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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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사 장막이 전사했다는 비보를 접한 동평국의 호족들은 분개를 금치 못했다.
들불이 순식간에 퍼져나가듯,
동평국 7현의 호족들이 일거에 거병했다.
더 이상 연주에 원소군이 머물 거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장막이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했다는 비보가 알려지자 연주의 사대부와 호족들이 비분강개하여 조조군으로 완전히 돌아서버렸기 때문이다.
“원소군을 몰아내자!”
“저기 놈들의 병참이 있다! 공격하라!”
연주에서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중립을 표명하던 호족은 물론,
조조군의 통치에 계속 반대하던 호족들조차 격분하여 원소군을 공격했다.
두터운 인망과 명성으로 많은 명사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대장부가 죽었다. 장막을 흠모하고 존경해온 호족들은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들고 일어섰다.
“장막 어르신을 위하여!”
“게 섯거라! 어르신의 원수를 갚겠다!”
예주 출신이었던 조조를 불신하면서 충성하기를 꺼려했던 사대부와 호족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장막의 죽음을 계기로 불신의 허울이 무너졌다.
조조군을 따르라.
장막 어르신이 목숨을 희생하면서 충성했던 조조군을 따르도록 하자.
의지하던 버팀목을 잃어버린 사대부와 호족들은 원소군을 적대하고 조조군에 복종했다. 수년 동안 요지부동이었던 연주가 드디어 완전하게 조조에게 전향한 것이다.
“도독!”
“나룻배를 마련하겠습니다!”
불과 수십 명에 불과한 부하들과 함께 도망치던 저수는 자괴감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위풍당당한 군세가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3만의 군세가 모두 사라지고,
수십 명도 안 되는 장졸들만이 잔존할 뿐이었다.
철저히 계략과 속임수에 말려든 채 패배했다.
하북 제패의 일등공신이었던 저수는 생전 처음으로 완패를 겪었다. 반격을 시도할 여력조차 없이 끝나버린 압도적인 패배였다.
‘제 죽음으로 전술을 완성시키다니…. 장막, 참으로 무서운 사내다! 이로써 연주는 온전하게 조조의 것이 되었다!’
스스로를 희생하여 전술을 완성시킨 장막의 절개를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육지책에 말려들어 완패를 당한 저수는 부하들과 함께 나룻배로 도주치는 패장이 되고 말았다.
“도독, 어서 나룻배에 오르십시오!”
창검을 든 무관들이 소리쳤다.
조조군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게다가 연주의 사대부와 호족들이 적으로 돌아서지 않았는가.
사면초가에 직면한 원소군은 시골의 어부들이나 쓸 법한 나룻배에 의지하고서 황하를 건너야만 했다. 위풍당당하게 연주 전선을 돌파했던 모습과 비교한다면 실로 처참했다.
“놈들이 도망친다!”
“쫓아라! 적장 저수가 저기 있다!”
저수를 태운 나룻배가 떠나자마자 조조군이 노도처럼 밀려들었다.
다른 나룻배를 타려던 원소군의 잔병들은 어금니를 빠득 깨물면서 조조군을 대적했다.
이미 우리들은 틀렸다.
조조군을 물리치고 나룻배를 띄우기만 불가능했다.
창검을 휘두르면서 달려드는 조조군의 모습에 원소군 무관들은 각오에 찬 표정을 지었다.
“나룻배를 부숴라!”
“도독만큼은…! 도독만큼은 구해야 한다!”
콰직-!
콰악-!
뒤이어 나룻배의 밑창에 구멍을 냈다.
설령 우리들이 죽더라도,
도독을 주군의 곁으로 보내야만 했기에.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조차 원소군 무관들은 책무를 이행했다. 유일한 도주수단이었던 나룻배를 부숨으로서 영예로운 주군에게 마지막 충성을 바쳤다.
* * *
연주 정벌을 감행했던 원소군은 시산혈해만을 남긴 채 패주해야 했다.
동군(東郡)과 동평국(東平國) 인근의 들판에는 원소군의 시체들로 가득했다. 검붉은 핏물이 마치 시냇물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원소군의 3만 병력이 전멸했다.
또한,
전쟁에 참전했던 장수들이 대부분 처형되었다.
막역지우의 원수들에게 아량을 베풀어줄 생각이 결코 없었던 조조가 처형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사공 어르신…!”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연주자사 장막의 유인책에 현혹되어 복양현에서 붙잡혔던 사대부와 호족들은 모두 극형에 처해졌다.
함께 복양현에서 생포되었던 그들의 식솔들도 극형을 맞이했다. 부귀영화를 위해 원소군과 내통했던 변절자들의 주검은 더러운 흙탕물에 버려졌다.
변절자들에게 어울리는 비참한 말로였다.
“주군, 연주의 사대부와 호족들이 진상한 연판장입니다.”
“…….”
변양과 무리들이 원소군에 호응하여 거병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 연주의 사대부와 호족들은 숙청에 휘말릴까봐 두려웠는지 충성을 맹세한다는 연판장을 보내왔다.
연주자사 장막의 전사.
변절을 계획하던 불순분자들의 말소.
