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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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동관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던 관중제장(關中諸將)은 전쟁을 치를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한양군의 함락에 위기감을 느낀 관중제장은 결국 전쟁에 가세하기로 결의했다.
북상을 계속 개시하는 유언군을 좌시한다면 자신들의 영역권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유언을 쳐라!”
“익주 놈들을 우리 땅에서 몰아내자!”
한양군을 함락시킨 유언군은 기어코 농서군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후선, 정은, 이감이 병마들을 이끌고 참전했다.
기필코 늙은이를 막아야 한다.
놈들이 농서군마저 함락시킨다면 양주의 패권을 상실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예주 원정의 패전으로 우여곡절을 감당해야 했던 관중제장에게 있어 그것은 세력의 멸망으로 직결되는 일이었기에 사력을 다해 나섰다.
“마적들이 온다!”
“벌레 같은 놈들, 지옥을 보여주마.”
고패와 냉포가 한손을 치켜들면서 궁수들을 집결시켰다.
활시위를 당긴 궁수들은 새카맣게 밀려드는 기마군단을 노려보면서 화살을 겨눴다.
유범 공자의 복수를 위해.
후계자의 비참한 최후에 분개한 유언군은 기마군단의 질주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것을 선택했다.
“쏴라!”
쩌렁쩌렁한 고함이 울렸다.
그 순간,
파바바박!!
파바바바바박──!!!
거센 화살세례가 솟구쳤다.
이윽고 화살들은 날카로운 장대비가 되어 미련스럽게 달려들었던 서량 기마군단을 강타했다.
“어억!”
히이이이잉!!
화살을 맞은 무관이 외마디의 비명만을 토한 채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말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십 발의 화살들에 벌집이 되고 말았다.
창천을 새카맣게 뒤덮은 화살세례들이 연이어 빗발치면서 관중제장의 만용을 짓밟았다. 그 처참한 모습은 마치 수레바퀴에 으스러진 사마귀를 보는 듯했다.
“흐하하핫!”
“이 하찮은 놈들.”
속절없이 무너지는 서량의 기마군단을 바라보던 고패와 냉포가 대소를 터트렸다.
예상대로 서량군은 동관 공방전의 손실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관중제장의 병력이 현저히 적었다.
전투에 참전한 병마들의 사기도 형편없었다.
게다가 동관 공방전에서 수많은 정예병들을 잃었기 때문에 병단의 질이 떨어졌다. 당연히 그것은 관중제장 세력의 치명적인 약화로 이어졌다.
“이, 이놈들이!”
“벌써 선봉이 전멸했소이다! 심상치가 않소…!
후선이 이를 빠득 갈았다.
그에 정은은 두려움에 젖은 우려를 보냈다.
선봉군이 전멸했다.
뒤이어 후열들도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돌격을 감행하기만을 계속 기다렸다는 것처럼 빗발치는 화살세례에 관중제장은 전투에 가세하자마자 낭패를 보게 되었다.
“오합지졸을 쳐라!”
“유범 공자의 복수를 위해!”
산기슭에서 매복하던 유언군 병력이 움직였다.
양회. 등현.
두 장수들이 달려들었다.
관중제장의 행동을 간파한 유언군은 화살세례로 기마군단의 저지시키고서 매복하던 장졸들을 전장에 투입시켰다.
“아군을 구원하라!”
“교활한 익주 놈들에게 서량의 기개를 보여주자!!”
매복병들의 투입과 동시에 전장을 우회하여 접근한 관중제장 병력이 뛰어들었다.
광활한 벌판을 휩쓸었던 관중제장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크게 열세였음에도 그들은 북상하던 유언군에게 일격을 가했다.
“궁지에 몰린 시궁쥐로군.”
“무의미한 발악이다! 서량 놈들을 짓밟아라!!”
그에 유언군도 반격에 나섰다.
무력한 발버둥에 불과하다.
결국 놈들은 까마귀의 먹이로 전락할 터.
