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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452화 (452/616)

<4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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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군을 상대로 형양 전투에서 완승을 거둬냄으로서 이성휘는 호쾌하게 패배를 설욕했다.

일등공신의 반열에 오른 인물들 중에서도 이성휘는 단연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결정적인 역전승을 거둔 전쟁영웅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전쟁영웅에게 어떤 포상이 적합하겠는가.

대궐에 입조한 조정대신들은 모두 합심하여 한나라의 새로운 대장군(大將軍)으로 추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장군 하진이 환관들에게 피살된 이후로 계속 공석이지 않았습니까.”

“역적들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잇달아 발호하는 것은 병마를 관장하는 대장군이 없기 때문이오!”

벌써 수년째 공석이었다.

그동안 천하가 어찌 되었는가?

원술과 도겸 같은 역적들이 연이어 궐기했다.

한나라의 새로운 대장군을 추대하여 역적들이 감히 발호하지 못하도록 위엄으로 억눌러야 한다.

조정대신들은 수많은 군벌들을 토벌한 끝에 원소마저 격퇴해낸 표기장군 이성휘야말로 대장군에 적합한 인재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리 섣부르게 결정해도 되는지….”

“계속 공석으로 놔둔다면 곽사 같은 무리들이 대장군을 자칭하고 다닐 겁니다! 이각과 곽사가 휘둘렀던 천인공노할 전횡을 잊으셨습니까?”

수많은 역적들이 명분과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대장군을 자칭해왔다.

유주에서 궐기했던 장순.

이각과 함께 반란을 주도한 곽사.

대장군은 병마의 대권을 관장하는 군부의 정점이었기에 역적들의 명분 쌓기에 주로 이용되고는 했다.

자칭 대장군들이 천하를 어지럽히는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성휘를 대장군에 임명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표기장군이 대장군에 등위한다면 패국조씨 가문의 권력이 앞으로 더 강성해지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조금 우려스럽습니다.”

“천하제일검은 한나라의 충신이오. 어찌 경은 표기장군의 충의를 의심하는가.”

“하지만 표기장군은 사공의 반려가 아닙니까. 둘이 합심하여 역천(逆天)이라도 꾸민다면….”

“절대로 표기장군은 그럴 사람이 아니오!”

대다수의 조정대신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우려를 보내는 목소리 또한 존재했다.

무소불위와도 같은 패국조씨 가문의 권력이 앞으로 더욱 강성해질까 우려하는 공포가 확산되었다.

“흐음….”

불안감에 휩싸인 관료들을 바라보던 왕윤이 무거운 침음을 흘렸다.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군벌들에 이어 숙적이었던 원소군까지 격파한 조조군은 명실상부 최고의 세력이었다.

천하통일에 가까워진 절대 권력이 만승천자의 옥좌를 넘보지 않을 것이라고 어찌 확신하겠는가. 관료들은 절대 권력의 탄생을 노골적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사도, 관료들의 불안이 드셉니다. 공론을 규합하는 일은 잠시 미루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상서복야 사손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에 왕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하도록 하지. 나중에 다시 의논하도록 하세.”

당장 결정해야 될 사안은 아니다.

좀 더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더라도 상관없을 터.

무리하게 강행할 필요까지는 없었기에 왕윤은 사손서의 충고를 받아들여 대장군 임명건을 유예했다.

‘나중에 상서령과 임명건을 의논해봐야겠군.’

조정회의를 주관하던 왕윤은 광록대부 양표에게 다른 사안을 논의하도록 지시했다.

* * *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이렇게 말했다.

충성이 집요하면 도리어 화를 입게 되고,

친구를 사귀는데 있어서 집요하면 그것은 친구간의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경전에 기록했을 정도로 과잉충성은 어느 시대이든 간에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 충성을 대의명분이라 주장하면서 온갖 원죄를 범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나를 호색한이라고 보는 건가?’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여포와 장료를 힐끗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새 시녀를 데려왔다.

분명 주인님께서 좋아하시겠지.

실로 과잉충성의 끝판왕이 아닐 수 없었다.

허도로 돌아오자마자 시녀복으로 환복한 여포와 장료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이성휘의 반응을 기다렸다.

늘씬한 몸매의 미녀를 붙잡아온 자신들에게 농밀한 포상을 해주리라고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 뻔뻔한 모습에 이성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일단 아만에게 언질을 하긴 했다만….’

말을 꺼내자마자 집무실에서 쫓겨났다.

언질.

과연 그게 ‘언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벼루를 내던지고 탁자를 뒤엎으면서 분노하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린 이성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무슨 풍파란 말인가.

당사자로선 억울한 입장이었다.

응큼한 시녀들의 과잉충성으로 인한 말로이지 본인이 실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부하들의 실수는 곧 주군의 잘못인 것을.

본인들의 전공을 자랑하듯이 으스대는 표정을 짓는 여포와 장료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당에서 키우는 강아지처럼 눈동자를 또랑또랑 빛내면서 칭찬을 기다리는 두 시녀들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졌다.

