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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391화 (391/616)

〈 391화 〉 막간. 여장부의 일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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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가물치를 낚은 조숭은 파안대소를 터트리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낚싯대를 드리우고서 불과 20여 분도 안 되었음에도 월척을 낚았다.

사위에게 한껏 성과를 자랑한 조숭은 한껏 들뜬 어린아이처럼 기대감에 벅찬 표정을 지었다. 젊었을 적의 왕성했던 혈기를 다시 떠올린 듯했다.

“내가 사례교위를 지냈을 적에도 이렇게 큰 가물치를 낚아본 적이 있다네!”

“과연 대단하십니다, 장인어른.”

“하핫! 나이가 들었어도 실력은 여전한 것 같아 기쁘구만.”

조숭은 태위(太?)에서 물러난 다음 단 한 번도 관직에 오르지 않았다.

패국조씨 가문의 권력을 장악한 뒤,

사대부와 호족들이 조숭에게 다시 한 번 관직에 오를 것을 넌지시 권유했지만 모두 뿌리쳤다.

그간 보냈던 한적한 삶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조숭은 사냥과 낚시와 같은 취미생활에 몰두하면서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보낼 뿐이었다. 더 이상 정쟁에 관여하고 싶지 않음을 표시하듯 말이다.

“장인어른은…, 다시 관직에 나서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이제는 없다네.”

이성휘의 물음에 조숭은 짧은 대답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회한이 느껴지는,

약간의 미련과 그리움이 감도는 표정을 지으면서­

청명하게 빛나는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아만에게 모두 맡겼으니 말일세. 나는 취미생활이나 즐길 뿐인 늙은이인 게지.”

목표를 향한 꿈도,

권력을 향한 야망도.

모두 딸아이에게 물려주었다.

빠르게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를 못하는 자신이 권좌에 오르는 것은 어불성설인 이야기였다.

둔해빠진 늙은이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나는 심약한 늙은이일 뿐,

새로운 시대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조숭은 패국조씨 가문의 대업을 딸아이에게 맡긴 채 배후에서 조력하는 역할에만 안주했다.

“장인어른께서는 아직 정정하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네.”

조숭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듬직한 사위와 함께,

낚싯대를 드리우고서 함께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얼마나 고대해온 행복이던가.

평생 노처녀로 살 것 같았던 딸아이가 듬직한 신랑감을 만나 혼례를 올렸다. 게다가 떡두꺼비처럼 건장한 사내아이까지 낳았다.

사내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은 딸아이의 모습에 절망한 채 기대를 포기했었건만… 이렇게 기쁜 날이 이 조거고에게 올 줄이야.

일찍 사별했던 아내도 분명 기뻐하고 있으리라.

“자네에게 늘 고맙네. 자네가 없었더라면 분명 딸아이는 평생 독신이었을 테니 말일세. 귀여운 손주의 얼굴도 못 보고 나도 세상을 떴겠지.”

“감읍한 말씀이십니다.”

“포대기에 쌓인 아들을 보며 한없이 기뻐하던 아만의 모습이 뇌리 속에 선명하다네.”

“…….”

철부지로만 느껴졌던 딸이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본 뒤,

집으로 돌아와 얼마나 울었던가.

일찍 아내를 사별했을 적에 울었을 때처럼 크게 오열했다. 체면과 위엄을 잠시 망각했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사위가 천하의 호색한이지만 말일세.”

“죄, 죄송합니다.”

장난기가 다분한 조숭의 말에 이성휘는 당혹감으로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말이 없었다.

연이어 들린 염문들에 크게 당황했을 장인어른에게 깊이 고개 숙여 사죄할 수밖에.

“하하핫! 고개를 들게, 그냥 해본 말이었네!”

의기소침한 반응을 보이는 이성휘의 모습에 조숭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천하제일검이,

긴장을 한 채 진땀을 빼는 모습이라니.

어지간히도 마음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만이 허락한 일을 어찌 내가 참견하겠나?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네. 자렴과 자효도 자기들이 원하여 측실이 된 게 아닌가.”

패국조씨 가문의 원로들과는 달리 조숭은 이성휘에게 여전히 호의적이었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조숭은 흔쾌히 결과를 받아들였다.

조카딸들이 진심으로 그를 연모하여 측실이 되기로 한 것일 테니까.

