정에 복종하기를 맹세했던 한수가 만약 돌변하여 서량의 군벌들과 함께 봉기를 일으킨다면 절체절명의 위기에까지 내몰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영예로우신 주군께서는 만용에 가까운 결정을 내리신 것일까.

잿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매우 조심스러운 눈길로 이성휘를 힐끗 쳐다보았다.

“영악한 늑대보다는 순종적인 개가 필요하니까요.”

어느샌가 다가온 순유가 대답했다.

정확히 의중을 파악한 듯,

순유의 말에 이성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으로부터 무언의 대답을 들은 순유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교태를 부리듯이 이성휘를 꼭 끌어안으면서 가후에게 시선을 향했다.

“야생의 늑대로 군림할 것인지, 아니면 말 잘 듣는 개가 될 것인지 결정해야죠.”

난세에는 당연히 영악한 늑대가 필요하지만 치세에는 충성스러운 개가 필요한 법이다.

천하통일의 위업을 짊어진 이성휘에게 있어 의심과 야망으로 똘똘 뭉친 한수는 좌시할 수 없는 화근이나 마찬가지였다.

“말로만 충성을 운운하는 것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게 있을까요?”

순유가 물었다.

조정의 사절단에게 친필서한을 보냈던 한수의 행동을 날카롭게 꼬집는 말이었다.

놈은 진심으로 충성하지 않는다.

그저 조조군의 강대한 힘을 두려워할 뿐이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한수를 굴복시킨다는 가후의 전략은 매우 훌륭했다. 한수를 내세운다면 내분과 다툼을 반복해온 서량 군벌들을 복속시킬 수 있을 테니.

“중앙의 통제력이 미약해진다면… 영악한 늑대들은 다시 본성을 드러낼 거다.”

이성휘는 서량 정벌을 구색만 맞춘 미완(未完)으로 끝낼 생각이 결코 없었다.

강압으로 군벌들을 굴복시킬 뿐인 정벌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렇게 판단한 이성휘는 일부러 한수를 자극하여 그의 본성을 알아보고자 한 것이었다.

“결국 한수가 불응한다면….”

“늑대는 당연히 때려죽여야죠. 주인의 팔을 물어뜯을 기회만 엿보는 짐승은 필요 없으니까요.”

개가 되겠다면 먹이로 길들인다.

늑대가 되겠다면 몽둥이로 때려죽인다.

관중제장 세력을 휘하로 포섭한 대군벌을 강압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이성휘 밖에 없으리라.

장안성을 불태우면서 포악을 떨쳤던 서량의 짐승들도 천하제일검만큼은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몽둥이를 들고 짐승들에게 위협을 가한 것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