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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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검이 전선에 가세하지 않았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은 안일함이 불러온 착각이었다.
괴물이 있지 않은가.
인중여포 마중적토.
수많은 전장을 시산혈해로 물들였던 괴물.
황실과 조정을 거머쥐었던 동탁조차도 압도적인 용맹과 무력을 두려워했다는 일기당천의 무인.
“…여포.”
두 눈을 부릅뜨면서 방천화극을 치켜드는 여장부의 모습에 조운은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양손으로 창을 거머쥐었다.
마른침을 삼키면서 눈앞의 적을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년아──!!”
맹수가 크게 포효했다.
부하들의 처참한 모습에 격앙한 맹수는 방천화극을 내지르면서 복수심을 드러냈다.
차앙!!
맹렬한 금속음이 울렸다.
차가운 섬광과 함께 병장기들이 격돌했다.
초인적인 무위로 압승을 거두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조운은 격앙된 여포를 상대로 일격을 버텨냈다.
비록 항장 출신이지만 조운은 공손찬군에서 당해낼 자가 없었던 용장이었다. 빠르고 날카로운 창격을 연신 내지르면서 여포에게 반격을 가했다.
“흥, 버러지가…!”
정확히 목덜미를 노리는 조운의 창술은 여포도 긴장시켰을 정도로 예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위는 여포에게 있었다.
“팔다리를 찢어발겨주마.”
바위처럼 무거운 일격이 조운을 강타했다.
“크윽!”
초인적인 괴력에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
병장기를 쥔 양손이 떨어져나갈 듯했다.
힘의 대결에 밀려 뒷걸음질을 쳤다.
조운은 사면초가에 내몰린 상황에서 어떻게든 전세를 뒤엎고자 승부수를 내걸었다. 창을 연이어 내지르면서 빈틈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를 공격해도 즉시 반격당할 뿐, 이것이 바로 벽이라고 하는 건가.’
여포는 괴력에만 의존하는 무장이 아니다.
날렵한 기교는 물론,
전투경험 또한 매우 능숙했다.
수많은 적장들을 전장에 매장했던 백전연마의 비장이다. 천하제일검을 보필하는 필두무장답게 완전무결한 무위를 자랑했다.
“조운 장군이 위험하다!”
“어서 유격장군을 구원하라!”
조조군의 측면을 급습했던 백마의종이 말머리를 돌려 조운을 구원하고자 달려왔다.
부하들의 가세에 조운이 소리쳤다.
“오, 오지 마라! 안 돼!!”
아연실색한 목소리로 비명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거센 돌개바람이 강타했다.
압도적인 괴력을 담아낸 방천화극을 크게 휘두르자 돌개바람이 몰아쳤다. 여포에게 달려들었던 백마의종은 창격에 휩쓸린 채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말았다.
후드득-! 후두두둑-!
피와 살점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그 시산혈해의 중심에는 비장이 있었다.
살의에 불타는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면서 방천화극을 치켜든 채 적을 노려보았다.
“크아악!”
“어서 조운 장군을 엄호하라!”
유주를 제패했던 백마의종이 병주의 비장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병사들의 안타까운 비명과 함께 백마의 울음소리가 처절하게 울렸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장군!”
무관들이 조운을 어깨를 붙잡으면서 소리쳤다.
저 여자는 괴물이다.
격앙된 괴물을 상대로 오래 버티진 못할 터.
귀신의 형상을 하고 있는 병주의 비장은 악몽에 등장할 법한 재앙과 같았다. 온몸을 피로 물들인 채 광분하는 여포의 모습에 백마의종은 원초적인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 다 덤벼라! 이 버러지들아!!”
귀신이 날뛰었다.
섬뜩한 광소를 터트렸다.
그에 호응하듯 적토마가 전장을 질주했다.
핏물을 흠뻑 머금은 금발을 나부끼면서 방천화극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면서 피와 살점이 흙바닥에 쏟아졌다.
“부하들을 내세우면 못 찾을 줄 알았냐!!”
