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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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군과 유표군에 이어 서량의 군벌들까지 거병했다는 급보가 허도에 도착했다.
서량의 버러지 놈들이!
급보를 들은 조조가 이를 빠득 갈았다.
광활한 벌판을 새카맣게 뒤덮어버릴 정도의 대군이 장안성을 급습했다.
과거 동탁군과 동맹을 맺은 전적이 있는 마등과 한수가 다시금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조정대신들은 대경실색을 금치 못했다.
“상서복야가 장안성을 지키고 있지 않소?”
“급습해온 반란군의 병력이 무려 수만 명에 이른다고 들었소이다. 상서복야가 서량의 역적들을 과연 막아낼 수 있을지….”
조정대신들이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상서복야 종요가 장안성으로 파견된 것은 오랫동안 이어진 관중의 혼란과 기근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만약 마등과 한수가 반란을 일으킬 줄 알았다면 결코 백면서생을 보내진 않았겠지. 서량의 군벌들이 일으킨 대규모 반란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혼란이었다.
“당장 장안성으로 투입시킬 수 있는 병력은 얼마나 되는가?”
“대략… 5천 정도입니다.”
홍농군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이 즉각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의 전부였다.
다른 전선에서 병력을 차출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섣불리 병력을 투입했다가 오히려 서량의 반란군에게 역공을 당할 위험이 있었다.
당장 장안성을 구원할 방법이 없다.
곽가의 대답에 조조는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자렴.”
“네, 언니!”
잠시 심사숙고하며 고민하던 조조가 관자놀이를 짓누르면서 사촌을 호명했다.
그에 조홍이 예를 취하면서 나섰다.
“당장 호표기병대를 이끌고 출진해라. 인근 군현의 병력을 최대한 긁어모아서 동관을 막아라.”
최대한 서두른다고 하더라도 장안성이 함락되기 전까지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조조는 ‘동관(潼關)’의 사수를 명령했다.
동관은 관중 지역을 양분하는 관문이다. 관서의 반란군을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결코 뚫려선 안 되는 요충지였다.
그래서 조조는 장안성을 내어주는 불상사가 있더라도 동관만큼은 무조건 사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차라리 제가 가는 게 상책이지 않겠습니까.”
이성휘가 물었다.
그에 조조가 고개를 내저었다.
“성휘는 그대로 명령을 이행하게. 사면초가에 놓인 유비군을 구원하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니.”
“…예, 알겠습니다.”
유비군의 구원을 우선시하라는 조조의 의견에 일리가 있었기에 수긍했다.
북쪽의 원소.
남쪽의 유표. 서쪽의 마등과 한수.
죽음의 그림자처럼 압박해오는 포위망에 경계를 품으면서도 조조를 굳게 신뢰했다. 그녀의 판단이 옳다고 믿기에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그럼 자효는….”
“예, 저도 출진하려 합니다.”
이성휘의 말에 조인이 대답했다.
목적지는 관도(官渡),
원소군과의 격전이 예상되는 최전선이었다.
허도를 수비하는 중앙군 병력을 이끌고서 건곤일척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조조는 가장 다급하고 막중한 임무를 사촌 조인에게 일임했다.
“심려 마십시오, 언제나 그랬듯이 책무를 완수해내겠습니다.”
조인이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들을 승리로 이끌어오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또한 승전보를 거둘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 출진은 앞으로 벌어지게 될 거대한 전쟁의 승패가 달린 일이기로 했기에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었다.
반드시 해내겠다.
기필코 책무를 완수하겠다.
그녀의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에서 무거운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견고한 자신감을 보이는 조인의 모습에 이성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양 님.”
“어, 알았어.”
이성휘의 부름에 하후돈이 다가왔다.
곧 출진이다.
하후돈은 이성휘의 부관을 맡게 되었다.
거대한 월도를 짊어진 패국의 여걸이 기세등등하게 몸을 일으켰다. 계속 이성휘를 보좌했던 조인을 대신하여 부관이 된 것이었기에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럼 시녀들… 아니, 여포와 장료는?”
