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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455화 (455/616)

<4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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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바람이 콧잔등을 간질였다.

앞으로의 출세를 응원해주듯,

땀을 흘리면서 짐을 운반하던 소녀의 땀을 잠깐 식혀주었다.

쿠웅.

죽간들을 가득 담은 상자를 내려놓았다.

한꺼번에 많은 짐들을 운반했는지 내려놓자마자 제법 둔탁한 소리가 났다.

“후우, 몸을 쓰는 건 싫어하는데….”

고귀함을 상징하는 금발을 늘어뜨린 여성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이마에 맺힌 구슬땀을 닦았다.

지금까지 사용해온 물건들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는지 여성은 위병들에게 부탁하지 않고서 제 손으로 새로운 처부까지 운반했다.

“여기가 바로 대장군부(大將軍部)로 사용될 전각인가요? 이 양덕조의 새로운 처부…!”

화사한 용모를 자랑하는 여성이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대궐처럼 장엄한 규모의 관청을 바라보았다.

삼등공신에 책봉된 덕분에 마침내 본인에게 어울리는 직급이 주어졌다.

입신양명을 향한 야망이 어마어마했던 여성은 보석처럼 빛나는 하늘색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출세가도의 시작점에 발을 들이려고 했다.

“더, 덕조가 왜 여깄음?”

인형처럼 작은 소녀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로 물었다.

잠시 밖에서 놀고 있었는지,

차돌처럼 작은 머리를 폭 가릴 것처럼 커다란 사탕을 냘름냘름 핥고 있었다.

한가롭게 사탕이나 핥고 있는 쥐방울의 태연자약한 모습에 금발의 여성이 인상을 찡그렸다. 땅을 바라보면서 걷다가 꿈틀대는 지렁이를 발견한 듯한 매우 노골적인 반응이었다.

“아하! 임관했다더니 궁궐에서 짐꾼이나 하고 있었던 거임? 세상이 말세니까 홍농양씨 가문도 덩달아서 말세임.”

쯧쯧.

사마의가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자신을 잡부로 취급해버린 사마의의 행동에 양수는 불쾌감에 찬 낯빛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걱정은 말아요, 꼬맹이. 오늘부터 대장군부의 종사중랑(從事中郞) 겸 교위(校尉)가 됐으니까!”

종사중랑은 직속참모.

교위는 직속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을 의미했다.

대장군부의 작전권과 군사권을 겸임하게 된 양수는 매우 파격적인 승진을 하게 된 셈이었다.

“거짓말! 거짓말임! 분명 대명문가의 영향력을 남용해서 대장군부에 들어온 게 틀림없음!”

소스라치게 놀란 사마의가 말했다.

그에 양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소리쳤다.

“아니거든요! 삼등공신에 책봉된 덕분이라고요!”

“명단에… 양덕조도 있었음?”

겸연쩍은 듯이 보드라운 뺨을 긁으면서 심사숙고하던 사마의가 돌연 비웃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본좌는 표기장군을 보필하느라 바빠서… 한가롭게 삼등까지는 기억하지 못함.”

“이익!”

“푸하하! 삼등이 뭐임, 삼등이? 일등도 아니면서 삼등으로 잘난 척. 불견, 불견, 꼴불견임.”

“야, 이 꼬맹이가!”

삼등.

삼등. 삼등.

사마의의 이죽거림이 양수의 드높은 자존심을 가마솥을 박박 긁어내듯이 괴롭혔다.

“가슴만 큰 젖소!”

“발육의 여지가 전혀 없는 꼬맹이!”

사마의와 양수는 사예주를 대표하는 명문가의 여식들로서 어릴 적부터 교분을 쌓아왔다.

어디 그뿐인가?

함께 국학(國學)에 들어가서 학식을 쌓았다.

하지만 일등을 두고서 치열한 쟁탈을 벌여온 탓에 사마의와 양수는 죽마고우 겸 동문수학 관계였음에도 견원지간처럼 만나기만 해도 으르렁대는 불편한 앙숙이었다.

“갓 들어온 신참 주제에 너무 건방짐! 본좌는 어사중승(御史中丞)이란 말임! 하극상으로 대리시에 끌려가고 싶음!?”

에헴.

에헤헴-!

사마의가 가슴을 내밀면서 스스로를 뽐냈다.

말싸움으로는 도저히 한나라 제일의 천재를 이기지 못하니까 직책으로 내세우려는 얄팍한 의도였다.

어사중승.

어사대부(御史大夫)를 보좌하여 문부백관들을 감찰하는 실무를 관장하는 관직이다.

상서령과 마찬가지로 명예직에 불과한 삼공의 벼슬과는 달리 중추를 관장하기에 어사중승은 고관대작에 준하는 위치와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임관해놓고선 치사하게…! 제가 먼저 표기장군의 눈에 들었다면 상황은 정반대였을 텐데요!”

“흥, 미관말직의 말은 잘 안 들림.”

종사중랑 겸 교위에 임명되었더라도 어사중승의 권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어사중승의 권한은 감찰(監察).

게다가 사마의는 표기장군 이성휘의 충직한 심복이었기에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자랑했다.

