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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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조조군이 급습해왔다.
함양에 입성하여 군세들을 수습하던 정서장군 마등은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적의 군세는 7만.
황량한 벌판을 가득 메우고도 남을 대군이었다.
만약 조조군이 파상공세를 펼친다면 진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서 전멸할 터였다. 위기를 직감한 마등은 제장들에게 재차 서두르도록 명령했다.
“맹기는 괜찮으냐!”
마등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마휴가 대답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아버지!”
삼면에서 밀려드는 조조군의 파상공세는 지금 당장이라도 함양을 집어삼킬 듯했다.
과연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마등과 마휴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철수를 서두르는 다른 장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금속음과 비명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때마다 두려움이 점점 확산되었다.
“제가 누님을 돕겠습니다!”
부친 마등을 보필하던 마철이 호기롭게 나섰다.
누님에게만 맡길 순 없다.
자신도 전장에 나서겠노라고 부친에게 외쳤다.
“숙부님!”
흙먼지를 뒤집어쓴 마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급박한 일이 벌어진 걸까.
마초와 함께 군진을 지휘하던 마대가 달려왔다.
“저희들이 사력을 다해 막겠습니다. 그러니 숙부님께서는 어서 함양을 빠져나가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냐!”
아군이 무사히 퇴각할 수 있도록 후미를 계속 사수하도록 하겠다.
그 말은 곧,
장렬히 산화하겠다는 의미였다.
스스로 희생을 떠안으려는 외동딸의 결정에 마등은 통한을 금치 못했다. 마대의 전언에 마등은 당장이라도 검을 들고 뛰쳐나갈 것처럼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주군, 안 됩니다!”
“적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전장에 나서려는 마등의 독단행동에 무관들이 다급히 앞을 가로막았다.
중과부적이다.
이대로는 모두 죽을 뿐이다.
조조군의 파상공세를 피해 함양에서 철수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무관들은 주군을 한사코 뜯어말렸다.
“아버지!”
“어서 무관들은 아버지를 모셔라!”
마휴와 마철이 소리치면서 무관들에게 명령했다.
* * *
전장에서 격돌한 마초와 조운은 일기당천의 무예를 뽐내면서 공방을 이어나갔다.
위태로운 혈전이 벌어졌다.
주고받은 공방이 100여 합을 넘어섰을 정도였다.
설마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의 등장에 마초는 무거운 초조함을 느꼈다. 조조군의 예봉을 격퇴하고서 곧장 철수하고자 했던 계획이 어그러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분명… 상산의 조자룡이라고 했었지? 나와 비등하게 싸울 정도의 맹장이 또 있을 줄이야.”
여포와 장료만 경계하면 된다.
그 생각은 실로 어리석은 오판이었다.
천하제일검 이성휘는 한나라 군부를 관장하는 대장군이다. 당연히 휘하에 일기당천의 용맹과 무력을 자랑하는 장수들이 차고 넘칠 수밖에 없었다.
안일했다.
자신에 필적하는 맹장이 또 있을 줄이야.
실수를 겸허하게 인정한 마초는 병장기를 움켜쥐면서 눈앞의 적을 노려보았다.
“무고한 백성들을 살해한 악도 주제에 제법이군.”
“…….”
모멸감이 느껴지는 조운의 발언에 마초는 한순간이나마 전의를 상실할 정도의 동요를 느꼈다.
나는 아니다.
결코 백성들을 죽이지 않았다.
결사항전에 가세했던 장안성 백성들을 참혹하게 학살한 것은 관중제장 세력이다. 욕망과 살의에 지배당한 놈들이 독단으로 벌인 광기였다.
‘아니, 백성들을 직접적 죽이진 않았어도 장안성 백성들의 눈에는 동류로 보이겠지. 결국 놈들의 잔악한 행동을 묵인해버렸으니까.’
묵인. 방관.
가장 비겁하고 비열한 행동이다.
관중제장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결국 막아내지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하늘의 노여움을 받아 마땅한 대죄이리라.
그렇기에 마초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뭐라고 항변을 할까.
무슨 말이든 치졸한 변명에 불과하겠지.
비겁한 방관자인 자신은 만천하로부터 당연히 모멸을 받아 마땅했다.
“하늘을 대신하여 악도를 벌하겠다.”
장안성의 무고한 백성들을 살육하여 주군의 명예를 더럽힌 악도들은 징벌을 받아 마땅하다.
주군의 숙적인 천하제일검의 휘하에 가세하는 굴욕을 감수하면서까지 참전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 덤벼라, 상산의 조자룡!!”
마초가 두 눈을 부릅뜨며 일갈했다.
그에 호응하듯,
조운이 지면을 걷어차면서 달려들었다.
“어디 죽을 때까지 싸워보자!”
잠시 숨을 고르면서 소강상태를 이루었던 여걸들이 재차 부딪쳤다.
돌풍처럼 매서운 창격들이 난립하면서 서로에게 빠르게 날아들었다. 목이 언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난전이었음에도 여걸들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투하앙!!
파가가가가각──!!!
병장기들이 부딪쳤다.
고함소리처럼 쩌렁쩌렁한 금속음이 울렸다.
“큭-!”
“아직이다!”
충격의 여파에 물러섰던 마초와 조운이 이를 꽉 깨물면서 다시 접전을 벌였다.
물러서지 않는다.
끝까지 적수에게 부딪칠 뿐이다.
싸움의 열기에 취해버린 여걸들은 흙먼지를 나부끼면서 병장기를 휘둘렀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음에도 아랑곳 않고 병장기에 사력을 담아냈다.
