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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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汜水)를 두고 싸웠던 건곤일척의 승부는 조조군이 형양(滎陽)으로 철군함으로서 끝나게 되었다.
조조군이 패퇴했다.
많은 손실을 입고 물러난 것이다.
그를 두고 정로장군(征虜將軍) 국의와 여러 장수들은 백전불패를 신화를 쳐부쉈다며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였다.
아군을 대적하고자 북진했던 조조군이 다시 남쪽으로 물러났으니 승전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국의는 여세를 몰아 사예주를 점령할 것을 원소에게 진언했다.
“놈들이 형양으로 물러났으니 더 이상 아군을 가로막을 군세는 없습니다! 주군, 하명만 내려주신다면 홍농군(洪農郡)과 하동군(河東郡)을 점령하겠습니다!”
한껏 오만해진 목소리였다.
형양으로 퇴각하는 조조군의 모습에 자신감을 얻은 것이리라.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하내군에 이어 홍농군과 하동군마저 점령한다면 사실상 사예주의 패권을 거머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소. 지금은 전열을 가다듬으면서 후일을 준비함이 옳을 것이오.”
별가종사(別駕從使) 전풍이 그에 반대했다.
치열한 공방전으로 인해 아군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는가. 하북사정주도 천하제일검과의 일전에서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전풍의 설명에 납득했는지 장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찬동했다.
“으음…!”
“신중하여 나쁠 건 없지요.”
우여곡절 끝에 천하제일검을 상대로 승전을 거둬냈음에도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
공방전에서 너무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무거운 손실에 원소군 장수들은 은인자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천하제일검의 절대적인 무위를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놈을 오늘 죽였어야 했소…!”
국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말했다.
이성휘,
그 빌어먹을 놈을 놓치고 말았다.
하북사정주를 쓰러트린 뒤에 포위망을 강제로 뚫고 빠져나갔던 놈을 떠올리면서 이를 빠득 갈았다.
‘차라리 놈과 동귀어진을 했어야 했다! 같이 죽었다면 조조군을 완전히 끝장낼 수 있었을 터!’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때 놈을,
확실하게 끝장냈더라면….
우리들은 공방전에서 조조군을 궤멸시킨 뒤에 허도로 진격했을 테지. 국의는 한심하게 돌아온 하북사정주를 노려보면서 안타까움을 곱씹었다.
“주군, 척후들을 보내어 서량군의 전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심배가 진언했다.
그에 원소가 관자놀이를 짓누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서량 연합군이 제 역할을 해내야 할 텐데….”
장안성을 초토화시켰던 서량 연합군의 끔찍한 만행을 떠올린 원소는 비관적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비천한 마적떼들.
하는 행동이 황건적과 다를 바 없다.
만약 놈들이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했다면 결코 그들과 동맹하는 일은 없었겠지. 관중과 관서의 군벌들은 연합하면 강대한 전력을 발휘하기에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손을 잡은 것이었다.
“몸은 어떤가요?”
원소가 물었다.
붕대로 몸을 감싼 사내가 무거운 한숨을 푹 내쉬면서 착잡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송구할 따름입니다, 주군. 동귀어진의 각오로 이성휘와 끝장을 봤어야 하는 것인데… 이리 구차하게 살아남고 말았습니다.”
안량의 대답에 국의가 두 눈을 부릅뜨면서 이를 빠득 갈았다.
그 말대로다.
아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네놈과 장수들은 이성휘와 공멸했어야 했다.
한꺼번에 덤비고도 결국 패퇴하듯 쓰러졌으니 놈을 오히려 도와준 격이다. 분명 만천하에 사실이 알려진다면 아군의 명성은 밑바닥까지 떨어지게 되리라.
“우선 치료에 전념하세요. 이번 전쟁에서 승전하기 위해선 당신들의 힘이 절실히 필요할 테니까요.”
죄를 묻지 않겠다.
패전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겠다.
원소는 천하제일검에게 패전한 장수들에게 죄를 묻는 대신 기회를 베풀었다.
패전은 불가항력이었다.
상대는 무려 천하제일검이 아닌가.
산등성이에서 이성휘가 분투하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기에 원소는 하북사정주가 사력을 다해 싸웠음을 알고 있었다.
“기필코 다음에는…!”
“이성휘의 수급을 바치겠습니다!”
굴욕적인 패전을 당했던 하북사정주가 결연한 각오가 담긴 목소리로 다짐했다.
아름다운 주군이 베풀어준 황송스러운 은혜가 감격스러웠는지 어깨를 바들바들 떨면서 소리쳤다.
과연 하북 최강의 맹장다운 사나운 기개였다.
“…….”
기필코 목을 거두겠다.
맹장들의 호언장담에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근심에 빠져들었다.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을 느꼈다.
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는 마음을 끝내 억눌러두겠다고 다짐했음에도 얄궂은 감정은 끊임없이 범람하면서 이성을 괴롭혀댔다.
* * *
원소군과 공방전을 치렀던 조조군은 잠시 형양으로 퇴각하여 전열을 수습했다.
많은 손실을 입었다.
수많은 장졸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백전불패의 아성이 무너진 만승천자의 군세는 전우들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재정비에 집중했다.
“분명 원소군은 형양을 도모하려고 할 거예요.”
