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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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패자로 군림하던 조조군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조조군은 무적이 아니다.
그들이 삼면전쟁(三面戰爭)에 흔들리고 있었다.
세 방면에서 동시에 세력들을 맞이하는 전황이었기에 조조군은 어깨가 짓눌릴 듯한 부담과 중압감을 느껴야만 했다.
“황실과 조정의 위엄을 짓밟아온 조조를 폭정의 옥좌에서 끌어내릴 걸세!”
상투관을 눌러쓴 노년의 남성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일갈했다.
역적이 쓰러질 때가 머지않았다.
연주를 대표하는 사대부인 변양이 소리쳤다.
소싯적에 대장군 하진에게 중용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문재와 성품으로 명망이 높았던 변양은 조조의 통치를 줄곧 반대해온 오랜 정적이었다.
조조군의 누명과 모함으로 재산을 모두 몰수당하는 굴욕을 당해야 했던 변양은 독기를 품은 눈길로 사내를 바라보면서 거병에 가담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어르신… 제가 어찌 오랜 막역지우를 배신할 수 있겠습니까.”
연주자사(兗州刺史) 장막이 고개를 푹 숙이면서 무거운 시름을 토해냈다.
어떻게 오랜 벗을,
거병에 동참했던 동지를 배신할 수 있겠는가.
장막은 뼛속까지 충심과 인의를 중시하는 협사였기에 배신을 종용하는 변양의 부탁에 난색을 표시했다.
“자네도 우리들처럼 내쳐진 처지가 아닌가!”
조조는 장막을 허도로 부르지 않고 연주에 계속 머물게 했다.
자신을 보필해온 심복들을 요직에 임명하면서 실권을 내렸음에도 장막에게는 연주자사의 감투만을 생색내기처럼 던져줬을 뿐이다.
실로 너무한 박대였다.
이게 바로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아니겠는가.
변양은 조조의 냉혹한 용인술을 지적하면서 장막에게 가담해줄 것을 재차 요구했다.
“자네는 원본초와도 오랜 지기라고 들었네. 그런데 어찌하여 망설이는 것인가? 연주의 모든 성문들을 열어 원소군을 맞이하도록 하게. 일등공신이 될 천재일우의 기회일세.”
원소군은 연주자사 장막이 내응해주기만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안량과 문추를 하동군으로 보내어 조조군이 사예주에 집중하도록 유도했다. 연주에서 반란모의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게끔 말이다.
모두 전풍의 책략이었다.
연주에 첩자들을 파견하여 내통을 유도해온 전풍은 변양을 동원하여 장막을 반란에 끌어들이도록 했다.
만약 장막이 투항해온다면 조조군의 핵심지역인 연주가 단번에 떨어지게 될 터.
완전무결한 승리를 거두려는 전풍의 속셈이었다.
“맹탁, 무엇을 망설이는가!”
“…….”
변양이 꾸짖듯이 말했다.
그에 장막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혹여 조맹덕이 감찰로 심어둔 장수들 때문에 그러는가? 걱정 말게! 원소군에 신호를 보내면 제북(濟北)에 매복하고 있는 군세들이 단번에 연주를 들이칠 테니!”
실로 주도면밀했다.
은밀하게 병력을 준비시키다니.
제북은 연주로 들어오는 입구와 같은 곳이다. 어떻게 이토록 은밀하게 군사를 매복시켰단 말인가.
대국을 꿰뚫는 원소군의 신출귀몰한 전략에 장막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예전부터 본초는 매사에 철저한 성격이었지. 한 치의 오점조차 용납하지 않는 완벽함을 추구해왔으니.’
절대로 원소를 숙적으로 돌려선 안 된다.
그 말을 했던 이는,
놀랍게도 그녀와 대척점에 선 조조였다.
실로 기구한 운명이 아니던가.
장막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린 조조와 원소의 관계를 한탄했다.
“연주자사!”
“어찌하여 대답을 주저하십니까!”
변양과 독대하던 집무실에 사대부와 호족들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바깥에서 듣고 있었는지,
대답을 계속 주저하는 장막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인원 중에 장막의 동향들도 있었다.
장막은 연주의 동평국이 고향이었기에 사대부와 호족들과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동향들까지 나서서 부탁을 거듭하자 장막은 곤혹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맹탁, 부디 뜻에 동참해주게!”
“황실과 조정을 기만해온 패국조씨 가문을 함께 몰아내세나!”
조조는 종친과 심복들을 동원하여 지방의 토착세력을 억압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일부 가문들을 끌어들였을 뿐,
대부분의 사대부와 호족들이 조조군에게 핍박을 당해야 했다.
실로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사대부와 호족들의 불만이 쌓이는 것은 당연했다.
“조맹덕은 사람을 물건처럼 여긴다네. 자신에게 쓸모가 있는 인사들에게만 마음을 열지 않나.”
능력을 중시하는 구인령은 분명 이상적인 정책이었다.
그러나,
능력으로만 재목을 재단하는 용인술은 수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무능력한 사람들을 한낱 미물로 취급해버리는 조조의 용인술은 차가운 칼날과 같았다. 권력에서 철저히 배제당한 이들은 조조의 냉혹함에 치를 떨었다.
“화음후 어르신의 서한일세. 어르신도 자네가 거병에 동참해주기를 바라시네.”
