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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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컥벌컥-.
딸꾹. 딸꾹.
술을 호탕하게 들이켠 뒤,
취기가 섞인 딸꾹질을 연신 해대는 주정뱅이.
잔뜩 풀린 눈매.
불명확한 시선.
홍조가 서린 뺨과 비틀거리는 발걸음까지.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신 채 등장한 하후돈의 행동에 이성휘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야아! 야야야!!”
이윽고 이성휘의 지척에 다가온 하후돈은 꼬부라진 목소리를 내면서 그에게 매달렸다.
툭툭.
사내의 메마른 뺨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은연중에 일말의 야속함을 품고 있었던 것일까.
하후돈은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잔뜩 토라진 표정을 지은 채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내가! 내가아! 너, 좋아하면 안 돼애?”
“…….”
요염한 표범처럼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경국지색의 미녀가 안겼음에도 이성휘는 평정심을 유지했다.
교태 섞인 주정에도,
애처롭게 물든 목소리에도.
결코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아내에게 몇 번이고 폐를 끼쳤던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이리라.
“많이 취하셨습니다.”
이성휘가 말했다.
“아뉘이, 안 취했는데에!”
꼭 주정뱅이들이 그렇게 말하더라.
전혀 취하지 않았다며,
세 살 아이도 믿지 않을 변명을 늘어놓는 하후돈의 술주정에 이성휘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고주망태가 된 채로 고백을 해오다니.
조조군 제일의 애주가다운 그녀답다고 해야 할까.
“으으, 진짜아! 진짜아아!!”
고개를 들어 이성휘의 얼굴을 노골적으로 주시하던 하후돈이 돌연 짜증을 발산했다.
아니,
짜증은 아니었다.
이성휘에게 투정을 부릴 속셈이었다면 계속 매달리지 않았을 테니까. 당장에 품을 뿌리쳤을 것이다.
짜증을 낸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와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맹렬하게 박동치는 심장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끄러웠다.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데…?”
알고 싶다.
당신의 마음을.
부디 당신의 진심을 듣고 싶다.
사촌의 남편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임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또오?”
“그리고 원양 님은 무척 매력적인 분이십니다.”
“…….”
기분이 고양되는 칭찬들이었다.
하지만,
듣고 싶은 대답은 그것이 아니었다.
체면과 자존심을 모두 내던지고서 매달렸음에도 결코 듣고 싶은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저는 아만을….”
“아, 시끄럽네! 됐어! 강제로라도 네 마음을 받아낼 테니까!”
이성휘가 한 걸음 물러섰다.
그에,
하후돈은 두 걸음을 내딛었다.
사냥감을 위협하듯 난폭한 기세로 접근한 하후돈은 두 팔을 뻗으면서 이성휘를 와락 끌어안았다.
장수들 중에서도 어마어마한 완력을 자랑하는 패국의 여걸은 뻣뻣하게 굳은 이성휘를 넘어트렸다.
불의의 공격을 당할 줄 몰랐는지,
이성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침상에 쓰러졌다.
“하핫…! 천하제일검이 쓰러졌네?”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가 뜨겁게 달아오른 숨결을 토해냈다.
온몸이 뜨겁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쳤다.
지금처럼 마음이 들떴던 적이 과연 있었을까.
침상에 쓰러진 이성휘를 바라보면서 흥분을 발산하던 하후돈은 이윽고 욕망에 따라 움직였다.
“네가 나쁜 거야…, 매번 날 애태우니까…!”
하후돈이 들뜬 표정을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이성휘의 몸에 올라탄 채,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살벌한 눈빛을 보냈다.
친척들에게 당당히 선포하면서 스스로 퇴로를 끊어버린 하후돈은 사생결단의 각오로 침소까지 난입해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뒷일은 전혀 생각지 않은 채 육탄공세를 펼쳤다.
“원양 님…!”
상체를 일으키면서 강제로 뿌리치려 했던 이성휘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거절을 내뱉으려 했던 입이,
늘씬한 미녀의 도톰한 입술에 막혀버렸다.
양손을 뻗으면서 이성휘의 머리를 붙잡은 여장부는 호쾌하게 첫 입맞춤을 그에게 선물했다.
“으읍…! 아흐읍, 츄릅-!”
당혹과 혼란,
다급함으로 점철된 첫 입맞춤.
상체를 일으켰던 이성휘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입술로 그를 붙잡았다.
난데없이 입술을 빼앗겨버린 이성휘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 하후돈을 바라보았다. 자신과는 대조적으로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으응… 으읏!”
담대한 여장부가 짧게 신음소리를 내면서 입맞춤을 이어나갔다.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새처럼,
입술을 쭉 내밀면서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짝사랑하는 사내에게 첫 입맞춤을 선물한 하후돈은 풋풋함을 머금은 표정을 지으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하읍…!”
이성휘의 입술을 물면서 혀로 핥았다.
필사적으로 전력을 다하지만,
입맞춤은 미숙하고 어설픈 수준이었다.
과연 숫처녀답다고 할까….
무턱대고 밀어붙이는 입맞춤 때문에 입술이 얼얼할 지경이다. 기교와 기예 없이 정면으로 돌파하는 여장부다운 입맞춤이었다.
“헤읏….”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봉선화처럼 아름답게 얼굴을 붉힌 미녀가 숨소리를 흘리면서 입술을 뗐다.
얇은 실타래가 이어졌다.
타액으로 물든 음란한 실타래였다.
입술에 달라붙은 실타래를 목격한 하후돈은 부끄러움에 몸을 떨면서 거리를 벌렸다. 음란하게 물들었던 실타래가 툭 끊어졌다.
