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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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과 낚시는 물론,
패국조씨 가문의 경조사에 이르기까지.
이성휘는 데릴사위 신분으로 장인어른을 따라 친목회에 참석했다.
조홍과 조인을 한꺼번에 측실로 들이면서 부정적으로 변한 원로들의 마음을 돌리려는 의도였다. 노력이 완전히 헛수고는 아니었는지 어느 정도나마 원로들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희석시킬 수 있었다.
“흐음, 성휘가 많이 바쁜 모양이군.”
지금쯤 아버지를 따라 종문회에 참석했을 이성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후후 웃음을 터트렸다.
눈칫밥을 먹고 있을 터.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들을 모두 처첩으로 들였으니 당연한 말로였다.
과연 고집불통 같은 원로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언변과 처세술은 절망적일 정도로 투박하지만 이성휘에게는 사람들을 이끄는 재주가 있었다. 그 장점을 이용한다면 원로들을 능히 설득할 수 있을 터였다.
“적당히 선물들을 바치면 될 텐데, 어째서 그런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과연 재물로 만사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조홍다운 의견이었다.
선물공세를 동원한다면 분명,
잠시 돌아섰던 원로들의 마음을 차지할 수 있을 텐데.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원로들을 설득하려는 이성휘의 행동이 우둔하게만 보였다.
“서방님이 너 같은 속물인 줄 알아?”
“뭐어, 속물?! 내가 안 구해줬으면 그대로 물귀신이 될 뻔했던 주제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입을 연 조인의 말에 조홍은 펄쩍 뛸 것처럼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속물,
황금만능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조홍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본인을 상징하는 단어로 공격당한 조홍은 굴욕감에 휩싸인 표정을 지었다.
“흥, 고생 한 번 해봐야지.”
조조가 코웃음을 치면서 천하의 바람둥이가 되어버린 남편에게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서로를 노려보면서 매도하던 조홍과 조인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혹시라도 노여움이 또 떨어질게 될까….
아연실색한 채 곁눈질로 사촌언니의 눈치를 계속해서 살폈다. 무자비한 소용돌이로 악명이 자자한 황하에 내던져지는 것은 극구 사양하고 싶은 듯했다.
“감히 나로도 모자라 사촌들을 꼬시더니, 결국에는 태원왕씨 가문의 수양딸까지 건드려? 우리 앙이만 아니었어도 당장 내쫓아버리는 것을!”
조조가 참는 이유는 단 하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때문이었다.
아들에게 혹여 악영향을 미칠까,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포악한 행위를 삼갔다.
만약 강아지처럼 귀여운 아들이 없었더라면 이성휘는 당장 조조에게 이혼을 당했으리라.
“언니, 그럼….”
“절대로 도와주지 마라. 인과응보이니.”
“네.”
꿀꺽.
사촌언니의 날카로운 반응에 조홍과 조인은 마른침을 삼킨 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칫 지금 심기를 건드렸다간,
산 채로 황하의 소용돌이에 빠트리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 수도 있기에.
서방님이 어떻게든 원로들을 설득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므로 잠시 물러서기로 했다.
* * *
친목회는 물론,
종문회에 이르기까지.
이성휘는 그동안의 무분별한 염문들로 인해 불편한 관계가 된 원로들을 설득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장인어른을 따라 가문의 데릴사위로서 입지를 다지면서 영향력을 쌓았다.
덕분에 원로들을 하나둘씩 설득할 수 있었다.
한나라의 표기장군과 진심으로 척을 질 생각까지는 없었던 원로들은 곧장 친선의 뜻을 나타냈다.
“여기 술 한 잔 받게!”
“소수의 군세로 십만 대군을 무찔렀던 영웅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게 되어 영광일세!”
조숭과 마찬가지로 관직을 내려놓고서 재야로 물러난 원로들은 노련한 정치가였다.
명문가 출신의 너구리들답게,
패국조씨 가문의 천하를 위해서라도 이성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이대로 천하제일검과 결별을 선언하게 된다면 총체적 파국을 몰고 오게 될 터.
그동안 패국조씨 가문의 독주에 이를 빠득 갈고 있던 정적들이 들고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단기필마로 전장을 질주하여 동탁의 목을 댕강 잘랐다고 들었는데… 대체 어떻게 한 건가?”
“그러니 천하제일검이 아니겠나.”
사람의 경지를 아득하게 뛰어넘은 초인적인 무력에 감명을 받았는지 원로들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어떤 식으로 무예를 훈련했는가,
무관으로 임관한 내 자식을 가르쳐줄 수 있겠는가.
여러 질문들을 동시에 받게 되었다.
그에 이성휘는 성심성의껏 질문들에 답변하면서 원로들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환관 집안이라며 세간의 멸시를 받던 우리 가문이 권력의 정점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사위가 궂은일들을 결코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일세.”
조숭이 이성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원로들에게 말했다.
벅찬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패국조씨 가문의 대업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성휘의 업적을 열거했다.
