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441화 (441/616)

<441화>

============================

결투에서 하북사정주를 모두 쓰러트린 이성휘는 다시금 만부부당(萬夫不當)의 전설을 기록했다.

백전불패의 명성은 깨졌으나,

천하를 대표하는 무인이 만부부당임이 널리 알려졌다.

누가 감히 천하제일검을 대적하겠는가.

하북 최강의 맹장들이 모두 투입되었음에도 천하제일검을 쓰러트리지 못하고 무너졌다.

당시의 격전을 목격했던 장졸들은 천하제일검을 이길 적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입을 모아 말했다.

“과연 주군께서는 대단하세요. 하북 굴지의 맹장들을 상대로 승전하시다니…. 이 남자, 과연 침대에서는 어떨까, 라는 물음을 드리고 싶네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음탕한 농담이다.

이성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는 간드러지는 웃음을 쿡쿡 터트렸다.

오늘도 직속상관을 익살스럽게 놀려댄 순유는 금창약을 바르면서 이성휘를 치료했다. 마치 남편을 치료하는 아내처럼 손길이 매우 정성스러웠다.

금슬 좋은 아내처럼 보인다고 할까.

음란한 농담들을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입만 닫는다면 현모양처처럼 보일 것 같았다.

“허도의 반란이 단숨에 진압돼서 다행이에요. 만약 장기전으로 이어졌다면 큰 낭패를 봤을 테니까요.”

“그렇겠지.”

동승의 무리들이 일으켰던 반란이 조조군의 반격으로 반나절 만에 진압되었다.

주모자들은 모두 처형되었고,

반역에 연루되었던 사대부와 호족들 또한 처형대에 오르게 되었다.

육신을 갉아먹는 종양과 같았던 불순분자들을 단번에 일소할 수 있었다. 진압 소식을 들은 조조군 장수들은 드디어 해악들을 제거했다며 크게 기뻐했다.

“도련님과 아가씨도 모두 무사하세요. 허도에 직접 전령을 보내서 알아본 사실이니까 이제 마음 푹 놓으세요.”

“…….”

조앙도, 조비도, 이현도.

모두 무사하다고 한다.

동승의 자객들이 궁궐을 습격하였으나 좌중랑장 전위의 분전으로 모두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후우.

그제야 이성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주군은 자상한 아버지세요.”

“그런가.”

“네, 그럼요! 지금 당장에 제 아이의 아버지로 만들고 싶을 정도라고요!”

“……?”

순유가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으로 한 말인지,

아니면 정말 진담으로 한 말인지.

금창약을 바르던 손가락으로 이성휘의 등을 간질였다. 손길에서 요염함이 느껴졌다.

도둑고양이처럼 야릇한 미소를 짓는 순유의 모습에 이성휘는 쓴웃음을 흘렸다.

“시집도 안 간 처녀가 못하는 말이 없군.”

“그럼 표기장군에게 가면 되죠. 정실마님이 무섭지만 무릎을 꿇고 싹싹 빌면 건덕지라도 생기지 않겠어요?”

“내 아내만 다섯 명이다.”

“에이, 다섯 명이나 여섯 명이나….”

조조. 조홍. 조인. 하후돈. 초선.

혼례를 치른 아내들만 총 다섯이다.

요염하게 어깨를 쓰다듬는 순유의 유혹에 이성휘는 아슬아슬한 위기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겪은 상황이었기에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일방적인 유혹을 당한 결과,

결국 유혹해온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지 않았던가.

“푸훗! 아하핫! 뭘 그렇게 긴장하신 거예요?”

경직된 이성휘의 반응에 순유가 박장대소하면서 등을 두드렸다.

쿡쿡. 쿡쿡쿡.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연신 이어졌다.

장난기가 담긴 미소를 머금으면서 이성휘에게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매번 놀리는 맛이 있는 직속상관의 반응을 보고 싶은 듯했다.

“설마 정말로 두근두근했던 거예요? 흐응, 가슴 뿌듯한 일이네요. 제 매력에 표기장군께서 홀라당 넘어가버릴 줄이야. 에이, 그래도 그렇지! 아내가 다섯 명이나 되시는 지아비께서 그러면 안 돼죠.”

순유가 헤실헤실 웃음을 터트렸다.

드디어 내 매력에 넘어왔다.

이제 표기장군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다.

만약 강아지였다면 꼬리를 좌우로 홱홱 흔들어대고 있지 않았을까.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몸을 기대는 순유의 애교에 실소를 머금었다.

“치료해줘서 고맙다.”

이성휘가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손을 뻗으면서 순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탐스러운 머리카락에서 사륵사륵 소리가 났다.

친애의 감정이 담긴 따스한 손길이었다.

순유는 새신부처럼 얼굴을 붉히면서 도톰한 입술을 우물거렸다. 쑥스러움에 물든 미소를 배시시 흘렸다.

“동탁에게서 도망쳐 왔을 때… 표기장군이 그때 저를 치료해주셨잖아요. 생면부지였던 저를 정성스럽게 치료해주셨죠.”

