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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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사 장막의 제안대로 복양현으로 피신했던 사대부와 호족들은 모두 조조군에게 붙잡혔다.
불온세력을 일망타진했다.
은밀하게 원소군과 내통하던 변절자들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조조군과 반목하는 모습을 연기했던 장막에게 기만당한 것이다. 병사들에게 붙잡힌 이후에도 그것을 직시할 수 없었던 사대부와 호족들은 혼란을 토해냈다.
“놔, 놔라!”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서!!”
붙잡혔던 사대부와 호족들이 소리쳤다.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됐는지,
그들은 두 눈을 바들바들 떨면서 오만을 떨어댔다.
하지만 오만방자한 자존심이 조조군에게 먹혀들 리가 없었다. 둔기로 무장한 병사들이 달려들어 사대부와 호족들을 실신할 때까지 두들겼다.
“으아악!”
“커헉…! 살려주게!!”
원소로부터 공신에 책봉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리라며 기대했던 사대부와 호족들은 가축보다도 못한 굴욕을 경험해야 했다.
또한 그들은 물론,
함께 복양현으로 피신했던 가문의 가솔들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야망을 가슴속에 품고서 전란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던 변절자들은 풍비박산의 운명을 떠안게 되었다.
“맹탁…! 우리들을 속였구나! 우리들의 대의를 물거품으로 만들다니! 죽어서도 용서치 않겠다!!”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아 피를 철철 흘리던 늙은 사대부가 소리쳤다.
일선에서 조조군의 통치에 반대해온 변양이었다.
결국 장막에게 놀아났음을 알아차린 변양은 단말마의 비명에 가까운 고함소리를 내질렀다. 치욕으로 물든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닥쳐라, 늙은이!”
장초가 몽둥이를 힘껏 내리쳤다.
뻐억-!!
가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정통으로 얻어맞은 변양이 툴썩 쓰러졌다.
단단한 둔기에 맞은 변양은 머리가 박살난 채 흙바닥에 고꾸라졌다. 핏물을 흠뻑 쏟아내면서 쓰러진 변양은 그대로 죽어버렸다.
“변양 어르신!”
“연주 출신인 네놈이 어찌 감히!”
수많은 명사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사대부가 일개 노복처럼 흙바닥에 쓰러져 절명했다.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사대부와 호족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장초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반발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핏물이 뚝뚝 흐르는 몽둥이를 치켜들자 아연실색하며 뒤로 물러섰다.
침소봉대를 하듯 거창하게 나불나불 떠들어대던 사대부와 호족들은 눈앞의 폭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탁상공론이나 지껄이면서 본인에게 유리한 대로 해석하던 작자들에게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 * *
조조군은 연주성을 탈출하여 동평국 방면으로 퇴각하기 시작한 원소군을 바짝 추격했다.
지옥 끝까지 추격해올 것처럼,
하후연과 여건은 계속해서 공세를 밀어붙였다.
원소군에게 피해가 점점 가중되었다.
구사일생으로 연주성을 탈출하였음에도 쇠사슬처럼 옥죄는 추격이 원소군을 고통에 빠트렸다.
“역도들을 놓치지 마라!”
“동평국으로 가고 있다! 반드시 격멸해야 한다!”
불길에 휩싸인 연주성에서 시작된 죽음은 시시각각으로 되풀이되고 있었다.
연주성에 주둔했던 2만 명.
연주성 바깥에서 방비했던 5천 명.
도합 2만 5천의 원소군 병력들이 난관에 직면했다.
반면 추격하는 조조군 병력은 불과 수천 명에 지나지 않았다. 절반에 불과한 조조군이 두 배가 훨씬 넘는 원소군을 대파하고 있는 것이었다.
“큰 전공을 세우셨습니다, 연주자사.”
호군장군 하후연이 예를 취하면서 말했다.
그에 장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례하게 핍박하여 미안했네. 주변에 원소군의 세작들을 속이고자 반목을 연기한 것일세.”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영예로운 장수들에게 무례를 범하고 말았다.
