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화>
===========================
장안성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죽을힘을 다해 싸웠으나,
위태로운 전운을 뒤엎기란 불가능했다.
조조군 병력은 불과 7천. 수만 명에 육박하는 서량 연합군을 상대로 중과부적이었다.
“어서 불을 꺼라!”
“적들이 성문을 뚫고 들어온다!”
화염에 잠긴 성루.
충차의 공격에 무너지는 성문.
서량의 군벌들을 상대로 스무날을 버티었던 장안성이 함락되려 하고 있었다. 장졸과 백성들이 동심협력하여 저항했음에도 현실은 너무도 무자비했다.
무너진다.
한나라의 전(前) 수도가,
풍파에 수차례 휩쓸렸던 장안성이 최종국면에 접어들었다.
“혀, 형님! 놈들이 성벽을 넘었습니다! 어서 장안성을 탈출해야 합니다!”
기도위(騎都尉) 종진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전선이 붕괴되었다.
곧이어 서량의 마적들이 성벽을 점령할 터.
피칠갑이 되도록 분전하였음에도 밀물처럼 계속 밀려드는 적들을 결국 막아내지 못했다.
끝까지 장안성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원통할 따름이었다. 쓰러지는 병사들을 보며 울분을 삼켰다.
“어서 활로를 뚫어라! 백성들을 피신시켜야 한다!”
갑옷을 걸친 고관대작이 소리쳤다.
잔악한 성정의 무법자들은 항전에 가세했던 장안성의 백성들에게 위해를 가할 게 분명했다.
상서복야(尙書僕射) 종요는 장안성에서 대량학살이 벌어질 것을 예견하고 백성들의 피난을 명령했다. 그에 장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어서 놈들을 떨어트려라!”
“젠장…! 화살이 다 떨어지다니!”
성벽 곳곳에서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병사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작렬했다.
조조군 장졸들은 장안성을 사수하고자 죽을힘을 다했으나 전황을 회복할 수는 없었다. 서량군이 계속해서 운제를 타고 올라오면서 성벽을 점거했다.
“커헉!”
검을 휘두르면서 응전하던 조조군의 무관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서량의 장졸들이여! 장안성을 넘으라!!”
마등의 장남인 마휴가 소리쳤다.
드디어 성벽을 넘었다.
마침내 난공불락의 성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핏물을 닦은 마휴는 두 눈을 부릅뜨면서 조조군에게 돌격했다. 경애하는 누이에게 한시라도 빨리 승전보를 바치기 위해서였다.
“역적들을 쳐라!”
“감히 더러운 발을 들이다니!”
성벽이 위태롭다는 급보를 들은 조조군의 병력들이 백병전에 가세했다.
하지만 분기탱천한 서량군을 막을 순 없었다.
거친 황야에서 반란과 반목을 반복하면서 단련해온 서량 출신의 병사들은 일당백의 정예였다. 검을 마주한 백병전에서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
“다 죽여라! 한 놈도 빠짐없이 없애라!!”
마휴에 이어 서량의 군벌들도 성벽에 올라섰다.
무수히 쏟아지는 화살비를 돌파한 끝에 난공불락의 거점에 발을 들였다.
이감과 장횡이 진멸을 명령했다.
스무날에 걸친 공방전에서 퇴각과 패퇴를 반복해야 했던 군벌들은 복수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모조리 다 죽여라.
조조군뿐만 아니라 결사항전에 나섰던 장안성의 백성들까지 모두 도륙하려 했다. 변경에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아온 마적 출신이었기에 거리낌이 없었다.
“성문이 뚫렸다!”
“기병대, 돌격하라!
우지끈!
콰드드득-!!
수십 번을 강타한 충차가 마침내 임무를 달성했다.
완고하던 성문이,
결국 파쇄음과 함께 박살났다.
성문의 파괴는 곧 거점의 함락을 의미했다.
충차를 호위하던 병사들은 격앙된 고함소리를 내지르면서 성 안으로 뛰어들었다. 창검을 휘두르면서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산짐승을 보는 듯했다.
“놈들이 들어왔다!”
“활을 쏴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완파된 성문을 뚫고 들어온 침략자들에게 날카로운 화살이 쏟아졌다.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면서 기다리고 있던 궁수들이 서량군을 공격했다. 뒤이어 병장기를 치켜들던 보병들이 달려들면서 접전이 벌어졌다.
“형님, 북문에 활로가 열렸습니다!”
종진이 달려와 종요의 팔을 당겼다.
지금 탈출해야 한다.
적들이 계속해서 성 안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무관들에게 급보를 입수한 종진은 종요에게 탈출할 것을 진언했다. 그 목소리에 절박함이 역력했다.
“그럼 북문으로 백성들을 피신시켜라! 놈들은 분명 백성들에게까지 마수를 뻗히려고 들 거다!”
“형님이 먼저입니다!”
종진이 크게 소리치면서 무관들에게 탈출을 명령했다. 그에 무관들은 다부진 손아귀로 종요를 붙잡았다.
“놔라! 나는 장안성과 운명을 함께 할 것이다!”
“그것은 아우에게 맡겨주십시오!”
곧이어 종진이 눈짓을 보냈다.
무관들은 완강하게 저항하는 종요를 거의 끌어내다시피 호송했다. 그를 바라보던 종진은 결연한 눈빛을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적장이 도망친다!”
“쫓아라! 조맹덕의 졸개다!”
무관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빠져나가는 종요의 모습을 본 서량군 병사들이 소리쳤다.