급습해온 백마의종을 무력으로 돌파한 여포가 조운에게 달려들었다.
부하들에게 둘러싸였던 조운은 입술을 꾹 깨물면서 앞으로 나섰다. 양손으로 창을 내지르면서 다시 여포와 격돌했다.
“흥, 기개가 제법이네!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여포가 이를 드러내면서 말했다.
그에 조운이 두 눈을 부릅뜨면서 입을 열었다.
“양부를 살해한 계집이 잘난 듯 떠들지 마라. 수치도 모르고 동탁에게 목숨을 구걸했다지.”
“이 씨발년이…! 죽으려고 아주 발악을 하시네!”
까득.
역린을 찔린 여포가 이를 갈았다.
반드시 네년을 찢어죽이겠다.
공세가 더욱 난폭하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큭!”
타아앙-!!
우렛소리 같은 금속음과 함께 창이 부러졌다.
조운은 잠시 물러선 뒤,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창술만큼이나 검술도 뛰어났던 조운은 검을 휘두르면서 여포에게 대적했다. 부하들이 무사히 전선을 빠져나가도록 시간을 벌려는 행동인 듯했다.
“내 부하들을 도륙했던 주제에… 제 부하들의 목숨을 중요한 모양이지?”
“나는 내 본분을 다할 뿐이다.”
여포의 조롱에 조운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검을 크게 휘둘렀다.
‘제법인데?’
날카로운 칼끝을 피한 여포가 중얼거렸다.
현란하면서 정교하다.
창술이 그러하였듯,
검술 또한 맹장들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문원에 필적하는 수준이 아닐까. 혹시 어쩌면 문원보다도 실력이 월등할지도 모른다.
백마의종을 이끌고서 아군의 측면을 돌파했던 조운의 과감한 용병술을 떠올린 여포는 혀를 차면서 잠시 방천화극을 거뒀다.
심정에 변화가 일었는지,
기름처럼 들끓었던 분노가 가라앉았다.
“하아…! 하아…!!”
여포와 무려 수백 합을 겨룬 조운은 땀을 주륵주륵 흘리면서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회색 머리카락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에 조운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이대로 죽이긴 아깝단 말이야? 부하들을 구하고자 끝까지 나와 싸우다니. 투지와 호기가 제법인데.’
설마 원소군에 이런 맹장이 있었을 줄이야.
입술을 우물거렸다.
심사숙고할 때 보이는 버릇들 중 하나였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도 전의를 드러내는 조운의 모습에 감탄을 보냈다. 특히 부하들을 구하고자 망설임 없이 나선 결연함이 마음에 든 듯했다.
“지금 투항하면 용서해줄 수 있는데.”
여포가 선뜩 호의를 건넸다.
그에 조운이 대답했다.
“필요 없다! 정포인지 동포인지 모를 계집아!”
“…….”
호의가 짓밟혔다.
애써 보였던 선심이 철저히 무시당했다.
여포는 잠시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어설픈 설득은 도리어 조운을 분개하게 만들었다.
“젠장, 나는 여씨인데 어째서 다들 내 성씨를 가만두지 않는 건데.”
머리를 긁으면서 중얼거린 여포는 사납게 달려드는 조운에게 일격을 겨눴다.
나한테 설득은 무리다.
이 다음에 문원에게 부탁하기로 하자.
저 년은 살려둘 가치가 있다.
말버릇이 몹시도 불쾌했지만 걸출한 맹위가 마음에 들었기에 죽이는 것만큼은 피하기로 했다. 물론 때려눕히는 해야겠지만.
* * *
조조군의 측면을 공격했던 백마의종이 적들의 역공세에 무너졌다.
한거자와 휴원진이 전사,
조운은 생사가 불명인 상황이었다.
조조군과 백중지세의 싸움을 이어나간 원소군은 백마의종의 패전을 들은 이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러서지 마라! 끝까지 전열을 지켜라!”
