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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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건장을 단숨에 제압했다.
하북의 맹장과 수백 합을 겨루기까지 했다.
그리고 잔병들을 규합하여 포위망을 탈출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구강왕(九江王) 영포가 돌아왔다.
압도적인 맹위와 무력을 경험한 조조군은 대경실색하며 마초를 초한전쟁의 영웅에 비유했다. 창을 휘두르면서 천군만마를 돌파하는 맹용이 너무도 대단했기 때문이다.
“마초가 달아난다!”
“쫓으라! 분명 화근이 될 거다!”
조성과 성렴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마초가 도망친다.
양주 제일의 맹장은 끝내 포위망을 돌파했다.
소수의 결사대로 분전하던 마초의 용맹은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마초를 경계한 장수들은 당장 뒤를 쫓으라며 병력을 재촉했다.
“이미 멀리 달아났습니다!”
“과연 서량 기병대로군! 저렇게 빠르다니…!”
조조군은 곧바로 추격에 나섰지만 마초는 부하들과 함께 멀리 달아난 뒤였다.
오장원(五丈原) 방면이다.
마등군의 잔병들은 남쪽으로 패주했다.
난전 중에 경황이 없었던 걸까.
마초는 조조군의 맹렬한 추격을 뿌리치고자 오장원으로 달아났다. 부친 마등과 동생들이 패주했던 방면과는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학맹과 위속이 그 년에게 당했다고?!”
척후들을 대동하고서 주변을 정찰하고 돌아온 여포가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서량의 금마초.
그 년에게 학맹과 위속이 당했다.
압도적인 무위를 휘두르는 맹장이 출현했다는 사실에 여포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강자와 창검을 마주할 기회를 놓쳤다는 무인으로서의 호승심이었다.
“우리 멍청이들을 구해줬다며? 역시 빠릿빠릿한 신입답게 제법이야!”
여포가 함박웃음을 터트리면서 회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의 등을 토닥였다.
그에 여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신입이라니…! 잠시 협력했을 뿐이야. 절대 너희들의 부하가 된 게 아냐.”
“그래그래.”
“…….”
적개심이 가득한 목소리에도 여포는 친애의 감정을 내비쳤다. 그 살가운 행동에 조운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서량의 악도들을 징벌한다.
그저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가세했을 뿐이다.
주군의 적들에게 상찬을 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
조운은 새침데기처럼 콧방귀를 뀌면서 고개를 돌렸다. 길들여지지 않은 들고양이를 보는 듯했다.
“과연 대단했네.”
“마맹기가 영포라면 조자룡은 관영에 버금가겠군!”
무후(武侯) 관영은 유방이 거병했을 당시부터 맹장으로 무명을 떨친 굴지의 선봉장이다.
서량의 금마초와 용호상박으로 무예를 겨룬 조운의 활약에 조조군 장졸들이 경외와 감탄을 보냈다.
단번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에 조운은 얼굴을 붉히면서 자리를 피했다.
“장졸들의 상찬처럼 조운은 무후(武侯)에 버금가는 맹장이옵니다. 귀하게 쓰시옵소서.”
“…그건 나도 안다만.”
가후가 쿡쿡 웃으면서 말했다.
부끄러워하며 자리를 피하는 조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성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운은 당대 최고의 명장이다.
휘하에 두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굴뚝같았다.
하지만 원소를 향한 충성심이 투철했기에 섣부르게 투항을 권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성휘는 잠시나마 조운을 객장(客將)으로 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왜 그리 어렵게 생각하세요?”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난감함을 금치 못하는 주군에게 ‘비장의 권유방법’을 알렸다.
“주군의 절륜한 솜씨로 조운 장군을 순종적인 암컷으로 만들어버리면 바로 해결이잖아요?”
“…….”
백마의종을 지휘하던 조운을 음란하게 헐떡이는 백마(白馬)로 만들어버리라는 순유의 참언에 깊은 한숨을 토해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실로 얼토당토않은 말이었다.
물론 그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닌데….
본인이 천하제일의 난봉꾼임을 애써 부정한 이성휘는 순유의 참언을 그대로 반려했다.
“이제 한수가 어떻게 나올 것 같나?”
이성휘가 물었다.
