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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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주목(益州牧) 유언은 마등과 한수에게 익주의 물자들을 무상으로 제공해주었다.
장남 유탄을 보내어 동맹을 맺었으며,
또한 교위(校尉) 손조를 은밀하게 한양군(漢陽郡)으로 투입하여 서량의 군벌들을 돕게 했다.
동탁군이 패망한 이후부터 급속도로 성장한 서량의 군벌들을 지원하여 조조군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물자가 풍부한 익주 세력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제공받은 마등군과 한수군은 2년 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거친 덕분에 조조군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전열을 갖춰라!”
“제장들은 공성을 준비를 하라!”
서량 출신의 무관들이 병장기를 치켜들면서 고함을 내질렀다.
공성전을 위한 대열을 갖추라.
명령이 떨어지자 수만 명의 병력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황야에서 살인과 약탈이나 일삼던 마적떼들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움직임이 정연했다.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정규군처럼 움직이는 서량군의 모습에 장안성에서 웅거하던 조조군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세상에!”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단 말인가…!”
동탁군에게 배척당해 변방을 떠돌았던 서량 군벌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군기와 군율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머릿수를 내세울 뿐인 황건적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 무식한 서량 촌놈들이 저토록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성벽 위에서 서량군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장졸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듯한 낯빛이었다.
“변경에서 빈번하게 약탈을 벌이던 마적들이 몇 년 동안 오리무중이더니… 분명 무위군에서 은밀하게 군사훈련을 해온 것이 분명합니다, 형님!”
기도위(騎都尉) 종진이 침음을 토해냈다.
악몽이다.
지독스러운 악몽이 분명했다.
짐승처럼 야만스럽던 놈들이 마치 정규군으로 변모하다니. 굳게 전열을 갖추면서 공성을 준비하는 서량군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던 서량의 군벌들이 서로 단결했단 말인가…! 배신과 분열을 거듭하던 놈들이 손을 잡을 줄이야!’
관서(關西)의 군벌들이 뭉쳤다.
계속된 분열을 종식한 뒤,
하나의 연합체로 모여들게 된 것이다.
도합 수만 명에 이르는 대군이 장안성을 포위했다.
마등의 장녀인 마초가 선봉장으로 나서자 서량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금마초(錦馬超)의 위명이 서량에서 절대적으로 통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맹기…!”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위풍당당한 면모를 드러냈다.
창을 높게 치켜든 채,
강대한 무력을 자랑하는 동생들과 함께 나섰다.
당장이라도 공격을 개시할 것처럼 살벌한 서량군의 모습에 종요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전황을 주시하던 다른 장졸들도 마찬가지였다.
“장안성의 장수들은 당장 길을 열어라!”
마초가 사자처럼 포효하듯 소리쳤다.
강압이 목적이었는지,
마휴와 마철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우리들이 거병한 것은 황실과 조정을 농단하고 있는 간적(奸賊)의 무리들을 처단하고자 함이다! 명령에 따랐을 뿐인 너희들에게는 여죄를 묻지 않겠다. 그러니 당장 성문을 열어 우리들을 맞이하라!”
마초가 아버지 마등을 대신하여 거병의 대의명분을 주장했다.
황실과 조정을 농단하는 간적의 무리들. 분명 조조군을 말하는 것이리라.
마초의 일장연설을 들은 장안성의 장졸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변방의 무리들이 갑자기 대의명분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닥쳐라, 이 역적 년아!”
“동탁을 따른 졸개들이 잘도 지껄이는구나!”
종요는 혹시라도 서량군의 엄포에 장졸들이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일까 우려했다.
하지만 장안성의 장졸들은 서량군에게 격앙된 모습을 보이면서 종요의 불안을 해소시켰다.
조조를 향한 존경심으로 무장한 장안성의 장졸들은 서량의 잡졸에게 얌전히 투항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충성스러운 장졸들이여 군기를 들어라! 용맹한 장졸들이여 무기를 들어라!”
갑주를 걸친 종요가 장졸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에,
장졸들이 일제히 병장기를 높게 들었다.
호기로운 고함소리와 함께 전의를 발산하면서 서량군에 대적했다. 성벽 위에서 들리는 쩌렁쩌렁한 고함소리에 마초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결국 스스로… 독주를 마시겠다는 건가!”
수천 명에 불과한 병력 주제에 항전을 선택한 어리석음에 비웃음을 던졌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자랑하던 장안성은 두 역적들이 저지른 대방화에 불타고 말았다.
급히 보수한 첨탑.
엉성하게 쌓아올린 성벽까지.
결사항전을 하더라도 대방화의 참상이 여전히 남은 장안성에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결국 장안성은 아군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될 것이었다.
