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화>
===========================
장안성은 서량 연합군의 파상공세를 매우 아슬아슬하게 버텨내고 있었다.
큰 참변을 겪었음에도,
전(前) 수도의 위용은 여전히 건재했다.
상서복야(尙書僕射) 종요의 자강불식으로 난공불락의 건재함을 어느 정도 회복한 장안성은 연이은 강타에도 끄떡없이 버텨냈다.
“돌파하라! 돌파하란 말이다!!”
밤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격앙된 목소리로 연이어 소리쳤다.
대체 어째서,
장안성을 돌파하지 못한단 말인가!
벽력거까지 배치했음에도 성벽은 요지부동이었다.
보름 동안 쉬지 않고 공세를 가했음에도 계속 버텨내는 장안성의 건재함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결국 공세가 무위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충차는 대체 뭘 하고 있나!”
“더 퍼부어라! 쉬지 않고 쏟으란 말이다!!”
마철과 마대가 장졸들에게 계속해서 분전을 촉구했다.
누이의 심중을 괴롭히는 불안감이 동생들에게도 전해진 듯했다.
“크악!”
돌덩이를 내던지던 장안성의 병사가 단말마를 내지르면서 나가떨어졌다.
성벽 위를 가로지르면서 기름통을 운반하던 병사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에 꽂힌 채 절명하고 말았다.
“방덕 교위!”
“어서 화살을 더 가져와라.”
“아, 알겠습니다…!”
공성전이 점점 불리한 전황으로 치닫고 있다.
불리함을 인지한 방덕은 활을 치켜들었다.
신궁(神弓).
백발백중(百發百中).
그 어떤 단어로 신들린 궁술을 설명할 수 있을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마다 병사들이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상서복야 종요의 목숨을 노렸던 화살이다. 일반 병사들이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어째서 함락시키지 못하는 게냐!”
“주, 주군!”
“후방의 병력들까지 보내라! 전선의 장졸들에게 계속 분전을 명령해라!!”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모든 수단들을 동원하여 장안성을 공격했다.
그럼에도,
조조군의 장안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여러 대의 충차들을 동원했음에도 성문을 돌파하지 못했고, 운제들을 계속 투입했음에도 성벽 위에는 여전히 조조군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정서장군(征西將軍) 마등이 침음을 토해냈다.
보름 동안 벌인 총공세가 모두 무위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공성병기와 공병들까지 지원받았거늘…! 이대로 함락에 실패한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원소군으로부터 공성병기와 공병들을 지원받았다.
공손찬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역경루를 함락시킨 공성병기와 공병들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서량에 왔던 원소군의 사절에게 호언장담을 떨어대지 않았는가.
쿠우웅──!!
성벽을 공략하던 운제가 무너졌다.
시뻘건 화염에 잠긴 채,
아군 병력이 운집한 위치에 고꾸라졌다.
병사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불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참상이었다. 그 참상을 목격한 마등은 비명을 토해냈다.
“이보게, 수성!”
두려움에 휩싸인 것은 마등만이 아니었는지 진서장군(鎭西將軍) 한수가 달려와 소리쳤다.
속전속결로 장안성을 함락시킨 이후에 원소군과 사예주에서 합류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보름 동안의 파상공세가 실패했다.
원소군과의 합류는 물론,
관동(關東)에 입성하는 것조차도 불투명해졌다.
“백면서생을 상대로 이게 무슨 치욕인가!”
변방을 누비면서 수많은 전장들에 종군했던 마등과 한수는 치욕에 휩싸여야 했다.
전투를 한 번도 치러본 적 없는 애송이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다니. 한낱 백면서생에 불과한 놈에게 패퇴를 반복하고 있음에 수치심을 느꼈다.
“컥!”
“으아악!!”
성벽 위에서 돌덩이가 떨어졌다.
드센 저항을 보여주듯,
서량의 침략자들에게 돌팔매질이 가해졌다.
험준한 성벽에 의지하여 돌덩이를 나르고 내던지는 인원은 놀랍게도 장안성의 백성들이었다.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마적들이 연합하여 쳐들어왔다는 소식에 장안성의 백성들이 궐기했다. 계속 침략과 폭정에 시달려온 백성들은 서량 세력을 철저히 배척하고 나섰다.
“이 역적들아!”
“네놈들의 폭정을 좌시할 것 같으냐!!”
콰직-!
돌덩이를 맞은 마등군 병사가 나가떨어졌다.
머리를 정통으로 맞아버린 병사는 그대로 비명횡사했다. 다른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운제를 오르던 병사도 돌덩이에 맞아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동탁의 주구들이 몰려왔소!”
“모두 죽을힘을 다해 장안성을 지켜냅시다!”
백성들이 벌떼처럼 나섰다.
결코 굴복하지 않으리라.
역적들이 장안성을 침범하도록 좌시하지 않겠다.
농서동씨 가문의 가렴주구에 시달려온 백성들은 궁핍과 도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백성들은 독기어린 항전의지를 불태우면서 동탁을 따른 역적들에게 돌팔매질을 이어나갔다.
“이런 미친…!”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게로구나!”
조조군과 단합하여 결사항전에 나선 장안성의 백성들을 목격한 서량의 군벌들이 소리쳤다.
무지렁뱅이 따위가,
감히 관서의 대장부들을 가로막는단 말인가!