연전연승을 이어왔던 유언군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비천한 마적들은 압도적인 전력에 짓밟힌 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으리라.
“장군! 적의 기병대가 오고 있습니다!”
보병부대를 투입하여 관중제장의 돌격을 연이어 저지하던 등현은 척후들로부터 보고를 듣게 되었다.
적의 기병대가 오고 있다.
가세하려는 적의 증원은 5천 남짓이었다.
소규모에 불과한 기병대의 가세에 등현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대체 어느 방면에서 달려온 병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겨우 5천이지 않은가.
“장군!”
뒤이어 후방을 정찰하던 척후가 돌아왔다.
“금마초…! 서량의 금마초가 가세했습니다!”
“마등이 결국 가세하려는군!”
서량 제일의 맹장.
정서장군(征西將軍) 마등의 여식.
마초가 가세했다는 척후병의 소식에 등현은 서둘러 다른 장수들에게 급보를 전했다.
서량의 금마초가 달려왔다면 뒤이어 마등군도 전장에 끼어들 터. 마등군과 한수군은 반드시 멸망시켜야 할 철천지원수였기에 격렬하게 반응했다.
“기필코 마씨 일족을 멸해야 한다! 유범 공자의 원수임을 잊지 말라!”
“예, 장군!”
등현의 호령에 무관들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 * *
지금까지 저질렀던 혐의들이 발각된 허유는 곧바로 옥청(獄廳)에 투옥되었다.
부정부패. 가렴주구.
허유는 극형이 확정된 사형수나 다름없었다.
결코 원소는 탐욕을 범한 부하들을 용서치 않는다.
지금까지 혐의를 받은 부패한 관료들을 일벌백계하여 엄벌하지 않았던가. 원소의 오랜 측근이었던 허유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웃기지 마라! 이것은 모략이다! 난신적자들의 모함이란 말이다!!”
메기수염을 기른 사형수가 꽥꽥 소리쳤다.
혐의들이 모두 확실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죄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질투가 득실대는 정적들의 모함이라며 끝까지 책임을 회피했다. 과연 폭군의 대명사인 원술로부터 탐욕스러운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더럽게 시끄럽네.”
“내 언젠가 이리 될 줄 알았지.”
옥청의 옥졸들이 까마귀처럼 꽥꽥 울어대는 허유를 혐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는 옛날부터 악독한 탐관오리로 유명했다.
탐관오리로 악명을 떨쳤음에도 지금까지 계속 좌시해온 것은 원소가 조용히 묵인해준 덕분이었다.
그러나 주군으로부터 엄명이 떨어졌으니 날이 밝자마자 저잣거리에서 목이 잘릴 터였다.
옥졸들은 요지조리 빠져나가던 탐관오리가 결국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며 비웃음을 던졌다. 그에 자존심이 구겨진 허유는 두 눈을 부릅뜨면서 옥졸들을 노려보았다.
“네놈들이 감히…! 이 허자원을 모욕하고도 살아남기를 바라느냐! 나는 본초의 오랜 벗이다, 곧 본초가 나를 풀어줄 거다! 여기서 나가기만 한다면 네놈들을 절대로 살려두지 않겠다!!”
본초가 나를 죽일 리 없다.
오랜 지기지우였다.
또한 낙양에서부터 보필했던 중신이기도 했다.
무거운 혐의들로 하옥된 허유는 원소가 지기지우를 죽일 리가 없다며 목청을 높였다. 그 모습이 마치 맹수에게 쫓기는 산양을 보는 듯했다.
‘원본초, 이 빌어먹을 년이…! 지금까지 분골쇄신하여 네년을 섬겼거늘! 어떻게 오랜 지기지우를 이리도 비참하게 버릴 수 있단 말이냐!!’
본인의 욕심과 탐욕에서 비롯된 철저한 인과응보였음에도 허유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악독하고 교활했다.
실로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었다.
저잣거리로 끌려나가 목이 잘리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죄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테지.
