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화>
==========================
안량과 문추가 위군(魏郡)에 주둔하고 있던 삼군(三軍)을 움직였다.
하북을 제패했던 두 도독들은 위풍당당한 엄숙함을 보이면서 군세를 지휘했다. 드센 용력을 떨친 하북의 장졸들은 망설임 없이 황하를 넘어섰다.
조조의 오만함을 꺾어주겠다.
안량과 문추가 말에 박차를 가하면서 뛰어들었다.
“하동군을 공격하라!”
“용장들이여, 조조군을 짓밟아라!”
쩌렁쩌렁한 고함소리와 함께 공세가 시작되었다.
원소군의 목표는 사예주,
삼보 지역과 인접하고 있는 하동군(河東郡)이었다.
공세가 벌어지기 무섭게 시뻘건 불길에 차올랐다.
“절대로 성을 빼앗겨선 안 된다! 지원군이 올 때가지 버텨야 한다!!”
하동군을 수비하고 있던 기도위(騎都尉) 한호가 원소군을 대적했다.
사예주의 병력들이 형주 전선으로 차출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약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원소군이 사예주 방면으로 파상공세를 벌일 것을 미리 예견했던 조조군은 견고한 성과 요새를 요충지들마다 구축하였기에 공세에도 쉽게 뚫리지 않았다.
“원소군이다!”
“어서 활을 쏴라!”
조조군의 궁병들이 견고한 성벽에 몸을 의지하면서 화살 세례를 가했다.
사예주는 사공(司空)의 영역이다.
결코 하북의 촌놈들에게 넘겨줄 수 없다.
만고의 역적을 무찌르고 사예주를 폭정에서 해방시킨 사공과 표기장군을 위해서라도 하동군의 거점들을 사수해야 한다. 사예주 출신의 병사들은 사력을 다해 반격을 가했다.
“분전하라!”
“조조군 놈들…! 만반의 태세를 갖춰놓았군!”
사예주는 거센 노도를 막아내고자 완성된 구조물과 다름없었다.
수많은 성과 요새들,
북쪽의 파상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수많은 주력부대들이 포진한 연주를 원소군이 곧바로 도모할 리가 없을 터. 그렇기에 조조는 사예주 전역에 성과 요새들을 축조하여 공격에 대비했다.
견고한 방어와 함께 완강한 반격에 직면하게 된 안량과 문추는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크학!”
“삼면에서 활이 빗발친다!”
하동군으로 진입한 원소군은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주변을 크게 선회했다.
수많은 성과 요새들은 덫이다.
사냥감을 옭아매기 위한 함정과 같았다.
성과 요새들을 우회하여 안읍현을 곧바로 공격하려고 든다면 절멸적인 피해를 면하기 어렵겠지. 안량과 문추는 소수의 병력으로 자신들을 막아서는 조조군의 완력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적의 함정이다! 제장들은 오로지 군령에만 따라 움직여라!”
군사(軍師) 봉기가 크게 소리치면서 공세에 나서려는 장수들을 제지했다.
‘하동군에 이토록 삼엄한 대비를 해뒀다면 다른 군현들은 말할 것도 없을 터! 과연 본초의 예상대로 조맹덕은 사예주를 가장 경계하고 있었다.’
조조군은 연주와 예주를 중심으로 전력을 구축해온 세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예주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낙양대전에서 동탁군 세력을 완전히 일소했던 조조군은 사예주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천하가 혼란에 휩쓸리더라도 사예주만큼은 끝까지 패국조씨 가문에 충성을 다할 터.
조조군에게 있어 사예주는 연주와 예주만큼이나 막대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었다.
“군사, 이제 어찌하면 좋겠소?”
안량이 물었다.
그에 봉기가 입을 열었다.
“돌파하기 어렵겠지…. 설령 성과 요새들을 함락시킨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포위당할 테고.”
형주 전선으로 출진했던 조조군의 병력들이 지금쯤 사예주로 귀환하고 있을 터.
지체해선 안 된다.
설치된 덫과 함정들로 모자라 노련한 사냥꾼들까지 돌아오고 있지 않은가.
사예주를 침범한 원소군은 도리어 사냥감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공세가 불가능한 난항에 직면했음에도 봉기의 얼굴에서는 다급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미리 전황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조독 장군이 해량현을 점거했습니다!”
“군사 어르신의 예상대로 해량현과 그 주변은 병력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동군의 서쪽 방면으로 향했던 전령들이 도착하여 봉기에게 소식을 알렸다.
그에 봉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안량 장군. 문추 장군. 병마들을 뒤로 물리게.”
“벌써 퇴각하잔 말이오?”
봉기의 명령에 안량이 못마땅한 눈치를 보냈다.
문추 또한 마찬가지였다.
