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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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장군 이성휘는 예주 여남군에 주둔하면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했다.
여러 유화책들로 여남군의 사대부와 호족들을 아군으로 끌어들였음에도 여전히 많은 가문들이 여남원씨 가문을 추종하고 있었다.
여남원씨 가문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봉기할지도 모른다.
사대부와 호족들이 보유한 사병집단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여남군에서 오랫동안 번영을 거듭해온 세가들은 수백 명이 넘는 사병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변경에 숨은 황건적의 잔당들도 대비해야 됨!”
인형처럼 아기자기한 용모를 자랑하는 소녀가 발꿈치를 들썩이면서 말했다.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오밀조밀한 용모의 소녀는 사마의였다. 표기장군부의 꼬맹이 참모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여러 대책들을 마련했다.
“여남군의 사대부들이 황건적의 잔당들을 은밀하게 지원하고 있다고 함! 분명 원소군의 입김이 닿아있을 거임!”
“거기에 대해선 들었다.”
험준한 변경에 숨어들어 명맥을 끈질기게 이어나가고 있는 황건적 세력이 있다.
유벽과 공도,
두 도적들이 잔당을 이끌었다.
수천 명이 넘는 규모였기에 매우 위협적이었다.
일전에 여남군을 점령했을 당시에 잔당들을 쓸어버리려 했었으나 포기하고 말았다. 교활한 놈들은 험준한 산세에 꼭꼭 숨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놈들을 쓸어버려야겠지.”
이성휘가 사마의를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본좌한테 뭘 바람? 본좌는 모든 소원들을 척척 들어주는 요술주머니가 아님!”
황건적 잔당들을 일거에 쓸어버릴 대책을 은연중에 주문하는 이성휘의 행동에 사마의가 머리카락을 삐죽이면서 소리쳤다.
그에 이성휘가 말했다.
“흠…. 역시 공달을 데리고 왔어야 했나. 대국을 맡기기엔 여전히 미숙하군.”
“누, 누가 미숙하단 거임!”
“…….”
“알았음! 책략을 마련하면 될 거 아님!”
직속상관의 연이은 무언의 압박에 사마의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겠는가,
상관의 명령인 것을.
이성휘의 노여움을 받았다간 다시 후원의 마구간으로 좌천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사마의는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면서 순순히 따라야만 했다.
“흥…. 표기장군은 못된 어른임.”
오밀조밀한 소녀가 뺨에 바람을 넣으면서 투덜거렸다.
* * *
예주 여남군에 주둔한 이성휘는 유비군과 연합하여 황건적의 잔당들을 토벌했다.
지금까지 내통해온 사대부와 호족들을 미끼로 삼아 황건적들을 끌어내렸다. 험준한 산세를 제 발로 내려온 잔당들은 날카로운 병장기를 맞이해야 했다.
“소, 속았다…!”
“조조군 놈들의 함정이다!”
원소군으로부터 사주를 받고 병력을 소집하던 유벽과 공도는 수세에 직면했다.
놈들을 급습하려 했건만,
도리어 자신들이 역공을 당하게 되었다.
조조군과 유비군이 동시에 들이치자 잔당들은 혼비백산하여 패주했다. 대응하기를 포기하고 병장기들을 내버린 채 등을 돌렸다.
“예주의 버러지들이다! 다 죽여라!!”
패국의 여걸이 무거운 월도를 휘두르면서 사자후를 내질렀다.
원소군의 끄나풀들.
반드시 제거해야 될 후환이다.
하후돈이 붉은 머리카락을 나부끼면서 적진으로 난입했다. 무거운 월도가 휘둘러질 때마다 황건적 두령들이 피를 흩뿌리면서 쓰러졌다.
“건무장군을 따르라!”
“저 쓰레기들을 모조리 섬멸하자!”
만인지적의 용맹을 자랑하는 하후돈은 모든 장졸들이 존경하는 여장부였다.
늠름한 자태와 아름다운 용모,
들불처럼 타오르는 듯한 머리카락을 나부끼면서 전장을 누비는 그녀의 모습은 실로 매력적이었다.
누가 과연 그녀를 막아설 수 있을까.
진퇴양난의 전황에도 선봉장을 자처하면서 크게 활약하는 하후돈의 용맹은 장졸들의 귀감이 되었다.
“이 계집년이!”
“네년이 대장이로구나!”
말을 탄 두령들이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며,
당장이라도 하후돈을 짓밟을 것처럼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럼에도 하후돈은 태연했다.
침착함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월도를 늘어뜨렸다.
“그래, 덤벼라! 내가 패국의 하후원양이다!!”
쩌어억-!!
무거운 월도를 사선으로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맹진해오던 두령들이 말에서 떨어졌다.
바위처럼 육중한 참격에 쓸려나간 두령들은 외마디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두령들을 단숨에 베어버린 하후돈의 경이로운 무력에 경탄이 쏟아졌다. 장졸들의 선망과 동경을 받아들인 하후돈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면서 용맹한 미소를 지었다.
“유벽이라는 놈을 찾아라! 놈이 황건적의 총대장이다!”
“예, 건무장군!”
맹수와도 같은 용맹을 자랑하는 하후돈의 병력들이 전장을 돌파했다.