종문회에 참석했던 원로들은 숙연한 반응을 보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휘가 수많은 전장에서 분투했던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네들도 모두 알다시피 우리 가문을 호시탐탐 노리는 정적들이 그림자 속에서 도사리고 있네. 그들에게 맞서기 위해서라도 연대와 단합을 더욱 공고히 다져야 하지 않겠는가.”
권력의 정점에 오르게 되면서 수많은 정적들로부터 노려지게 되었다.
사방이 모두 적이다.
그들은 패국조씨 가문이 빈틈을 보이기만을 바라고 있을 터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권력자들이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조숭이었기에 원로들에게 연대와 단합을 강조했다.
“당숙 어르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종친들이 힘을 모아야만 합니다!”
조숭의 일장연설에 고무된 원로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를 통해,
이성휘는 패국조씨 가문의 단결력을 볼 수 있었다.
패국조씨 가문과 패국하후씨 가문.
과연 위나라의 초석이 될 가문이라는 걸까.
조조가 대업을 달성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던 두 가문답게 견고한 차돌과 같은 단결력을 보여주었다.
‘태산군에서 장개 일당들에게 살해당할 운명이었던 조숭과 종친들이 모두 살아남은 덕분이겠지.’
이성휘의 개입으로 비참한 말로에서 비껴간 덕분에 종친들의 힘은 더욱 막강해질 예정이었다.
조숭은 물론,
조조의 동생인 조덕 또한 건재했다.
환령지말(桓靈之末)에서 활약했던 원로들이 건재한 덕분에 황실과 조정을 장악했음에도 패국조씨 가문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 * *
일생일대의 용기를 내어 남몰래 짝사랑하는 남성과 약속을 나눈 하후돈.
그녀는 저택에 돌아오자마자 괴성을 내지르면서 이부자리를 나뒹굴었다.
“으으으… 으으으으!!”
푹신한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던 하후돈은 부끄러움에 물든 신음을 흘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제야,
사촌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연히 시선이 마주쳤을 뿐임에도 기뻐하던 사촌의 모습을 얼마나 한심스럽게 보았던가.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쳤다.
당시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움에 숨을 허덕일 정도였다.
‘분명 맹덕도 이런 심정이었겠지….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다그치기만 했네. 나중에 만나면 사과해야겠어.’
일방통행적인 짝사랑이 이토록 두려운 것이었던가.
그의 앞에만 서면,
뇌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써 노력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이성휘와 시선을 마주하면서 대화를 나눌 때마다 항상 부끄러움에 떠는 모습들을 보이고 말았다.
“아, 만나기로 했었지….”
이성휘와 나눴던 약속을 떠올린 하후돈은 이부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뒤,
가문의 시녀들을 불렀다.
짝사랑하는 상대와의 약속인데 선머슴 같은 모습으로 나갈 순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하후돈은 생애 처음으로 ‘치장’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대부 가문의 규수들처럼 말이다.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아가씨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근래에 돌연히 수상해진 아가씨의 모습에 당혹감을 느끼던 시녀들은 곧 이유를 알게 되었다.
분명,
짝사랑하는 사내가 생긴 것이다.
지금까지 여장부로서의 삶을 살아온 아가씨께서 가녀린 여인의 모습을 띄기 시작한 것을 경사라고 생각한 시녀들은 최선을 다하겠노라며 두 눈을 빛냈다.
“먼저 분을 발라드릴게요. 아가씨는 피부가 백옥처럼 고우시니까 조금만 칠하면 될 거예요.”
“홍화꽃 분말로 만든 연지가 어울리겠어요.”
진주를 갈아서 만든 분.
고운 홍화꽃을 빻아서 빚어낸 연지.
최상급 숯으로 만든 미묵과 각종 귀한 재료들로 만든 화장품들까지.
수많은 전장들을 종군해온 아가씨께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셨다. 연모에 빠진 아가씨를 위해 시녀들은 심혈을 기울이며 치장에 최선을 다했다.
“누, 누님…?!”
시녀들에게 화장을 받은 뒤,
사대부 규수에게 어울리는 화려한 의복으로 갈아입었다.
가냘픈 아름다움을 뽐내는 옷소매와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옥대. 풍만한 가슴과 늘씬한 몸매를 강조하는 맵시와 길게 내려오는 붉은 머리카락을 정리한 청록색 경옥 비녀까지.
“어어, 어어억…!”
항상 사내대장부처럼 투박한 의복만을 고집해온 누이가 규수처럼 비단옷을 입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지금 목격하고 있는 현장은 꿈이 아닐까?
그래,
꿈이다.
꿈이 아니고서야 가능할 리 없다.
‘사내처럼 거칠고 투박한 것을 고집하는 누이가 규수처럼 꾸민 모습을 보고 싶다.’라는 본인의 음습함이 만들어낸 환영이 틀림없었다.
“우아아악!!”
하후연이 놀라 소리쳤다.
백주대낮에 귀신이라도 본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비명을 힘껏 내질렀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모습을 본 하후연은 바닥에 툴썩 주저앉았다.
“당신 누구야! 우리 누님을 돌려줘!!”
저택에 돌아오자마자 지랄을 떨기 시작하는 동생의 모습에 하후돈은 벽면에 걸어둔 월도를 뽑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