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421화 (421/616)

<421화>

=========================

구사일생으로 형주 전선에서 탈출하여 허도로 돌아온 유비군은 병력을 재정비하면서 대기했다.

전선에서 많은 병력을 잃었다.

하지만 다행히 정예부대들만큼은 건재했다.

유비의 지휘와 관우와 장비의 분전으로 정예부대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예부대들을 차출한다면 며칠 안에 다시 출진이 가능할 듯했다.

“우리들더러 또 출진하라고?”

붉은 머리카락을 짧게 기른 소녀가 인상을 왈칵 찌푸리면서 말했다.

천신만고 끝에 살았는데,

다시 전선으로 출진해야 될지도 모른다니.

너희들은 진짜 마귀가 분명하다.

장비는 질린 눈빛으로 이성휘를 쳐다보았다.

“저희들은 형주에서 많은 군세를 잃었습니다. 재차 출진한다면 장졸들의 불만이 팽배할 겁니다.”

관우 또한 장비처럼 불가를 내비쳤다.

겨우 목숨을 건진 상황이다.

장졸들의 두려움과 불안감이 마음속에 여전히 잔존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대군.

계속해서 빗발치던 화살.

악몽과도 같은 패전을 겪었던 직후였기에 장졸들의 사기 또한 말이 아닌 상태였다.

“군부의 오판으로 인해 형주 전선에서 패전하게 된 점은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너희들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성휘가 관우와 장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희들의 힘이,

유비군의 전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삼면전쟁의 불리한 전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보유하고 있는 모든 전력들을 가용해야만 했다.

도원결의 세 자매의 군재와 무략, 정예부대로 구성된 유비군의 전력은 천군만마와 같았다. 그렇기에 이성휘는 그녀들을 집무실에 초대하여 간곡하게 부탁했다.

“흐음, 글쎄요….”

젖빛처럼 아름다운 백발을 늘어뜨린 여성이 곁눈질로 이성휘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그의 내심을 떠보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면서 말했다.

두루뭉술한 반응을 보이는 모습이 영락없는 토끼였다.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영악스러운 토끼 말이다.

“물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형주 전선에서 입은 손실과 여파가 상당해서요. 일언지하에 확답을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유비가 두 손을 모으면서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호의가 물씬 묻어나는,

정중하면서도 상냥한 거절의사였다.

그 대답에 이성휘는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조조였다면 “그 가증스러운 가면 따위에 넘어갈 것 같나?”라는 답변을 했겠지만.

“사공과 상의하여 무제한의 포상을 약속하겠다. 너희들이 참전만 해준다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말이다.”

“흐응.”

이성휘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끝을 흐리면서 능구렁이처럼 대답을 회피하던 유비는 그에 반색하면서 비음을 흘렸다.

원하는 대답을 들은 것처럼,

새빨간 눈동자가 익살스럽게 빛났다.

하지만 단번에 조건을 받아들이면 속물처럼 보여질 수 있으므로 두루뭉술한 일면을 이어나갔다. 과연 조조에 필적할 정도의 음흉한 야심가다웠다.

“상공, 계시옵니까.”

이성휘가 재차 유비를 설득하려 했을 때,

바깥에서 여인의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선의 부름이었다.

그에 이성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선아? 기별도 없이 왜….”

“송구하옵니다.”

집무실의 문을 열자 작약꽃처럼 화사한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하늘하늘한 시녀복을 입은 시녀,

평상시에 입는 평범한 의복이었음에도 그녀의 미모는 광휘처럼 영롱하게 눈부셨다.

과연 낙양제일미였다.

아들을 낳은 유부녀였음에도 청초하고 순결한 아름다움이 봉숭아처럼 농염하게 흐르고 있었다.

“아부지!”

“아바!”

모성애가 느껴지는 치마폭에 폭 숨었던 어린아이들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조앙와 이현이었다.

아장아장 걸으면서 이성휘에게 다가왔다.

어찌하여 함께 온 것일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내미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이성휘가 초선에게 시선을 향했다.

“공자님들께서 간절히 애원하셔서… 기별도 드리지 못하고 불쑥 찾아왔사옵니다. 정말 죄송하옵니다.”

“괜찮다.”

다시 사과하는 초선에게 이성휘는 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조금 갑작스러웠으나,

귀여운 두 아들의 얼굴을 보니 참으로 기뻤다.

그간 업무가 막중하여 허도로 귀환했음에도 가족들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새하얀 뺨을 붉히면서 매달리는 아들내미들의 모습에 이성휘는 숙연한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혼자서 양육을 부담하고 있는 초선에게도 미안함을 품었다.

“아부지!”

“그래, 아버지다. 착한 아이로 잘 있었니?”

“네에!”

이성휘의 물음에 조앙과 이현이 동시에 대답했다.

아버지와의 만남이 기뻤는지,

초승달처럼 눈웃음을 지으면서 헤헤 웃었다.

배려심이 깊은 아들내미들의 모습에 이성휘는 쓴웃음을 흘리면서 양손을 뻗었다. 사랑스러운 두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애정을 표현했다.