영예로운 주군의 물음에 가후가 입을 열었다.
“구사일생으로 도망쳐온 사냥개를 그대로 가마솥에 삶아버리지 않겠사옵니까. 맹주로 추대했던 북궁백옥과 왕국을 교살했듯이 말이옵니다.”
가후는 옆에서 보필했던 맹주들을 간교한 방법으로 살해한 한수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인의에 얽매이지 않는 잔혹성.
자비와 아량의 편린조차 보이지 않는 잔악함.
썩은 시체를 뜯어먹는 들개와 다름없는 인물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수는 난세에서도 손에 꼽을 지독한 악인이었다.
“결국 한수는 주군에게 복속해올 것이옵니다. 그를 내세워 서량을 복속하시옵소서.”
한수는 배신과 변절을 반복해온 악인이지만 곧바로 대세에 순응하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다.
결국 원소군은 몰락할 터.
황제를 내세워 제후들을 호령하는 조조군이 천하의 향방을 거머쥐리라.
서량을 관할하는 제후로 임명한다면 중원의 통치에 순종적으로 복종할 것이었다. 결코 조조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수를 장기말로 삼으란 말인가?”
이성휘가 물었다.
그에 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량은 맹수들이 득실대는 아비규환의 지옥이옵니다. 양주와 옹주의 군벌들을 모두 무력으로 정벌하기 위해선 치명적인 출혈을 감수해야 할 것이옵니다.”
양주 무위군 출신이었던 가후는 서량인들의 난폭한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놈들은 짐승이다.
결코 통치에 교화되지 않을 것이었다.
마등군을 흡수하여 대군벌로 성장할 한수를 제후로 임명하여 굶주린 짐승들에게 튼튼한 목줄을 채우라.
가후는 그것만이 서량을 복속시킬 유일한 방안임을 진언했다.
“흐음.”
참모의 설명을 경청하던 이성휘는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무거운 침음을 흘렸다.
* * *
천신만고를 겪고서 본대에 합류한 정서장군 마등은 곧장 의형제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조조군이 함양을 휩쓸었다.
서량을 침략해온 놈들을 당장 요격해야 한다.
고립무원의 전황에 낙오된 외동딸을 반드시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둔영에 들어섰다. 분명 한수라면 기꺼이 제 일처럼 나서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등을 죽여라!”
“서량의 환난을 몰고 온 원흉이다!”
그러나 그 믿음의 결과는 실로 처참했다.
한수의 심복들이 몰려들었다.
중무장한 정예병들이 단숨에 둔영을 포위했다.
부친 마등을 호위하던 마휴가 아연실색하며 칼자루를 뽑아들었다.
“네 이놈들!!”
병력들을 동원하여 주변을 포위한 장졸들은 한수군이 분명했다. 날카로운 창검들이 겨눠지자 마등은 고함을 내지르면서 두 눈을 부릅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의형제의 심복들이 왜 칼끝을 겨눈단 말인가?
지원을 요청하고자 둔영에 들어온 마등은 올가미에 스스로 들어온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성공영, 네놈이 감히!”
“닥쳐라!”
성공영이 칼끝을 들어올렸다.
모든 장졸들이 마등에게 병장기를 겨눴다.
이윽고 불화살이 쏘아졌다.
주변에 매복하고 있던 한수가 보낸 신호였다.
“주군의 허락이 떨어졌다! 마등을 척살하라!!”
날아든 불화살을 목격한 성공영이 검을 치켜들면서 돌격을 명령했다.
한수의 부하들이 벌떼처럼 달려들면서 마등을 급습했다. 상처 입은 노루를 사냥하듯이 포악한 고함소리와 함께 달려들었다.
“놈들을 막아라!”
마휴가 사방에서 달려드는 무리들에게 맞섰다.
중과부적이다.
달려드는 적들이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간악한 늙은이의 중상모략에 넘어간 아버지를 어떻게든 탈출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이 더러운 배신자들아!”
용맹하게 검을 휘두르면서 달려드는 적병들을 쓰러트렸다.
정서장군 마등의 장남답게 날카로운 검술을 자랑하면서 올가미에 저항했다. 마등의 수급을 노리던 한수군 병사들은 위협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컥!”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적들을 쓰러트리면서 끝내 분투하던 마휴가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해냈다.
