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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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를 멋대로 폐위시키고 스스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승상으로 등극했다.
천인공노할 만행이다.
대립하던 세력들이 일제히 조조군을 규탄했다.
그러나 어느 세력들도 실력행사에 나서는 경거망동을 벌이지 않았다. 삼면전쟁의 완패로 모든 세력들이 극심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강제력이 담겨있지 않은 위협은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산들바람이나 바를 바 없었다.
“어서 길을 비켜라!”
“동관 전투의 영웅께서 납시셨다!”
황금 갑주를 걸친 흑발의 여인이 당도했다.
위장군(衛將軍) 조홍.
동관 전투의 지대한 전공을 인정받아 도호장군에서 단숨에 위장군으로 임명되었다.
삼면전쟁에서 표기장군 이성휘에 준하는 전공을 세웠기에 누구도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지 않았다. 군부의 모든 장수들이 용맹한 여장부를 존경과 경외가 담긴 눈길로 바라보았다.
“크흠! 크흠흠!”
자신의 능력과 권세를 군중들에게 뽐내기를 좋아하는 그녀답게 헛바람이 잔뜩 들어간 모습을 보였다.
풍만한 가슴을 척 내밀며,
무관들의 환대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만약 이 모습을 사촌인 조인이 보았다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숨을 내쉬었으리라.
“군부를 관장하는 대장군의 첫 번째 측실로서 당연한 성과죠.”
조홍이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를 제외하고서 첫 번째.
이성휘의 첫 번째 측실임을 매번 내세웠다.
위장군이 어떤 벼슬이던가.
만승천자의 호위와 궁궐의 수비를 관장하는 무관직이다. 금군을 포함한 궁궐의 모든 병력들을 통솔하는 위장군은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총신에게만 주어지는 최고의 명예와도 같았다.
‘역시 언니는 나를 제일 신임하고 계셔!’
흥흥흥.
기분 좋은 콧노래를 불렀다.
석녀와의 충성경쟁에서 이겼다.
영예로운 위장군의 무관직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서량의 금마초와 접전을 벌였다고 들었습니다!”
“동관에서 적장들과 수백 합을 겨뤘다는 용감한 무용담을 달성하셨다고…!”
무관들의 열성적인 외침에 기세등등하던 조홍의 얼굴이 삽시간에 경직되었다.
뭐야,
그 과장된 헛소문은….
서량의 금마초가 접전을 벌여?
게다가 전장에서 적장들과 수백 합을 겨뤘다고?
내가 무슨 서방님도 아니고.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인지한 조홍이었지만 헛소문들을 정정하진 않았다. 조홍은 더 많은 관심과 존경을 필요로 하는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 그냥요!”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장졸들이 부담스러워진 조홍은 급히 거기장군부(車騎將軍部)까지 도망쳤다.
혹시라도 낭설인 게 밝혀질까,
조홍은 다급한 기색으로 가쁜 호흡을 내쉬었다.
갑작스럽게 쳐들어온 사촌의 기습에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또 어떤 기행을 저질렀을까 우려하는 눈치였다.
“거기장군에 임명된 거 축하해요.”
“논공행상 열릴 때는 일언반구도 없더니….”
“그,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축하해주려고 이렇게 왔잖아요!”
“대충 얼버무리긴.”
하후돈이 한숨을 내쉬면서 불쑥 거기장군부에 방문한 사촌에게 차를 대접했다.
위장군과 표기장군에 임명된 두 사촌들과 마찬가지로 하후돈 또한 거기장군에 임명되었다.
표기장군 조인. 거기장군 하후돈. 위장군 조홍.
조조는 패국조씨 가문의 종친들을 고관대작에 준하는 일곱 장군으로 올렸다. 지금까지 사촌들은 전장에서 혁혁한 전공들을 세웠기에 별다른 무리 없이 독점을 강행할 수 있었다.
“근데요, 원양 언니.”
“왜?”
“서방님하고 아직 초야도 안 치렀다면서요.”
“푸훕-!”
조홍의 스스럼없는 돌직구에 하후돈은 맹렬한 기세로 입에 머금고 있던 찻물을 분사했다.
미지근한 찻물이 조홍의 새하얀 얼굴에 작렬했다.
“콜록콜록!”
“혼례도 치렀으면서 아직 숫처녀예요? 진짜 황당하네.”
“그동안 계속 다사다난했었잖아.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겠어?”
“뭐, 그건 그렇죠.”
그야말로 고난의 연쇄였다.
하마터면 지금까지 공들여서 쌓아올렸던 모든 것들이 그대로 무너질 뻔하지 않았던가.
멸망의 기로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만약 어느 하나라도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더라면 그대로 멸망으로 치달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혼례를 치렀는데도 숫처녀라니…. 흑, 원양 언니가 너무 불쌍해요.”
“누가 보면 소박이라도 맞은 줄 알겠네.”
“지금까지 서방님이 원양 언니를 부르지 않으신 것을 보면 소박맞은 게 아닐까요.”
“당장 여기서 쫓겨나고 싶어?
하후돈이 벽에 내걸린 월도를 손짓하면서 물었다.
