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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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년 동안 용맹하게 싸웠지만 압도적인 격차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그에 장수는 숙모 추씨와 부하들의 의견을 결국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죽을 순 없다.
어떻게든 가문의 명맥을 보전해야 했으므로.
결정을 굳힌 장수는 호거아를 홍농군으로 파견하여 조조군에게 귀순 의사를 밝혔다.
우리들을 받아준다면 충성을 다하겠다.
낙양에서 숙부를 죽인 원흉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면서 굴종하는 길을 선택했다.
“공격하라!”
“남양군의 도적놈을 잡아라!”
완성에서 웅거하고 있던 장수군의 행동이 심상찮음을 감지한 유표군이 공격을 개시했다.
신야성에서 주둔하고 있던 방계와 여공의 지원군과 합세한 유표군은 삼면에서 치고 올라오면서 장수군의 숨통을 틀어쥐었다.
기필코 역적들을 죽이겠다.
번번이 연전연패를 당해야 했던 유표군은 시뻘겋게 혈안이 된 채로 달려들었다.
“크학!”
“형주의 버러지들이!”
유표군의 파상공세에 장수군은 그대로 휩쓸렸다.
병력이 현저히 부족했으며,
또한 크게 다친 부상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증원까지 합세하여 달려드는 유표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응전을 개시했던 장수군의 병력은 예기가 꺾인 채 패퇴를 반복했다.
“어서 부인을 모셔라!”
“막아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추씨가 탄 마차가 급히 완성을 탈출했다.
적들의 추격을 뿌리쳐야 한다.
마부석에 앉은 무관이 계속해서 말들을 재촉하면서 사예주 방면으로 내달렸다.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공격에도 귀부인을 태운 마차는 용맹하게 돌파를 반복했다. 마차를 계속 호위하면서 추격을 물리친 기병들의 활약 덕분이었다.
“저 마차는 대체 뭐냐!”
드디어 패퇴하기 시작한 장수군을 인정사정없이 밀어붙이던 채중이 소리쳤다.
완성을 빠져나온 무리가 도망치고 있다.
누가 탄 마차란 말인가?
수많은 기병들이 호위에 투입된 것으로 볼 때 상당한 신분인 것이 분명했다.
“장군! 장수의 숙모가 탄 마차라고 합니다!”
“숙모 말이냐?”
부관의 외침에 채중이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숙모라니.
낙양에서 죽은 장제의 부인이란 말인가?
중랑장 장제의 부인인 추씨가 국색(國色)의 귀부인이라는 풍문을 들어본 적 있다.
급히 도망치고 있는 귀부인의 존재를 알게 된 채중은 부하들에게 추격을 명령했다. 국색으로 유명한 귀부인을 사로잡아 측실에 앉히려는 수작이었다.
“마차를 추격하라! 장수의 숙모를 생포하는 자에게는 큰 포상을 내리겠다!”
채중이 고함을 크게 내질렀다.
양양채씨 가문의 이름을 걸고 포상을 내리겠다.
고함소리를 들은 유표군 장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추씨가 타고 있는 마차를 추격했다.
“일확천금의 기회다!”
“포상은 이 진생이 차지할 것이다!”
고깃덩이를 발견한 들개처럼 사방에서 유표군 장졸들이 달려들었다.
선봉부대가 무너진 이후부터 장수군은 패주를 반복하고 있었다. 등을 보이면서 도망치는 잔병들을 사냥하던 유표군은 확실히 승세를 잡은 상태였다.
“이놈들!!”
잔존 병력들을 지휘하면서 전장을 돌파해낸 장수가 고함을 내지르면서 마차를 추격하던 유표군을 강습했다.
창을 크게 내지르며 유표군을 무찔렀다.
마지막 불꽃을 보여주려는 듯,
무수히 많은 적들을 상대로도 거침없이 싸웠다.
‘숙모님만큼은! 숙모님만큼은 절대 잃을 수 없다!’
날카로운 창술을 자랑하는 장수의 활약에 유표군은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숙모마저 잃진 않겠다.
장수는 단 하나의 일념으로 고통을 버텨냈다.
화살을 맞았던 상처가 크게 찢어졌다.
팔뚝을 타고 핏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리고 있었음에도 장수는 이를 빠득 갈면서 싸움을 반복했다.
“저 피투성이가 바로 장수렷다! 내가 놈을 죽일 것이다!”
병력을 이끌고 출몰하여 훼방을 놓는 방해꾼.
그에 채중이 검을 치켜들면서 소리쳤다.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들어온 격이 아닌가?
이번 전쟁의 최고 수훈자가 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눈앞에 다가왔다. 채중은 결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장군!”
채중이 직접 검을 뽑아들었을 때,
남양군 일대를 정찰하던 전령이 급히 달려왔다.
“적의 증원입니다! 증원이 도착했습니다!”
“증원…? 놈에게 증원이 왔다고?”
전령의 보고에 채중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증원이라니,
저 역적에게 누가 증원을 보낸단 말인가.