적의 반격을 진압한 뒤,
헐레벌떡 도망치는 잔당들을 끝까지 추격했다.
패국의 여걸을 따르는 장졸들이기 때문일까.
다른 부대들에 비해 월등히 용맹했다. 무수히 많은 병장기들이 겨눠졌음에도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유벽이다! 유벽이 도망친다!”
“누런 두건을 쓴 놈이 유벽이다! 당장 쫓아라!!”
종횡무진하며 날뛰던 하후돈의 장졸들이 이윽고 유벽을 발견했다.
유벽은 심복들과 필사적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젠장! 젠자앙-!!”
사마의의 유인계에 걸려든 유벽이 고함을 내지르면서 말을 재촉했다.
일생일대의 패착이다.
적의 속임수에 그대로 넘어가버리다니.
원소군과 여남군 사대부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세력을 확대하던 유벽은 한순간에 모두 잃고 말았다.
‘이 원한은 반드시 갚겠다, 빌어먹을 연놈들!’
하지만 그럼에도 유벽은 다시 세력을 일으킬 수 있다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사대부와 호족들로부터 계속 물자를 지원받고 있었기에 금방 세력을 복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놈들이 권역에 들어왔다!”
“우선 누런 두건을 쓴 놈부터 노려라!”
유벽과 그의 심복들이 도주하던 오솔길에 매복하고 있던 병력이 돌연 모습을 드러냈다.
조조군이었다.
수백 명의 궁수들이 일제히 활을 겨누었다.
전투에서 대패한 유벽이 곧장 줄행랑을 칠 것을 예견하고 매복을 준비한 것이리라.
“크하악!!”
날카로운 화살들이 사방에서 쏘아지면서 유벽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렸다.
회생의 여지조차 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고슴도치가 된 채 쓰러졌음에도 일제사격이 이어졌다.
퍼부어진 화살들에 거의 파묻히다시피 박힌 뒤에야 사격이 끝났다. 여남군의 토착세력과 손을 잡고 조조군을 뒤엎으려 했던 유벽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러다가 공을 다 빼앗기겠어!”
조조군이 압승을 거둬냈다는 소식을 입수한 장비가 다급하게 움직였다.
적장 유벽이 죽었다.
남은 것은 공도의 목숨뿐이었다.
벼락출세와 일확천금에 혈안이 된 장비는 부하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면서 수색에 나섰다.
앞을 막아서는 수많은 황건적들을 격퇴함으로서 전공을 세웠음에도 만족을 못했는지 어떻게든 우두머리를 찾아내려고 했다.
“자, 장군! 저기 보입니다!”
“저 개새끼는 무조건 내가 죽인다!”
야차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소녀가 장팔사모를 붕붕 휘두르면서 전장을 돌파했다.
적들이 달려들었음에도,
장비는 박차를 가하면서 전력질주를 이어나갔다.
푸화악-!
푸하아악──!!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돌개바람이 몰아치듯,
거친 광풍과 함께 날카로운 참격이 지나갔다.
감히 일기당천의 맹장을 가로막았던 황건적들이 도륙을 당했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발겨진 채 차디찬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그만! 투항하겠다!!”
누런 두건을 쓴 남성이 소리쳤다.
그럼에도 휘둘러진 병장기가 멈추는 일은 없었다.
“운장 언니?!”
도망치던 공도의 목을 벤 무장은 관우였다.
흑발을 늘어뜨린 아름다운 여장부는 우연히 공도를 발견하고는 청룡언월도를 휘둘렀다.
딱히 노리진 않았으나,
총대장의 수급을 베는 전공을 세우게 되었다.
눈앞에서 출세와 포상의 기회를 빼앗겨버린 장비는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언니를 바라보았다. 흐리멍덩한 동생의 시선에 관우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내가 혹시 뭘 잘못 했나?
눈동자를 슬슬 굴리면서 눈치를 보았다.
“어, 언니…!”
“왜 그러느냐.”
“양보… 해주면 안 될까?”
“마음대로 해라.”
장비가 공도의 주검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에 관우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적장의 수급 따위야,
다른 전장에서 언제든지 취할 수 있으니.
“고마워! 내가 참한 남자아이라도 구해올게!”
“다, 닥쳐라!”
수많은 병사들이 보는 현장에서 치부를 밝혀버리는 장비의 행동에 관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결코 밝혀져선 안 된다.
어린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무장이라니….
만천하에 밝혀지게 된다면 지탄을 면하기 어려우리라.
“크흠! 큼큼큼!!”
절대로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민망한 성벽을 보유한 여걸은 누가 들었을까 헛기침을 크게 늘어놓았다.
“근데 다 아는 사실 아냐?”
“분명 우리 군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지.”
관우가 어린 남자아이를 밝힌다는 사실은 유비군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모르면 간첩일 정도였다.
실제로 유비군은 그를 암구호처럼 사용했다.
민망하다는 반응을 보였던 유비군 병사들은 여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함구해주기로 했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어서 움직여라!”
관우가 크게 일갈했다.
“쳇! 맨날 운장 언니는 민망할 때마다 그러더라.”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투덜대는 목소리를 중얼거리던 장비는 언니의 날카로운 시선에 결국 발걸음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