“……!”
황제의 외척마저 원소군에 가담했다는 사실에 장막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변절자들이 대체 얼마나 많단 말인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수많은 정적들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친우에게 연민을 느꼈다.
“확실히 어르신의 서한이군.”
동향에게 건네받은 서한을 확인한 장막이 숙연함에 물든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하다.
틀림없는 화음후 동승의 서한이었다.
이로써 허도에 있는 고관대작들 중에서도 원소군과 내통하는 인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맹덕, 이 친구야…. 대체 얼마나 많은 적들을 만들어냈단 말인가. 독불장군 같은 성격이 언젠가 화근이 될 것이라고 누누이 일러주지 않았나.’
고집불통 같은 독단적인 성격이 정적들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불만을 공포로,
반대를 두려움으로 억눌러온 여파였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뿐인 과감한 결단력이 도리어 반발을 만들어낸 것이다. 연이어 억눌러온 불만과 반발이 결국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 * *
연속해서 종친과 심복들을 전선으로 파견한 조조는 친정(親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공손찬을 정벌했을 때처럼 원소는 직접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려고 할 것이었다.
피하지 않겠다.
너와 당당히 맞서겠다.
조조는 숙적과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일념으로 군세를 소집했다. 최대한의 병력으로 천하의 패권을 다투겠다는 의도였다.
“만약 출정하게 된다면… 허도를 맡기겠다.”
친정을 나서게 될 때를 대비하여 미리 상서령 순욱에게 교지를 내렸다.
순욱은 황실과 조정으로부터 신임을 받는 고관대작이자 문관들을 대표하는 재상이었다. 또한 진궁과 함께 내정을 총괄해온 참모였기에 전권을 위임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예를 취하면서 공손한 어조로 대답했다.
주군의 무한한 신뢰에 감읍할 따름이었다.
그 어떤 칠난팔고(七難八苦)에도 허도를 지켜낼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묘재는 떠났는가?”
“예, 방금 여건 장군과 함께 출격했습니다.”
조조는 하후연과 여건을 연주성에 파견하여 연주자사 장막을 보필하도록 명령했다.
불만과 반대를 주장해왔던 연주의 정적들이 장막과 여러 번 만남을 가졌다는 보고가 군사좨주 곽가의 첩자들로부터 전해졌기 때문이다.
장막을 불러들여야 한다.
곽가는 새 연주자사를 임명할 것을 진언했다.
하지만 조조는 사대부와 호족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장막을 전황만으로 전임시킬 순 없는 일이라며 진언을 보류했다.
인의를 누구보다 중요시하는 장막이 버러지들의 속삭임에 넘어갈 리가 없다.
호탕한 포부의 친우를 두텁게 신뢰했기에 하후연과 여건을 파견하는 선에서 끝냈다.
“교위(校尉) 전위를 좌중랑장(左中郎将)으로 임명하겠네. 앙이와 비를 지킬 무관이 필요하니.”
조조는 하후돈의 부장이었던 전위를 선발하여 방위군을 지휘하는 좌중랑장에 임명했다.
용맹하고 충성심이 깊다.
사촌 하후돈에게 귀가 따갑도록 칭찬들을 들었기에 전위를 중용했다.
통치에 반대하는 불온세력들의 준동을 우려한 조조는 전위를 비롯한 수많은 장수들을 요직에 두었다.
“많이 불안하신 것 같습니다.”
“왜 그렇지 않겠나.”
순욱의 말에 조조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켜야 할 가족들이 생겼으니.”
일신의 안위만을 책임질 뿐이었던 예전과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사랑하는 남편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 생겼다.
반드시 가족들을 지켜내겠다.
결연한 눈빛을 보이면서 필사의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본초…. 너한테만큼은 절대로 질 수 없다.’
한 사내를 사이에 두고 쟁탈전을 벌였던 옛적이 떠올랐다.
이미 흘러간 과거였음에도,
불여우 따위에게 지지 않겠다는 호승심이 마음속에 잔존하고 있었다.
천하도. 이성휘도.
너한테는 무엇 하나 넘겨줄 수 없다.
과거의 자신이 품었던 결연한 맹세를 회상했다.
“주군.”
문 너머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사좨주 곽가였다.
참모의 부름에 조조는 집무실의 출입을 허락했다.
“손견군이 사절을 보내왔습니다. 기도위(騎都尉) 오경이라는 인물입니다.”
“…손견?”
주황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성의 보고에 조조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손견이라면…,
원술군의 패망을 예견하여 단양군으로 도망쳤던 장수가 아닌가.
무슨 이유로 손견이 사절을 보내왔단 말인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조조의 입장에서 손견은 원술을 추종하던 끄나풀에 불과했다. 관동 연합군 당시에 이성휘와 함께 공투를 했던 적이 있었으나 원술의 졸개라는 점을 감추기 어려웠다.
“일단 이야기는 들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휘하들을 이끌고 단양군으로 향했던 손견은 뛰어난 무용과 통솔력으로 양주의 군현들을 제패했다.
오군. 단양군. 예장군.
양주의 군벌들을 모두 몰아내고 깃발을 꽂았다.
단기간에 급속도로 성장한 손견군의 수완을 무시할 순 없었기에 순욱은 조조에게 사절을 만나볼 것을 권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