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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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은 귀순해온 장수를 파강장군(破羌将軍)으로 임명함과 동시에 식읍을 하사했다.
과거의 원죄를 묻지 않겠다.
이제부터 황실과 조정에 충성을 다하라.
동탁군 세력을 절멸시켰던 조조군은 그의 잔당이었던 장수를 중용하는 양면성을 보여주었다. 장수를 이용하여 원소군과 동맹을 맺은 유표군을 견제하겠다는 의도였다.
“받아주신 국은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사예주에 주둔하고 있던 조조군의 활약으로 무사히 남양군을 탈출한 장수는 허도로 상경하게 되었다.
궁궐에 입조한 뒤,
황제와 조정대신들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 모습을 조정대신들은 몹시 불쾌하게 여겼다.
농서동씨 가문에 충성해온 잔당이 아닌가. 그 이유가 어찌되었든지 오만불손한 역적을 조정에 들인다는 것은 탐탁지 않은 일이었다.
“…….”
황제로부터 보검을 하사받던 장수가 경직된 표정을 지었다.
한 남성과 시선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표기장군(驃騎將軍) 이성휘.
전쟁에서 숙부를 살해한 철천지원수를 보았다.
감정의 편린조차도 느껴지지 않은 무덤덤한 표정을 고수하는 이성휘의 모습에 분노가 치밀었다. 마치 자신을 깔보는 듯한 태도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만한 놈!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건가…!’
이를 빠득 갈았다.
그러나,
가슴속의 응어리를 표출할 순 없었다.
조금이라도 불손한 행태를 보인다면 즉시 조조군에게 목이 달아나겠지. 과거 동탁에게 충성했던 자신은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가족과 부하들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닥치고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지금 당장 유표의 칼날을 피하고자 머리를 조아릴 뿐이다….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내가 전장에서 겪었던 그 고통을 몇 배로 갚아주겠다!’
위기를 모면하려는 기만책일 뿐,
진심으로 숙부의 원수들에게 충성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복수심이 들불처럼 거세게 솟구쳤다.
숙부를 살해했던 철천지원수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자 억눌러온 복수심이 폭발했다.
일찍 여윈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신을 보살펴주었던 숙부를 잃었던 순간부터 장수는 뼛속까지 반골(反骨) 성향을 품게 되었다.
* * *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굴종한 것처럼 행동하는 장수의 기만책을 조조가 간파하지 못할 리 없었다.
놈은 반골이다.
결코 진심으로 충성하지 않을 터.
만약 수상한 행적을 보인다면 당장 그 후환을 끊어버릴 것이다.
조조는 군사좨주 곽가에게 명령하여 장수와 부하들의 동태를 계속 감시하도록 했다. 후환이 될 만한 요소들은 일찌감치 제거해야 될 테니.
“장수의 숙모를 일단 객소로 안내했습니다.”
“지금부터 철통같이 감시해라.”
“물론입니다, 주군.”
조조는 장수를 파강장군에 임명함과 동시에 추씨를 궁궐의 전각에서 살도록 했다.
매우 정중하게 예우하였으나,
사실상 장수를 견제하기 위한 인질이었다.
유표군이 사방에서 들이닥치던 순간에도 제 숙모를 구하고자 혈혈단신으로 뛰어들지 않았던가. 어머니처럼 여기는 숙모 추씨를 인질로 잡아둔다면 함부로 설치진 못할 것이다.
“감히 성휘에게 적의를 품다니….”
조조가 불쾌감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툭툭 두드렸다.
그 행동을 본 곽가는 지금 주군이 극도로 분노하고 있음을 넌지시 알아차렸다.
“심려 마십시오, 주군. 숙모를 인질로 잡고 있는 이상 장수는 결코 경거망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흥….”
역적을 따른 버러지가 오만불손하게 적의를 드러내다니.
놈을 죽이는 게 현명하지 않았을까.
당장이라도 놈을 죽일 수 있다.
허저에게 명령한다면 곧바로 전각을 습격하여 장수와 일당들의 수급을 가져올 테니.
“좌장군(左將軍) 유비의 군세가 신야성의 병참기지들을 무사히 강습했다고 합니다. 향후 전투에 대비하여 비축해둔 군량을 모두 잃었으니 유표군은 결국 양양성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해내야지.”
곽가가 전한 유비군의 승전보에 조조는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그 음흉한 토끼 년,
맡은 소임은 제대로 해낸 모양이다.
혹시라도 유비군이 황실과 조정을 배신하고 형주에 귀순할까 노심초사했던 조조는 승전보를 듣고서 내심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지금까지 귀한 녹봉을 먹여댔던 값은 하는군. 유표군을 막을 시간을 벌었다.’
유비군은 수많은 전장들을 누빈 우수한 정예였다.
뛰어난 군략을 가진 지휘관.
압도적인 무위를 떨쳤던 두 맹장들.
유비와 그녀의 의자매들은 대국을 맡기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조는 유비를 불신하고 경계하면서도 일군을 지휘하도록 권한을 위임했다. 출중한 군재를 썩히기엔 너무도 아까웠기 때문이리라.
“지금 사예주의 전황은 어떤가?”