양수는 이를 빠득 갈면서 국학 시절부터 줄곧 출석거부를 해온 문제아를 노려보았다. 한나라 최고의 신동이라 불리는 자신이 문제아보다 한참이나 뒤처진다는 사실이 원통한 듯했다.

“정리는 빨리빨리 하셈! 대장군부의 업무들이 밀렸음!”

“…일단 그 이상한 말투부터 고치지 그래요?”

“뭐, 뭐가 이상함?! 얼마나 고상한 말투인데!”

“퍽이나.”

머리를 다쳤나.

나무에서 떨어진 게 분명하다.

기고만장한 태도를 일관하는 죽마고우를 힐끗 노려본 양수는 무거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문제아가 상관이라니.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에휴, 이런 문제아가 어사중승이라니. 한나라도 정말 말세네요. 콱, 망해버리면 좋을 텐데!”

“히에엑! 그게 무슨 망발임…!”

자포자기에 빠져든 심정으로 망발을 쏟아내는 양수의 막나가는 행동에 사마의가 아연실색하며 답했다.

* * *

조정대신들은 관료 계층의 반발을 우려하여 대장군 임명안을 잠시 보류했다.

하지만 조조는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유부단한 놈들,

대체 무엇이 두려워 후일로 미룬단 말인가?

우유부단한 조정대신들의 결정에 환멸을 느낀 조조는 임명안을 강행했다. 조조에게는 조정의 결정을 철회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이 있었다.

“군웅할거의 난세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대장군 임명안을 통과시켜야 하네.”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경직된 목소리로 말했다.

물러터진 작자들 같으니.

원소군을 쓰러트리고 서량군과 유표군을 밀어낸 지금이야말로 강행돌파를 꾀할 기회이거늘.

반발을 두려워하여 임명안을 차일피일 미루는 조정대신들의 행동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대장군에 오르지 않더라도… 지금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번 전쟁에서 그를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한나라 군부는 표기장군인 이성휘를 중심으로 맹렬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대장군이 공석일 뿐이다.

패국조씨 가문이 지배하는 군부는 삼면전쟁에서 압승을 거뒀을 정도의 전력을 자랑했다.

유예를 선택한 조정대신들의 결정을 배척하는 강수를 두면서까지 대장군 임명안을 통과시키려는 조조의 행동에 이성휘는 짐짓 우려를 표명했다.

“아닐세, 천하의 질서를 주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대장군이 필요하네. 욕망과 야심에 물든 군벌들을 모두 제패하기 위해서라도.”

조조가 강수를 두면서까지 이성휘를 대장군에 임명시키려는 것은 본격적으로 정복활동을 일으키고자 함이었다.

무사히 방어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제 공격을 시작할 때였다.

원소군. 서량군. 유표군.

중원을 침략했던 세력들을 모두 일소하여 천하통일에 박차를 가하겠다. 패국조씨 가문은 중원을 시작으로 천하를 향해 도약할 것이니.

“그리고 나는 승상이 될 것일세.”

조조가 거침없이 야망을 드러냈다.

승상(丞相).

천자를 대신하여 국사를 관장하겠다는 야심이 농밀하게 흘러나왔다.

내부의 불온세력과 외부의 연합세력들을 완파한 조조군을 저지할 억제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강한 확신을 얻은 조조는 스스로 승상이 되고자 했다.

“나는 승상이, 성휘는 대장군이 되는 것일세.”

“…….”

“각고면려(刻苦勉勵)의 혼심으로 함께 이룩한 세력이네. 당연히 함께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예.”

흑발의 여인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함께 나아가자.

그 말에 형용할 수 없는 격정을 느꼈다.

계속 정점을 향하면서도 항상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그녀의 배려에 따스한 온정을 느꼈다.

“아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 온정에 보답하듯,

이성휘는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했다.

* * *

익주(益州)에 흉보가 날아들었다.

증원군을 지휘했던 유범과 손조가 괴한들의 습격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군세를 이끌고서 출정한 장수들이 산짐승에게 반쯤 뜯어먹힌 유범과 손조의 주검을 수습하고서 유언에게 사실을 보고했다.

“아, 아직까지 흉수는 불명이오나….”

상존이 경직된 표정을 지으면서 어수룩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타앙-!!

그에 유언이 의자 팔걸이를 내리찍었다.

“마등! 한수! 이 쳐죽일 놈들이!!”

습격해온 괴한들의 정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유언은 마등과 한수를 흉수로 지목했다.

놈들이 분명하다.

그 비천한 마적들이 내 아들을 죽인 것이다.

분노와 상실감을 억누를 수 없었던 유언은 모든 제장들을 소집했다. 아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서량의 마적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고자 결단했다.

“당장 군세를 소집하라! 하늘을 대신하여 대역무도한 만행을 저지른 서량의 마적들을 응징하겠다!!”

유언이 전쟁을 선포했다.

마등과 한수,

서량의 군벌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강대한 조조군에 맞서고자 동맹을 맺었던 유언군과 서량군은 적대관계로 돌변했다. 서량군을 철천지원수로 규정한 유언은 곧장 정벌군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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