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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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관에 당도한 유비군과의 교전에서 막대한 타격을 입은 서량 연합군은 잠시 퇴각하여 전열을 정비했다.
예상치 못한 복병이다.
적의 증원군이 가세하자 군중이 크게 술렁였다.
혹시 조조군이 일진일퇴의 전면전에서 원소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뒤에 증원군을 보낸 것은 아닐까?
날랜 정예부대들에게 역공세를 당했던 서량 연합군은 크게 위축된 반응을 보였다. 언월도를 휘두르면서 달려든 여걸에게 무참한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복병! 복병이라니!”
“이럴 순 없네! 함락까지 단걸음이었거늘!!”
분명 이번에야말로 저 지긋지긋한 요새를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기에 절망감이 더욱 컸다.
단 한걸음,
겨우 한걸음만을 남겨두었건만….
적의 증원으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급히 전투를 중단하고 전선에서 철수했던 군벌들은 서로를 힐난하면서 책임을 떠넘겼다.
“그대들은 뭘 하고 있었는가!”
“지, 지금 우리들한테 책임을 떠넘긴단 말이오?!”
“공방전에서 양홍 장군이 죽었소이다! 지금 서로의 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지 않소!”
막대한 피해를 떠안았음에도 결국 동관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군벌들의 신경이 사나워지는 것은 당연했다.
수많은 병력들을 잃었다.
게다가 군량마저 부족해진 상황이었다.
앞으로 보름조차 버티기 어렵다는 보급관의 보고에 군벌들은 심장을 옥죄는 위기감을 느꼈다.
‘젠장, 이대로 돌아갈 순 없다!’
‘전투에서 많은 장졸들을 잃었다.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갔다간… 분명 호족 놈들이 들고 일어나겠지.’
약육강식의 지배만이 존재하는 척박한 황야는 결코 패배자를 환영해주지 않는다.
부하들에게 배신당하거나,
아니면 호족들에게 공격당해 죽거나.
연이은 전투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어버린 군벌들은 조조군의 반격보다도 부하들의 배신을 더욱 두려워했다. 자신들 또한 상관을 거역하거나 전우들을 배신하여 출세를 했던 것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흥, 자신의 허울을 떠넘기는 꼴이라니….”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군벌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마초가 경멸을 담아 중얼거렸다.
치욕을 당했으면 그것을 몇 배로 되갚는 것이 바로 난세의 이치가 아닌가. 패배에 절망하여 현실을 외면할 뿐인 군벌들의 행동에 한심스러울 뿐이었다.
“누님!”
“정말 동관을 다시 공격하실 겁니까?”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녀의 동생들이 달려왔다.
단독으로 병마들을 이끌고 동관을 공격하려는 누이의 무모한 결정에 우려를 드러냈다.
“분명 원소가 이길 겁니다!”
“일단 사예주의 승전보를 기다리시죠!”
지금 원소군이 조조군과 사예주에서 건곤일척의 결전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공방전에서 원소군이 대승을 거둔다면 동관을 수비하고 있는 놈들은 사기가 꺾인 오합지졸처럼 모두 흩어지게 될 터였다. 마휴와 마철은 악전고투로 피폐해진 병력을 재정비할 것을 누이에게 진언했다.
“맹기 님, 병사들이 크게 지친 상태입니다. 일단 재정비를 하면서 전열을 가다듬으시지요.”
보랏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동생들에 이어 방덕까지 의견을 보탰다.
결국 마초는 단독으로라도 동관을 공격하겠다는 고집을 꺾어야 했다.
“…그래, 너희들의 말이 지당하다. 사면초가에 몰린 지금으로선 원소군의 승전보를 기다릴 수밖에.”
동생들의 진언에 마초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대규모 공세로도 함락시키지 못했던 동관을 단독으로 공격하는 것은 분명 자살행위였다.
본인의 만용임을 심복과 동생들의 진언으로 깨달은 마초는 창을 움켜쥐면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듯 동관을 노려보았다.
이윽고 이를 빠득 갈았다.
자신에게 온갖 모욕적인 말들을 쏟아냈던 밉살스러운 계집을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조금만 더 싸웠다면… 나불대던 혓바닥과 함께 수급을 베어버렸을 텐데.’
간발의 차로 적장을 베지 못했다.
전선을 급습했던 조조군의 증원 때문에 물러나야만 했다.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이번이 어렵다면 다음에는 기필코.
‘천하제일검에게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허접’이라는 치욕적인 폭언을 들어버렸던 마초는 면포로 날카로운 창끝을 빠득빠득 문지르면서 밉살스러운 계집의 얼굴을 떠올렸다.
* * *
이윽고 동관 전선에도 급보가 날아들었다.
원소군이 대패했다.
표기장군 이성휘의 반격에 원소군은 재기가 어려울 정도의 피해를 입고 말았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완패를 당한 원소군은 혼란을 수습하고자 하내군으로 퇴각했다. 수만 명의 병력을 한꺼번에 잃은 원소군은 전투를 속행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대, 대패했단 말이냐…!”
정서장군(征西將軍) 마등이 놀라 소리쳤다.
원소군이 패배했다.
