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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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다.
겨우 이틀 만에 장안성을 빼앗겼다.
조조군이 개입했다.
무려 7만의 군세를 이끌고 가세한 것이다.
대장군에 등극한 천하제일검이 대군을 이끌고 참전했다는 급보에 서량군의 사기가 풍랑처럼 흔들렸다.
“모두 기만이었소이다!”
“사절단을 보내어 화의를 종용하더니… 그게 다 아군을 속이려는 간악한 속임수였던 게요!”
관중제장은 역시 중원 놈들은 믿을 수 없다며 언성을 높였다.
사절단이 둔영에 들어오자마자 단칼에 죽였어야 했다며 살의를 토해내는 장수들도 적지 않았다.
“조조군의 사절단이 왔었는가?”
마등이 물었다.
그에 한수가 대답했다.
“사절단으로 위장한 척후들이 왔었네. 분명 아군의 동태를 살피러 온 것이었을 테지.”
“실로 간악한 놈들이군.”
조조군의 중상모략에 넘어갔다는 한수의 말에 마등이 적의를 내비쳤다.
화전양면(和戰兩面).
중원 놈들의 전형적인 술책 중 하나였다.
반란군의 두령으로서 낙양에서 파견된 조정군과 악전고투를 치렀던 마등이었기에 중원 놈들의 간악함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 명을 내려주십시오.”
“당장 함양에 있는 병력을 철수시켜야 합니다.”
관중(關中)에 전운이 돌기 시작했다.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위기감을 직감한 마휴와 마철이 소리쳤다.
장안성 다음은 우부풍(右扶風)이다.
함양으로 거점을 옮겼던 마등군은 조조군의 공격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상태였다. 천하제일검이 총공세를 가할 위험이 높았기에 철수를 권고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군. 관서에서 유언군이 물러나자마자 조조군이 위협을 해올 줄이야.”
두 아들들의 말이 맞다.
군령을 내리고자 마등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우선 병력들부터 소집해야 하네. 이대로 조조군과 싸우는 것은 어불성설일세.”
이대로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다.
적의 병력은 무려 7만.
그에 반해 연합군은 적들의 절반에 불과했다.
한수는 결전에 동원하기 위한 병력들이 필요하다며 관중제장과 함께 진천(鎭川)으로 가겠다는 뜻을 마등에게 밝혔다.
“함양의 군세들을 이끌고 진천으로 합류하게. 단기결전으로는 승산이 없네.”
서량의 척박한 지세를 이용하여 조조군을 고립시켜야 한다는 한수의 전략은 훌륭한 정론이었다.
적들은 서량을 모른다.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척박한 대지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무위군(武威郡)과 서평군(西平郡)의 병력을 모두 결집시킨다면 조조군과 일전을 치를 수 있겠지.
“문약, 자네의 말이 옳네. 놈들을 척박한 황야에 몰아세운다면 능히 승산이 있겠지.”
한수의 주장에 마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따르겠노라고 대답했다.
전법에 다소 문외한이었던 마등은 의형제인 한수의 결정에 의존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의견을 일말의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조조군을 황야에 고립시킨다.
무위군과 서평군의 군대를 규합하여 건곤일척의 결전을 도모한다.
반란을 진압하고자 서량으로 출정했던 조정군을 상대로 우세를 선점해온 전법이었기에 마초도 납득하는 모습을 보였다.
“숙부님, 말을 준비했습니다.”
마대가 군막 안으로 들어섰다.
그에 마등이 멈췄던 발걸음을 움직였다.
“다녀오게. 만반의 준비를 취하고서 기다릴 테니.”
한수가 의형제를 배웅하면서 당부했다.
제장들과 진천으로 오라.
만반의 준비를 취하고서 기다릴 터이니.
아버지를 따라 발걸음을 움직인 마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은연중에 흘린 한수에게 경각심을 느꼈다. 마치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기괴한 불안감이었다.
‘연회 이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어, 몰래 숨겨둔 꿍꿍이라도 있는 것처럼. 기분 나쁜 놈들.’
한수.
그의 부하인 성공영.
군세를 지휘하는 관중제장.
군막에 집결한 면면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던 마초가 이윽고 고개를 돌렸다.
한가롭게 의심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장안성을 함락시킨 조조군이 함양에 주둔하고 있는 아군을 언제 습격할지 알 수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지금은 7만 대군을 맞닥뜨린 아군을 구원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때였다.
* * *
동관을 넘어선 조조군이 속전속결로 장안성을 함락시키자 삼보(三輔) 지역이 크게 요동쳤다.
마침내 조정군이 당도했다.
장안성의 소식을 들은 삼보의 백성들이 술렁였다.
원소군을 형양에서 완파했던 조조군이 결국 마등과 한수마저 격파할 터. 관중제장의 위압에 굴복했던 삼보 지역의 호족들이 잇달아 조조군에 투항했다.
“예상대로 마등이 당도했습니다.”
척후들과 귀환한 장료가 소식을 알렸다.
마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병마들이 함양에 입성하는 것을 보았다.
관서에 주둔했던 마등군이 함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린 이성휘는 급히 참모들을 소집했다. 서량의 군벌로 군림해온 마적들을 모두 소탕하기 위한 군략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구태여 마등을 칠 이유는 없사옵니다.”
