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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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방자한 사촌에게 호언하듯 이성휘와 반드시 첫날밤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험 없는 숫처녀에게 그것이 가능할 리 없었다.
장담하긴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늘씬한 미녀는 방구석을 나뒹굴면서 복잡한 심정을 토해냈다. 계속 머리를 굴려도 도저히 방안이 떠오르질 않았다.
“야, 묘재!”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남동생을 불렀다.
제일 만만한 사람이 바로 남동생이었으니까.
“부르셨습니까.”
문이 열리면서 하후연이 고개를 내밀었다.
허억.
이윽고 헛바람을 들이켰다.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여전히 잠옷을 입은 채 이부자리를 나뒹구는 누이. 매형(妹兄)과 관련된 고민거리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매번 매형과 관련된 고민이 있을 때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화풀이를 당하지 않았던가. 손윗누이가 있는 남동생이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았다.
결국 하후연은 그 숙명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내 매력이 뭐라고 생각해?”
“…….”
없는데요.
누님한테 매력이라는 게 있습니까.
하후연은 물음을 듣자마자 떠오른 그 말을 애써 삼켰다.
사실대로 말했다간 멧돼지처럼 난폭한 누님에게 죽는다. 어릴 적부터 누이에게 당해왔기에 하후연은 진솔한 대답 뒤에 날아들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
“왜 말이 없어? 곧바로 튀어나와야 될 거 아냐?”
“새, 생각 중입니다….”
하후돈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두 눈을 매섭게 뜨며,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남동생을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벽에 내걸린 월도를 뽑아들 것 같은 누이의 모습에 결국 하후연은 심사숙고 끝에 도출한 대답을 내놓았다.
“누, 누님은 예쁘십니다!”
“구체적으로 어디가 예쁜데?”
“어, 어어….”
뒤이은 질문에 당혹감을 삼켰다.
지금까지 누이를 우락부락한 선머슴과 동격으로 두었던 하후연이었기에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예쁘다는 말도 겨우 했구먼…!
하후연은 제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것을 느꼈다.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누이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살벌하게 빛나는 누이의 눈빛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일단 문제는… 매형의 마음이지 않습니까! 제 평가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그, 그렇지.”
차마 대답할 수 없다.
입이 찢어져도 누이의 예쁜 점을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후연은 다급하게 화두를 돌렸다.
임기응변이 잘 먹혀들었는지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성은 새하얀 뺨을 붉히면서 중얼거렸다.
“오, 오늘 밤부터 축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축제?”
“매형과 함께 축제에 다녀오시죠!”
“서, 성휘하고…?!”
연인처럼 오붓하게 축제에 다녀오라는 남동생의 충고에 하후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말똥과 개똥 언저리에 불과한 녀석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했었는데… 이런 묘책을 꺼낼 줄이야.
“우으으…! 우으으으읏!!”
서로의 손을 맞잡으면서 화려하게 장식된 밤거리를 거니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망상에 빠져든 하후돈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부끄러움에 물든 침음을 터트렸다.
홀로 망상하면서 기뻐하는 누이의 모습에 하후연은 속이 불편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선머슴처럼 투박하던 누이의 숫처녀 같은 모습에 괴리감을 느꼈다.
“그, 근데 어떻게… 말을 꺼내지….”
“예?”
“어떻게 같이 가자고 말을 꺼내냐고!”
“…….”
지금처럼 박력 넘치게 말하면 될 것 같은데.
* * *
대장군에 등극한 이성휘는 파도처럼 몰아치는 막중한 업무들을 감당해야 했다.
우수한 참모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능률을 끌어올렸음에도 역부족이었다. 그에 이성휘는 사마의에게 철야를 명령하는 노동착취를 일으켰다.
“파, 파업할 거임…!”
“씨알도 안 먹힐 소리는 그만하시고 손이나 움직이세요.”
사마의의 투덜거림에 양수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대답했다.
대장군부 소속의 참모들은 수레바퀴와 같았다.
가후. 순유. 사마의. 양수.
그녀들은 모두 중추를 담당하고 있었다.
한 명이라도 멈춰버리면 능률에 치명적인 악영향이 가해진다. 능률이 마비될 것을 우려한 양수는 사마의에게 근성을 요구했다.
“근성? 그 말이 본좌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함?!”
“아뇨.”
등교 거부. 친구 없음.
외톨이. 골방지기. 대인능력 부족.
근성이라는 말이 이렇게 어울리지 않을 수가.
사마의의 죽마고우였던 양수가 물음에 즉시 대답했다.
“후우….”
“일이 많긴 하네요.”
가후와 순유도 과중된 업무들이 벅차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하진이 피살된 이후부터 계속 유명무실한 상태였던 대장군부를 재건했다. 대장군부가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 업무들이 밀려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조정에 출사한 관료들의 대부분이 대장군부를 모른다는 것이옵니다.”
“당연히 모를 만도 하죠. 경륜이 짧으니까요.”
관료들의 평균 경력이 불과 2년도 되지 않았다.
십상시의 난.
농서동씨 가문의 폭정.
낙양을 휩쓸었던 수많은 풍파들에 조정의 관료들이 모조리 쓸려나갔기 때문이다.
만약 동탁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거머쥐었던 패국조씨 가문이 등용과 임관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면 대궐에 파리들만 날아다녔을지도 모른다.