“대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이성휘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물었다.
침소에 난입한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강압적으로 입맞춤까지 하다니.
얌전히 무마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버리고 말았다.
저잣거리에서 떠돌고 있는 불순한 낭설들에 대해서는 어물어물 덮어버릴 수 있겠지만 지금 벌어진 상황은 결코 넘기기 어려웠다.
패국의 여걸이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크게 취한 채 사내의 침소에 난입했다는 사실이 궁인들의 귀에까지 알려졌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가관이군.”
어떻게 수습해야 될지,
이성휘가 계속 고민하고 있었을 때.
흑발의 여인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발걸음을 내딛었다.
조조였다.
술에 취한 사촌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급히 달려온 듯했다.
“파하하, 맹덕!”
입맞춤의 여운을 즐기면서 히죽히죽 웃어대던 여걸이 손을 번쩍 들면서 사촌을 환영했다.
전혀 환영할 상황이 아니건만,
주정뱅이가 되어버린 그녀는 살가운 태도를 보이면서 흑발의 여인과 팔짱을 꼈다.
그 모습에 이성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미안, 네 남편을 잠깐… 아주 잠깐 빌렸어!”
“빌렸다고?”
“아주 찐하게 입맞춤을 했지! 입술이 퉁퉁 부을 정도로 말이야!”
“…….”
조조의 붉은 눈동자가 살벌하게 빛났다.
어떻게 이 년을 죽일까,
뻔뻔스러울 정도로 태연한 사촌을 노려보면서 중얼거렸다.
“아하핫!”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걸은 웃음을 터트리면서 사촌을 꼭 껴안을 뿐이었다.
아담한 체구였던 조조는 반쯤 파묻히다시피 하후돈에게 안겨들었다. 풍만한 가슴이 얼굴을 짓누른 탓에 숨이 막혀왔다.
“이 주정뱅이가! 당장 발 닦고 잠이나 자라! 대낮부터 무슨 술을 퍼마셨는지…!”
조조가 자신의 얼굴을 압박했던 하후돈의 젖가슴을 양손으로 때리면서 소리쳤다.
매번 어린아이처럼 굴기는…!
군부를 호령하는 장수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제멋대로 구는 사촌의 모습에 한탄을 토해냈다.
무슨 술을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마셨단 말인가!
술에 취한 채 계속 비틀대는 사촌을 원수처럼 노려보던 조조는 사건의 원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성휘, 그대 때문일세! 그대가 매번 순진한 사촌들을 홀리게 만들었으니!”
“…죄송합니다.”
업무를 정리하고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뿐이었음에도 이성휘는 ‘주범’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원흉으로 내몰린 이유는 단 하나,
주변 여성들을 순식간에 매료시킬 정도로 잘생기고 매력적인 사내이기 때문이리라.
억울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까지 전례를 몇 번이고 만들었는데.
아내의 동생들을 모두 함락시키는 업적을 달성해버린 이성휘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부정(不淨)이었다.
평생을 떠안아야 할 원죄에 가까웠다.
“아하핫, 빨래판! 진짜 하나도 없네!”
고개를 푹 숙인 채 잠꼬대를 하듯 중얼거리던 하후돈이 돌연 입을 열었다.
토닥토닥.
한손으로 사촌의 아담한 가슴을 두드렸다.
체한 사람의 등을 두드리는 듯한 행동이었다.
물론 지금 두드리고 있는 것은 등이 아니라 가슴이었지만.
물론 납작하다는 점은 비슷했다.
“어, 어어….”
하후돈의 돌발행동에 이성휘는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온몸이 쭈뼛쭈뼛 섰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무릎을 꿇고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망발을 연신 해대는 하후돈의 모습에서 공포를 느꼈다.
“성휘!”
“예.”
“당장 이 주정뱅이를 저택으로 돌려보내라!”
“…알겠습니다.”
사촌에게 가슴을 희롱당한 조조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소리쳤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연신 하후돈을 노려보면서 중얼거렸다.
주정을 부려대다가 결국 이성휘에게 안긴 하후돈은 비틀대는 발걸음으로 침소를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성휘…! 그대는 원양을 저택으로 돌려보낸 뒤에 곧바로 사공부로 복귀하게!”
* * *
하후돈을 무사히 돌려보낸 뒤에 사공부로 돌아오게 된 이성휘에게 가혹한 선택지가 주어졌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든지,
아니면 사람들과의 교류를 다 끊어버리든지.
아내의 얼토당토않은 억지에 이성휘는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그냥 제가… 황하에 빠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결국 내가 원흉이니,
모든 책임들을 질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이성휘는 스스로 황하에 몸을 던지겠다며 조조에게 입장을 밝혔다.
설마 남편을 황하에 빠트릴까.
연이은 여난들을 풍파처럼 경험했던 이성휘가 반쯤 농담 삼아서 말했다.
“일리가… 있군.”
“예?”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조조는 진심으로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원흉은 남편이다.
여성 한정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매순간 악화일로를 걸었던 게 아닌가.
남편의 진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조조는 잘생긴 용모와 강인한 매력으로 사촌들을 매료시켰던 호색한을 기어코 황하에 빠트리기로 결정했다.
“잠깐 강바닥을 구경한다고 생각하게. 갱생하는 의미에서 말일세.”
“…….”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다.
아니,
애초에 위로의 말이 아닌 것 같다.
황하의 소용돌이로 직접 뛰어들기를 바라는 조조의 권유에 이성휘는 온몸을 떨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