“간적들이 결국 항전을 선택했다! 모든 제장들에게 총공격을 알려라!”
“예, 누님!”
마초의 명령에 마휴가 근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놈들이 제안을 거부한 이상,
이제 무력으로 장안성을 떨어트리는 일만 남았다.
장안성을 다스리는 인물은 전쟁터를 종군해본 경험이 없는 백면서생이라고 들었다. 만용에 가까운 결의에 도취되어 행동할 뿐인 백면서생 따위는 단숨에 제압할 수 있으리라.
“장안성을 공격하라!”
“서량의 제장들이여, 장안성을 짓밟으라!!”
양주와 옹주의 군벌들이 혈기왕성한 목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우리들의 진군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장안성을 짓밟은 뒤,
악해빠진 놈들로부터 천하를 훔칠 것이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
뒤이어 나팔소리가 울렸다.
천지를 가득 뒤덮을 듯,
총공세의 발걸음이 세차게 이어졌다.
수만 명에 달하는 서량 연합군이 크게 범람하는 파도처럼 움직였다. 거대한 파도는 단 일격에 장안성을 무너뜨릴 것처럼 사납게 몰아쳤다.
* * *
조조군이 점점 수세에 직면할수록 패국조씨 가문의 정적들은 교활한 속삭임을 이어나갔다.
계속 물러서다가 끝내,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게 될 터.
황실과 조정을 장악하고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패국조씨 가문은 곧 몰락하리라. 정적들은 원소군에 호응하고자 내부에서 혼란을 일으키려고 했다.
“원소와 유표… 유언은 물론 마등과 한수까지 움직였습니다. 사방에서 총공세를 가하고 있는 겁니다!”
소무장군(昭武將軍) 오자란이 소식을 전했다.
바깥에서 파상공세가 가해지고 있음을 들은 화음후(華陰侯) 동승은 쾌재를 부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패국조씨 가문이 몰락할 때가 왔다.
공융과 함께 중상모략을 획책했다는 이유로 조조군에게 오랫동안 감시와 경계를 받아왔던 동승이었기에 그것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어르신, 방금 원소군의 세작들로부터 서한이 도착했습니다. 바깥에서 파상공세를 펴는 것과 동시에 내부에서 혼전계(混戰計)을 획책해달라고 합니다.”
“물론일세!”
동승은 조조군으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는 상태였음에도 원소군의 세작들과 내통하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세 달에 한 번씩은 서한을 주고받았다.
충용(忠勇)과 의협(義俠)으로 명망을 떨친 원소라면 간악한 조조를 능히 몰아낼 수 있을 터.
황제의 외척이었음에도 모든 권력을 패국조씨 가문에 빼앗기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동승은 원소군을 동원하여 조조군을 완전히 일소하려고 했다.
“자네 덕분에 일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네. 과연 편장군이 추천한 인재로군!”
“과찬이십니다, 어르신.”
동승은 군부의 기밀까지 상세하게 전달해준 오자란에게 고관대작의 벼슬을 약속했다.
기밀을 알려준 것은 물론,
원소군의 세작들과 내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조조군의 대대적인 숙청으로 변방으로 유배를 추방당하거나 미관말직으로 좌천을 당했던 동지들의 면면을 떠올린 동승은 이를 빠득 갈면서 결의를 다졌다.
“문거와의 접촉은 어찌 되었는가?”
동승이 물었다.
그에 오자란이 난색을 표하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몇 번이고 공융 공과 접촉하려 했습니다만… 너무도 감시가 삼엄하여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조조 년이 두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테니.”
황제의 장인이었던 덕분에 숙청의 칼날을 가까스로 비껴갈 수 있었던 동승과는 달리 공융은 주모자로 낙인찍힌 채 영천군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공융과의 소식이 끊어졌다.
조조군으로부터 철저히 감시를 받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적들의 소굴이나 다름없는 영천군에 감금된 충의지사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이라도 거병을 획책하고 싶으나…, 혁명의 동지들이 모두 숙청에 휘말려 전국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는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감이 잡히질 않는군.”
조조의 대대적인 숙청으로 패국조씨 가문의 정적들은 힘을 대부분 상실하고 말았다.
또한 동승도 마찬가지였다.
황제의 장인이며,
열후에 책봉된 고관대작이었음에도 그 어떤 실권도 없는 꼭두각시 신세였다.
지금부터 거사를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무슨 뾰족한 수단이 있겠는가? 조조의 교활한 끄나풀에게 금방 발각당할 게 틀림없었다.
“어르신, 방안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방법인가?”
오자란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에 동승이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