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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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군이 멸망한 이후,
유표는 대대적으로 남양군(南陽郡)을 공격했다.
손견군의 거병.
조조군의 압도적인 팽창.
수춘성에서 웅거하던 남양원씨 가문의 폭군이 무자비한 말로를 맞이한 것에 위기감을 느끼게 된 유표는 세력 강화와 영토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공격하라!”
“역적의 잔당들이다! 다 죽여라!!”
양양채씨 가문의 장수였던 채중과 채화가 병력들을 이끌고 완성(宛城)을 공격했다.
전공을 세울 생각에 한껏 들떴는지,
젊은 두 장수들은 계속해서 파상공세를 펼쳤다.
남양군에서 웅거하고 있는 세력은 농서동씨 가문에 충성했던 잔당들이다. 군세를 이끌고 수괴 노릇을 하는 장수를 죽인다면 크게 명성을 떨칠 수 있을 터.
채중과 채화는 혈안이 된 채 완성 포위전에 전력을 기울였다.
“어서 놈들을 몰살시켜라!”
“계속된 공세로 저들 또한 지쳤을 터…!”
고립무원의 처지에 직면했던 장수는 사나운 용맹과 뛰어난 군략을 동원하여 승리를 거둬냈다.
여러 전선에서 이겼으며,
또한 완성으로 쳐들어온 유표군의 주력군까지 격퇴해내며 기염을 토해냈다.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는 전황에 울화가 치민 유표는 만약 이번에도 패전한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참형으로 다스리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크악!”
“부, 분전하라!”
완성으로 돌격하던 유표군 병사들이 장수군의 반격에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계속해서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또한 인근에서 매복하던 장수군의 병력들이 연이어 출현하면서 유표군의 측면을 공격했다.
장수의 반격에 다시 휘말리게 된 채중과 채화는 아연실색한 채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질렀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들!”
“대체 어디서 놈들이 나타났단 말이냐!”
남양군 전선에 주둔하는 적들의 움직임을 빈틈없이 주시하고 있었을 터.
그런데 어떻게,
예상치 못한 방면에서 복병들이 출현한단 말인가.
장수군의 군기를 치켜든 병력들이 연이어 출현하는 것을 목격한 채중과 채화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급습이다! 공격에 대비하라!”
“빌어먹을 놈들, 어디서 쳐들어온 거냐!”
갑작스러운 급습에 측면이 흔들렸다.
급습 병력은 많지 않았으나,
유표군은 속절없이 밀리는 양상을 보였다.
남양 공방전에서 계속 연전연패를 겪은 유포군이었기에 극심한 타격으로 작용했다. 연이어 전열이 붕괴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오합지졸을 보는 듯했다.
‘이번에도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매형이 우리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다!’
동탁의 잔당들이 궤멸되고 원술군이 멸망한지 벌써 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유표군은 계속해서 장수군을 공격했다.
남양군을 정복하여 사예주로 진출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유표군의 완승으로 끝나리라고 예상했던 남양 공방전은 2년이라는 세월과 함께 수많은 장정들의 목숨만 앗아갔을 뿐, 결국 승전을 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덤벼라, 형주의 졸장부들아!”
육중한 갑주를 걸친 사내가 기병부대를 대동하고서 전장을 질주했다.
중랑장(中郞將) 장수.
남양군의 군벌이며,
낙양대전에서 전사한 장제의 조카였다.
언월도를 크게 휘두르면서 유표군을 공격했다.
난데없는 급습에 혼란을 반복하던 유표군은 진형을 수습할 겨를조차 없이 장수군의 주력부대로부터 맹공을 받게 되었다.
“여기 호거아도 있다!”
뒤이어 완성에서 웅거하던 병력들이 출병하며 유표군을 급습했다.
무거운 도끼를 번쩍 휘둘렀다.
호거아의 공격에 유표군 무관들은 속절없이 쓰러졌다.
동탁에게 충성해온 잔당들로 구성된 장수군은 전쟁에 능숙한 정예였다. 서량과 사예주 방면에서 수많은 교전을 치러왔던 정예들은 형주의 애송이들을 호쾌하게 쳐부수면서 용맹을 뽐냈다.
“놈을 죽여라! 저기 적장이 있다!!”
언월도를 휘두르면서 용전을 벌이는 장수를 목격한 채중이 소리쳤다.
총대장이다.
바로 저 앞에 총대장이 있다!
놈을 죽이면 남양군 세력은 곧바로 와해될 터.
채중은 무예가 뛰어난 무관들을 급파하여 총대장을 대적하도록 했다. 일기당천의 용장이라도 사면초가의 상황 앞에서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을 테니.