도독(都督) 순우경이 근엄한 목소리로 장졸들을 호령했다.
백마의종이 무너졌다.
곧이어 그 여파가 모든 전선에 밀어닥칠 터.
어떻게든 백마의종의 실패를 만회해야 한다.
전열을 지휘하면서 요동치는 전선을 위무하던 순우경이 경직된 표정을 지었다. 삼면에서 동시에 적장들이 돌격해오고 있었다.
“순우경을 쳐라!”
“전장의 승세가 멀지 않았다!”
절충장군(折衝將軍) 악진.
중랑장(中郞將) 이전. 비장군(卑將軍) 이통.
원소의 오른팔인 순우경을 쓰러트리고자 여러 용장들이 투입되었다.
놈만 쓰러트리면 된다.
저수에 이어 순우경까지 패퇴한다면 원소군은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을 터.
조조군은 백마의종의 패퇴로 발생한 기회를 치밀하게 놓치지 않았다.
“떼로 덤벼든다고 해서 물러설 것 같으냐! 이 순우중간은 최후의 순간까지 싸울 것이다!!”
목을 움켜쥐는 불안감을 느낀 것일까.
순우경은 경직된 표정을 지으면서 제장들에게 용전을 촉구했다.
결코 뚫려선 안 된다.
어떻게든 전선을 사수해야 한다.
전황을 주시하고 있을 주군의 모습을 떠올렸다.
조조군의 파상공세를 맞이한 순우경은 위기감을 애써 억누르면서 전선에 섰다. 화려하게 치장된 보검을 치켜든 채로 악진과 이전, 이통의 공세를 막아냈다.
“원소군이 밀리고 있다!”
“계속 밀어붙여라! 우리들이 이기고 있다!”
끼긱.
끼기긱-!
원소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백마의종의 패전 때문일까.
거대한 바위와도 같았던 전열이 연이어 흔들렸다.
콰앙! 콰아앙!! 조조군의 연격에 밀려나는 아군들을 바라보던 순우경은 침음을 삼키면서 칼자루를 움켜잡았다.
‘이대로 전열이 무너지면 본진마저 적의 공세에 휩쓸릴 터…!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놈들과 동귀어진을 해서라도 기필코!’
백마의종의 패주로 전장의 사기가 위축되었다.
만약 여기에 자신마저 패주한다면 지금까지 두었던 대국이 사상누각처럼 무너지게 되리라.
결코 그럴 수 없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위해서라도.
그녀가 꿈꾸는 아름다운 이상향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이 전쟁에서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했다.
“쿠웁…! 커억!!”
“쇠, 쇠뇌다! 쇠뇌가 날아온다!!”
승세를 직감한 조조군이 위풍당당하게 진격을 거듭하고 있었을 때,
하늘이 순간 새카맣게 물들었다.
화살이었다.
날카로운 화살세례들이 폭풍우처럼 밀어닥쳤다.
촤아아아악──!!
수많은 활들이,
수많은 쇠뇌들이,
삼면에서 몰려들던 조조군의 숨통을 끊어냈다.
“어억!”
“방패를 들어라! 방패를… 카하악!!”
병사들의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온몸에 화살이 박힌 채,
구멍마다 핏줄을 울컥울컥 쏟아내다가 쓰러졌다.
화살세례에 휩쓸린 병력이 결코 적지 않았다.
수백 명이 넘는 병사들이 비명횡사했다. 부대가 통째로 전멸하기도 했다.
원소군을 돌파하기 위해 섣부르게 밀집대형을 형성했던 조조군은 계교 전투에서 공손찬군을 몰살시켰던 화살세례에 잠시 물러서고 말았다.
“적의 공세에 애를 먹다니… 도독이라는 자가 참으로 안타깝구려.”
“정로장군!”
수천 명의 궁사와 노사들이 전선에 합류했다.
정로장군 국의,
계교 전투의 영웅이 모습을 드러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했던 순우경을 참으로 한심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던 국의는 손을 번쩍 들면서 집중사격을 재차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