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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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연기와 함께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동관(潼關)이 무너지고 있다.
연이은 공방으로 성벽이 수차례 흔들렸다.
서량 연합군의 필사적인 파상공세에 결국 도호장군(都護將軍) 조홍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 계속해서 분전하였으나 노도처럼 밀려드는 적들의 침공을 막아낼 순 없었다.
“저 괴물 같은 년이!”
황금 갑주를 걸친 흑발의 여인이 소리쳤다.
파앙-!
파아앙-!!
귓가를 찢어발기듯 파공음이 울렸다.
정서장군(征西將軍) 마등의 딸,
선봉장 마초가 창을 휘두르는 소리였다.
날카로운 창끝을 질풍처럼 내지를 때마다 장졸들이 핏물을 쏟으면서 쓰러졌다. 과연 서량의 금마초라 불리는 여장부답게 창술이 매우 출중했다.
“쏴라!”
“적들이 성벽을 넘었다!”
명령을 기다리던 조조군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세례를 가했다. 성벽을 등반한 침략자들에게 날카로운 화살비를 먹였다.
화살세례가 침략자들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잠시 공세를 멈췄을 뿐이었다.
방패를 치켜든 서량군 병사들이 달려들면서 방어선을 돌파했다. 수많은 실패와 착오를 반복했던 서량군은 점차 공성전에 능숙해져 있었다.
“성벽을 사수하라!”
“어떻게든 성문을 지켜내야 한다!”
병장기를 늘어뜨린 조조군이 달려들어 성벽을 점거하던 서량군에 반격을 가했다.
뚫려선 안 된다.
결단코 돌파당해선 안 된다.
장안성이 역도들의 손에 도륙당하지 않았던가.
무고한 백성들마저 학살했던 서량군은 역병과 같았다. 그래서 조조군은 결사항전을 계속 반복하면서 끈질기게 버텨온 것이었다.
“성벽을 넘어라!”
“이제 고지가 눈앞이다! 물러서지 마라!”
마초의 동생인 마휴와 마철이 병장기를 치켜들면서 운제를 오르던 장졸들을 독려했다.
드디어 조조군 놈들을 끝장낼 수 있다.
검은 그을음을 뒤집어쓴 서량군은 날렵하게 성벽을 기어올랐다. 수백 명의 병력들이 일거에 성벽을 점령해버렸다.
“황금을 두른 계집이 대장이다!”
“빌어먹을 년! 목을 자른 뒤에 갑옷을 벗겨주마!”
방어선을 돌파하여 내부로 진입한 서량군이 조홍에게 칼끝을 겨누면서 소리쳤다.
수많은 전우들의 희생으로 입성에 성공한 서량군은 독기를 품은 눈길로 조홍을 노려보았다. 창검을 휘두르면서 곧장 달려들었다.
“도호장군을 지켜라!”
“장군, 저희들이 막겠습니다…!”
조홍을 엄호하던 무관들이 나섰다.
적들에게 성벽을 빼앗겼다.
이제 동관이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도호장군만이라도 피신시켜야 한다.
패국조씨 가문에 충성을 맹세한 무관들은 조홍에게 피신을 종용했다. 낙양까지 무사히 피신할 때까지 자신들이 전선을 사수하겠다며 결연한 희생정신을 보여주었다.
“언니에게 반드시 동관을 사수하겠노라고 맹세했어요. 이대로… 동관과 운명을 함께하겠어요. 저는 언니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으니까.”
야차처럼 사나운 서량군이 동관을 통과하여 사예주를 침범한다면 대소요가 벌어질 터였다.
하동군과 홍농군은 물론,
사예주의 모든 군현들이 서량 기마군단의 말발굽에 짓밟히게 되리라.
공방전의 패전으로 발생할 위험들을 떠올린 조홍은 이를 꽉 깨물면서 결사를 선택했다. 목숨을 내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위치를 지켰다.