“쏴라!”
“저기 장수가 있다!”
파악-.
날카롭게 쏘아진 화살이 어깨에 꽂혔다.
전장을 누비면서 무력을 휘두르던 맹장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었던 유표군 병사들은 병장기를 내지르면서 호쾌하게 달려들었다. 총대장의 수급을 베어 전공을 인정받으려는 속셈이었다.
“이 들개 같은 놈들이-!!”
언월도를 내던져서 병사들을 지휘하던 유표군의 무관을 참살한 장수가 검을 뽑아들었다.
칼끝을 번쩍 들어올린 뒤,
가차 없이 휘두르면서 적들을 베어냈다.
어깨에 화살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들불처럼 맹렬한 기세를 유지했다. 결코 물러섬이 없는 장수의 용맹에 유표군은 패퇴를 반복해야만 했다.
* * *
유표군의 침공으로 발발했던 남양 공방전은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흘러갔다.
유표의 완승을 짐작했으나,
남양 공방전의 승세를 잡은 쪽은 장수군이었다.
낙양대전에서 전사했던 숙부 장제로부터 병력을 물려받은 장수가 연이어 활약하면서 유표군은 연전연패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놈들이… 결국 물러난 것 같습니다.”
전선에서 패퇴한 유표군을 추살하고서 돌아온 호거아가 보고했다.
이번에도 놈들을 몰아냈다.
사력을 다한 끝에 유표군을 패퇴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기적적인 승전을 다시금 거둬냈음에도 장수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어두운 표정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끝이 없군. 정말 끝이 없어….”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장수는 위태로운 심정이 담긴 한숨을 토해냈다.
물자가 바닥나고 말았다.
또한 남은 병력도 많지 않았다.
남양군에서 거병한 이후부터 장수는 극심한 물자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원술이 남양군의 기반들을 모두 초토화시킨 뒤에 구강군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중과부적의 상황이로군. 다음 공격은 결코 버티지 못할 걸세.”
“주군…!”
“자네만이라도 도망치게.”
운명을 직감한 장수는 호거아와 무관들에게 남양군을 버리고 도망칠 것을 권유했다.
유표는 한없이 오만한 인물이다.
계속해서 치욕을 안겼던 자신들을 절대로 살려두지 않을 터.
남양군에 입성하자마자 몰살을 벌일 게 분명했다.
“주군, 지원을 요청하십시오.”
“누가 나를 도와준단 말인가? 헛된 기대일세.”
호거아의 진언에 장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동탁을 추종했던 잔당들이라며 세간의 경멸을 받고 있는 자신들을 누가 도와준단 말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세력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냉철한 대답뿐이었다.
동맹을 요청하고자 떠났던 사절들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채 돌아왔다.
다시 사절을 보내더라도 마찬가지일 터. 천하의 어느 세력도 자신에게 구원을 내밀어주지 않으리라.
“조조군을 믿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뭐, 뭣…! 지금 뭐라고 했는가!”
중원의 조조군을 의지하라.
그 말에 장수가 두 눈을 부릅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로 가당찮은 진언이었다.
숙부를 시살했던 철천지원수가 군림하고 있지 않은가. 놈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것은 전장에서 용맹하게 싸웠던 숙부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였다.
“이성휘, 그 빌어먹을 놈이 숙부를 죽였네!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배신감이 밀려들었다.
지독한 증오가,
사나운 분노가 노도처럼 엄습했다.
굳게 신뢰해온 전우로부터 굴욕적인 선택지를 받게 된 장수는 굴욕감에 몸서리쳤다. 깊은 배신감에 온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다른 무관도 아니고… 어떻게 자네가 그런 망발을 지껄일 수 있는가! 이성휘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던 숙부의 모습을 자네도 목도하지 않았나!”
“…….”
서릿바람처럼 차가운 칼끝에 목이 떨어졌던 숙부의 마지막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뜨거운 핏물을 흩뿌리며,
단말마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쓰러졌다.
어떻게 그 통한의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
천신만고를 겪으면서까지 남양군에서 계속 힘을 길러온 것이 바로 이성휘에게 복수하기 위함이었다. 호거아의 진언에 장수가 크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주군, 지금은 살아남는 것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호거아가 장수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가문의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라도.
처참한 말로를 맞이했던 여느 군벌들처럼 비참하게 죽을 순 없다.
“정말… 그 방법 밖에 없단 말인가?”
원수에게 굴종해야 한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종속을 조건으로 목숨을 구걸해야 했다.
호거아의 설득에 장수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참으로 기구한 선택지였다.
처자식과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철천지원수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니.
“젠장! 젠장…!!”
장수가 울분에 찬 목소리를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