장막이 진심을 담아 하후연과 여건에게 사과했다.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소장이야말로 연주자사의 혜안을 헤아리지 못하여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만약 장막이 아우 장초에게 밀지를 전달하도록 지시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간파하지 못했으리라.
적들을 유인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에 하후연은 진심으로 장막을 경외하게 되었다.
여건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 적들을 현혹하기 위한 기만책이었음에 감탄하여 장막에게 사과했다.
하마터면 어리석음으로 인해 고육지책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 뻔했음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당장 놈들을 쫓아야 하네!”
“어르신께선 중상을 입지 않으셨습니까? 추격은 소장들에게 맡겨주십시오.”
핏물이 덕지덕지 묻은 붕대를 감고 있는 장막의 모습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크게 위태로웠다.
출혈이 이어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몸을 크게 움직일 때마다 핏물이 선명하게 뚝뚝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장막은 계속 추격에 가세했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아슬아슬한 만용을 이어나갔다.
“추격하라! 놈들이 동평국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섬멸해야 한다!!”
장막이 고함을 내지르면서 앞장섰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필사적으로 퇴각하는 원소군처럼 절박한 모습을 보였다.
대체 무엇을 이루고자 만용을 이어나가는 것일까.
하후연과 여건은 뒷모습을 보이면서 질주하는 장막을 빠르게 뒤쫓았다.
“잔적들을 소탕하라!”
“절대로 살려보내선 안 된다!”
장막의 용감무쌍한 모습에 감화된 병사들은 발걸음을 세차게 내딛으면서 강행군을 반복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음에도,
오랜 전투로 인해 육신이 무거웠음에도.
병사들은 분전을 호소하는 장막의 목소리에 이끌린 채로 돌격을 감행했다. 그때마다 원소군은 패주를 반복하면서 퇴각을 외칠 뿐이었다.
“원소군을 분멸하라!”
선두에서 장졸들을 고무하던 장막이 칼자루를 뽑아들었다.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누구보다도 용맹하게 싸우는 그의 모습은 실로 과감했다.
하지만,
밤하늘을 가르면서 날아든 화살들이 용맹을 가로막았다.
“조조군이 당도했다!”
“놈들을 향해 계속해서 쏴라!”
동군을 횡단하여 동평국에 근접하였을 때.
매복하고 있던 원소군의 복병들이 맹렬하게 추격하던 조조군을 저격했다. 노련한 궁수들은 시야가 어두웠음에도 표적을 정확히 노렸다.
쩌렁쩌렁한 고함이 표적의 위치를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커헉!”
푹-!
푸욱-!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정확히 가슴과 복부를 관통했다.
두 대의 화살들에 저격당한 장막이 비명을 흘렸다.
원소군의 매복에 정면으로 걸려들고 말았다.
난데없이 쏟아진 화살세례에 끈질기던 진격이 주춤하는 양상을 보였다.
“연주자사 어르신!”
“어, 어서 어르신을 보필하라!”
기습에 당한 장막이 말에서 떨어졌다.
그 광경을 본 무관들은 크게 경악하여 장막에게 달려들었다.
시체처럼 몸이 축 늘어졌다.
핏물을 울컥울컥 뿜어내면서 몸을 꿈틀대는 장막의 모습에 무관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선두를 지휘하던 장막이 원소군의 급습에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하후연과 여건 또한 대경실색하며 진군을 정지했다.
* * *
연주자사 장막이 쓰러졌다.
선두에서 분전을 이끌던 도중에 궁수들의 화살세례를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극심한 고통에 오래 버티진 못할 터.
오만한 만용을 휘두르던 놈에게 어울리는 죽음이었다.
“장막이 쓰러졌습니다!”
부장 왕마가 쾌재를 부르면서 말했다.
다른 장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고육지책의 원흉이 말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서 크게 기뻐했다.
이것이 바로 인과응보가 아니겠는가.
주군을 기만하고 아군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가했던 원흉이 쓰러졌다는 소식은 실로 기쁜 낭보였다.
“대체 어째서 장막이….”