“장안성을 도륙했던 역도들을 쳐라! 우리들은 끝까지 동관을 사수할 것이다!”
조홍이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죽음이 다가왔다.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듯했다.
노도처럼 몰려드는 적들을 바라보던 조홍은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면서 공세에 뛰어들었다.
“커헉!”
“죽어라, 이 년!”
빠르게 검을 휘두르면서 짐승처럼 달려들던 적들을 베어냈다.
조홍은 날카로운 검술을 선보이면서 무관들과 함께 반격에 나섰다. 일방적으로 밀려드는 적들을 다시 밀어내어 성벽을 수복하려 했다.
물론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미 적들이 성벽을 점거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머지않아 성문이 뚫리면서 서량의 기마군단이 밀어닥칠 터였다. 반격을 개시하는 조홍의 행동은 매우 위험천만했다.
“더러운 오랑캐들! 네놈들을 다 죽여… 커헉!”
도끼를 휘두르면서 서량군의 진격을 막아내던 조조군 무관이 돌연 쓰러졌다.
목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날카로운 창끝이 목덜미를 꿰뚫은 것이다.
용전을 이어나가던 무관이 핏물을 울컥 토해내면서 쓰러짐과 동시에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장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초였다.
“적장은 내 창을 받으라.”
핏물과 살점이 덕지덕지 묻은 창끝을 겨눴다.
그 모습은 마치 목숨을 거두고자 찾아온 사신을 보는 듯했다.
“서량의 금마초…? 일격에 나가떨어졌던 잡졸 주제에 폼이나 잡긴!”
조홍이 오기를 부리면서 말했다.
노골적인 도발에 마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격에 당했던 패배.
천하제일검에게 당한 패배는 마초에게 있어 역린과도 같았다.
파아앙──!!
마초가 창을 크게 내질렀다.
창격과 동시에 선두에서 조홍을 호위하던 무관들이 핏물을 쏟아내면서 툴썩 주저앉았다.
“큭!”
병장기를 휘두르면서 생긴 바람이 뺨을 간질였다.
실로 어마어마한 힘이다.
조홍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마초에게 검을 겨눴다.
여기서 꼴사납게 물러설 순 없다. 조홍은 칼자루를 쥐고 있던 양손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두 눈을 부릅뜨면서 죽음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용기만큼은 칭찬해주마.”
마초가 말했다.
그에 조홍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너보다는 낫지. 일격에 기절했던 다음에 부하에게 실려나갔잖아?”
수다스러운 말재주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뛰어난 재치를 발휘했다. 싸구려 같은 도발은 정확하게 마초의 역린을 건드렸다.
“죽여 버리겠다아아!!”
수치심이 뒤섞인 노여움을 토해내면서 창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위기를 알리는 나각소리가 울렸다.
부우우우우우우우!!!
조홍에게 창을 휘둘렀던 마초는 나각소리를 듣자마자 심상치 않은 위기감을 직감했다.
차앙-!
순간 힘이 빠진 탓일까,
내질렀던 창끝이 막히고 말았다.
공격이 실패한 마초는 이를 꽉 깨물면서 고개를 돌렸다. 마치 염료처럼 마음속을 물들이는 불안감의 근원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적의 증원군이다!”
“비, 빌어먹을…! 하필 증원군이라니!”
무거운 진동소리와 함께 새로운 군세들이 새카맣게 몰려들었다.
펄럭이는 군기.
빽빽하게 늘어선 병장기들.
표기장군 이성휘가 급파한 유비군이 웅장한 위엄을 발산하면서 전선에 도달했다. 관중에 발을 들인 유비군은 전투태세를 갖추면서 서량 연합군을 노렸다.
“저, 저 년은 대체 뭐냐…!”
조조군을 도륙하면서 전공을 세우던 양홍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흑발을 늘어뜨린 여걸이,
자살특공처럼 단기필마로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청룡언월도를 한손으로 크게 휘두르면서 살육을 즐기던 서량군을 난데없이 급습했다.
