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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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族弟) 하후렴으로부터 진상을 듣게 된 조조는 곧장 대군을 동원하여 동평국에 당도했다.
모두 고육지책이었다.
연주자사 장막은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연주의 정적들과 어울렸던 것은 원소군을 연주성으로 끌어들여 격멸하기 위한 작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절대로 맹탁을 죽게 둬선 안 된다…! 제장들은 당장 연주자사를 찾으라!”
대장기를 휘날리면서 전장에 당도한 조조는 떨리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제 목숨을 책략에 사용한 고육지책.
분명 장막은 원소군과 함께 공멸하려는 것이다.
오랜 막역지우가 동귀어진을 각오했을 정도로 급박한 위기에 내몰렸음에도 알아채지 못했다. 아니, 알아차리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의심하고 경계했다.
의심암귀에 물들었던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깊은 멸시를 느꼈다. 입술을 깨물면서 분기를 내뱉었다.
“동평국을 점거한 잔적들을 격멸한다! 장졸들은 나를 따르라! 놈들을 쳐라!!”
스스로를 희생하여 고육지책을 성공시킨 장막의 충심에 감복한 것일까.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걸이 사납게 소리치면서 총공세를 부르짖었다.
말에 박차를 가했다.
전장을 가로지르면서 원소군에게 일격을 날렸다.
“하, 하후돈이다!”
“허도에서 대군이 당도했다!”
철갑을 두른 허도의 군단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원소군을 단숨에 쓸어버렸다. 거친 황소가 맹렬히 질주하듯 일말의 망설임 없이 짓밟았다.
쿠구구구-!
쿠구구구구구궁-!!
병장기를 치켜들고서 반격하려던 적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혼비백산하여 필사적으로 도주하던 적들도 금세 조조군의 기병부대에 따라잡혀 격멸되었다.
어린아이를 상대하듯,
총공세가 펼쳐지자마자 유린이 시작되었다.
승산을 결코 양보하지 않는 철저한 살육.
오랜 강행군에 체력을 모두 소진했던 오합지졸들이 허도의 주력군단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원소군은 완파된 채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이 계집년아! 내가 대적해주겠다!”
부장 왕마가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에,
하후돈은 월도를 두 손으로 휘둘렀다.
분기탱천한 상태였던 패국의 여걸은 적장을 무자비하게 일도양단해버렸다.
쩌어어어엉──!!!
초인의 괴력을 담아낸 일격이 왕마를 찢어발겼다.
두터운 갑주에 검흔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뜨거운 핏물이 솟구쳤다.
두 눈을 부릅뜨고서 달려들었던 왕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목숨을 잃었다.
“적장을 물리쳤다!”
하후돈이 포효하듯 고함을 내질렀다.
무거운 월도를 치켜들며,
왕마의 죽음을 원소군에 통보했다.
응전을 가하려던 왕마가 일격에 죽었다.
하후돈의 맹공으로 원소군은 마지막 저항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뿔뿔이 와해되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왕마 장군이 죽었다!”
“퇴각하라! 어서 도독을 뫼셔라!”
동평국에 주둔하던 5천의 병력이 즉시 반격에 투입되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전열을 상실했다.
승산마저 적들에게 모두 빼앗겼다.
선봉장 하후돈이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목격한 저수는 결국 퇴각을 명령했다. 어떻게든 무사히 탈출하라는 말을 덧붙였을 정도로 전황이 심각했다.
“네 이년, 거기까지다!”
부장 하무가 검을 휘두르면서 달려들었다.
도독 저수를 엄호하기 위함인 듯,
휘하 무관들과 함께 역주행하여 반격을 벌였다.
어떻게든 도독이 전선을 탈출하도록 시간을 벌어보겠다. 결연한 각오를 다지면서 아름다운 미녀의 탈을 쓴 맹수에게 칼끝을 내질렀다.
“빌어먹을 년!”
“단칼에 베어주겠다!”
원소군 무관들도 하무를 따라 하후돈을 노렸다.
이 계집을 저지해야 한다.
사력을 담아 병장기를 내질렀다.
그러나 죽음마저 각오했던 일격은 패국의 여걸에게 닿지 못했다. 무거운 월도가 가해지던 일격들을 모조리 분쇄했기 때문이다.
“커어억!”
“이런…! 이럴 수가…!!”
쩌적. 쩌저적.
병장기들이 모두 부러졌다.
병장기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날림과 동시에 하무와 무관들은 피를 쏟아내면서 쓰러졌다.
그 광경은 마치 추풍낙엽을 보는 듯했다.
“끝까지 놈들을 추격해라! 놈들이 황하를 도하하도록 둬선 안 된다! 연주자사 장막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마라!!”
동평국 전선을 가로질렀던 하후돈의 총공세는 원소군의 잔적들을 황하까지 몰아세웠다.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리겠다.
장수들의 희생으로 퇴각에 성공했던 저수는 다시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
붉은 머리카락을 나부끼면서 달려드는 맹수의 모습에 원소군의 도독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 *
하후연은 바들바들 떨리는 시선으로 힘겹게 호흡을 내뱉고 있는 장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억…! 허억…!!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절명에 가까운 치명상을 입었다.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화살 두 대를 연속하여 맞지 않았는가.
하후연은 급히 군의를 호출했지만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내심 알고 있는 눈치였다. 호흡을 계속 반복할 때마다 장막의 몸은 빠르게 식어갔다.