병마들을 물리라는 봉기의 명령에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주군으로부터 지휘권을 위임받은 인물이 봉기였기에 안량과 문추는 명령을 받들 수밖에 없었다.
“잊었는가? 우리들의 목적은 적들의 동태와 배치를 확인하는 것일세.”
명확하게 알아보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확인했다.
더 이상의 공격은 무의미할 터.
목적을 달성하였으니 이제 그만 퇴각할 때였다.
삼엄하기 그지없는 사예주 방어선을 바라보던 봉기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난공불락의 요새들을 돌파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퇴각하라!”
“문희현까지 물러난다!”
안량과 문추가 소리쳤다.
그에 무관들이 병력을 뒤로 물렸다.
화살에 맞은 사상자들이 있을 뿐,
접전을 최대한 피하면서 사예주에 진입했던 원소군은 여전히 완강했다.
침공의 목적은 그저 탐색전에 불과하였음을 보여주듯 원소군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음에도 순순히 후방으로 물러났다.
‘견고하게 쌓은 돌탑이라도 주춧돌 하나를 툭 빼버리면 덧없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천하의 패권이 걸린 접전이,
2년 전부터 물밑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주군께서 천하통일의 위업을 완수하도록.
하북의 패자를 따르는 충성스러운 참모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패국조씨 가문의 멸망을 도모하고 있었다.
* * *
원소군이 안량과 문추를 동원하여 하동군을 공격했다는 소식이 허도로 급히 전해졌다.
공세가 시작되었다.
결전의 서막이 오른 것이리라.
조조군과 마찬가지로 오랜 침묵을 이어왔던 원소군의 침공 소식은 천하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완성으로 출격했던 병력이 다시 회군했습니다.”
완성을 탈환하고자 출진했던 진궁은 급히 말머리를 돌려야만 했다.
수많은 성과 요새들이 원소군의 파상공세를 거뜬히 막아낼 수 있겠지.
그러나,
만약 원소군이 주력군단을 총동원하여 사예주를 침공해온다면 하동군과 다른 군현들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기에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
“안량과 문추가 움직였다…. 무엇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오만함이 느껴지는군, 본초.”
상서령(尙書令) 순욱에게 보고를 받은 조조는 오랜 친우이며, 동시에 천하의 패권을 양분하는 숙적의 얼굴을 떠올렸다.
고아한 오만.
자비로우면서 냉혹한 위엄.
마침내 원소가 몸을 일으켰다.
유표군을 구원하고자 군세를 동원한 것이리라.
‘지독한 오만함. 과연 너답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위풍당당한 면모만을 보여주었던 조조가 처음으로 긴장된 낯빛을 보였다.
원소,
평생의 숙적이 드디어 무대 위로 올라왔기에.
중용무쌍을 자랑하는 안량과 문추가 삼군을 이끌고 하동군을 급습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제장들을 모두 소집했을 정도로 매우 위태로운 반응을 보였다.
“완성으로 출진했던 병력이 회군하였으니… 신야성을 급습한 유비군이 고립된 상황입니다.”
본래 작전대로라면 진궁과 유비가 동시에 유표군의 주력부대가 주둔하는 완성을 공격해야 했다.
그러나,
원소군의 개입으로 계획이 무너졌다.
또한 신야성을 급습했던 유비군이 도중에 고립되는 상황에까지 직면했다.
“주군….”
“걱정할 것 없다.”
곽가가 우려를 내비쳤다.
그에,
조조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또한 미리 예견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냉철한 침착함을 유지하는 주군의 반응에 제장들은 기대감에 찬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왜 유비군을 투입했다고 생각하나.”
유비군은 황건적의 난 시절부터 활약들을 거듭해온 최강의 병단이다.
연전연승을 거둔 것은 물론,
압도적으로 불리했던 전황마저 뒤집어냈다.
수많은 군단들이 휘하에 주둔하고 있음에도 구태여 유비군을 출격시킨 것은 그 전력을 굳게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 버림패로 삼으려고….”
“아니다.”
자신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취급해버리는 곽가를 힐끗 노려보면서 대답했다.
설마 소모품으로 삼으려고 유비군을 동원했겠는가?
한 번 쓰고 버리기엔 유비군은 너무도 아깝다.
일당백을 자랑하는 유비군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쓸모가 많을 터. 그렇기에 조조는 사면초가에 직면했을 유비군을 신속하게 구원하려 했다.
“성휘.”
“예.”
조조의 부름에 이성휘가 한 걸음 나서면서 입을 열었다.
“유비군을 구원하게.”
“하지만 제가 자리를 비운다면….”
“물론 원소군이 움직이겠지. 허나 지금은 유비군을 구원하는 것이 시급하네.”
“…예, 알겠습니다.”
분명 원소군이 준동할 터.
그를 우려한 이성휘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조조가 그에 대응하여 자구책을 마련해두었을 것이기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