적들은 분열하고 있다.
그림자에 숨어들어 반목과 배신을 속삭이고 있으리라.
자중지란에서 촉발된 혼란을 이용한다면 서량 세력을 빠르게 일망타진할 수 있다.
가후는 심리전의 귀재답게 내분과 반목을 이용하는 전술에 능통했다. 한수의 야심을 간파한 가후는 이미 여러 군략들을 착안해둔 상태였다.
“결국 마등이 함양의 군세들을 이끌고 서량으로 물러난다면 필시 내홍이 촉발될 것이옵니다.”
두 손뼉을 세게 마주쳐야 박수소리가 큰 법이다.
분란 또한 그러했다.
충돌하는 힘이 클수록 내분은 더욱 격화될 터.
조조군의 우수한 참모들이 적들의 자중지란을 교묘하게 이용하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마등군을 돌려보낼 순 없다. 마등은 뛰어난 숙장이다. 아군을 계속 요지부동으로 일관한다면 분명 수상하게 여길 거다.”
장료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성휘의 의중을 헤아린 장료가 고개를 끄덕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아름다운 흑발을 늘어뜨린 미녀가 곧바로 제장들을 이끌고 출정했다.
교란이 목적이다.
함양에 입성한 마등군을 뒤흔들기 위해서였다.
출정한 장료는 파상공세를 명령하여 함양에 입성했던 마등군을 공격했다. 그에 마등군은 기병부대를 급파하여 파도처럼 밀려드는 조조군에 맞섰다.
“마적들을 쳐라!”
“장안성의 원수를 갚아주자!”
학맹과 위속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조조군의 팔건장에 맞서 마등군은 용맹무쌍한 맹장을 전장에 투입시켰다. 철수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이 앞은 비켜줄 수 없다.”
흑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성이 창을 늘어뜨린 채로 조조군을 대적했다.
서량의 금마초.
양주 제일의 맹장.
정서장군 마등의 장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혈혈단신으로 조조군을 막아선 마초는 이윽고 군마에 박차를 가하면서 달려들었다. 마초의 반격에 팔건장은 병마들을 앞세우면서 진압에 나섰다.
“서량의 금마초인가!”
“대장군께서 말씀하신 그 무장입니다!”
군세들이 격돌하자마자 마초는 창을 내지르면서 조조군의 선봉을 돌파했다.
과연 양주 제일이다.
용력과 무예가 대장군부의 맹장들에 비견될 정도였다.
사방에서 창검들이 날아들었음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전장을 가로질렀다. 계속 돌파를 거듭하면서 활약하는 마초의 분전에 팔건장은 침음을 삼켰다.
‘이성휘…! 천하제일검은 없는 건가!’
마초가 고개를 들었다.
부하들 밖에 없다.
천하제일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창을 내지르면서 달려들던 조조군 장졸들을 쓰러트린 마초는 군마에 박차를 가하면서 질주했다.
“적장은 멈추라!”
“팔건장의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날카로운 창술을 뽐내던 마초에게 대장군부의 장수들이 성난 함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팔건장.
분명 천하제일검의 심복들이다.
마초는 팔건장의 무명을 익히 들었음에도 병장기를 치켜들면서 대적했다. 천하제일검을 이기고자 지금까지 연마해온 무예를 입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서량의 금마초다!”
쩌렁쩌렁한 사자후를 내질렀다.
이윽고 학맹과 위속에게 맹공을 퍼부어댔다.
“크읍!”
“학맹 장군!”
패배의 치욕을 곱씹으면서 단련을 거듭했던 마초는 굴지의 무위를 자랑했다. 분명 이성휘를 대적했을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서량의 금마초는 강하다.
수많은 난전들을 돌파했던 팔건장조차도 감히 대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선봉을 지휘하는 팔건장이 서량의 금마초를 대적한다면 필시 참담한 결과가 전해질 터.
그것을 이성휘는 잘 알고 있었다.
“물러서라, 팔건장!”
회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걸이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지르면서 결투에 난입했다.
쩌엉-!!
곧바로 마초와 일격을 주고받았다.
서량 제일의 맹장과 창격을 교환했음에도 일촉즉발의 상황에 난입했던 여걸은 멀쩡했다.
능숙하게 태세를 갖추면서 숨을 내쉬었다.
무시무시한 괴력이다.
게다가 창술 또한 수준급이었다.
여걸은 목에 두르고 있던 하얀 삵의 가죽을 눌러쓰면서 얼굴을 반쯤 가렸다. 용맹무쌍한 난적을 마주하였을 때 보이는 그녀의 버릇 중 하나였다.
“나는 상산의 조자룡이다. 장안성의 무고한 백성들을 살육한 짐승들을 벌하고자 왔다.”
“…장안성.”
조운의 선언에 마초는 무거운 목소리를 내뱉으면서 창을 들어올렸다.
실로 무거운 말이다.
무거운 쇠붙이가 경맥을 찌르는 듯했다.
침음을 삼키면서 장안성에서 벌어진 시산혈해를 떠올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만 명의 백성들을 도살했던 군중의 광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