“육군(六軍)은 허도에 주둔할 예정입니다. 비상시에 동원할 전력은 항상 남겨둬야 하는 법이니까요.”
장료에게 육군의 지휘권을 위임한 이성휘는 하후돈과 함께 여남군의 병력을 이끌 계획이었다.
유표군의 집요한 파상공세를 직면한 유비군은 분명 사력을 쏟아내며 예주 방면으로 빠져나올 터. 최대한 서두른다면 최악의 국면만큼은 피할 수 있으리라.
* * *
유비군은 필사의 퇴각을 시도했을 때부터 설상가상이나 다름없는 최악의 국면에 시달리고 있었다.
쏟아지는 화살 세례.
사방에서 몰아치는 적의 파상공세.
이게 최악이 아니면 대체 뭐가 최악이란 말인가?
계속해서 뒤처지는 후미의 장졸들을 지휘하던 관우는 집요하게 추격해오는 유표군을 바라보면서 힘겨움에 찬 호흡을 내쉬었다.
“크하악!!”
청룡언월도를 힘껏 휘두르며 적장을 쓰러트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적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번성에 주둔하던 적의 주력부대들이 분명했다.
형주자사 유표의 사냥개들이 마침내 턱밑까지 쫓아온 것이리라. 계속된 유표군의 맹공에 유비군은 심각한 고전을 겪게 되었다.
“씨발! 씨발! 씨이발!! 역시 그 납작이 년을 따르는 게 아니었어!”
무거운 장팔사모를 거침없이 휘두르면서 용력을 뽐내던 소녀가 소리쳤다.
너무 많다.
아무리 베어도 끝이 없었다.
노도처럼 밀려드는 유표군을 바라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양양성을 출격했던 병력들이 모두 투입된 것처럼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였다.
“현덕 언니는 왜 납작이 년을 따라가지고!”
“예? 출전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신 분이 익덕 님이잖습니까….”
“닥쳐!”
벼락출세와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서 조조군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인물은 다름 아닌 그녀였다.
고급장군의 벼슬.
넓은 봉토와 어마어마한 포상.
제안을 듣자마자 흔쾌히 제안을 물었다.
하지만 본인이 속물임을 인정할 수 없던 장비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부관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 형주의 버러지들아! 내가 바로 연인(燕人) 장익덕이다!”
장팔사모를 치며들면서 호기롭게 나섰다.
사자후처럼 크게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거침없이 달려들던 유표군이 주춤했다.
혈혈단신으로 앞을 가로막는 적들에게 달려든 여장부가 무거운 일격을 휘둘렀다. 마치 고기를 분쇄하듯 장팔사모가 휘둘러질 때마다 유표군이 처절하게 쓸려나갔다.
“익덕…!”
온몸이 피로 물들 때까지 혈전을 벌이던 백발의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계속 난전을 벌였는지,
좌우로 뻗은 쌍검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유비는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면서 아군을 위협하던 유표군의 공세를 격퇴해냈다.
연이은 격전으로 온몸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음에도 유비군은 처절하게 용력을 뽐냈다. 이윽고 유비군은 천신만고 끝에 남양군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이것들이 진짜 미쳤나?!”
그러나 죽을힘을 다해 포위망을 돌파해낸 유비군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표군은 추격을 계속 감행했다. 그에 장비가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를 토해냈다.
예주로 접어들었음에도,
유표군은 거머리처럼 달라붙을 뿐이다.
자신에게 치욕을 안긴 계집년들을 무조건 척살하라는 유표의 엄명을 받은 형주의 장졸들은 집요할 정도로 뒤를 따라붙었다.
“허억!”
“크하악!!”
강행군에 낙오된 유비군 병사들이 연이어 안타까운 비명을 토해내면서 쓰러졌다.
온몸으로 피를 뿜어내며,
병장기와 함께 차디찬 바닥에 몸을 눕혔다.
공세가 이어질수록 사상자들은 빠르게 늘어났다.
