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433화 (433/616)

<433화>

============================

허도 전역에서 크고 작은 교전이 수차례 벌어졌다.

시가지가 불길에 휩싸였다.

살의에 물든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탐욕과 증오에서 시작된 내란은 허도를 불구덩이로 몰아넣고 있었다.

“황실과 조정을 위해!”

“패국조씨 가문의 졸개들을 죽여라!”

어깨에 붉은 띠를 두른 무장 병력이 쏟아졌다.

그들은 유생(儒生)이었다.

공융이 주장했던 대의명분을 받들어 거병에 가담한 유생들이 검을 치켜들었다.

“역적 조조를 주살하라!”

“유자들이여, 나라를 위해 싸우라!”

동승의 심복들은 분기탱천한 유생들을 계속해서 싸움터로 내몰았다.

보이는가.

유생들이 피를 흘리면서 싸우고 있다.

중무장한 조조군을 향해 초개처럼 목숨을 내던지는 유생들의 모습은 실로 장렬했다. 승산이 없음을 알면서도 공융에게 세뇌당한 유생들은 돌격을 감행했다.

“형님, 조조군 놈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밀어붙여라! 머지않아 궁궐에서 낭보가 도착할 게다!”

시가전을 지휘하면서 유생들을 연이어 충동하던 무관들은 태의령(太醫令) 길본의 아들인 길막과 길목이었다.

지금쯤이면 옥당전(玉堂殿)으로 잠입했던 자객들이 패국조씨 가문을 도륙내고 있을 터.

궁궐이 온통 피바다일 것이다.

패국조씨 가문의 핏물로 시산혈해를 이루고 있으리라.

참변이 벌어졌으리라 상상한 길막과 길목은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거병에 성공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역적을 쳐라!”

“궁궐은 저쪽이다!”

한 무리의 병력들이 시가지를 가로지르면서 달려왔다.

거병에 가담한 사대부와 호족들이었다.

뒤이어 수많은 사병집단이 가세했다.

시가전을 치르던 반란군의 기세가 더욱 치솟았다.

“황실과 조정을 기만한 역적을 척살하여 사직을 바로세울 것이다! 의병들이여, 역적의 졸개들을 모두 죽여라!”

오자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군부의 휘하 병력을 이끌고 합류했다.

병장기와 갑주로 무장한 정규군까지 반란군에 합류하면서 격전이 심화되었다.

조조군은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반란의 규모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쥐새끼 같은 놈들!”

“계속해서 역도들이 나오는구려!”

시가지에서 반란을 진압하던 조조군 무관들은 빠르게 불어나는 역도들을 바라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패국조씨 가문이 장악했던 무소불위의 권력에 반감을 품은 세력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까지 공포정치로 억눌러온 반감들이 일거에 촉발하면서 거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활을 쏴라!”

“궁궐을 침범하게 둬선 안 된다!”

궁궐로 이어지는 대로(大路)를 수비하던 노초와 풍해가 반란군과 교전을 벌였다.

연이어 화살세례를 가했다.

장대비처럼 가해진 화살세례에 반란군이 피를 쏟으면서 나가떨어졌다.

찢겨나간 시체들이 산을 이루듯이 쌓였다. 모두 반란군의 시체였다.

“방패를 들어라!”

“놈들은 오합지졸이다! 두려워말라!”

진입을 방해하던 목책을 뛰어넘은 반란군은 곧이어 방패를 든 조조군 병사들을 마주했다.

콰앙-!

반란군이 뛰어들었다.

그러나 견고한 방패는 육탄공세를 완강하게 버텨냈다.

“커헉!”

“크흡-! 카하악!”

뒤에서 엄호하던 보병들이 장창을 내지르면서 육탄공세를 감행한 반란군을 도륙했다. 날선 창끝들이 온몸을 찢어발겼다.

배를 찔린 유생이 내장을 쏟아냈다.

눈 먼 화살에 맞은 호족이 말에서 떨어졌다.

참혹한 살육이 허도를 가득 뒤덮었다.

“어서 궐문을 돌파하라!”

화음후(華陰侯) 동승이 소리쳤다.

조조군을 적대하는 수많은 집단들을 거느린 동승은 곧장 궐문을 공격했다.

궐문만 돌파하면 된다.

속전속결로 거병을 성공시킬 수 있다.

거병의 대의명분은 역적을 몰아내고 황실과 조정을 수복하는 것이었기에 어떻게든 궁궐을 점령할 필요가 있었다.

“어찌하여 폐하에게선 답변이 없단 말인가! 어찌하여 조정대신들은 움직이지 않는단 말인가!”

거병을 일으킴과 동시에 동승은 황제와 조정대신들에게 대의명분을 전했다.

황제에게는 조조의 주살령을,

조정대신들에게는 거병에 가세할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간절한 호소에도 황제와 조정대신들은 동승을 철저히 외면했다. 조조의 폭정에 시달려온 황실과 조정이 거병에 가담해주리라고 안일하게 판단했던 동승은 냉혹한 현실에 부딪쳐야 했다.

“화음후 어르신!”

오자란이 급히 달려왔다.

그에 동승이 오자란에게 고개를 돌렸다.

“조정대신들이 움직였습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계속 묵묵부답이던 조정대신들이 드디어 움직였다.

거병에 합류하기로 한 것이리라.

수많은 사병들을 대동한 채 오고 있다고 한다.

오자란의 보고에 동승은 강한 희열에 휩싸였다.

