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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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그와 동시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람까지 불어닥쳤다.
풍향은 남서풍(南西風).
조조군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흙먼지가 거친 광풍에 실려 원소군을 강타했다. 뿌연 먼지와 함께 좁쌀처럼 작은 모래알들이 온몸을 휩쓸었다.
“크읍!”
“모, 모래바람이…!”
궁노병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모래바람이 날아들었다.
잠시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황사였다.
울퉁불퉁한 모래알들이 얼굴을 휩쓸 때마다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전면에 겨눴던 활과 쇠뇌들을 거둔 채 양손으로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입을 열 수 없었다.
코로 숨을 내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지독한 모래바람에 사격대형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모래바람이 지독했던 탓이다.
“자, 장군! 어서 명령을 내려주시게!”
고번이 소리쳤다.
그에 정신이 들었는지 국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대형을 유지해라! 허둥대지 마라! 놈들은 틀림없이 모래바람을 등에 업고서 급습해올 거다! 언제라도 사격이 가능하도록 활과 쇠뇌를 조준해라!”
절박함에 물든 고함소리를 내질렀다.
입에 모래알들이 가득 들어왔다.
그럼에도 국의는 계속해서 장졸들을 호령했다.
이성휘의 속셈을 간파한 것이리라.
득의양양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국의는 절박한 고함소리를 연신 토해내면서 궁노병들에게 사격대형을 고수할 것을 명령했다.
부우우우우우우우──!!!
“흐아악!”
진격을 알리는 나발소리가 울렸다.
바로 앞에서 들린 듯했다.
생생한 나발소리에 궁노병들은 소스라치게 놀란 모습을 보이면서 활과 쇠뇌를 쏘아댔다.
“쏴라!”
“적들이다! 적들이 다가왔다!!”
굉음에 당황한 궁노병들이 하나둘씩 전면에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표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굉음에 놀라 사격을 가했을 뿐이다.
표적을 정확하게 조준하지 않은 무차별적인 사격은 아까운 화살들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놀란 궁노병들의 사격은 몇 차례 이어진 뒤에야 국의의 엄명으로 멈추게 되었다.
“이성휘…! 빌어먹을 놈이 감히!!”
적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계속 고각들만 울릴 뿐,
정작 적들은 계속 오리무중이었다.
아군을 동요에 빠트리려는 간계가 분명했다.
일방적으로 놈의 계획대로 궁노병들이 휘말리고 있음에 분통을 터트렸다.
“쏘지 마라! 놈들의 계략이다!”
이번에는 좌측에서 고각소리가 울렸다. 궁노병들은 크게 놀라면서 굉음이 울렸던 쪽으로 활과 쇠뇌를 겨눴다.
그에 곽조가 소리쳤다.
분명 속임수다.
화살을 낭비하게 만들려는 간계임이 틀림없었다.
곽조는 공손독과 함께 궁노병들을 제지하면서 적의 계략에 휘말리는 것을 방지했다.
“감히 잔재주를! 이성휘, 이놈!!”
예상대로 적들은 오지 않았다.
고각만 쩌렁쩌렁 울렸을 뿐,
이번에도 공격하려는 척 허수(虛數)를 부린 것이다.
대체 언제까지 속임수를 이어나갈 셈이냐.
천운으로 조조군의 허수임을 간파한 곽조와 공손독은 초조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깨를 떨어댔다.
‘대체 언제까지 허수가 이어질지….’
‘이성휘! 네놈에게 화살세례를 퍼부어주겠다!’
정면.
좌측과 우측.
속임수는 수차례 이어졌다.
그때마다 궁노병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짙은 모래바람에 시야를 빼앗겨버린 궁노병들은 불안에 휩싸인 채 활을 움켜쥐었다.
제발 이번에도 속임수이기를….
언제 적들이 급습해올지 모른다는 공포를 떠안으면서 쩌렁쩌렁한 고각소리를 듣는 것은 실로 지독한 고문이었다.
“놈들이 온다!”
“이, 이번에는 진짜다!!”
고막이 찢어지는 고각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이번은 무언가가 달랐다.
기병부대가 모래바람을 돌파하여 달려들었다.
흙먼지를 등지고서 달려든 기병부대의 맹습으로 원소군의 전열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활을 쏴라! 놈들을 죽여라!”
“아, 안 됩니다! 이미 피아가 뒤섞여서… 사격이 불가능합니다!”
충각처럼 달려든 기병부대로 인해 전열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선두에서 궁노병들을 호위하던 보병부대가 먼저 적들에게 휩쓸렸다. 뒤이어 궁노병들 또한 각축장에 휘말리면서 혼란이 확산되었다.
“으하하핫!”
“적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소이다!”
기병부대를 지휘하던 송헌과 조성이 혼란에 빠져버린 원소군을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성공했다.
놈들이 동요하고 있다.
물샐틈없이 완강하던 원소군의 전열이 송헌과 조성의 공격으로 속절없이 와해되었다. 마치 거대한 코끼리가 작은 시궁쥐에 놀라 혼비백산하는 격이었다.
“침입해온 적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장졸들은 어서 전열을 갖추어 반격하라!”
