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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448화 (448/616)

<4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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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향한 꿈이,

천하를 향한 야망이 무너졌다.

전면전에 나섰던 국의와 순우경이 대패하면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상황에 직면했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패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장졸들의 모습은 절망에서나 나올 것 같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원소를 보필하던 장수들은 무시무시한 악몽과도 같은 광경을 목격하고는 아연실색을 금치 못했다.

“저, 저런…!”

“세상에 어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국의와 순우경은 하북 4개 주를 호령하면서 천군만마를 이끌었던 명장 중의 명장이다.

믿을 수 없다.

어찌하여 입에 담기에도 황망한 대패를 당했는가.

전멸(全滅).

혹은 완패(完敗).

수만 명이 모두 몰살당했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가슴에 떠안고서 원정길에 올랐던 장졸들이 처참히 쓰러졌다.

중원을 모두 정복하고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원대한 꿈을 이뤄보지도 못한 채 몰살당했다. 장수들은 조심스러운 곁눈질로 주군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

원소는 침묵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속수무책으로 조조군에게 유린당할 뿐인 참혹한 상황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본초, 일단 군을 물려야 하네.”

침묵을 이어나가던 원소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온 봉기가 입을 열었다.

퇴각해야 한다.

승세에 편승한 적들에게 휩쓸릴 위험이 있다.

봉기를 비롯한 참모들은 원소에게 전장에서 퇴각할 것을 진언했다. 노여움을 억누르고 있는 듯한 원소의 모습에 참모들은 식은땀을 주륵 흘렸다.

“퇴각… 말인가요?”

이윽고 원소가 입을 열었다.

허망함에 젖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선 비통함마저 맴돌고 있었다.

“퇴각…! 퇴각이라…!”

비참한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아군은 전멸했다.

몰살에 가까운 수준으로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장졸들의 절박한 비명소리에 현실을 직시한 원소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일어섰다. 결국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 것이었다.

“…전군에 퇴각을 명하세요. 우선 하내군으로 물러나도록 하죠.”

“예, 주군.”

무능한 암군이었다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무너졌겠지만 원소는 유능한 효웅이었다.

비참한 현실을 인정했다.

그 뒤 부하들에게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장수들은 당장이라도 자결을 택하려는 것처럼 원통함을 토해냈다. 절치부심의 분노에 휩싸인 채 전장을 유린하고 있는 조조군을 노려보았다.

“전군에 명을 전달하라!”

“지금부터 퇴각을 준비한다! 어서 서두르라!”

분기를 억누르면서 퇴각을 알렸다.

감정을 가라앉혀야 했다.

장졸들을 구출하는 것이 일단 급선무였기에.

원소가 명을 내리자마자 본진에서 대기하던 전령들이 신속하게 출병했다.

“주군!”

본진을 수비하던 휴원진이 다가왔다.

곧이어 원소에게 서두르는 목소리로 급보를 전달했다.

“전선에 나섰던 정로장군이 돌아왔습니다.”

“…….”

적들에게 완패를 당한 패장이 귀환했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날카로운 냉기가 눈보라처럼 몰아치는 듯했다.

패장이 뻔뻔스럽게 돌아왔다는 소식에 원소군 장수들은 격분을 금치 못했다. 수많은 전투들에서 지대한 전공을 세운 국의라도 이번 패전만큼은 결코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었다.

“일단… 물러가서 대기하라고 하세요.”

“예.”

군법대로 처벌함이 마땅하지만 지금은 경각에 달한 상황이었기에 잠시 보류했다.

물러가라고 명령했다.

지금은 그 낯짝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

관자놀이를 짓누르면서 어지러운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던 원소는 문득 이유 모를 불안감이 들었는지 급보를 전한 휴원진에게 물었다.

“왜 소식이 정로장군뿐이죠? 분명 정로장군과 함께 군세를 이끌었던 중간도 귀환했을 텐데요.”

떨리는 목소리에서 불안감이 느껴졌다.

어째서일까.

무거운 불안감이 가해졌다.

국의만 돌아왔다는 소식에 원소는 순우경의 동태를 급히 물었다.

“본초! 본초!!”

휴원진을 대신하여 물음에 대답하려는 것처럼 봉기가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내지르면서 다가왔다.

낯빛이 매우 창백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말이다.

담대한 성정을 자랑하는 봉기가 대경실색하여 다가오는 모습을 본 원소는 불안감이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주, 중간이…! 중간이 전사했네…!!”

순우경이 죽었다.

거병에 함께 동참했던 동지가 쓰러졌다.

일생의 벗이며 동지였던 순우경의 죽음을 알렸다.

조조에게 하후돈이 있다면 원소에게는 순우경이 있었다. 군부의 2인자이자 듬직한 버팀목이었던 순우경이 죽었다는 소식은 군중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주, 중간이… 중간이 죽었다고요?! 그럴 리가 없어요! 다시 상세하게 알아보세요!”

그럴 리 없다.

절대,

절대 그럴 리 없다!

어떻게 중간이 전선에서 죽는단 말인가!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은 절박함을 호소하듯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오랜 벗의 사망소식에 기품과 체면을 집어던진 채 사나운 절규를 쏟아냈다.

