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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467화 (467/616)

<4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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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남녀 간에 가장 어색한 순간을 뽑으라고 한다면 ‘첫경험’을 치른 바로 다음날일 터였다.

지금의 이성휘와 하후돈이 그러했다.

광란의 밤을 보낸 뒤,

아침이 되자마자 서둘러 현장을 벗어났던 하후돈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아, 아무리 인사불성 상태가 되었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천박한 말을 지껄였을 수가 있지?!’

이불에 엎드린 채 침을 질질 흘리면서 음란한 교성을 토해내던 어젯밤의 본인을 떠올렸다.

거사를 치르기 전에 분명히 독한 술을 연거푸 마셨을 터인데도 정신이 멀쩡했다. 심지어 기억도 또렷했다.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이게 발로 말로만 듣던 수치사인가.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다.

쥐구멍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하, 진짜 죽고 싶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애달프게 기다려온 첫날밤을 무사히 보냈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아무리 서방님이 유도를 했다고 하더라도 어젯밤의 추태는 너무 지나쳤다. 분명 추잡한 측실을 환멸하고 있으리라.

“누님, 입궐 안 하십니까?”

“그냥 병가 낼래.”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여전히 안방에서 요지부동인 누이의 모습에 하후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잘 안 됐나…?

누이의 상태가 우려스러웠던 하후연이 조용히 눈치를 살폈다.

‘만약 관계가 어그러졌다면 나한테 분명 있는 대로 화풀이를 했을 텐데…. 으음, 그렇다면 관계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닐 터.’

계획은 완벽했다.

밤나들이.

그리고 불꽃놀이.

대체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했단 말인가.

꺅꺅 소리를 지르면서 이부자리를 나뒹구는 누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하후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괄괄한 성정의 독불장군이지만 그래도 친애하는 누이였다. 직접적인 협력에 나섰을 정도로 매형과의 관계를 응원하지 않았던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기다려. 나도 입궐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사적인 이유로 공무에 불참할 순 없는 일이다.

드디어 결심을 내렸는지,

이부자리를 나뒹굴면서 애꿎은 베개만 툭툭 쳐대던 하후돈이 몸을 일으켰다.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는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입궐을 준비했다. 그동안 하후연은 누이가 관복을 입고 나오기를 대문에서 기다렸다.

“추태를 보였다는 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여부가 있겠습니다.”

패국하후씨 가문의 거기장군께서 꺅꺅 소리를 지르면서 이부자리를 나뒹굴었다는 사실을 대체 누구한테 일러바치겠는가.

기껏해야 매형 정도겠지.

귀엽다며 웃음을 터트릴 게 분명했다.

“그런데 매형과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모, 몰라…!”

하후연이 물었다.

동생의 물음에 하후돈은 얼굴을 붉히면서 새침데기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냥 단순히 부끄러우신 건가? 어젯밤에 매형과의 관계가 어그러진 것은 아닌 모양이군.’

천만다행이다.

덕분에 죽을 위기에서 벗어났다.

만약 어젯밤의 밤나들이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자신에게 그 화가 미쳤을 터.

새하얀 얼굴을 붉히면서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하는 누이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하후연은 안도하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충!”

“추웅!!”

거기장군 하후돈과 정서장군 하후연의 입궐에 궁궐의 무관들이 경례를 보냈다.

무관들로부터 경례를 받으면서 궐문을 통과한 하후씨 남매는 곧바로 승상부(丞相部)로 향했다. 한나라의 승상이 된 사촌을 알현하기 위해서였다.

“원양.”

“히야악-!”

승상부에는 발걸음하자 무뚝뚝한 용모의 사내가 하후씨 남매를 맞이했다.

대장군 이성휘였다.

마찬가지로 승상부에 용무가 있었는지 우연찮게 치소 앞에서 마주쳤다.

오늘만큼은 마주하는 일이 없기를 학수고대했던 사내와 마주치게 된 하후돈은 놀란 괴성과 함께 경악어린 표정을 지었다.

“누, 누님…?”

대체 내가 뭘 들은 거지?

방금,

무슨 이상한 소리가 났는데.

하후연이 가냘픈 요조숙녀처럼 귀여운 비명을 터트린 누이를 응시하면서 물었다.

우렁찬 고함소리로 전장을 휩쓸었던 패국의 여걸이 가냘픈 비명을 내지르다니.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아침에는 잘 들어가셨습니까.”

“으, 으응….”

“몸이 안 좋다면 병가를 내셔도 됩니다. 제가 아만에게 언질하도록 하겠습니다.”

“괘, 괜찮아… 요.”

뭐지.

당신 누구야.

사랑스러운 현모양처처럼 수줍은 반응을 보이는 누이의 모습에 두 눈을 바르르 떨었다.

도깨비에게 환술이라도 당한 것처럼 눈앞의 상황을 도저히 인지할 수가 없었다. 말괄량이 누님이 조신한 새색시가 되어버리다니!

“매형…!”

하후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유분방한 성정의 누님을 조신한 새색시로 탈바꿈시키다니. 과연 이 분이야말로 내 매형이시다!