비서랑(秘書郞) 순유가 말했다.
그에 장료가 손을 들면서 물었다.
“형양 말입니까? 도호장군이 수비하는 동관을 공격하는 쪽이 훨씬 수월할 텐데요.”
공방전에서 승전한 원소군이 말머리를 돌려 사예주 공략에 나설 가능성이 있었다.
놈들은 하내군을 차지했다.
뒤이어 하동군과 홍농군까지 도모하려 들 터.
난공불락의 요새인 동관을 함락시키고서 서량 연합군과 합세하여 허도를 침략해온다면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었다.
“아뇨, 원소군은 형양으로 올 겁니다.”
장료의 물음에 순유가 단언하듯 말했다.
“동승의 반란이 실패했으니까요.”
패국조씨 가문의 통치를 뒤엎으려던 동승의 정변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주모자들이 처형되었으며,
또한 허도의 불순분자 세력까지 말소되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
원소군은 조조가 개입하여 전선이 확대되는 최악의 상황을 차단하고자 속전속결로 형양까지 뚫어내는 강행돌파를 시도하려 들 것이었다.
“사예주를 빼앗기더라도 연주와 예주를 철옹성처럼 지켜내면 원소군은 하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 계속 버텨내면 겨울이 오잖음.”
사마의는 원소군이 겨울을 넘기기 위한 월동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겨울이 도래하면 북쪽에서 잔혹한 동장군이 폭설을 몰고 올 터. 북방 출신이 대부분인 원소군이 그를 간파하지 못할 리 없었다.
“동승의 반란이 실패하면서 속전속결로 끝내겠다는 원소군의 전략에 구멍이 생겼다. 그 말인가?”
“맞음. 겨울이 다가오면 초원이 서릿발에 잠겨버릴 테니까 서량군도 결국 철군을 택할 거임.”
“흐음.”
사마의의 말에 이성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
원소군의 가장 큰 적은 한파와 냉기였다.
그런데 어째서 원소군은 초가을에 군세를 일으키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전쟁을 감행했을까.
‘장막의 고육지책과 동승의 머저리 같은 실패. 연쇄적인 실패가 원소군의 숨통을 조르기 시작했다. 설마 두 책략들이 모두 실패할 줄은 몰랐겠지.’
순유와 사마의의 의견에 찬동한 이성휘는 형양에서 적들을 맞이하기 위한 방비에 돌입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책략을 성공시켰던 두 군사들께서 하신 말씀이 아닌가. 적극 따르기로 했다.
“적의 공세에 대비하라!”
“무관들은 휘하 병력을 모두 집결시켜라! 지금부터 보루를 세울 것이다!”
형양에 주둔하던 병력이 움직였다.
머지않아 놈들이 올 터.
조조군은 반격의 봉화를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전우들을 땅에 묻어둔 채 떠나야 했던 조조군은 크게 분기탱천하며 복수를 계획했다. 기필코 재전에서는 몇 배로 갚아주겠노라며 칼을 갈았다.
* * *
허도의 혼란을 수습한 조조가 출진을 명령했다.
상서령(尙書令) 순욱에게 재차 전권을 위임한 조조는 수많은 제장들을 거느린 채 군세를 일으켰다.
연주를 탈환했다.
허도의 반란 또한 진압했다.
배후의 위협들을 연이어 진압하는 성과를 거둬냈던 조조는 만악의 근원을 일소하고자 결심했다.
“주, 주군!”
사예주 전선으로 파견되었던 사환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조조의 발치에 도달했다.
한쪽 무릎을 꿇은 뒤 소식을 알렸다.
“표기장군이 패전했습니다!”
“뭐…?”
흑발의 여인이 두 눈을 부릅뜨면서 되물었다.
믿을 수 없다.
성휘가 전투에서 패전하다니.
백전불패의 신화가 사예주에서 무너졌음에 다른 장수들도 경악하는 반응을 보였다. 담대한 위용과 뛰어난 군략을 겸비한 표기장군 이성휘의 패전은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표기장군은! 표기장군은 어떻게 됐는데!”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후돈은 부디 이성휘가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사환의 대답을 기다렸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패국의 여걸답지 않은 겁에 질린 반응이었다.
“형양으로 패주하여 군세를 수습하고 있습니다. 아마 원소군과 재차 일전을 치를 요량인 듯합니다.”
이성휘는 무사하다.
뒤로 물러나 군세를 정비하고 있다.
멀쩡하다는 소식에 하후돈이 간담을 푹 쓸어내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심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지 눈가가 글썽글썽했다.
“속도를 높여라. 곧바로 성휘와 합류하겠다.”
“예!”
조조의 명령에 하후연이 무관들을 이끌었다.
‘본초, 마음을 독하게 먹은 모양이군.’
사내를 연모하는 마음도 천하통일을 향한 열망에는 미치지 못한 것일까.
원소가 이성휘를 패주시켰다는 소식에 조조는 쓴웃음을 흘리면서 주먹을 거머쥐었다.
‘전쟁에서 승전하여 성휘를 빼앗으려는 모양이다만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내가 어떻게든 네년의 못된 손버릇을 응징할 테니.’
설마 유부남이 취향인가.
더욱 노골적으로 남편을 강탈하려는 원소의 행동에 조조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