한수의 심복이었던 곽헌이 칼끝으로 복부를 찔렀기 때문이다. 뒤이어 양규와 전악이 가세했다.
날카로운 창끝들이 주춤하던 마휴를 계속해서 꿰뚫었다. 뜨거운 핏물이 울컥울컥 쏟아짐과 동시에 마휴는 그대로 흙바닥에 고꾸라졌다.
“아, 아버지…!”
죽는 순간까지 아버지를 걱정했다.
그러나 죽음을 피할 순 없었다.
마휴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절명하고 말았다.
“네놈들…! 네놈들이!!”
호위병들과 함께 분전하던 아들이 죽었다.
성난 고함을 내질렀다.
앞을 가로막는 호위병들을 밀어내면서 싸움에 가세했다.
“마등이다!”
“놈을 죽이면 천금을 받을 수 있다!”
마등이 모습을 드러내자 한수군 병사들이 이리처럼 눈을 번뜩이면서 달려들었다.
그러나,
결코 마등은 호락호락한 적수가 아니었다.
상처투성이가 된 짐승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탐욕에 눈이 멀어 명줄을 재촉하는 우행을 범한 병사들이 쓸려나갔다. 마등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수많은 병사들이 단말마의 비명을 토해내면서 쓰러졌다.
“한수! 한수! 결국 권력에 눈이 멀어 의형제를 배신했단 말이냐!”
원수처럼 싸웠던 숙적.
함께 대의를 맹세했던 의형제.
중원 정벌의 기치를 치켜들었던 전우.
결국 그에게 배신당하고 말았다.
애처롭게도 의형제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에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던져졌다. 아들의 처참한 주검을 본 마등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살의를 드러냈다.
“서량의 맹우들과 함께 대의를 이루고자 일생을 바쳤건만…! 결국 더러운 배신에 무너진단 말인가! 으하하핫! 주군을 계속해서 배신해온 네놈을 그럼에도 믿었던 것이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비참한 통곡을 울부짖었음에도 한수는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겁한 놈.
과연 비열한 겁쟁이다웠다.
분명 어디선가 몰래 현장을 지켜보고 있을 터.
마등은 피와 살점이 뚝뚝 떨어지는 칼날을 높게 치켜들면서 두 눈을 번뜩였다.
“뭣들 하느냐!”
“어서 놈을 죽여라! 죽이란 말이다!!”
격앙된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성공영. 국연. 장석. 곽헌.
한수의 심복들이 모두 마등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검격이 사방에서 쇄도했음에도 마등은 물러서지 않고 응전했다. 핏물을 뒤집어쓴 채 병장기를 내지르면서 한수군 병사들을 도륙 냈다.
“이 괴물 같은 놈!”
국연이 창을 내지르면서 마등의 배후를 찔렀다.
“마등!”
“네놈의 아들 곁으로 가라!”
장석과 곽헌이 날카로운 칼끝으로 마등의 옆구리를 깊게 찔렀다. 핏물이 쏟아짐과 동시에 맹수처럼 날뛰던 마등이 무릎을 꿇었다.
털썩-.
결국 서량의 대군벌이 주저앉았다.
“흐읍!”
마지막으로 성공영이 검을 번쩍 휘두르면서 마등의 목을 쳤다.
드디어 놈이 죽었다.
성공영이 물러나자 눈치를 보던 병사들이 달려들어 마등의 주검을 찢어발겼다.
급습에서 활약을 세웠다는 증거가 필요했던 병사들은 마등과 마휴의 주검을 사정없이 푹푹 찌르면서 흔적을 알아보기 어려운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실로 처참한 말로로군.”
“안심할 때가 아닐세. 마등의 둘째 아들이 있지 않은가.”
“걱정 말게. 놈은 이미 죽은 목숨이니. 어린 애송이 따위가 관중제장을 어찌 이기겠나?”
마철은 둔영으로 향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바깥에서 함양의 군세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를 격멸하고자 관중제장을 움직였다.
숙련된 정예들을 투입시켰다.
곧 마등의 둘째 아들도 목이 떨어질 것이었다.
마등이 사망하면서 상황이 정리되자 성공영은 주군에게 결과를 보고하고자 발걸음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