“어머, 귀여워라.”

“그때 자랑했던 표기장군의 자식들인가봐.”

집무실에서 대기하던 유비와 장비가 바깥으로 나오면서 아이들에게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표기장군을 쏙 빼닮은 아들.

낙양제일미의 용모를 그대로 물려받은 딸(?).

정말 잘 어울리는 가족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음속의 모성애를 자극한 걸까.

헤실헤실 웃는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풀어졌다.

“아, 아닛…!”

자매들과 함께 바깥으로 나온 흑발의 여인이 두 눈을 부릅뜨면서 어깨를 떨었다.

환희에 차오른 시선.

불그스름하게 물든 뺨.

애처롭게 파르르 떨리는 입술.

온 얼굴로 뜨거운 격정을 표현하는 듯했다.

의자매의 모습을 본 유비와 장비는 동시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표기장군! 이, 이 아이들은….”

“일전에 말했던 두 아들이다.”

“그러면! 이 아이도… 남자아이입니까.”

“어.”

분홍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자신을 응시하는 남자아이의 모습에 형용할 수 없는 격정을 느꼈다.

여자아이가 아니라,

여자아이처럼 생긴 남자아이였다니…!

낙양제일미라 불린 경국지색의 미녀를 닮아 절색의 용모를 자랑했다. 벌써부터 장래가 기대될 정도였다.

하아! 하아!

가쁜 심호흡을 연신 토해냈다.

실로 위험천만한 반응이 아닐 수 없다.

“운장이 또 발작하네.”

“에휴, 정말 지긋지긋하다니까.”

열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이면서 남자아이들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흑발의 여인.

냉철하고 무뚝뚝한 매력을 자랑하던 차가운 미녀는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눈앞에는 위험한 변태만이 있을 뿐이었다.

“앙이 공자님은 세 살, 현아는 두 살이에요.”

“크흠. 그렇습니까.”

정말 아이를 좋아하시나 보다.

후후.

계속 무뚝뚝한 분인 줄로만 알았는데.

하긴 이렇게 귀여운 공자님들에게 선의를 내비치지 않을 냉혈한이 천하에 어디 있을까.

공자님들을 격하게 귀여워하는 관우의 모습에 초선은 의기양양한 듯 어깨를 으쓱였다. 마치 “소녀가 금지옥엽처럼 키운 공자님들이옵니다!”라며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누구세여?”

흑발을 기른 유년이 혀 짧은 소리로 물었다.

“아, 나는….”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말끝을 흐리면서 잠시 망설였다.

그에 이성휘는 관우를 대신하여 조앙에게 대답해주었다.

“아버지의 부하다.”

부하라고 설명하기엔 조금 난감하다.

유비군은 동맹관계일 뿐,

완전히 조조군에 복속된 것은 아니었으므로.

하지만 이성휘는 한나라의 군부를 관장하는 표기장군이었기에 명목상으로는 상하관계였다. 그래서 이성휘는 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부하’로 설명했다.

“네에.”

조앙이 고개를 꾸벅 끄덕였다.

그리고는 관우를 빤히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아.”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감사를 전했다.

귀엽게 예의를 갖추면서,

아버지의 부하에게 허리를 푹 숙였다.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하는 아버지의 부하이니 마찬가지로 노고를 다하고 있겠지. 그래서 조앙은 서툴게나마 감사한 마음을 전달했다.

순진무구한 동심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아, 아닙… 나는 딱히… 아니, 정말 고맙다…!”

냉철한 위용을 발산하면서 적들을 두려움에 빠트렸던 맹장이 두 발을 동동 구르면서 기뻐했다.

“현아, 너두 해야지.”

“네에… 형.”

모친의 치맛자락을 꼭 붙잡고서 멀뚱멀뚱 바라보던 이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관우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언니, 조조의 아들이라는 게 믿겨져?”

다정다감한 광경을 뒤에서 응시하던 장비가 맏언니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조맹덕 씨, 평생 쓸 운을 다 쓴 것 같은데.”

믿겨지지 않는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무시무시한 독부에게서,

예의 바른 순둥이 아들이 태어나다니.

지금까지 조조와 계속해서 신경전을 벌였던 유비였기에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운장 언니 좀 봐. 입이 귓가를 넘어 관자놀이에까지 걸리겠어.”

“기뻐하게 놔두자.”

한쪽 무릎을 꿇은 관우는 두 팔을 벌리면서 조앙과 이현을 동시에 껴안았다.

금세 헤벌쭉한 표정을 지었다.

부드러운 얼굴에 뺨을 비비면서,

인형처럼 작고 귀여운 공자님들을 쓰다듬었다.

“우으으, 앞으로 열세 살까지만 자랐으면 좋겠어.”

극상의 기쁨을 누리면서 공자님들을 귀여워하던 관우가 진심이 담긴 당부의 말을 전했다.

더 크지 말고,

딱 열세 살까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동자님처럼 귀여운 아이들이 언젠가 어른이 된다니. 실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