* * *
칠흑처럼 검은 한혈마, 절영(絶影)에 올라탄 조조는 전황을 바라보면서 이성휘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하북사정주가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지만 원소군의 사기는 드높은 상태입니다. 아마 교전이 벌어지게 된다면 양패구상(兩敗俱傷)으로 이어질 겁니다.”
결코 원소군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격돌하게 된다면 큰 피해가 따를 터.
사예주가 장졸들의 피와 주검으로 물들게 되리라.
공방전을 통해 원소군의 전력을 가늠했던 이성휘는 조조에게 전면전을 피할 것을 주문했다.
“성휘, 부상은 어떤가?”
조조가 물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면서 상태를 염려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시 참전할 수 있습니다.”
이까짓 부상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순유에게 치료를 받았다.
물론 무리를 해선 안 된다는 충고를 받았지만.
지금까지 계속 무리를 거듭하였기에 이성휘는 이번에도 또한 억지를 감행하려 했다.
“본진에서 병력을 지휘하게나. 내가 직접 제장들을 이끌고 나가겠네.”
“아만이… 직접 말입니까?”
“권모술수와 신산귀모로 아군을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았던 본초에게 제대로 갚아줘야 하지 않았는가.”
“…….”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면서 투지를 발산했다.
질릴 대로 당했다.
이제 빚을 갚아줄 차례였다.
감히 그따위의 작태들을 꾸미다니. 그 오만함을 철저히 짓이겨주마.
허도의 군단들을 이끌고서 사예주에 당도한 조조는 곧바로 총공세를 명령했다. 음흉한 덫과 흉계로 허도를 더럽힌 간악한 역도들을 성토하기 위함이었다.
“출진하라!”
하후연이 창을 치켜들면서 소리쳤다.
“전군, 출병하라!”
“병사들은 모두 나를 따르라!”
뒤이어 악진과 우금이 장졸들을 이끌었다.
그와 동시에,
병력을 거느린 장수들이 모두 움직였다.
중원을 제패한 조조군이 물결처럼 들고 일어섰다.
원소군의 권모술수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였던 조조군은 연이은 악재에도 일치단결하는 단결력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난관들을 돌파해온 굴지의 세력이었기에 가능한 위업이었다. 패자(覇者) 조조를 중심으로 결성한 조조군은 이윽고 대단원에 발을 들였다.
“마침내 천하의 패권을 결정할 때가 왔다!”
조조가 검을 뽑아들었다.
날카로운 칼끝을 치켜들면서 장졸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나와 함께 칠난팔고를 돌파했던 중원의 용맹한 용사들이여! 수많은 전장들을 모두 승리로 장식했던 명예로운 강병들이여!”
평생의 꿈을,
오랫동안 갈망해온 야망을.
천하통일의 대업을 위한 장졸들의 염원을 결정지을 대단원에 도달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들이 있었는가.
수많은 군벌들을 격파하며,
돌탑을 쌓아올리듯 노력과 희생들을 반복했던 끝에 우리들은 최종결전에 이르렀다.
“천하통일을 염원하는 가족들을 위해 싸우라! 대업을 위해 쓰러져간 전우들을 위해 싸우라! 용맹무쌍한 중원의 패자들이여, 우리들의 패업은 바로 이 전쟁의 승패로 결정될 것이다!!”
오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전우들이 쓰러졌던가.
기꺼이 목숨을 희생했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들은 충성을 지켰다.
승리를 위해 망설임 없이 희생을 선택했던 오랜 벗을 회상한 조조는 이윽고 격앙된 목소리로 호령했다.
“전군, 공격하라!!”
패자(覇者)가 공세를 명령했다.
이윽고,
야망과 염원을 품은 패군(覇軍)이 움직였다.
제련된 강철과 드센 용맹으로 무장한 파랑(破浪)이 몰아치면서 전장을 휩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