조조가 물었다.
그에 곽가가 입을 열었다.
“지금쯤 군사께서 군중에 합류하셨을 겁니다. 곧이어 총공세를 벌여 남양군을 탈환하지 않겠습니까.”
군사 진궁이 직접 부하들을 이끌고 형주 전선에 참전하였다.
우금. 악진. 사환.
출중한 군재를 가진 장수들이 진궁을 보좌했다.
사예주 3군에 주둔하고 있는 2만의 병력들이 투입되었으니 완성에 웅거하는 유표군을 충분히 격퇴해낼 수 있을 터.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럼 문제는….”
불여우.
탐스러운 금발을 늘어뜨린 친우를 떠올렸다.
분명 움직이고 있겠지.
보다 신속하게 대응책을 마련할 터였다.
자신만큼이나 천하를 향한 야망이 어마어마한 여걸을 떠올리면서 침음을 삼켰다.
* * *
조조군이 병력을 동원하여 남양 공방전에서 승전한 유표군을 압박하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침묵을 깨고 움직였다.
드디어 조조군이 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조조군의 군사행동을 ‘전쟁의 징조’로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총력을 기울이며 전쟁을 준비해온 원소의 참모들은 조조군을 크게 경계했다.
계속 장수군을 압박하면서 북형주를 점령한 유표군이 양양성으로 밀려날지도 모르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군을 움직여야 하오!”
치중종사(治中從事) 심배가 주장했다.
조조군의 군사행동을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한 심배는 격앙된 목소리로 일갈했다.
놈들의 발호를 좌시해선 안 된다.
응당 군세를 동원하여 위협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원소군 장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심배의 강경론을 지지했다. 그들은 호전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치중종사의 말이 지당하오!”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면 조조가 우리들을 업신여길 거요!”
우락부락한 체격을 자랑하는 장수들이 고함을 내지르면서 한 걸음을 내딛었다.
건곤일척의 대전을,
천하를 향해 비상하는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
하북 4개 주의 병마들을 조련하면서 전쟁을 기다려온 장수들은 굳센 전의를 표출했다. 당장이라도 중원으로 돌격할 것처럼 용맹한 모습들이었다.
“경거망동하지 말게, 정남.”
삽시간에 거칠어진 반응을 우려하듯 별가종사(別駕從事) 전풍이 입을 열었다.
아직 시기가 아니다.
들불처럼 솟구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심배의 의견에 가세하여 전쟁을 주장하던 장수들은 노골적으로 전풍을 못마땅하다는 듯 노려보았다.
전풍은 강경책이 촉발될 때마다 계속해서 신중론을 꺼내들었다. 계속 혈기를 억눌러야 했던 장수들이 전풍을 미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머지않아 조조군이 큰 환난에 빠질 걸세. 그 다음에 군세를 움직여도 늦지 않아!”
중원의 세작들을 동원하여 조조의 정적들로부터 정보를 받아내고 있다.
패국조씨 가문을 적대하다가 변병으로 축출당한 정적들은 훌륭한 변절자가 되어줄 터. 머지않아 허도에서 큰 환난이 발생하리라.
냉철한 참모는 장수들에게 인내하면서 기다릴 것을 요구했다.
“아뇨, 군을 움직이세요.”
순금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화려한 의복을 입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근위병들에게 호위를 받으면서 도착한 원소는 좌중을 통과하여 만승천자의 옥좌처럼 사치스럽게 장식된 상석에 앉았다.
“이미 안량과 문추에게 조보를 내렸어요.”
늘씬한 두 다리를 뻗으면서 상석에 앉은 원소가 전풍과 심배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안량과 문추를 움직였다.
하북 최강의 맹장들이 곧바로 동원된 것이다.
그에 전풍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심배 또한 마찬가지였다.
설마 삼군을 이끄는 도독들을 곧장 투입할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주군! 전면전은 안 됩니다…!”
전풍이 아연실색한 낯빛을 한 채 소리쳤다.
총력전은 불가하다.
도리어 아군을 위태롭게 만들 뿐이었으니.
2년 동안 병마들을 조련하면서 전력을 크게 증강했음에도 여전히 조조군에 미치지 못했다. 전력의 우위는 여전히 조조군에게 있었다.
“심려 마세요, 원호. 전면전은 아니니.”
여전히 조조가 강세를 점하고 있음을 원소 또한 숙지하고 있었다.
조조군은 강하다.
천하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이었다.
동맹관계인 유표군과 함께 협공하더라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겠지. 조조에게는 표기장군 이성휘를 위시한 수많은 명장들이 버티고 있었으니까.
“맹덕이 유비군을 동원한 것처럼… 저도 일단은 실력행사에 나서야 하지 않겠어요?”
전면전을 벌일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가만히 당해줄 생각 또한 없었다.
당한 만큼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 바로 그녀의 원칙이었기에.
“먼저 선공을 날린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죠.”
원소가 고혹적인 미소를 흘렸다.
옥좌에 몸을 기댄 채,
늘씬한 두 다리를 꼬면서 오만함을 발산했다.
오랜 친우의 기세등등한 얼굴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지는 될 것을 예측하면서 새하얀 이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