급습해온 기병부대는 불과 5천에 불과했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전열을 갖추고서 역공세를 펼친다면 적들을 몰아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대규모 기만전술로 궁노병들을 수세에 몰아넣은 조조군이 그것을 용인할 리 없었다.
“중원의 용병들이여, 나를 따르라!”
패국의 여걸이 붉은 머리카락을 나부끼면서 적진으로 난입했다.
여걸을 뒤따르던 기병들이 가세하여 돌격을 감행했다. 거친 말발굽소리와 함께 원소군의 궁노병들의 비명소리가 처절하게 울려퍼졌다.
콰득-!
카드드득!!
활과 쇠뇌가 부러졌다.
궁노병들이 말발굽에 짓밟혔다.
계교 전투의 용사들이 무력하게 붕괴되었다.
“내가 바로 패국의 하후원양이다!”
무관들을 소집하여 타개책을 의논하던 곽조가 하후돈의 월도에 목이 달아났다.
휘하 무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후돈을 뒤따르던 기병들이 급습하여 원소군의 지휘를 무너트렸다.
“전군, 공격하라.”
순유와 사마의를 대동하고서 모습을 드러낸 이성휘는 제장들에게 총공세를 명령했다.
궁노병에게 빼앗겼던 승세를 완전히 되찾았다.
“놈들이 동요하고 있다!”
“승세는 우리들에게 있다! 계속 밀어붙여라!”
적의 전열이 무너졌다.
사기를 잃은 궁노병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흙먼지를 동원한 기만전술로 국의가 맹신하던 궁노병들을 무력화시켰다. 이성휘는 애타게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원소군을 끝장내고자 연이어 후속부대들을 전선에 투입했다.
“표기장군 대단함! 어떻게 생각해낸 비책임?! 이 본좌도 한 수 배우고 싶을 정도임!”
작은 소녀가 어깨를 들썩이면서 물었다.
크게 감탄했는지,
흑발을 연신 찰랑이면서 고개를 움직였다.
그에 이성휘는 순유와 사마의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우수한 참모들의 신산귀모(神算鬼謀)를 어깨 너머로 보고 배웠을 뿐이다.”
“에헴! 그건 맞음!”
본인을 치켜세우는 이성휘의 칭찬에 금세 으쓱해졌는지 사마의는 허리에 양손을 척하니 올렸다.
보조개가 팬 뺨.
우쭐거림이 가득 담긴 입술.
납작한 가슴을 내밀면서 한껏 으스댔다.
“정말 대단하세요, 주군. 이러다가 저희들의 역할이 영영 사라질지도 모르겠는데요?”
“과찬이다.”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임기응변을 섞은 기만전술.
병서(兵書)에 기록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전술이었다.
배우고 터득하는 속도가 무시무시하다.
순유는 이성휘의 옆모습을 힐끗 쳐다보면서 무궁무진한 다재다능함에 감탄을 표시했다.
‘신예에 도달한 위용과 일선 참모들도 혀를 내두르게 만들 정도의 무략까지…. 천하무쌍에 이어 국사무쌍에도 도전하시려는 건가요?’
전투경험이 능숙한 숙장이 무서운 이유는 변칙적인 임기응변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순유와 가후,
그리고 사마의로부터 전술과 전략을 터득한 이성휘는 점점 완성형에 가까워졌다.
국사무쌍의 자질을 갖추었음을 증명하듯 하북을 대표하는 명장들인 국의와 순우경을 전술로 밀어붙이는 날카로운 군략을 보여주었다.
“주군의 책략주머니에서 임신주머니로 전락하게 될 날이 정말로 머지않았네요.”
후우.
순유가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그에 이성휘는 부담스럽다는 듯 시선을 회피했다.
“중달, 이제 원소군이 어떻게 나오겠나.”
“어떻게든 방진(防陣)을 전개하려 할 거임.”
“아수라장 속에서 방진이라…. 분명 국의라면 가능할 테지.”
국의는 북방의 귀신을 물리친 하북의 명장이다.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다.
놈은 분명 어떻게든 반격을 꾀할 터였기에.
최선의 방법은 국의가 역공을 꾀할 수 없도록 계속해서 맹공을 날리는 것이다. 제아무리 하북의 명장이라도 아비규환의 전황은 어쩔 수 없을 테니.
“승세는 우리들에게 있다!”
“공격하라! 계속 공격하라!!”
뒤이어 학맹과 위속이 나섰다.
부상으로 실려나간 후성과 성렴을 제외한 팔건장의 장수들이 모두 투입되었다.
흥망성쇠가 결정될 싸움이다.
천하제일검의 건장(健將)들이 빠질 수 없었다.
병장기를 치켜든 팔건장이 아수라장에 빠진 원소군을 급습하면서 전장을 압도했다.
“이제 나도 나서야겠군.”
이성휘는 순유와 사마의에게 당부의 언질을 남기면서 휘하 병력을 이끌었다.
“그냥 승전보를 기다리는 게 좋지 않음?”
사마의가 물었다.
그에 이성휘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답했다.
“국의와 순우경을 반드시 내 손으로 잡겠다.”
하북 제패에 앞장섰던 원소군의 일등공신들은 두고두고 화근이 될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성휘는 직접 두 명장들을 잡으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