“아, 아아….”
고통을 토해내던 장막이 돌연 고개를 들었다.
밤하늘에 흩날리는 흑발.
갑주를 걸친 여인이 다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부모의 손을 놓쳐버린 어린아이처럼 절박함에 물든 표정을 한 채였다.
오랜 막역지우와의 재회에 장막은 잠시 너털웃음을 흘렸다. 격정에 물든 벗의 모습을 보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맹탁!”
조조가 소리쳤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가고 있는 장막의 모습을 보고서 경악을 내뱉었다.
몸이 무서울 정도로 싸늘했다.
모든 열기가 몸에서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이미 망자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막역지우의 모습에 조조는 깊은 회한과 분노, 그리고 자격지심을 느꼈다.
“하, 하하…! 왜 이리 늦었나… 평소에는 그토록 서두르더니…!”
장막이 애써 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힘겹게,
계속 힘겹게 숨을 내뱉으면서.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것처럼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친우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마지막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한 것일까. 잠시 친우의 모습을 하염없이 응시했다.
“성공했네, 계책이… 무사히 성공했네. 하북의 명장을 상대로… 이 장맹탁이 이겼다네…!”
기쁨과 희열,
깊은 고양감이 담겨 있었다.
죽음을 앞둔 망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환희였다.
장막의 웃음에서는 일말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환희로 가득했다. 자신의 책무를 온전히 달성하였다는 기쁨이 웃음에서 감돌았다.
“나는… 맹탁, 너를 의심했다….”
흑발의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음기에 찬 고백을 내뱉었다.
“너를 방관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거병의 일등공신이었던 너를 계속 방치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서 네가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원귀처럼 지독한 의심암귀는 오랜 벗마저 의심하게 만들었다.
결국 배신했을지도 모른다.
정적들과 함께 흉계를 꾸미고 있다.
의심암귀의 속삭임이 끊임없이 이성을 갉아먹었다.
후환으로 규정한 수많은 정적들을 숙청하면서 의심을 반복해온 조조는 오랜 벗의 최후를 지켜봐야 하는 비참한 형벌을 맞이해야 했다.
“괜찮네, 괜찮아…! 그래도, 나를 믿고… 이렇게 달려오지 않았나…?”
진정으로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면 군세를 이끌고서 달려오는 일은 없었겠지.
기뻤다.
결국 나를 믿어주었으니.
피를 울컥 토해내면서도 애써 미소를 지었다.
“한 번도 자네를… 미워한 적 없었네…. 그깟 벼슬이 뭐라고 우정을 배신하겠나? 모두 각자에게… 맡는 본분이 있는 것을…!”
조조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것이라고 수많은 이들이 한탄하였음에도 장막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원소군의 유혹에도,
사대부와 호족들의 속삭임에도 결연함을 지켰다.
어찌 사내대장부가 권력에 빠져 우정을 배신하겠는가. 제아무리 달콤한 과실을 준다고 약속하더라도 충(忠)과 우(友)를 대신할 순 없는 것을.
“커헉…! 쿨럭쿨럭!”
“매, 맹탁!”
힘겹게 말을 이어나가던 장막이 돌연 피를 한 움큼 토하면서 기침했다.
그에 조조는 파르르 떨리는 두 손으로 친우를 붙잡은 채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축축하게 물든 붉은 눈동자에서 눈물이 세차게 떨어졌다.
“부디… 울지 말게, 맹덕. 끝까지 오랜 벗의 도움이 될 수 있어… 오히려 기쁘단 말일세.”
새파랗게 변색된 입술을 힘겹게 움직이면서 마지막이 될 말을 전했다.
벗의 도움이 되었다.
오직 그 사실만이 장막을 기쁘게 했다.
하북의 명장을 이겼음에도,
수만 명에 달하는 군세를 완파하였음에도.
그럼에도 장막은 오랜 벗의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것만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
순수하고 고결한 충심과 우정에 조조는 입을 꾹 다물면서 침묵할 뿐이었다.
오열을 억누르면서,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막역지우의 모습을 볼 때마다 동요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하나, 부탁이 있네만….”
부탁.
그 말에 조조가 두 눈을 부릅떴다.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목숨을 다해 충심과 우정을 지켜주었던 막역지우의 부탁을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가문과 식솔들에 대한 걱정인 걸까.
조조는 자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 장막의 가문과 남은 식솔들을 정성껏 보살피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하지만 장막의 마지막 부탁은 전혀 예상치 못한 간청이었다.
“부디… 본초를, 죽이지 말게. 절대 난세에 휩쓸리지 말게…!”
마지막 순간까지도 장막은 벗이었던 조조를… 그리고 원소를 걱정했다.
과연 장막다운 부탁이었다.
“그래…, 반드시… 지키겠다!”
핏물로 흠뻑 젖은 친우의 손을 움켜쥐면서 굳게 대답했다.
그에,
장막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섯갈바람처럼 덧없으면서도 따스한 웃음이었다.
이윽고 장막은 죽음을 받아들였다.
마지막 부탁을 전하고자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임종을 유예했던 장막은 염원을 해결함과 동시에 실 끊어진 인형처럼 고개가 떨어졌다.
“맹탁!”
“어르신!”
충의와 우정을 지키고자 분투했던 난세의 대장부가 마지막을 맞이했다.
절개와 신의를 지키면서 꿋꿋하게 한평생을 관철했던 대장부에게 어울리는 고결한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