이대로 유린당할 뿐이라면 전멸을 피할 수는 없을 터. 결국 적들에게 몰살을 당하게 되리라.
“이렇게 된 이상, 동귀어진을…!”
장비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까득.
장팔사모를 두 손으로 움켜쥐면서 중얼거렸다.
의자매와 부하들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희생을 받아들이겠다. 그것이 바로 무장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동생으로서.
무장으로서.
초개처럼 목숨을 내던져야 할 때였다.
“다 덤벼라, 이 개자식들! 한 놈이라도 더 지옥으로 끌고 가주마!!”
날카로운 창끝을 겨누면서 사방을 포위한 적들에게 소리쳤다.
담대한 용기를 토해내며,
혈혈단신으로 만인(萬人)을 대적하려 했다.
도원결의를 맺었을 당시에 언니들을 위해 죽겠노라고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을 책임질 때가 왔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소녀가 두 눈을 부릅뜨면서 앞을 가로막자 유표군은 크게 술렁이게 되었다. 병장기를 높게 치켜들면서도 함부로 다가서려 하지 않았다.
“익덕!”
힘겨운 호흡을 내쉬면서 병장기를 휘두르던 관우가 의동생을 불렀다.
그러나,
의동생은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장팔사모를 치켜든 여장부는 언니에게 뒷모습을 보이면서 적들에게 돌격했다. 실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결사의 질주였다.
* * *
머지않았다.
계속해서 밀어붙인다면 저 빌어먹을 년들을 찢어발길 수 있을 터.
군세를 지휘하던 채모와 장윤은 사면초가에 직면한 유비군을 노려보면서 이를 빠득 갈았다.
형주 남양군에서부터 추격하여 예주 여남군에 이르렀다. 신야성을 급습한 계집년들을 말살하기 위해 강행군을 거듭해야 했던 유표군은 독기에 찬 상태였다.
“죽여라! 귀 큰 년을 어떻게든 죽여!!”
사람을 놀리는 것처럼 토끼 귀의 모양을 한 머리장식을 달고 있는 미친년.
일단 그 년부터 죽이는 게 먼저다.
도독(都督) 채모는 악에 받친 표정을 지으면서 살의를 토해냈다. 당장 유비를 죽이라며 무관들을 계속해서 진격시켰다.
“도, 도독!!”
채모가 휘황찬란하게 장식한 보검을 붕붕 휘두르면서 잇달아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을 때,
번성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형주자사 유표가 보낸 전령이었다.
그에 채모는 매형께서 계집년들의 생사를 확인하고자 보낸 것이라고 여겼다.
워낙 샌님이시니 병사들의 노리개로 삼으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아닐 테지. 적장들을 번성으로 끌고 오라는 명령일 가능성이 높았다.
“당장 군세를 물리라는 분부이십니다!”
“뭐…?”
전령이 크게 외쳤다.
번성에서 도착한 분부에 채모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되물었다.
군세를 물리라니.
그건 또 무슨 해괴한 소리란 말인가.
채모는 두 눈을 부릅뜨면서 명령을 전달했던 전령을 노려보았다. 적의 첩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듯했다.
“저, 정말입니다…! 여기 주군께서 보내신 명령서입니다!”
전령이 억하심정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형주자사의 관인이 찍힌 명령서를 내밀었다.
촤르륵.
낚아채듯 전령에게서 건네받은 채모는 명령서를 황급하게 펼쳤다.
바들바들 떨리는 눈빛으로 명령서의 내용을 확인한 채모는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내질렀다.
“이, 이!! 이 강동의 쥐새끼들이──!!!”
강동의 손견군이 강릉(江陵)과 강하(江夏)를 동시에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틈에 전면전을 벌이려는 듯,
장강과 인접한 군현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리고 있다고 한다.
쥐새끼처럼 빈집을 쑤셔대는 손견의 모습을 떠올린 채모는 크게 분개하면서 휘황찬란한 보검을 땅바닥에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