최대의 수혜자는 당연히 조조였다.
거병한 이후부터 계속해서 잡음들이 이어졌던 연주를 완전히 복속시켰다.
변양과 무리들의 처참한 말로를 지켜보았던 사대부와 호족들은 결코 딴마음을 품지 못할 것이었다.
“…모두 맹탁이 사항계(詐降計)로 일발역전의 발판을 마련해준 덕분이다.”
곽가에게서 연판장을 받은 조조가 쓴웃음을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슬픔의 응어리를 곱씹었다.
숙연함에 젖은 죄책감을 쓰다듬었다.
그러나 슬픔에 빠질 수만은 없었다.
막역지우의 희생을 무용지물로 흘려보낼 순 없었기에 조조는 애써 슬픔을 억누르면서 몸을 일으켰다.
“군사에게 연통을 보냈나.”
“예, 지금쯤 도착했을 겁니다.”
허도에서 출진하기 직전에 조조는 진궁에게 별도의 명령을 하달했다.
급히 내린 명령이었으나,
진궁이라면 기민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조조군의 참모장인 진궁은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들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군재와 전술에 통달한 그녀라면 능히 해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과감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모두 연주자사의 안배 덕분입니다.”
곽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에 조조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것만은 아닐 거다.”
장막은 사항계로 적을 끌어들임으로서 자신과의 절개를 지켰고, 전투에서 제 목숨을 희생함으로서 원소와의 우정을 지켰다.
패권을 차지하고자 난립하는 두 막역지우들을 결코 배신할 수 없었던 장막은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절개와 우정을 모두 완수한 채 생을 마감했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조조는 애처롭게 두 눈을 바들바들 떨면서 슬픔을 토해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맹탁, 네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이다. 부디 이해해주길 바란다.”
슬픔에 주저할 순 없다.
계속 앞으로 발걸음을 움직여야 했기에.
분명 떠나간 벗도 그것을 바라고 있을 터.
숙적을 멸망시키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임종 당시에 친우가 남겼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라도.
* * *
기주(冀州)에서 대군이 움직였다.
안량. 문추. 장합. 고람.
삼군을 통솔하는 두 도독들을 포함한 하북의 맹장들이 모두 투입되었다.
하북사정주(河北四庭柱).
수많은 전투들을 승리로 이끌었던 역전의 용사들이 모두 참전했다. 업성에 집결했던 대군을 이끌고서 전선에 모습을 드러냈다.
“병주자사는 관도를 공격해주시오!”
“예!”
장합의 지시에 병주자사 고간이 병주군을 이끌고서 관도(官渡)로 향했다. 관도를 수비하는 조인이 전선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봉쇄하려는 의도였다.
별동대로 관도를 포위한 뒤,
원소군은 곧장 사예주 전선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지금부터 낙양으로 간다!”
“선두의 기수들은 군기를 더욱 높여라!”
안량과 문추가 병장기를 치켜들면서 쩌렁쩌렁한 고함소리를 내질렀다.
하북사정주가 참전했다.
백마장군을 멸망시켰던 역전의 맹장들이 왔다.
강행군을 이어나가던 원소군 장졸들은 경직된 표정을 지으면서 더욱 박차를 가했다. 하북사정주의 참전으로 분기탱천한 원소군은 노도처럼 밀려들었다.
“우리들은 하내군을 공격한다!”
하북사정주와 함께 참전했던 순우경이 휘하 군세를 이끌고 하내군으로 향했다.
전면전임을 주장하듯,
원소군은 출격하자마자 파상공세를 펼쳤다.
관도와 하내군을 동시에 공격하는 과감한 전면전을 결정한 원소군은 당장이라도 낙양으로 진격할 것처럼 강대한 맹위를 휘둘렀다.
“북을 쳐라! 함성을 높여라!”
“하북의 용장들이여, 성과 요새들을 공격하라!”
안량과 문추를 기장으로 내세운 군단들이 사예주의 성과 요새를 공격했다.
속전속결을 방침으로 삼은 원소군은 하내군을 포함하여 10여 개의 성들을 함락시켰다. 조조군의 시선이 연주에 집중된 틈을 노린 성동격서의 급습이었다.
“과연 쉽지 않군. 어서 낙양을 넘어야 할 터인데.”
조조군이 물자를 총동원하여 쌓아올린 사예주의 거점들은 하나같이 험준하고 견고했다.
만약 원소군이 하북사정주를 모두 동원하는 초강수를 두지 않았다면 결코 성문은 열리지 않았으리라.
“군사 어르신!”
사예주 전선을 강습했던 원소군이 파상공세를 이어나간 끝에 함락시킨 하내군에 입성했을 때,
드디어 호적수가 개입했다.
만인지적의 괴물이,
한나라 최강의 무장이 드디어 움직였다.
“표기장군 이성휘가 형양에 당도했습니다!”
하북 최강의 맹장들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경직된 표정을 지으면서,
곧 시작될 괴물사냥에 각오를 다졌다.
괴물을 어렵사리 끌어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사냥에 성공할 가능성은 미지수였다. 그렇기에 전선에 참전한 하북사정주는 무조건 전력을 발휘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