“큭! 무인에게 이런 치욕을…!”

회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가 소리쳤다.

언제 갈아입혔는지,

쌍심지를 켠 미녀 또한 시녀복을 입고 있었다.

장료만큼이나 풍만한 가슴과 늘씬한 몸매를 자랑했다. 움직일 때마다 갓 내린 눈송이처럼 새하얀 속살이 슬쩍슬쩍 보였다.

“주, 죽여라!”

유격장군.

백마의종의 대장.

전(前) 공손찬군. 현(現) 원소군.

파란만장한 경력을 자랑하는 미녀가 양손으로 치부를 가리면서 소리쳤다.

어떻게 돼먹은 복장인지,

조금만 움직여도 수치스러운 부분이 드러났다.

평생 다시없을 치욕이다.

악독한 여인들에게 붙잡혀 허도까지 끌려온 조운은 이를 빠득 갈면서 이성휘를 노려보았다. 보석처럼 예쁜 황금색 눈동자에는 깊은 경멸이 담겨 있었다.

“…윽!”

살의를 발산하던 조운은 이성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흑산적의 주검들로 시산혈해를 만들었던 끔찍한 광경을 회상한 조운은 새파랗게 질린 표정을 지었다.

맨손으로 사람을 수차례 찢어발겼던 괴물이 눈앞에 있다. 전장에서 느꼈던 두려움을 떠올린 그녀는 입을 꾹 다물면서 정좌로 고쳐앉았다.

“먼저 무례부터 사과하겠다. 한눈을 팔았던 사이에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이성휘가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적장을,

그것도 상산의 조자룡을 붙잡아올 줄이야.

여포와 장료의 과잉충성을 담대한 성정으로 유명한 이성휘조차 혼비백산하게 만들 정도로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다. 경악이 여전히 심중에 남아있을 정도였다.

“제 부하들에게 저런 음란한 복장을 입히다니… 이 귀축이!”

“…….”

푸웁-!

여포와 장료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반면 이성휘의 얼굴은 착잡함에 물들었다.

옆에서 조용히 찻잎을 우리던 낙양제일미도 입가를 폭 가린 채 쿡쿡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 * *

원소군의 주력군단을 모두 궤멸시켰던 표기장군 이성휘의 대규모 기만전술은 수많은 군략가들이 극찬했을 정도의 파격을 자랑했다.

돌풍을 이용한 새로운 전술.

흙먼지를 실은 모래바람으로 강대한 궁노병들을 단숨에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이런 전술이 세상에 존재했던가?

기병부대를 동원한 흙먼지는 병력의 규모를 은닉하기 위한 전술로만 사용되었을 뿐이다.

모래바람으로 적들을 교란하는 기만전술은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사용된 적 없는 신묘한 방책이었다.

“대체 어디 가려고 짐을 챙겨?!”

방울꽃처럼 하늘하늘한 은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돌연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의복과 문구들,

거기에 아끼던 서책들까지.

장기간 여행을 떠나듯이 짐들을 정리하는 여동생의 갑작스러운 모습에 제갈근이 놀라 소리쳤다.

설마 시집이라도 가는 건가!

숙부가 여동생의 혼사를 알아보겠다고 장난삼아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직 관례도 안 치른 여자아이에게 혼례라니! 제갈근은 결사반대를 외칠 듯이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뭐긴 뭐예요, 임관하려고 가는 거죠.”

투욱.

궤짝에 짐을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말했다.

학업을 중단하고 벼슬길에 나서겠다는 여동생 제갈량의 대답에 제갈근은 망부석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지금까지 모든 제안들을 마다해놓고선….”

“마음이 바뀌었어요.”

오라비의 물음에 제갈량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장황한 이유는 없다.

그저 세속에 일말의 흥미가 생겼을 뿐.

여러 관료들이 등용을 제안했음에도 꿈쩍하지 않았다면 작은 와룡(臥龍)이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 서주자사가 효렴(孝廉)을 뽑는다던데… 거기에 나가려고?”

“제가 거기를 왜 나가요.”

본인을 제나라의 관중과 연나라의 악의에 필적하는 인재임을 주장하는 제갈량은 미관말직이나 뽑는 효렴에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관중과 악의에 필적하는 자신조차도 경악하게 만든 국사무쌍(國士無雙)을 만나는 것이었다.

“주내(州內) 최고의 미소녀이자, 수경선생이 인정한 최고의 천재인 제가 좀스러운 미관말직에 어울리겠어요? 저는 언젠가 재상에 오를 인재인데요.”

“…….”

제 입으로 저렇게까지 본인을 치켜세울 줄이야.

나라면 부끄러워서 미쳐버릴 것 같은데.

약이라도 달여야 하나.

근래에 들어 망상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안색 하나 안 바꾸고 본인을 관중과 악의에 비견되는 불세출의 인재라고 주장하는 여동생의 괴팍스러운 행동에 제갈근은 의원에게 가서 탕약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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