그러나 저수는 어째서인지 당혹감에 휩싸인 모습을 보였다.
고육지책에 속았기 때문일까,
장막의 모든 행동들이 의심스럽게 느껴졌다.
너무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육신을 희생한 것처럼 보였다.
연주성에서 고육지책을 벌였을 때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동귀어진을 택하지 않았던가. 죽음을 각오한 자가 아니라면 결코 불가능한 전술이었다.
‘스스로 죽음을 바라는 듯한….’
장막이 전투에서 만용을 스스럼없이 휘두를 정도로 전공에 목을 매는 성정이라는 말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대체 어째서,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달려들었단 말인가.
심사숙고를 거듭했음에도 의심암귀를 떨쳐낼 수 없었다.
“다 죽어가는 원흉의 수급을 소장이 단칼에 베어버리겠사옵니다!”
부장 하무가 소리쳤다.
지금까지 당한 수모를 그대로 되갚아주겠다는 것처럼 이를 빠득 갈았다.
그에 여러 장수들이 가세했다.
백면서생의 면모를 하고서 음흉한 속임수를 늘어놓았던 놈의 숨통을 끊겠다며 사납게 소리쳤다.
“안 된다, 멈춰라…!”
저수가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소스라치게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분통을 참을 수 없었던 장수들은 목을 가져오겠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경거망동하지 말라! 내 명령이 안 들리는가!!”
진중한 어조를 일관하던 저수가 대노하여 장수들에게 소리쳤다.
당장이라도 칼자루를 휘두를 것처럼 분노에 사로잡힌 장수들을 위협했다. 저수의 노여움이 두려웠던 장수들은 한 발 물러서면서 고개를 숙였다.
“놈의 전술이다! 연주성에서 스스로 목숨을 내던졌던 것도, 지금 화살에 맞아 쓰러진 것도…! 모두 놈의 속셈이란 말이다!”
이해했다.
드디어 놈의 심중을 간파했다.
희미하게 보이지 않았던,
아지랑이처럼 흐릿했던 실마리를 드디어 잡았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고육지책을 벌인 이유를 간파한 저수는 사색이 된 채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도, 도독?”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수의 연이은 외침에도 장수들은 의문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전술이라니?
제 죽음을 이용하는 전술이 어디 있단 말인가.
놈은 그저 만용을 휘두르다가 쓰러졌을 뿐이다.
곧이어 숨통이 끊어질 터.
더 이상 놈을 경계할 이유는 없었다.
삼도천을 건너게 될 망자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도독!”
영문 모를 의심으로 무거워진 분위기를 깨트리듯이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척후가 도착했다.
구사일생으로 동평국에 도착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던 원소군에게 불길한 기별이 전해졌다.
“조조군이 당도했습니다!”
전령의 보고에 하무가 입을 열었다.
“연주성에서부터 물귀신처럼 쫓아오던 빌어먹을 놈들은 매복에 빠져 추격을 멈추지 않았는가. 어디에서 조조군이 온단 말이냐!”
화살세례에 저격당한 장막이 쓰러지자 하후연과 여건은 즉시 추격을 중단했다.
조조군이 당도할 리 없다.
놈들은 매복에 저지당하여 동평국에 들어오지 못할 테니.
놈들이 무리하게 진공을 감행한다면 만용을 휘두르다가 자멸했던 놈처럼 벌집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조조입니다!”
“…뭐?”
“허도에서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당도했습니다!”
적대세력의 총대장이 직접 군단들을 이끌고 동평국까지 진격해왔다.
연주성의 급습에 이은 최악의 흉보였다.
설상가상(雪上加霜)과도 같았다.
아니,
지금 전황을 어찌 서리 따위와 비교할까.
조조가 직접 전선에 도래하였음에 원소군 장수들은 모든 희망을 포기해야 했다.
구르르르르르르르르───!!
결코 악몽이 아님을 보여주듯,
메마른 대지가 거대한 진동에 떨리기 시작했다.
연주를 침공했던 원소군에게 죽음을 알리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