“그래, 그랬었지.”

예전 일이 떠올랐다.

필사적으로 도망쳐온 그녀를 치료해주었지.

피범벅이었던 그녀의 발에 금창약을 바르고서 붕대를 감아주었다. 그때와는 정반대인 지금 상황에 이성휘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때의 저는 한낱 도망자 신세에 불과했는데… 어째서 선뜻 선의를 베풀어주신 거예요? 하긴 영천순씨 가문에다가 고모님이 군사였으니까….”

순유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말했다.

그에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천하와 백성들을 구하고자 목숨을 바쳐 의거를 계획했던 네 의지를 진심으로 존중했기 때문이다.”

“네?”

“입으로만 대의명분을 떠들어대는 작자들은 천하에 널리고 널렸지만 너는 달랐다. 진심으로 천하와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았나.”

“하지만 결국 실패해버렸잖아요. 저 때문에 수많은 관료들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는데….”

“하지만 우여곡절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지. 네가 있어준 덕분에 낙양에서 이길 수 있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의지를 관철했다.

만약 그대로 포기해버렸다면 낙양대전의 영광은 결코 오지 않았으리라.

의거에는 실패했지만 계속 절치부심하며 노력한 덕분에 동탁을 무찌르고 황제와 조정대신들을 구출하는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니 죄책감을 내려놔라. 그리고 떳떳하게 어깨를 펴라. 너는 지금의 나를 만든 사람이니까. 내가 보증하겠다.”

“…….”

그 말과 함께 이성휘는 군막을 나섰다.

“으으…! 으으으…!”

홀로 남겨진 순유는 봉선화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폭 가리면서 횡설수설하듯 앓는 소리를 냈다.

심장소리가 크게 울렸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맹렬했다.

허언으로 만들어진 사탕발림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낸 말이었음을 알기에 더욱 마음이 요동쳤다.

은연중에 마음을 보내던 사내로부터 진심어린 말을 들어버린 순유는 그대로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인조차도 단숨에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달콤한 감정이 속마음을 관통했다. 다시 한 번 이성휘에게 반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 이제부터는… 장난을 쉽게 못 칠 거 같아.’

장난으로 끝나지 않고,

정말 진심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기에.

달콤한 연심이 담긴 한숨을 푹 내쉰 순유는 가슴에 양손을 올리면서 쿵쾅쿵쾅 요동치는 심장소리를 느꼈다.

* * *

공방전의 승전으로 관중(關中)에 발을 들인 원소군이 일제히 남하를 시작했다.

거대한 물결이 움직였다.

철의 장벽이 형양(滎陽)으로 이어졌다.

전장에서 입은 막대한 손실을 어느 정도 회복한 원소군은 정복전쟁에 박차를 가했다. 총력을 모두 동원하여 형양을 점거한 뒤에 허도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고각을 높여라!”

“지금부터 형양으로 진군한다!”

하북사정주가 행군에 앞장섰다.

안량. 문추. 장합. 고람.

일군을 이끄는 대장들이 선봉을 이끌었다.

아직 몸이 성치 않았음에도 하북사정주는 원소군이 건재함을 보여주고자 갑주를 걸치고 병장기를 치켜들면서 늠름한 위용을 뽐냈다.

“주군!”

척후들을 지휘하던 맹대가 원소에게 달려왔다.

급보를 가져온 듯했다.

원소가 턱짓하자 맹대가 재차 입을 열었다.

“조조가 당도했습니다!”

“…드디어 왔군요.”

오랜 벗이,

평생의 숙적이 마침내 당도했다.

조조가 도래했다는 소식을 들은 원소는 옷매무새를 정돈하면서 흰 갈기를 가진 백마에 올랐다.

휘하 장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경직된 표정을 지으면서 기치를 들어올렸다.

천하의 향방을 결정지을 건곤일척의 승부가 마침내 도래하였음에 막중한 의무와 책임감을 느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쪽이 천하를 거머쥐게 될 것이기에.

“맹덕.”

이윽고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병단이 출현했다.

검은색 갑주를 걸친 보병부대,

날랜 장졸들로 편성된 조조의 근위병단이었다.

근위병단의 호위를 받으면서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칠흑처럼 어두운 흑마에 올라탄 여인은 허리에 보검을 찬 채 제장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주군께서 오셨다!”

“기수들은 군기를 번쩍 들어올려라!”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조조군이 병장기를 바닥에 내리찍으면서 거친 금속음을 냈다.

둥!! 둥!! 둥!! 두웅!!

그에 질세라,

원소군은 고각소리를 높이면서 조조군을 크게 위협했다.

드디어 양웅(兩雄)이 격돌했다.

허도의 반란을 진압한 조조와 공방전에서 승전보를 거둔 원소. 어지러운 난세를 평정한 여걸들이 마침내 맞부딪쳤다.

하북과 중원을 제패한 두 여장부들이 서로를 노려보면서 휘몰아치는 전운을 직감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