기필코 장안성의 백성들을 모조리 도륙해버릴 것이다. 마적 출신이었던 관서의 군벌들은 결사항전을 불태우는 장안성의 백성들을 향해 몰살을 선언했다.
“물러서지 마라!”
“뒷걸음질 치는 놈들은 내가 베겠다!”
장안성의 결사항전에 패색을 느낀 군벌들이 혹독하게 돌격을 명령하고 있었을 때,
“장안성의 백성들이…!”
활을 치켜들었던 방덕은 돌덩이를 내던지는 백성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침음을 삼켰다.
노약자는 물론,
심지어 여자와 아이들까지 있었다.
저들에게 어떻게 활을 쏠 수 있단 말인가.
검댕이가 묻은 얼굴로 돌덩이를 나르는 아녀자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손가락이 떨려왔다.
팽팽해질 때까지 활시위를 당겼던 방덕은 백발백중의 화살을 쏘지 못한 채 밑으로 내리고 말았다. 회의감이 밀려들었는지 낯빛이 흐려졌다.
“분전하라! 역적들로부터 장안성을 사수하라!!”
서량의 군벌들이 백면서생에 불과하다며 크게 업신여기던 종요는 매우 용맹하게 전선을 지휘했다.
화살들이 빗발쳤음에도,
종요는 대장기를 직접 흔들면서 용전을 촉구했다.
장안성이 무너지면 서량 기마군단의 말발굽에 의해 사예주가 모두 짓밟히게 된다. 그렇기에 종요는 결사의 각오로 전투에 임했다.
“놈들이 올라온다!”
“어서 끓는 기름을 뿌려라!”
보름이 흐른 뒤,
스무날이 되었음에도 장안성은 버텨냈다.
그러나 서량 연합군의 파상공세에 장안성의 수명은 빠르게 소모되어 갔다.
사면에서 동시에 가해지는 공세를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장안성 백성들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너덜너덜해진 성문과 성벽은 공세가 반복될 때마다 무너져갈 뿐이었다.
* * *
유벽과 공도가 지휘하는 황건적의 잔당들을 격퇴한 이성휘는 계속 여남군에 주둔했다.
두 도적들을 참살하였음에도 여전히 많은 불온세력들이 여남군 도처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원소군의 첩자들은 물론,
그와 내통하던 여남군의 사대부와 호족들을 색출하여 후환을 말살했다.
“노산(魯山)까지 들어왔던 유표군이 물러났어.”
남양군을 점령하면서 형주 전역을 석권한 유표군이 예주를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남군에 주둔하고 있는 이성휘가 부담스러웠던 유표는 결국 단념하고 군세를 철수시켰다.
지금은 예주를 침공할 시기가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남양군을 점령한 유표는 주력군단들을 번성으로 불러들이면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당장 급한 불은 끈 셈이군요.”
결국 유표군이 물러났다.
하후돈에게 보고를 받았던 이성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문제는 뒤에서 호박씨를 연신 까대는 사대부들이야. 무슨 낟알을 갉아먹는 쥐새끼도 아니고 계속 솎아냈는데도 판을 치고 있잖아.”
원소군과 내통하고 있는 사대부와 호족들의 발호는 멈출 수 없는 강물과도 같았다.
규모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들을 모두 색출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불안의 여지가 다분했기 때문에 이성휘는 황건적의 잔당들을 토벌하고 유표군의 철군을 확인했음에도 섣불리 허도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였다.
“사공 어르신의 명령입니다. 표기장군은 시급히 허도로 귀환해주십시오.”
끄나풀들의 색출에 애를 먹고 있었을 때,
군청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가 여남군에 도착했다.
여남태수(汝南太守) 만총.
원소를 지지하는 여남군의 토착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조조는 냉철하고 혹독한 성정의 관료를 투입했다.
반역을 획책했던 역적들을 끔찍하게 심문하는 것으로 유명한 냉혈한. 패국조씨 가문에 도전했던 수많은 정적들을 숙청해온 여인이었다.
“여남군의 무리들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만총과 함께 대리시에서 국문을 담당했던 위병들이 도착했다.
살갗을 찢어발기고,
팔다리마저 끊어버리는 고문기술자들.
드높은 권세를 자랑하는 고관대작들조차도 벌벌 떨면서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 조조는 불온세력을 말살하고자 만총에게 여남군의 전권을 건네주었다.
“허도로 돌아간다.”
여남태수로 임명된 만총에게 위임한 이성휘는 곧바로 귀환을 결정했다.
전선에서 치열한 격전을 펼쳤던 유비군도 이성휘를 따라서 허도로 향하게 되었다.
“꽤나 서두르시네요. 아들이 있다고 하셨죠?”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한 이성휘를 바라보면서 유비가 물었다.
그에 이성휘가 답했다.
“이남일녀다.”
아들 둘. 딸 하나.
다복한 가정사를 밝혔다.
“왜 나를 쳐다보는 거냐!”
“아니, 아무것도.”
노골적으로 빤히 쳐다보는 동생의 시선에 부담감을 느낀 흑발의 여인이 소리쳤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어깨를 움찔 떨면서 과민반응을 보였다.
올해로 세 살, 두 살을 맞이한 귀여운 도련님들.
관우의 새하얀 뺨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