동탁을 추종했던 주구들이 몰살당하는 것을 만천하가 염원하고 있을 터. 사면초가에 직면한 역적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줄 세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잡것들은 사예주로 도망치고 있는 거지? 분명 사예주는 조조군의 영역일 텐데.’
이상하지 않은가.
동탁의 잔당들이,
농서동씨 세력을 멸망시킨 조조군의 영토로 향하다니.
너무도 석연치 않은 상황이었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기묘한 의문을 품고 있던 채중은 뒤이어 다급한 위기에 직면해야만 했다.
“조조군이다!”
“청색의 군기…! 틀림없이 조조군이다!”
치열하게 되풀이되던 남양 공방전에 새로운 세력이 개입했다.
조조군이다.
전쟁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내실에만 집중해오던 조조군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예주의 군세가 자욱한 흙먼지를 이끌면서 전장에 개입했다. 전장을 뒤덮는 강철의 파도를 목격한 채중은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서 번성에 알려라! 조조군이 개입했다!!”
어째서 조조군이 장수를 돕는단 말인가!
분명 놈들은 철천지원수일 터.
완성으로 군세를 투입시킨 조조군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조조군의 개입을 확인한 채중은 무관들을 투입하여 전선의 병력을 뒤로 물리도록 했다.
* * *
조조군이 풍전등화의 운명에 직면했던 장수군을 구원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째서 조조군이 돕는단 말인가.
어부지리를 위해 유표군과 장수군을 모조리 쓸어버린다면 모를까, 동탁의 잔당들을 구원하기 위해 병력을 투입시킨 조조군의 행동은 매우 이질적이었다.
“유표군은 원소군의 우방이 아닌가? 분명 원소군이 크게 반발할 터인데….”
“하북 4개 주를 제패한 원소군의 힘은 이제 중원을 위협하기에 충분할 테니까요.”
하북을 제패한 원소와 중원을 통일한 조조.
전면전을 최대한 자제해온 군벌들은 결국 오랫동안 이어진 침묵을 깨고 거대한 야심을 드러내리라.
허도의 조정대신들은 건곤일척의 전쟁이 결코 머지않았다며 마른침을 삼켰다.
“사공이 입궐했답니다.”
환관이 속삭이면서 조정대신에게 소식을 전했다.
뒤이어,
곧바로 흑발의 여인이 대전에 들어섰다.
심복들을 대동하고서 모습을 드러낸 조조가 위풍당당한 면모를 발산했다. 날카로운 눈매를 빛내면서 옥좌에 앉은 황제 유변에게 입을 열었다.
“폐하, 국적(國賊) 유표가 남양군을 침탈했습니다.”
조조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노공왕(魯恭王) 유여의 후손인 형주자사 유표를 국적이라 불렀다.
국적.
유표를 반란의 수괴로 취급했다.
명망 높은 고관대작이었던 유표를 국적으로 규정하는 조조의 행동에 조정대신들은 크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노공왕의 후손이 국적이라니….”
“결국 남양군이 유경승의 수중에 떨어졌구려.”
형주를 지배하는 유표는 남방을 대표하는 대군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술이 멸망한 뒤,
유표는 곧바로 남방의 제후들을 흡수했다.
산군이 떠난 산중에는 여우가 왕이라고 했던가.
여남원씨 가문의 폭군이 죽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세력 확장에 박차를 가했던 유표는 중원을 위협할 정도의 힘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대, 대처를 모색해야 하지 않겠소…?”
유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북의 원소. 형남의 유표.
북쪽과 남쪽으로 크게 포위당한 형국이었다.
기어코 남양군을 함락시킨 유표군이 당장이라도 허도로 진격해올 것만 같았기에 너무도 두려웠다. 유변은 해결책을 바라는 듯 조조를 힐끗 쳐다보았다.
“홍농군의 병력을 출격시켰습니다.”
“오오, 그게 정말이오?”
유표군의 침공을 요격하고자 홍농군의 병력을 급파했다.
결국 유표군이 승전을 거둘 터.
조조는 작금의 국면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정복을 천명했던 유표군이 남양 공방전을 일으켰을 때부터 헤아려온 일이었기에 전혀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능숙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어떻게 적을 요격해야 할지를 계획해둔 뒤였다.
“형주 전선의 좌장군에게 명을 내려주십시오.”
“…좌장군을 말이오?”
조조의 진언에 유변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좌장군이라니….
양주 전선에 주둔하는 유비를 말하는 것인가.
남양군을 점거한 유표군을 대적하기 위해 유비군을 동원할 줄은 몰랐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표기장군을 출격시키는 것이 상책이지 않겠소?”
유변이 물었다.
그에 조조가 고개를 내저었다.
“표기장군은 하북 전선을 지켜야 합니다. 표기장군이 자리를 비운다면 필시 원소군이 준동할 겁니다.”
유표는 둔하고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매우 신중한 성격이다.
분명 원소의 입김이 작용했을 터.
너구리보다 교활하며,
늑대보다도 사납고 포악한-
여남원씨 가문의 ‘불여우’가 획책한 계책임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