“마등군이 도망친다!”
“수괴 마등의 대장기가 보인다!”
결투의 불꽃이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을 때,
전황이 급변했다.
함양의 마등군이 움직인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재정비를 끝마친 마등군이 철군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군기들을 펄럭이면서 함양에서 철수하는 마등군의 모습에 조조군이 격앙된 고함을 내질렀다. 그저 위협이 목적인 것처럼 성난 고함과 함께 고각소리를 울리면서 전운을 고조시켰다.
“큭…! 결투는 다음으로 미루겠다, 조자룡!”
철군을 시작했다.
분명 적들이 벌떼처럼 후미를 공격할 터.
결투에 집중할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아버지와 동생들이 무사히 탈출하도록 시간을 벌어야 했다.
창격을 휘두르면서 조운을 떨어트린 마초는 다급한 발걸음으로 물러섰다. 잠시 밀려난 조운은 곧장 마초의 뒤쫓고자 했다.
“멈춰라, 계집!”
“지금부터 우리들이 상대하겠다.”
마초를 보필하던 무관들이 칼끝을 겨누면서 조운을 가로막았다.
빌어먹을…!
결판을 내지 않고 도망치다니.
조운은 입술을 깨물면서 창을 거머쥐었다.
“아가씨!”
“오셨습니까, 누님!”
방덕과 마대가 마초를 맞이했다.
본대가 철군하고 있다.
드디어 전장에서 퇴각할 때가 온 것이다.
마초는 조운과의 결투로 몹시 피로한 상태였음에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조조군의 공세에 살아남은 잔병들을 규합하여 아군의 후미를 사수했다.
“아버지는?”
“걱정 마십시오. 무사히 빠져나가셨습니다.”
그 대답에 마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사하다.
멀쩡히 전선을 벗어나셨다.
동생들이 철통처럼 아버지를 호위하고 있을 것이기에 무거운 우려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들입니다.”
마대가 비명을 삼키면서 중얼거렸다.
사방이 모두 적이다.
조조군이 노도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예봉을 격퇴하여 조조군의 공세를 늦춰보고자 시도했지만 조운의 분전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마초는 적들이 둘러싸인 고립무원에 직면하는 위기를 맞이했다.
“지금부터 적진을 돌파한다. 준비해라.”
“예!”
마초가 창을 들었다.
그에 방덕이 앞장서면서 대답했다.
포위망을 뚫어 전장을 이탈한다.
마초의 명령이 떨어지자 방덕과 마대가 기병부대를 이끌었다.
* * *
마등군이 탈출했다.
함양을 벗어나 괴리에 도달했다고 한다.
실로 대단한 전력이다.
7만 대군의 턱밑에서 무사히 달아날 줄이야.
분명 서량의 금마초가 크게 활약했을 터.
부하 성공영으로부터 보고를 들은 한수는 제장들에게 명령하여 작전에 돌입했다. 이미 한수군은 만반의 준비를 갖춰둔 상태였다.
“신호를 보내면 마등과 자식들을 모두 죽이게.”
“알겠습니다, 어르신.”
한수의 하명에 휘하 장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등을 죽여라.
드디어 모살(謀殺)이 내려졌다.
서량을 군림해온 대군벌을 도모하는 일이었기에 한수군의 장수들은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윽고 두려움을 떨쳐내고서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주군의 명령이 떨어지면 곧바로 달려들어 마등의 목을 베겠다며 서로 결의했다.
“문제는 마초인데….”
한수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서량의 금마초.
그 계집을 대적할 방법이 없었다.
가문과 가족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계집이니 결코 투항하지 않으리라. 끝까지 결사항전을 벌이면서 자신들을 위협할 게 분명했다.
‘마등…. 결국 네놈은 내게 죽을 운명이었다.’
맹주로 옹립했던 주군들을 연이어 살해했던 한수는 마등 또한 언젠가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것을 위한 양보였으니까.
“나를 따를 텐가?”
한수가 두 눈을 부릅뜨면서 물었다.
평소의 부드럽고 인자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맹수였다.
마치 굶주린 늑대를 연상시켰다.
서늘한 냉기가 느껴지는 물음에 군벌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종용을 거절하면 현장에서 곧바로 목이 달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수! 과연 늑대로구나…!’
‘늙어도 맹수는 맹수라는 것이군. 의형제를 맺은 마등을 이리도 쉽게 배신한단 말인가!’
마등과 한수는 옛날부터 대립해온 숙적이었지만 서로 화해하고 의형제를 맺은 사이였다.
의형제를 배신하다니.
그 모든 것들이 야망을 위한 속임수였단 말인가.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염행 장군.”
“하명하십시오.”
병장기를 치켜들면서 한수의 배후를 호위하던 장수가 부름에 응답했다.
염행.
한수의 오랜 심복이었다.
용맹한 맹장들로 유명한 마등의 자식들에 필적하는 무예를 갖춘 장수로 유명했다. 한수의 부름에 염행은 병장기를 굳게 움켜쥐었다.
“마등의 옛 본거지인 무위군으로 가서 마씨 일족을 모조리 멸족시키게. 화근을 남겨선 안 되네.”
“알겠습니다.”
마씨 일족을 모두 몰살시켜라.
그 말은 곧,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등의 모든 혈육들을 참살하라는 명령이었다.
실로 잔인무도한 명령이었음에도 염행은 일말의 내색도 없이 받아들였다. 비정한 성정이었던 염행은 지금까지 명령을 모두 완수해낸 서평군의 숙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