앞을 가로막는 조조군을 쓰러트리면서 난입한 서량군은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벌써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그들을 바라보며 종진은 깊은 탄식을 흘렸다.
검을 뽑아든 종진은 사나운 고함소리를 내지르면서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제 목숨을 희생하여 형님이 도망칠 수 있도록 시간을 벌려는 것이었다.
“이 역적들!”
“서량 놈들아…! 장안성에서 썩 꺼져라!”
전투에 동원되었던 백성들이 서량군을 가로막았다.
낫과 삽,
갈퀴와 곡괭이.
일격에 부러질 것 같은 부실한 농기구들이다. 그럼에도 장안성의 백성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정예병을 상대로 의연하게 자리를 지켰다.
“네놈들에게… 또 빼앗길 것 같으냐!”
“다시 시달리느니 차라리 싸우다가 죽겠다!”
서량의 침략자들을 향한 증오와 원망은 사생결단을 결정하게 만들 정도로 깊었다.
굴복하지 않겠다.
차라리 싸우다가 죽을 것이다.
동탁의 폭정에서 무간지옥과도 같은 도탄과 고통에 시달려온 백성들은 불리한 전황 속에서도 저항의지를 이어나갔다.
“죽어라, 건방진 놈들!”
“오냐! 소원대로 해주마! 다 죽여라!!”
군벌들이 이를 빠득 갈면서 소리쳤다.
무지렁뱅이 놈들,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주겠다.
감히 우리들에게 저항하다니. 그 죄는 목숨으로 갚아야 마땅하리라.
“커헉!”
“으아아아!!”
중무장한 병사들이 병장기를 휘두르면서 저항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철퇴로 때려죽인 것은 물론,
고문하듯 온몸을 난자하는 만행까지 벌였다.
결사항전을 벌이던 민병들을 단숨에 도륙한 서량군은 이윽고 민간인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집에 숨어서 벌벌 떨던 무고한 백성들을 끄집어내어 살인과 강간을 일삼았다.
“가옥들에 불을 질러라!”
“사내는 죽이고 계집은 붙잡아라! 박색이면 죽여도 좋다!”
스무날의 공방전 끝에 장안성이 함락되었다.
성문이 돌파되었으며,
성벽들은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검은 연기가 치솟음과 동시에 성루가 무너졌다.
첨탑들의 붕괴와 함께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여대던 부대들 또한 최후를 맞이했다.
“으하하! 적장의 수급이다!”
대량학살을 지휘했던 이감이 적장의 수급을 치켜들었다. 결사대와 함께 항전했던 종진의 수급이었다.
마지막 저항마저 짓밟았다.
결국 장안성이 서량 연합군에게 함락된 것이다.
성벽에서 정예병들과 함께 백병전을 벌였던 마초는 동생들과 함께 장안성의 궁궐을 점령했다. 그리고 의형제였던 한수와 함께 개선장군처럼 입성한 아버지에게 승전보를 알렸다.
“장안성을 점령했습니다, 아버지.”
“수고 많았다.”
드디어 장안성을 손에 넣었다.
많은 손실이 있었으나,
맹렬한 공방 끝에 난공불락의 요새를 돌파해냈다.
마등은 고양감에 휩싸인 표정을 지으면서 장안성의 정경을 바라보았다. 참화에 물든 장안성의 정경은 실로 처참했다.
“아가씨,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무슨 일이야?”
동생들과 아버지를 바라보던 마초는 부하로부터 껄끄러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상서복야 종요가 달아났습니다.”
“…뭐?”
장안성을 수비하던 총대장이 도망쳤다.
함락되기 직전에 부하들과 함께 북문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적의 총대장을 놓친단 말인가.
삼보 지역을 다스리던 한나라의 상서복야를 포로로 붙잡았다면 요긴하게 쓰였을 터. 종요를 놓쳤다는 소식에 분기가 치밀었다.
“도망치는 것을 그냥 놔뒀다고?”
“제장들이 모두 전공과 전리품에 정신이 팔린 탓에 놓친 모양입니다….”
“개자식들이!”
약탈에 매진하느라 적의 총대장이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것을 좌시한 우행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뒤이어 장안성을 제압했던 군벌들이 시가지에서 살인과 약탈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마초는 더욱 격노했다.
“역시 더러운 마적들과 손을 잡는 게 아니었어!”
마초가 창을 치켜들면서 소리쳤다.
그 옆을 방덕이 지켰다.
군벌들이 벌인 만행에 그녀 또한 분노를 금치 못했는지 활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맹기야, 어쩔 셈이냐.”
“군율을 위반한 놈들을 단죄해야죠!”
아버지 마등의 물음에 마초가 대답했다.
“우리들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결성된 동맹일 뿐이다. 그것을 잊었느냐.”
“무고한 백성들을 노략하고 있는 것을 그냥 묵인하라고요?”
“전쟁에는 응당 전리품이 필요하다.”
“…….”
군벌들은 장안 공방전에서 천문학적인 손실을 떠안고 말았다.
손실을 메우기 위해서였다.
또한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행위였다.
특히 서량에서는 약탈과 노략에 승자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포상으로 여겨졌다.
군벌들의 약탈과 노략질을 묵인하는 아버지의 태도에 마초는 입술을 깨물면서 창을 움켜잡았다.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낯빛이었다.
천군만마를 이끌었던 개국공신 마원의 후손인 것에 무궁한 자긍심을 품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도망친 상서복야 종요를 잡아오너라.”
“…예.”
군벌들과의 반목을 우려한 마등은 마초에게 상서복야 종요의 추격을 명령했다.
그에 마초는 예를 취하면서 명령을 받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