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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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죄인들을 심문하던 국문장은 군부로 장소를 옮긴 뒤에 재개되었다.
황제와 조정대신들을 내보낸 뒤,
입이 무거운 금군으로 하여금 대역죄인들을 고문했다.
반역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이실직고해라.
고통과 인내심을 기울여 대역죄인들에게 계속 고통을 가했다. 살이 찢어지고 타들어가는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던 죄인들은 비명소리를 내지르던 입으로 사실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그, 그만…!”
“말하겠소! 모두 말하겠소!!”
날카로운 파편들이 흩뿌려진 돌바닥 위에서 압슬형(壓膝刑)을 당하던 위황과 김의가 소리쳤다.
두 다리가 모두 으스러졌다.
무릎 관절과 다리뼈가 완전히 박살났다.
연속된 형벌에도 신념을 관철하던 위황과 김의조차도 압슬형만큼은 이길 수 없었는지 결국 고통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으아아! 으으, 으아아악!!”
대역죄인들이 고변을 약속하면 형벌 집행을 멈춰주었다.
그러나,
한 죄인만큼은 예외였다.
화음후(華陰侯) 동승.
반역을 주도했던 동승은 등가죽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채찍을 맞아야 했다. 다른 대역죄인들처럼 고변을 약속했음에도 채찍은 계속 이어졌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고통에 시달려야 할 터였다.
“어째서 반란에 가담했지? 네년은 가렴주구를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천박한 년이었을 텐데.”
흑발의 여인이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집게로 두 눈이 뽑히는 형벌을 당한 여인은 흙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소리를 토해낼 뿐이었다.
“대답해라.”
“으으, 아아아악!!”
냉혹한 표정을 지은 흑발의 여인이 등채로 두 눈을 짓눌렀다.
그러자 주검처럼 축 늘어졌던 대역죄인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면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네, 네년이 미웠으니까…!”
“내가?”
“환관의 손녀 주제에 나보다 아름다웠잖아! 네까짓 년이 뭔데 나보다 아름다운데! 어째서 황량한 전쟁터를 누볐던 네년이 나보다 예쁜 거냐고!”
두 눈이 뽑혔음에도 독기는 여전했다.
질투에서 발현된 극독이다.
귀비 동씨는 한참 전부터 극독에 중독된 상태였다.
그 모습이 실로 추악했다.
눈가에서 주륵주륵 흘러내린 핏물에 온통 피범벅이 되었음에도 모멸과 저주를 쏟아냈다.
“…미쳤군.”
귀비 동씨,
아버지 동승의 천거로 황제의 후궁이 된 그녀는 그저 질투에 휩쓸린 것에 불과했다.
신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의명분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자신보다 아름답고 뛰어난 조조를 질투하여 아버지를 도와 반역을 획책했을 뿐인 독부일 뿐이었다.
“네년을 철석처럼 믿었던 네 아비에게 잠시 연민을 느꼈을 정도다. 네년은 그저… 욕망에만 충실했던 계집이었군.”
아니,
이 골빈 년에게는 ‘욕망’이란 말도 아깝다.
그저 억지였을 뿐이다.
자신보다 아름답고 뛰어난 여성이 절대로 존재해선 안 된다며 억지를 부린 것에 불과했다.
부친의 도움으로 귀비에 책봉되는 광영스러운 영예를 누리게 되었음에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탐욕과 질투를 일삼은 끝에 파멸의 구렁텅이를 앞두게 되었다.
“분명 네년은 천하의 흐름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맹신했겠지. 본인이 허영과 망집에 물든 잡년에 불과하다는 것도 모르고.”
역겨운 년. 면전에 침을 뱉고 싶을 정도였다.
사람이 이토록 멍청할 수 있는가?
그렇기에 분수를 넘어선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음에도 최악의 판단을 내렸겠지.
“나, 나는…! 황상의 아이를 회임했다! 뱃속에… 폐하의 아이를 가졌단 말이다!”
귀비 동씨의 외침에 조조가 실소를 흘렸다.
그 멍청한 머리로 겨우 생각해낸 게 그따위의 변명이란 말인가.
회임?
그게 어쨌다고.
설령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아량을 베풀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째서 내가 내 자식들을 죽이려고 모의했던 년에게 아량을 베풀어줘야 한단 말인가.
“패국조씨 가문을 대표하여 네년에게 판결하겠다.”
벌레처럼 양손으로 바닥을 더듬어대던 귀비 동씨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죽이진 않겠다.”
선처를 베풀듯이 호언했다.
그러나,
결코 호의에서 비롯된 결정이 아니었다.
영원히 고통의 굴레에서 허덕이게끔 만들려는 것이었다. 평생 후회와 번민을 곱씹으면서 살아가도록.
“척박한 변방에서 유배를 보내게 될 게다.”
“유배…?”
당장이라도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것처럼 살의를 토해내던 조조가 유배를 거론하자 귀비 동씨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네년을 그 누구보다 증오하고 있을 옥당전의 궁녀들과 말이다. 후안무치한 네년 때문에 황량한 변방으로 쫓겨나게 되었으니 원망이 어마어마할 테지.”