“순우경 장군은 주군께서 무사히 퇴각하실 수 있도록 시간을 벌고자 전선에 남으셨습니다. 척후들의 보고에 따르면 결사대를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하셨다고 합니다….”

순우경이 마지막까지 분투했던 것은 절대로 허울과 오명을 덮으려는 목적은 결코 아니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주군이자 오랜 벗인 원소가 무사히 퇴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고자 함이었다.

덕분에 원소군은 전면전에서 궤멸적인 피해를 안게 되었음에도 철군을 결행할 수 있었다. 순우경의 특공으로 조조군은 잠시 멈춰선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아…!”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침음을 삼켰다.

극심한 충격 때문일까.

잠시 현기증이 일었는지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환관들이 발호했을 때부터 자신의 대의명분에 동참해주었던 오랜 벗이 죽었다. 하북을 호령했던 평생의 동지가 싸늘한 주검이 되고 말았다.

절멸적인 완패에 이어 순우경의 죽음까지 받아들여야 했던 원소는 무기력한 절망에 직면했다.

* * *

백전불패의 전설이 무너지는 굴욕을 경험했던 이성휘는 형양 전투의 승전으로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드디어 원소군을 물리쳤다.

사예주를 침략했던 적들을 모두 몰아냈다.

승전의 영광을 거둬낸 장졸들은 병장기를 치켜들면서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기사회생의 승전을 거뒀음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으하하하!”

“이겼다! 우리들이 이겼다!!”

군기들이 크게 펄럭였다.

승리를 축하해주듯,

바람이 불면서 장졸들이 흘린 땀을 식혀주었다.

기적적인 역전승에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만천하에 어디 있을까. 조조군 장졸들은 철군하는 원소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승전의 환열을 느꼈다.

“비록 적장이지만 순우경은 만세에 남을 뛰어난 충장이었다. 예우를 다해 원소군 측이 인도해라.”

“알겠습니다.”

이성휘는 순우경의 시신을 경건하게 수습하여 업성으로 보내기로 했다.

쓴웃음을 흘렸다.

모든 장졸들이 고함을 내지르면서 기뻐하고 있었음에도 이성휘는 순우경의 죽음을 슬퍼했다.

잠시나마 면식이 있었기 때문일까.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군을 걱정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했던 순우경에게 진심으로 경외를 보냈다.

‘만약 같은 군문에 섰더라면… 아마 막역지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

아쉬움을 느꼈다.

일말의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순우경의 용맹했던 면모를 가슴속에 묻어둔 이성휘는 부하들에게 시신을 부탁한 뒤에 고개를 돌렸다.

“후송된 성렴과 후성의 상태는 어떤가?”

“다행히도 모두 무사하다고 합니다.”

이성휘가 송헌에게 성렴과 후성의 상태를 물었다.

그에 송헌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모두 무사하다고 한다.

그 낭보에 이성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님!”

송헌이 물러나자마자 방천화극을 치켜든 여인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왔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왔는지,

얼굴이 싱글벙글한 웃음기가 가득했다.

“수고 많았다.”

“뭐, 주인님이 더 고생했지.”

오.

겸손을 부릴 줄 알다니.

존중하듯 사양할 줄 아는 여포의 새로운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조금은 어른이 된 걸까.

씩씩한 모습의 여포가 달리 보였다.

“측면을 급습했던 백마의종을 격퇴했다는 승전보를 본진에서 들었다. 지대한 전공을 세웠더군. 조정과 상의하여 벼슬을 논의해보겠다.”

“관직은 됐어.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

활짝 웃으면서 두 발을 동동 구르는 여포의 앙증맞은 모습에 이성휘는 물음표를 띄웠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논공행상에 대한 논의조차 마다할 정도로 무언가를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새하얀 뺨을 붉히면서 팔을 휘두르더니 곧이어 본론을 꺼냈다.

“문원!”

“네, 봉선 님.”

여포가 크게 호명했다.

그에 저 너머에서 장료의 대답이 들려왔다.

“…대체 뭘 하려고.”

의문의 석연찮음을 느낀 이성휘가 중얼거렸다.

“주인님, 승전을 축하드려요!”

흑발을 늘어뜨린 미녀가 화사한 눈웃음을 지으면서 이성휘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아름다운 미녀의 축하였다.

하지만 이성휘는 축하의 말에 기뻐할 수 없었다.

뇌리를 순간 멍하게 만들 정도의 일이 이윽고 펼쳐졌기 때문이다.

“으으읍!!”

이성휘의 시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는 장료에게 집중되었다. 회색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기른 앙칼진 미녀를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죄인을 호송해온 듯,

여인은 입에 가죽으로 된 재갈을 물고 있었다.

사생결단의 전투에서 느껴보지 못한 공황이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여인의 정체를 떠올린 이성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인사해, 주인님! 새 시녀를 데려왔어!”

여포가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으으읍-!!

여인의 괴성이 심해졌다.

입에 재갈을 물린 채 양손이 수갑에 제한된 상태였던 미녀는 드센 저항의지를 드러냈다.

앙칼진 눈빛으로 여포와 장료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주인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린 이성휘까지도 죽일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 표독스러운 모습이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들고양이를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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