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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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 가문의 규수처럼 화려하게 치장한 하후돈의 자태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탐스럽게 흘러내린 붉은 머리카락.
청록색 경옥 비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간결하게 정리했다.
앵두처럼 고운 입술.
살구처럼 붉게 물든 뺨.
고혹적인 눈꺼풀과 청금석처럼 빛나는 눈동자.
화려한 꽃송이들을 수놓은 백은색의 의복은 청순한 매력을 뽐내면서도, 풍만한 가슴과 늘씬한 몸매를 크게 강조하여 고혹적인 미를 발산했다.
“아, 으으…!”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가 앓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양손으로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의 시선이 이어질수록 고개가 점점 밑으로 숙여졌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웠다.
생전 처음이었으니까.
누군가를 위해서,
스스로를 꾸미고 치장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혹시라도 사내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될까, 하후돈은 야단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마음을 애태우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잘 어울리십니다, 원양 님.”
“그래…?!”
“물론입니다.”
이성휘의 긍정적인 대답에 초조함을 곱씹던 하후돈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꽃봉오리가 만개하듯,
활짝 웃으면서 안도감을 흘렸다.
꼭 듣고 싶었던 대답이었기에… 노골적으로 비춰질 정도로 정직한 반응을 보였다.
“…다행이다.”
패국의 여걸이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만약 이 모습을 휘하 장졸들이 보았다면 온갖 호들갑을 떨어댔던 하후연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겠지.
대체 누구냐.
이 어여쁜 소저는 대체…!
패국하후씨 가문에 숨겨진 여식이 있었다!
사내보다 씩씩하고 다부진 인상을 보였던 여장부가 얼굴을 붉힌 채 수줍어하는 모습은 큰 혼란과 동요를 일으킬 정도였다.
“헌데 어쩐 일이십니까? 갑자기 예복을 입으시고.”
“아, 그러니까….”
이성휘의 물음에 하후돈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면서 말끝을 흐렸다.
잠시 뒤,
수줍어하던 소저가 입을 열었다.
“여, 연습… 연습을 해두고 싶어서. 언젠가 나도 혼례를 치르게 될 텐데…, 펄럭이는 비단옷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되잖아?”
실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변명이었다.
과연 거짓말에 능숙하지 못한 그녀다운 변명이다.
그러나 상대는 그녀만큼이나 거짓말에 능숙하지 못한 동류였기에 어설픈 변명이라도 먹혀들었다.
“그렇군요.”
이성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다.
그렇게 생각한 듯했다.
혼례를 치르는 새신부처럼 곱게 차려입은 하후돈의 모습을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럼 원양 소저께서 안전하게 연습하실 수 있도록 옆을 호위하겠습니다.”
“소, 소저…?!”
“예.”
낯간지럽기 그지없는 호칭에 하후돈이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소저,
소저라니…!
잘 익은 사과처럼 얼굴이 단번에 붉어졌다.
아가씨 대접을 받게 된 하후돈은 이성휘가 내민 손길을 조심스럽게 맞잡으면서 호위를 받아들였다.
‘소저, 소저, 소저…!’
가슴이 떨렸다.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장 고함을 내지르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수많은 전장을 누비면서 장졸들을 호령해온 자신을 누가 감히 ‘소저’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계속 장수로서의 본분을 다해온 하후돈이었기에 아가씨 대접이 낯설기만 했다.
“혹시라도 얼굴을 들킬 수 있으니 먼저 방립이라도 구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성휘는 급하게 구한 방립을 머리 위에 눌러쓰면서 얼굴을 가렸다. 예전에 조조를 호위했을 때처럼 말이다.
* * *
허도는 좀도둑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치안으로 유명했다.
누가 감히,
천자의 수도에서 소란을 벌일 수 있겠는가.
위병들에게 붙잡히면 즉시 극형에 처해질 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도에 따라 처분하는 조조의 엄격한 성정 덕분에 허도는 안전과 치안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었다.
“심야에도… 엄청 북적북적하네.”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사대부 규수가 인파들로 북적이는 밤거리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불야성을 자랑하듯,
허도는 심야에도 건장한 활기를 자랑했다.
중원 전역에서 몰려든 상단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허도가 완공되자마자 몰려든 상단들이 새로운 수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허도는 중원의 동맥이 될 테니까요.”
중원 전역의 물자들이 허도로 몰려들고 있었다.
풍부한 공급,
열성적인 수요.
폭발적인 잠재력을 갖춘 시장이 형성되었다.
조조군이 확보한 치안을 바탕으로 성장한 경제력은 중원의 상업과 금융을 대표했다. 조조가 신분을 막론하고 자유롭게 물건을 매매할 수 있도록 허락한 덕분이기도 했다.
“허도의 밤거리는 어떠십니까?”
“엄청 떠들썩해. 그리고 활기가 넘쳐.”
하후돈이 두 눈을 반짝이면서 밤거리를 응시했다.
난세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허도의 밤거리는 생동감 넘치는 활기를 품고 있었다.
환한 불빛에 의지하면서 시가지를 돌아다니는 가족을 본 하후돈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들 모두가 화려한 밤거리를 바라보면서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날 낙양에서 보았던 광경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어. 참 많이 달라졌네.”
격세지감을 느꼈는지,
노란 불빛에 물든 시가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웃고 있다.