거만하던 조정대신들이 결국 자신의 대의명분에 찬동하였음에 감격이 밀려왔다.

수많은 사병집단을 대동한 조정대신들이 모두 합심하여 가세한다면 지지부진한 전황을 단번에 뒤엎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크흠!”

백발을 늘어뜨린 노장이 도착했다.

사도(司徒) 왕윤이었다.

무거운 갑주를 걸치고서 보검을 차고 있었다.

소싯적에 충용무쌍한 맹장으로 명성을 떨쳤던 왕윤은 세월의 풍파를 맞았음에도 기골이 장대했다. 당장 현역으로 복귀해도 될 것처럼 위엄이 넘쳤다.

“환난이 극심하구려…!”

“더 늦었으면 낭패를 볼 뻔 했습니다!”

사손서와 양표를 비롯한 조정대신들도 무거운 갑주를 걸치고 있었다.

확고한 결심을 내렸는지,

가문의 사병들을 이끌고서 내전에 참전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조정대신들 늠름한 모습에 동승은 쾌재를 불렀다.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전황을 단번에 뒤엎을 기회였기에 조정대신들의 참전을 격하게 반겼다.

“대한(大漢)의 병사들이여! 허도를 침범한 역적들을 격멸하라!”

기골이 장대한 노장이 소리쳤다.

조정대신의 날카로운 칼끝은 동승의 무리들을 향하고 있었다.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었다.

동승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후방에서 출현한 조정대신들의 군세가 궐문을 공격하던 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동승과의 악연을 끊어낼 기회예요!”

관복 차림으로 말을 타고 있던 금발의 처녀가 고개를 돌리면서 부친에게 말했다.

그에 부친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우리 홍농양씨 가문을 방패막이로 쓰려고 했던 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양표가 크게 노여워하며 동승의 무리들을 노려보았다.

놈들의 간악스러운 흉계에 홍농양씨 가문이 멸문지화를 겪을 뻔하지 않았던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이번 기회에 그 원한을 갚겠다.

주부(主簿) 양수의 설득으로 전장에 집결한 조정대신들은 조조군에 가세하여 역도를 몰아내고자 결단의 칼자루를 뽑아들었다.

* * *

귀비 동씨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분명 성공했겠지.

패국조씨 연놈들을 도륙했을 게 틀림없었다.

숙련된 자객들로 구성하여 거사를 계획하지 않았던가. 지금쯤 조조의 애새끼들은 물론, 일가친척까지 모조리 도살했으리라.

‘건방진 년, 피눈물을 쏟게 해주겠어…!’

까득. 까득.

손톱을 계속 깨물었다.

불안감 때문일까.

아니면 조조를 향한 증오와 질투 때문일까.

피가 뚝뚝 흘러내릴 정도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제까짓 게 뭐가 잘났다고 나를 깔보냐고! 고작해야 환관 집안의 손녀 주제에! 빌어먹을 갈보 년!’

천부적인 재능과 아름다운 용모까지 겸비한 조조의 존재는 멸시와 열등감을 불러일으켰다.

환관 집안의 손녀 따위가,

한나라의 귀비인 나보다 훨씬 예쁜 건데?

자신보다 아름답다는 이유로 수많은 궁녀들을 매질하고 학대했던 요부의 잔인무도한 열등감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거머쥔 조조를 향했다.

권력의 정점에 등극한 아름다운 미녀.

죽어 마땅하다.

일가친척까지 모두 죽어 마땅했다.

한나라의 귀비인 나보다 아름답고 뛰어나다는 것은 죽어 마땅한 대역죄일 테니까.

거머쥔 부귀영화를 지키고자 부친에게 가담했던 동귀비의 목적은 언제부터인가 열등감의 대상을 주살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건데! 빌어먹을 연놈들을 다 죽였다는 소식이 지금쯤 왔어야지!”

조바심에 안절부절못하던 동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소리쳤다.

너무 조용하지 않은가.

지금쯤이면 패국조씨 가문의 연놈들을 모두 추살했다는 보고가 왔어야 하는 건데.

침묵이 부여한 불안감을 이길 수 없었던 동씨는 서궁으로 궁녀들을 보내어 소식을 알아보려 했다.

“하, 하지만 바깥은 전쟁통이옵니다!”

“나서자마자 소녀들은 죽은 목숨일 것이옵니다…!”

살육과 칼부림이 반복되고 있는 바깥으로 내보내려는 귀비의 포악함에 궁녀들이 읍소하면서 말했다.

무자비한 혈전이 벌어지고 있다.

몇 발자국을 나서기도 전에 장졸들에게 살해당하겠지.

어쩌면 몹쓸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

죽음이 두려웠던 궁녀들은 제발 재고해달라며 동씨에게 간원했다. 그러나 잔인무도한 귀비는 간절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궁녀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명을 이행하겠느냐! 아니면 여기서 죽겠느냐!”

동씨가 표독스러운 목소리로 위협했다.

매질을 가해 죽이겠다.

귀비의 엄포에 궁녀들은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궁녀들이 무자비한 매질에 죽어나가지 않았던가. 거적에 덮인 궁녀들의 시체가 수레에 실려나간 것을 보았기에 결코 허언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옥당전을 포위하라!”

의심암귀에 휩싸인 동씨가 궁녀들에게 애꿎은 화풀이를 하고 있었을 때,

금군 병력이 옥당전을 포위했다.

수천 명의 병력이 동원되어 귀비 동씨의 헛된 허영심처럼 광활한 규모를 자랑하던 옥당전을 둘러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