“구현령으로 유능한 인재들을 대거 선발한 것은 다행이지만… 너무 경력이 짧아요. 육욕을 모르는 동정과 처녀들로만 이루어진 조합이라고요.”
“크흠!”
신랄하게 사태를 비판하는 순유의 직설적인 비판에 가후는 얼굴을 붉히면서 헛기침을 했다.
비유가 찰떡이긴 한데….
듣는 사람이 화들짝 놀랄 정도로 천박하기 짝이 없었다.
고모로부터 집필을 금지당한 이후부터 순유는 자신의 욕망과 음욕을 모두 야한 농담에만 투자하고 있었기에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다.
“그거 아세요, 주군? 제가 궐문에 들어서면 입궐하던 모든 관료들이 깍듯하게 허리를 90도로 숙이면서 인사해요.”
대장군 하진이 군림하던 시절에 효렴으로 임관했던 순유는 경륜이 깊은 터줏대감과 같았다.
작업반장.
경륜과 조예가 깊은 전문가.
신참 관료들에게 순유는 우상과 같았다.
대장군 하진이 통치하던 시절부터 나랏일에 종사했던 살아있는 화석으로 여겨졌다.
“공달이… 나이가 많은가?”
이성휘가 손에 깍지를 끼면서 물었다.
그 짓궂은 장난에 순유가 도톰한 입술을 삐죽였다.
“저를 중고처럼 취급하시다니! 저는 탱탱하고 쫄깃쫄깃한 신품이거든요?”
“…….”
괜히 농담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위의 도발에 입을 다물었다.
이성휘와 가후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저런 천박한 농담을 할 수 있다니. 어지럼증과 함께 두통이 밀려들었다.
“대장군.”
순유의 발언으로 혼란의 도가니에 접어들었을 때,
대장군부를 호위하던 무관의 목소리가 집무실 바깥에서 들려왔다.
“정서장군이 급히 알현을 청하고 있습니다.”
“…정서장군이?”
그의 누이였던 하후돈과 혼인하였기에 이성휘와 하후연은 매형과 처남인 관계였다. 또한 조조의 남동생인 조덕과도 마찬가지였다.
가족관계를 콩가루로 만들어버린 장본인.
하후연이 대장군부를 방문했다는 소식에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매형, 저희 누님과 만나주십시오!”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하후연이 고개를 숙이면서 간청했다.
간절하면서도 절박한,
무언가를 서두르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후연의 박력감에 당혹감을 느낀 이성휘는 의아하다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군부의 업무들이 다망하여 새로 맞이한 아내에게 소홀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직접 찾아온 하후연의 모습에 이성휘는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했다.
“아니, 아예 누님을 데려가주십쇼! 이렇게 부탁하겠습니다!”
“……?”
새파랗게 질린 낯빛으로 호소하는 하후연의 모습이 실로 절박했다.
괄괄한 손윗누이를 둔 남동생의 절규.
혼례를 치렀으니까 제발 데려가!
하후연은 바짓가랑이라도 잡을 것처럼 절박한 목소리로 간원했다.
* * *
무사히 만남을 성사시켰다.
하후연의 보고에 하후돈은 들뜬 마음으로 불야성의 나들이를 준비했다.
함께 밤나들이를 즐겼을 때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는 가문의 시녀들을 총동원하여 미용에 전념했다.
“아가씨, 머리를 빚어드릴게요.”
“홍홍홍! 대장군의 마음을 콱 사로잡으실 거예요!”
시녀들이 발랄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가씨를 꾸밀 수 있는 기회다.
하후씨 가문의 시녀들은 성심성의를 다해 용맹무쌍한 여장부를 가련한 요조숙녀로 만들었다.
홍화꽃으로 빚은 입술연지.
조개껍데기를 갈아서 만든 백분.
그리고 어느 사내라도 사로잡을 수 있도록 매우 대담한 의상을 준비했다. 새하얀 어깨와 늘씬한 다리를 대담하게 드러내는 옷이었다.
“정말… 좋아할까?”
“그럼요! 사내라면 당연하죠!”
이성휘의 측실들 중에서도 하후돈은 뇌쇄적인 몸매를 자랑했다. 농염한 매력과 색기를 겸비한 하후돈은 붉게 피어난 장미꽃처럼 치명적인 완숙함까지 가지고 있었다.
‘응, 성휘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시녀들의 손길에 몸을 맡기던 하후돈은 청동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면서 새하얀 뺨을 붉혔다.
그가 마음에 들어하기를.
아름답게 꾸민 내 모습을 좋아해주기를.
지난번 밤나들이를 즐겼을 때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얼굴을 붉히던 이성휘의 모습이 떠올랐다. 예전 모습을 회상한 그녀는 배시시 웃음을 터트렸다.
* * *
이성휘는 약속시간보다 빨리 패국하후씨 가문을 방문했다.
그를 예상한 듯,
아름답게 차려입은 경국지색의 미녀가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탐스러운 붉은 머리카락을 둔부까지 늘어뜨린 여인은 서방님을 발견하고는 화사한 미소를 그렸다. 오랜만의 재회에 고양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빨리 왔네.”
두 팔을 뒤로 넘기면서 말했다.
매력을 뽐내려는 듯,
슬쩍 허리를 숙이면서 풍만한 가슴을 내밀었다.
달빛처럼 고아하게 빛나는 새하얀 살결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대담하게 드러난 어깨와 허벅지가 매우 요염하게 색기를 발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