그 말은 곧,
노복처럼 부리던 궁녀들에게 학대받는 가축이 되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평생 고통과 멸시 속에서 살아가라.
그것이 바로 불구대천의 원수에게 내리는 형벌이었다.
“중강.”
“예, 주군.”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치미는군. 얼굴을 횃불로 태워버려라.”
허저에게 명령을 내린 조조는 곧바로 등을 돌렸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 년이다.
지금까지 썼던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목숨을 위협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겠지.
철저히 인과응보인 셈이었다.
“아악! 아아아, 아아아아악!!”
지글지글.
매캐한 냄새와 함께 살갗이 타는 소리가 났다.
뒤이어 여인의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그러나 조조의 발걸음이 멈추는 일는 없었다.
* * *
당대 최강의 맹장들이 돌격을 감행했다.
진형의 허점을 노린 일점돌파.
마름모 형태의 전열이 크게 흔들렸다.
백마장군 공손찬을 물리쳤던 필승의 전략이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다. 당장이라도 전열이 무너질 것처럼 혼란과 동요를 거듭했다.
“마, 막아라!”
“절대로 뚫려선 안 된다!”
원소군 무관들이 소리쳤다.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비면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수습이 불가능했다.
급습해온 적장이 여포와 장료였기 때문이다.
벌떼처럼 달려드는 맹공에 원소군 장졸들은 사력을 다해 응수했다. 두터운 방패를 치켜들면서 진형의 붕괴를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밀어내라! 밀어내라!!”
“우리들이 무너지면 모두 끝장이다!”
직선 형태였던 전열이 곡선으로 일그러졌을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나 하북을 제패한 용장들이 사력을 다한 덕분에 붕괴만큼은 저지할 수 있었다.
“이것들, 뭐가 이렇게 단단해?”
방천화극을 휘두르면서 견고한 방패를 두들기던 여포가 침음을 흘리면서 소리쳤다.
견고하다.
마치 거북의 등껍질 같았다.
촘촘하게 늘어선 방패들은 마치 철옹성의 성벽처럼 여포를 계속 가로막았다. 맹공을 쉬지 않고 퍼부었음에도 원소군 병력들이 연이어 충원되었다.
“전선을 유지하라! 전열을 수습하고서 곧바로 공격한다!”
장료 또한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세에 실패하고 말았다.
방어선을 일시적으로 무너트렸던 것이 전부였다.
빠른 속도로 일사불란하게 전열을 수습하는 원소군의 모습에 경악을 내비쳤다. 하북을 제패했던 용장들답게 혼란 속에서도 기지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성휘가 온다!”
“우리는 하북의 용사들이다! 두려워 말라!!”
검을 치켜든 괴물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방패들로 만들어진 성벽이 무너졌다.
쩌적쩌적 갈라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전열을 형성하던 원소군 병사들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이제야 중달의 작전을 알겠군. 이 똑똑한 꾀주머니 같으니.’
상단부 역할을 하고 있는 마름모의 두 면들이 여포와 장료의 맹공을 받고 있다.
다시 말해,
방어진형의 힘이 상단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사마의는 이성휘에게 하단부의 끝을 형성하고 있는 모서리를 공략할 것을 주문했다. 맹공으로 생긴 허점이 바로 하단부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만약 모서리가 아니라 면을 공격했다면 봉선과 문원처럼 돌파에 실패했겠지. 그러나 내가 공격한 쪽은 면이 아니라 모서리다. 힘의 가세가 현저하게 무뎌질 수밖에 없을 터.’
북방의 귀신을 물리쳤던 완전무결의 방어전술에 드러난 유일한 허점. 사마의는 그것을 단번에 간파했다.
과연 제갈량의 호적수.
훗날 천군만마를 호령할 대도독다웠다.
원소군의 전열을 속전속결로 붕괴시킨 이성휘는 여세를 몰아 본진을 압박했다.
마름모 형태의 보병진형이 찢겨나가면서 다른 곳에서도 여파가 전해졌다. 여포와 장료의 맹공조차 막아내던 완전무결의 전술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성휘!”
“우리들이 대적해주마!”
원소군이 두 맹장들이 투입했다.
담대한 용력을 자랑하는 원소군의 맹장들은 창검을 휘두르면서 이성휘에게 달려들었다.
상당한 실력의 맹장들이다.
이성휘는 그들이 안량과 문추임을 확신했다.
진형이 붕괴되자마자 다급하게 달려온 장합과 고람도 가세하려는 듯 병장기를 치켜들었다. 한꺼번에 천하제일검을 대적하려는 것 같았다.
“큽!”
“흐아압-!!”
안량과 문추가 동시에 창을 내질렀다.
상대는 천하제일검.
일전에 결코 비겁을 따질 때가 아니다.
그것을 증명하듯 이성휘는 안량과 문추의 연쇄적인 협공을 쳐내기 시작했다. 마치 질풍처럼 날카로운 검격에 안량과 문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