정쟁을 무마하기 위한 버림패로서 지금까지 원소에게 중용되었다는 것도 모른 채, 탐욕스러운 소인배는 원소에게 잔인한 저주들을 쏟아냈다.
“장군!”
보초를 서던 옥졸들이 예를 취했다.
한순.
원소군의 장수였다.
무슨 이유인지 으슥한 한밤에 발걸음을 했다.
한순은 수감된 허유를 잠시 바라보더니 옥졸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내일 처형하기 전에 죄인이 스스로 죄목들을 이실직고할 수 있도록 심문하고 싶네.”
“그, 그렇습니까…!”
수감된 죄인을 심문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순이 탐관오리를 심문하고자 옥청에 발걸음을 했다고 여긴 옥졸들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나가있도록 하게. 금방 끝날 터이니.”
“예!”
한순의 지시에 옥졸들이 예를 취하면서 물러났다.
컥!
커허억!!
그와 동시에 옥졸들은 목숨을 잃었다.
바깥에서 대기하던 병사들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버린 뒤에 목덜미를 그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르신!”
옥졸들을 처리했음을 확인한 한순이 열쇠를 이용하여 옥문을 급히 열었다.
잠자코 기다리던 허유는 한순의 도움으로 옥방에서 빠져나왔다. 자신을 구해주리라고 확신했던 듯했다.
“이제 어찌하면 좋습니까…! 혐의들이 모두 드러난다면 저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한순은 허유로부터 오랫동안 뇌물을 받아먹은 끄나풀이었다.
수사망이 좁혀오고 있다.
불안감을 느낀 한순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자신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을 터.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이 필요했던 한순은 허유에게 방도를 물었다. 오랫동안 주군을 보필해온 허유라면 해결책이 존재하리라 맹신하고 있었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세!”
“예, 알겠습니다…!”
허유와 한순이 옥청을 벗어났다.
그 뒤,
변복까지 끝낸 허유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바깥에서 대기하던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외성을 탈출하기에 이르렀다. 경비가 평소처럼 매우 삼엄했지만 그때마다 한순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억류된 가솔들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두고 떠난다면 필시 큰 화를 입게 될 겁니다.”
한순이 말했다.
그에 허유가 크게 놀라며 소리쳤다.
“장졸들에게 감시를 받고 있는 가솔들을 구할 방법은 없네! 오히려 우리 모두 죽을 뿐이야! 봉기가 그리 어설프게 일을 꾸몄으리라 보는가!”
“예? 그렇다면….”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
철두철미한 성정의 봉기가 모략을 주도했다면 결코 어설프게 방비하진 않았으리라.
허유는 잠시의 고민도 하지 않고 가솔들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늙은 부모와 처자식을 떠올린 허유는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발걸음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가솔들의 목숨보다도 제 목숨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 일단… 산으로 피하세!”
“알겠습니다.”
곧바로 남쪽으로 도망치지 않고 서쪽으로 말머리를 잡았다.
기주와 병주를 분단하는 태행산맥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추격을 따돌리려는 심산이었다.
설마 병주로 도망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겠지.
간교한 잔머리가 뛰어났던 허유는 추격대의 움직임을 간파하고서 그것을 역으로 이용했다.
‘맹덕…! 그래, 맹덕이라면 배은망덕한 원가 년과는 다르게 나를 귀하게 여겨줄 테지!’
원소의 오랜 벗이었듯,
허유는 조조의 오랜 벗이기도 했다.
황제를 내세워 제후들을 호령하는 여걸이라면 자신을 중용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극적으로 업성에서 탈출한 허유는 조조군에 귀순하기로 결정했다. 병주를 횡단하여 사예주로 방향을 튼다면 무사히 중원에 도착할 수 있을 테니.
허유는 조정의 고관대작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며 허세를 부려댔다. 그리고 업성으로 돌아와 배은망덕한 년에게 기필코 복수하겠다며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