계속 손질을 해온 듯,
날카로운 칼끝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용맹무쌍한 패국의 여걸을 도저히 무력으로 이겨낼 자신이 없었던 조홍은 까불대던 입을 꾹 다물었다.
“안 그래도 오늘 가보려고 했거든?”
담대한 여장부가 짐짓 새침한 반응을 보였다.
수줍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촌언니의 새침스러운 모습이었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단 말이야…?
조홍은 드센 여장부마저 새침한 새신부로 만들어버리는 연모의 감정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그때 서고에서 봤던 출중한 용모의 무관이 설마 천하제일검이었을 줄이야…!
대장군부에서 이성휘와 재회하게 된 양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무례를 범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대명문가의 아가씨는 짐짓 조심스러운 곁눈질을 보내면서 이성휘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듯 이성휘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네!”
낙양의 성문교위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군권을 관장하는 수장에 오른 입지적인 인물.
천하제일검 이성휘.
실로 어마어마한 인물을 보필하게 되었다.
의기양양한 모습을 일관해온 한나라 제일의 신동조차도 무거운 중압감을 이길 수 없었는지 경직된 모습을 보였다.
‘서, 설마 곧바로 천하제일검을 보필하는 중임에 임명되다니…! 물론 한나라 제일의 천재인 이 양덕조에에 어울리는 중임이지만 이건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가 동요를 발산했다.
두려움과 당혹감이 몰아쳤다.
호흡을 내쉬는 것조차도 어려울 정도였다.
설마 천하제일검과 구면이었다니.
온몸을 바들바들 떨던 양수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평정심을 되찾았다. 옆에서 빤히 쳐다보는 건방진 죽마고우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으니까.
“왜 계속 몸을 떨어댐? 혹시 오줌 마려움? 그럼 뒷간까지 같이 가드림.”
“큭, 시끄러워요!”
양수가 입술을 꾹 깨물면서 대답했다.
채신머리없기는…!
대명문가의 여식이 더러운 뒷간 따위에 갈 리가 없잖아!
“그럼 볼일은 어떻게 봄.”
“홍농양씨 가문의 여식은 볼일 따위는 안 봐요…!”
“어, 얼토당토않은 말임!”
생리적인 현상을 부정하는 양수의 대답에 사마의는 아연실색하면서 몸을 떨었다.
볼일을 안 본다니.
그런 해괴한 말은 난생 처음이다.
되도 않는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고상한 아름다움을 고수하려는 아가씨의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대장군과 만나게 된 거예요?”
“마구간에서 봤음.”
“예?”
“지푸라기도 갈고 말똥도 치웠음. 대장군과는 완전 친한 친구임.”
마구간? 말똥?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다.
양수는 사마의가 거짓으로 사실관계를 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국학 시절부터 스스로를 본좌라고 칭하면서 해괴한 농설들을 퍼트려댄 문제아였으니까.
“씨잉,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면 될 거 아님?”
“어떻게 물어봐요…!”
혹시 문제아와 말똥 치우셨어요, 라고 상관에게 물어볼 수 있을 리 없었다.
상대는 대장군.
군부를 관장하는 수장이다.
더욱이 수많은 전투들을 승리로 장식했던 전쟁영웅이기도 하다. 일기당천의 상징으로 불리는 최고의 무인에게 어떻게 감히 무례를 범할 수 있을까.
“대장군, 옛날에 본좌하고 후원의 마구간에서 말똥 치웠잖슴!”
사마의가 손을 번쩍 들면서 물었다.
격식이라곤 전혀 없는,
이웃집 오빠를 대하는 듯한 말투였다.
손을 홱홱 흔들면서 대장군에게 스스럼없이 무례를 범하는 문제아의 모습에 양수는 아연실색하면서 입을 쩍 벌렸다.
“그랬었지.”
이성휘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노하는 기색은 일절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
그저 태연하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사마의와 이성휘의 문답을 지켜보던 양수는 막역지우처럼 보이는 그들의 관계에 무심코 질투를 느꼈다.
‘천하제일검과 허울 없이 친하게…! 그것도 제 앞에서 자랑하는 것처럼!’
부럽다.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미치겠다고요…!
한순간에 마음을 빼앗겨버렸을 정도로 출중한 용모의 천하제일검과 오빠와 여동생처럼 막역한 사마의의 모습에 질투가 솟구쳤다.
“둘은 서로 아는 사이인가?”
이성휘가 물었다.
그에 사마의가 대답했다.
“같은 스승한테서 배웠음. 양덕조는 졸업할 때까지 일등을 단 한 번도 놓쳐본 적 없는 천재임. 고리타분한 범생이지만 말임.”
“대단하네. 과연 한나라 제일의 신동인가?”
동문수학했던 급우의 진술에 이성휘는 경탄을 담아 양수를 칭찬했다.
이성휘의 칭찬에 금방 우쭐해진 대명문가의 아가씨는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무, 물론… 대단한 게 당연하죠! 한나라 제일의 신동이니까요!”
참 알기 쉬운 성격이다.
풍만한 가슴을 내밀면서 자신의 출중함을 설파하는 양수의 모습에 실소를 머금었다.
서로 죽마고우라서 그런가.
단순하여 알기 쉬운 점이 사마의와 똑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