평생 노처녀로 살 것 같았던 누이를 받아준 이성휘를 절대적으로 신봉하게 되었다. 조조의 남동생이 조덕이 이성휘를 졸졸 쫓아다니듯이 말이다.

* * *

우후죽순처럼 일어선 반란의 불길들을 강경하게 진압한 원소군은 권력 강화를 위한 숙청에 돌입했다.

정로장군 국의.

그를 가장 먼저 심판대에 올렸다.

건곤일척의 결전에서 완패하여 몰락의 원인으로 지목을 받았기에 숙청을 피하지 못했다. 국의는 삭탈과 함께 연금이 내려졌다.

연주에서 결정적인 실책들을 범했던 전풍과 저수도 해임되면서 원소군에 거친 풍파가 밀어닥쳤다.

“종사(從事) 허유를 파직해야 합니다!”

“삿된 꾀와 언변으로 청렴한 선비들을 무고하게 참언하였으니 죄가 큽니다!”

대패의 책임을 짊어진 공신들을 계속해서 심판해온 숙청의 칼날이 이윽고 허유를 노렸다.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성정의 허유는 군벌들을 막론하고 모든 관료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교만하고 방자한 주제에 상석을 차지하고 있는 허유가 관료들로부터 탄핵을 받는 것은 매우 당연했다.

“이, 이놈들이 감히…!”

상석에 앉은 허유가 벌떡 일어나 관료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그들 중에는 자신을 보필했던 가좌(假佐)도 있었다.

관료들의 격앙된 고함소리에 혼비백산한 허유는 지푸라기를 움켜잡는 심정으로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을 간절히 바라보았다.

“내가 삿된 꾀와 언변으로 청렴한 선비들을 음해하다니… 결코 그러한 일은 없었네! 청류파의 사대부로서 어찌 그런 일을 저지르겠는가!”

참변과 음해를 일삼아온 허유는 뻔뻔스러운 면모로 일관하면서 무고를 주장했다.

도덕과 인의를 중시하는 청류파의 명사로서 부끄러운 짓들을 한 적은 없다며 억울하다는 심정을 내비쳤다.

“원도.”

수탉처럼 꽥꽥 소리를 내지르면서 무죄를 주장하는 허유의 말에 침묵하던 원소가 손을 들었다.

“명한 대로 모두 처결하였네.”

부름을 받은 봉기가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검을 찬 무관들이 들이닥쳤다.

“허억! 보, 본초…!!”

원소군의 무관들은 허유의 어깨는 붙잡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아무런 징조들조차 없이 붙잡힌 허유는 대경실색하여 주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자신을 응시하는 주군의 눈빛은 실로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부정부패와 가렴주구로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렸던 남양허씨 일가를 모두 압송했네. 지금까지 몰래 빼돌렸던 물자들이 고스란히 창고에 있더군!”

허유와 남양허씨 가문이 범했던 부정부패를 은밀하게 조사했던 봉기가 죄상들을 낱낱이 고했다.

자금을 횡령했다.

물자들을 빼돌리기까지 했다.

군정(郡政)을 역임했던 허유는 자신의 권한들을 남용하여 여러 패악들을 저질렀다.

청탁을 받고서 매관매직을 일삼았으며, 십상시들과 다를 바 없이 사치와 향락을 벌이면서 수많은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렸다.

“끌어내라!”

“보, 본초! 본초!!”

봉기가 소리쳤다.

그에 허유가 애원하듯 울부짖었다.

집행을 명령받은 무관들은 꼴사납게 발버둥을 치던 허유를 강제로 끌어냈다. 허유는 주군에게 자비를 애원했지만 원소는 끝내 침묵했다.

“허자원…! 이 더러운 간신이!”

“당장 극형에 처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봉기에게서 허유와 남양허씨 가문이 저질렀던 부정부패를 들은 관료들이 비분강개하며 소리쳤다.

놈은 간신이다.

전쟁을 망친 가장 큰 원흉이리라.

정쟁을 일삼았던 파벌들이 허유를 지탄하면서 극형을 요구했다. 원소와 중신들에게 책임을 묻던 여론이 허유의 부정부패 사건으로 묻히게 되었다.

‘작금을 위해 그동안 허자원을 곁에 둔 게로군.’

무능한 간신에게도 나름의 ‘쓰임’이 있는 법이다.

부정부패. 가렴주구.

수많은 병폐들을 저질러온 허유는 훌륭한 희생양이 되기에 충분했다.

관료들이 집결한 자리에서 지금까지 저지른 죄상들을 명명백백 밝힘으로서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다. 거대한 원흉을 내세워 중론을 모으기 위함이었다.

“종사 허유와 남양허씨 가문의 죄상들을 밝히기 위해 국문을 열겠어요.”

탐욕스러운 간신을 벌한다.

관료들의 불만을 잠재우기에 매우 적합했다.

그리고 막대한 손실에 비분강개한 사대부와 호족들의 팽배한 불만을 누를 수도 있을 것이었다.

무분별하게 장졸들을 동원하여 불만을 진압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원소는 정쟁에 대비하여 곁에 두었던 허유를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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