수만 명을 잃은 완패를 당했다고 한다.
동관에서 철수한 이후부터 한줄기의 희망처럼 원소군이 대패를 당했다는 소식에 군벌들은 망연자실하는 반응을 보였다.
“젠장!”
“세상에 어찌 이럴 수 있는가!”
흥망성쇠를 걸었던 결전에서 결국 원소군이 패배했다면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동관을 함락시킨다고 한들,
원소군이 결국 철수했는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전쟁의 판도가 완전히 조조군에게 넘어갔다.
장안성과 동관에서 벌였던 악전고투가 모두 허망하게 무너졌음에 탄식을 토해냈다. 계속 외면해온 잔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 군벌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젠장! 빌어먹을 하북 놈들!”
“결국 지금까지 헛수고만 한 셈이 아니오!”
서량 연합군이 계획대로 동관을 돌파했다면 조조군은 양면전쟁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멸했으리라.
원소군이 완패한 이유들 중의 가장 큰 문제는 분명 서량 연합군의 무능에 있었다. 그럼에도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군벌들은 원소군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우리들은 이제 철군하겠소이다.”
허리에 검을 찬 장수가 몸을 일으켰다.
교위(校尉) 손조였다.
유언의 장남인 유범과 증원군을 이끌고서 연합군에 가세했던 손조는 마등과 한수에게 철군을 통보했다.
계속 참전할 이유가 없다.
손조는 유탄과 함께 익주로 귀환하려고 했다.
악전고투에서 수많은 손실을 떠안았던 군벌들과 마찬가지로 증원으로 가세했던 유언군도 막대한 피해를 입고 말았다.
그에 손조는 피해가 더욱 불어나기 전에 서둘러 전선에서 철수하고자 했다. 상황을 주시하던 유범이 선조의 의견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리시게! 자네들이 이대로 무작정 철수해버리면 군량은 어찌 하란 말인가?!”
진서장군(鎭西將軍) 한수가 애걸하듯 말했다.
지금까지 연합군이 소비했던 군량의 대부분이 익주에서 보급된 물자였다. 만약 유언군이 이대로 철수한다면 당장 내일부터 수만 명의 병력이 허기에 시달리게 될 것이었다.
유범과 손조가 떠나게 둬선 안 된다.
사기가 곤두박질을 치는 마당에 군량마저 끊어진다면 군중의 장졸들은 삽시간에 폭도로 돌변할 터였다.
“수만 명을 동원하고도 관문 하나 함락시키지 못한 그대들이 무슨 낯짝으로 지껄이시오?”
손조가 대노하여 군벌들을 노려보았다.
한심한 놈들.
군량이나 축내는 버러지 같으니라고.
조조군이 옹립한 황실을 무너트리고 익주목 유언을 새로운 만승천자로 추대하려는 야심을 품었던 손조는 거사가 실패했음에 격노를 드러냈다.
“말이 심하군!”
“당장 그 모욕적인 말을 철회하게!”
졸장으로 내몰린 군벌들이 칼자루를 뽑아들 것처럼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면서 소리쳤다.
그에 손조는 비웃음으로 대답했다.
“이만 가시지요.”
“…알겠습니다, 교위.”
곧이어 손조는 유범과 함께 군막을 나섰다.
“저들을 자극하여 좋을 게 없지 않겠습니까.”
유범이 노골적인 멸시로 군벌들을 상핍하게 만들었던 손조의 경솔함을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그에 손조가 입을 열었다.
“공자, 놈들은 더러운 오랑캐나 다름없는 족속입니다. 게다가 놈들 중 대부분이 마적 출신입니다.”
서량군의 용맹무쌍한 무명을 믿고 병력과 물자들을 지원했건만 결국 허탕을 치고 말았다.
분명 성도로 돌아간다면 주군으로부터 지엄한 질책을 받게 될 터. 손조는 더러운 마적들 때문에 거사가 모두 틀어졌다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비천한 마적들이 군량을 노리고 습격을 해올 위험이 있다. 경계에 전력을 다해라!”
손조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무관들에게 명령했다.
놈들은 마적이다.
분명 군량을 빼앗으려 들 터.
의젓한 장군처럼 행동하더라도 결국 출신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또한 마등과 한수는 황실과 조정을 상대로 계속 반란을 일으켰던 역적이었기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출발하라!”
군벌들의 연이은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손조는 철군을 강행했다.
더러운 마적들과의 관계를 끊겠다는 강한 모멸감이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그에 유범은 짐짓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손조에게 가세했다.
“저열한 익주 놈들…!”
“대부분의 병력이 장안성에 있다고 들었네. 장안성에 도달하기 전에 군량을 빼앗아버리세.”
양곡을 적재한 수레들을 이끌면서 익주로 귀환하는 유언군을 바라보던 무관들이 두 눈을 번뜩였다.
배고픔에 지친 서량의 무관들이었다.
유언군은 철군을 선언하기 이전부터 무정하게 배급을 끊어버렸기에 대부분의 장졸들은 열흘이 넘어가도록 굶주린 상태였다.
굶주린 개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설령 잡견이라도 해도,
열흘 동안이나 굶주리면 맹견보다도 사나워지는 법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