여전히 바깥에서는 난세가 지속되고 있었음에도 허도 백성들의 얼굴에서는 환희와 희망이 느껴졌다.
“이 비녀 좀 봐, 엄청 예쁘다!”
“어머! 신기하게 생긴 장신구들도 있어!”
사대부 가문의 여식으로 보이는 아리따운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신구를 살피고 있었다.
비녀, 팔찌, 노리개 등등.
진귀한 보석으로 치장된 장신구들은 묘령의 여성들을 홀딱 빠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호위무사들을 대동하고서 주변을 장악한 규수들은 귀한 보석으로 장식한 장신구들을 탐닉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원양 소저도 골라보심이 어떻습니까.”
“내, 내가?!”
하후돈의 시선이 장신구를 살피는 규수들에게 향하고 있음을 본 이성휘가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그에 하후돈은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장신구를 고르라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다.
꺅꺅 소리를 지르면서 사치스러운 패물들을 고르는 규수의 모습에 하후돈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대체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 다 똑같이 생겼는데….”
이성휘를 따라 장신구들을 진열한 좌판에 발걸음을 한 하후돈이 중얼거렸다.
진주로 장식한 비녀.
반짝이는 휘석을 박은 노리개.
모두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하는 장신구들뿐이다.
대체 뭘 사야 되는 걸까.
장신구들을 연신 만져대던 하후돈은 고르기가 쉽지 않았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하고는 거리가 멀잖아….’
망설임 없이 값비싼 장신구들을 싹쓸이하는 규수들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았다.
방종하다.
사치스럽다.
수백 석의 군량미를 사들일 수 있는 거금을 단번에 내지르는 사치에 혀가 내둘렀다. 예쁘장하게 꾸민 얼굴처럼 뇌리가 꽃밭으로 찬 듯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손이 안 가네.”
사내의 물음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청초한 모습을 보이진 못할망정,
값비싼 패물들을 보며 군량미 운운이나 해대다니.
외견을 아름답게 꾸몄어도 내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사내들처럼 투박할 뿐인 자신의 모습에 우울감이 밀려들었다.
“저는 이 노리개가 어울릴 것 같습니다.”
“응?”
고운 홍마노로 장식된 노리개.
불길처럼 정열적인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하후돈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과연 노련한 호색한답게,
이성휘는 진열된 수많은 장신구들 중에서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노리개를 단번에 찾아냈다.
“그, 그래? 나는 이쪽에 완전히 문외한이거든….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성휘가 건넨 노리개를 받아든 하후돈은 어색하고 소심한 반응을 보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낯설면서도 기뻤다.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이 아름다운 장신구가 어울린다는 말이 기뻤다.
어쩌면 내가 예쁘다는 말을 에둘러서 말한 게 아닐까. 섣부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기뻤다.
“고마워.”
주홍빛 등불에 물든 얼굴에 미소가 더해졌다.
감사의 말과 함께,
양손으로 노리개를 꾹 움켜쥐었다.
소중하게 간직하겠다는 듯 노리개를 매우 조심스럽게 다뤘다. 노리개를 선물해준 사람이 머쓱함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그거 내가 먼저 찜한 노리개거든? 어느 가문의 계집인지는 모르겠지만 내놓는 게 좋을 거야.”
앙칼진 목소리가 풋풋한 분위기를 찢어발기듯이 날아들었다.
화려한 장신구들로 치장한 미녀,
방금까지 머물렀던 규수들 중 한 명인 듯했다.
상당한 세도를 자랑하는 명문가의 규수였는지 호위하고 있는 무부들이 제법 많았다. 허리에 검을 찬 무부들의 실력을 과신하는 듯 험악한 분위기를 냈다.
“먼저 샀다. 다른 물건을 골라라.”
“뭐, 뭐…?! 감히 무부 따위가!”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무부들이 열 명이 넘었음에도 이성휘는 아랑곳 않았다.
계집의 치맛자락이나 지키는 놈들이다.
체격만 우락부락할 뿐,
제대로 무예를 익힌 놈들은 한 명도 없었다.
호위무사랍시고 들고 있는 검이 아까울 정도였다.
“우리 아가씨가 누구신 줄 알고…!”
“내놓고 꺼져라. 그렇지 않으면 피를 볼 게다!”
무부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살벌한 경고를 날렸다.
그에 이성휘는 괜스레 시비에 휘말렸음을 느끼면서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자존심과는 별개로,
선물해준 노리개가 하후돈에게 정말 어울렸기 때문이다.
“뽑으면 죽는다.”
칼자루에 손을 올리는 무부들에게 이성휘가 경고했다.
꿈틀-.
서늘한 위협에 무부들이 온몸을 떨었다.
날카롭게 갈무리된 살기를 느꼈는지 낯빛이 새파랗게 질렸다. 열 명의 인원들이 고작 한 명과 대치하고 있었음에도 나서기를 꺼려했다.
“뭐해, 당장 안 싸우고!! 놈을 때려눕히든지 베어버리든지 하란 말이야!!”
포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여인이 소리쳤다.
그 순간,
다홍색의 치맛자락이 펄럭였다.
이성휘를 바라보면서 분기를 억누르고 또 억누르던 하후돈이 결국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는지 씩씩대면서 앞으로 나섰다.
“이 씨발년이 감히… 진짜 돌았나.”
규수처럼 아름답게 치장한 패국의 여걸이 위풍당당하게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욕설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