“그저…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외동딸을 가로채간 사위가 조카딸들마저 측실로 삼았다는 소식을 듣고서 얼마나 놀랐을까.

실로 황망할 뿐이다.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서 숨고 싶을 정도로.

게다가 태원왕씨 가문의 수양딸까지도 측실로 들이지 않았던가.

쓰레기 그 자체였다.

불에도 타지 않는 쓰레기 말이다.

아직 양심이 동그라미로 일그러지지 않았기에 가책을 느꼈다. 만약 장인어른이 겸허히 받아들여주지 않았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엎드린 채 사죄를 청했으리라.

* * *

장인어른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던 하후돈은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훈훈한 분위기에,

혹시 자신이 파국을 몰고 오지는 않을까.

하후돈은 낚시를 뒷전으로 미뤘을 정도로 이성휘에게만 집중할 뿐이었다. 조심스러운 곁눈질로 계속 그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나답지 않게 뭘 무서워하는 거야…? 이런 건 나답지 않은데.’

치부를 들킬까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계속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니.

천하의 어느 여장부가,

이런 연약한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사랑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여려졌다.

한 사내를 사랑하게 되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담대한 모습으로 장졸들의 귀감이 되어주었던 패국의 여걸은 첫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녀처럼 수줍은 마음을 곱씹으면서 연모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원양 님?”

“아아앗?!”

장인어른과의 대화를 끝내고서 돌아온 이성휘의 부름에 하후돈이 가냘픈 비명을 토해냈다.

대체 뭐란 말인가,

이 꼴사나운 비명소리는.

화들짝 놀란 고양이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무심코 보인 하후돈은 수치심에 얼굴을 붉혀야 했다.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는 가냘픈 모습이었기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 추태를 본 사람이 짝사랑 상대였다.

“아, 아무것도 아냐! 등에 벌레가 들어가서….”

“그렇습니까.”

급히 지어낸 변명에 고개를 끄덕인 이성휘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면서 하후돈의 옆에 앉았다.

두근두근­.

지조를 모르는 심장은 이성휘가 오자마자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정직한 반응인가.

진심으로 그를 연모하고 있음을 증명하듯 심장소리가 맹렬해졌다. 혹시라도 이성휘의 귓가에 크게 뛰는 심장소리가 들릴까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숙부님과 이야기를 오래 나누던데.”

“…예.”

“자렴과 자효에 대한 일이겠지. 숙부님께서 뭐라고 하셨어?”

혹시라도 숙부님이 노여움을 드러내셨을까.

애써 담담한 척하면서도,

하후돈은 조심스럽게 이성휘의 안색을 살폈다.

만약 이번 일로 큰 야단을 맞았다면 이성휘는 끝까지 마음을 닫으려고 할 터. 그로 인해 자신의 사랑이 불발로 끝나게 될까 우려를 드러냈다.

“겸허히 받아주셨습니다.”

“숙부님께서?”

“그것이 아만의 결정이라면…. 자렴과 자효의 결정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후우, 다행이네.”

결정에 간섭하지 않겠다.

그것이 원한 결과라면,

겸허히 받아들이겠노라고 대답했다.

숙부님의 의중을 경청한 하후돈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과 이성휘가 맺어지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급한 불은 껐네?”

하후돈이 장난기 다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이성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는데도… 겸허히 용서해주셔서 마음이 무거울 따름입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하지는 마. 아만도 결국에는 관계를 허락해줬잖아? 원로들은 내가 설득해볼 테니까.”

“감사합니다.”

과연 조조의 연애상담 역할답게 하후돈은 배려심이 매우 깊은 성정이었다.

오래 사귄 친구처럼,

진심으로 이성휘를 응원해주었다.

물론 그 마음에는 사적인 감정이 듬뿍 녹아들어 있었지만.

친구 이상의 연인이 되고 싶은 그녀는 복잡한 심정을 떠안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 하나 부탁이 있는데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하후돈의 말에 이성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무슨 부탁이든,

무슨 요구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몇 번이고 신세를 졌었기에….

설령 무리한 제의라고 할지라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그것이 바로 그녀를 향한 보은일 테니까.

“끝나고 돌아가면… 우리 가문에 한 번 들러줘. 하고 싶은 부탁도 있고, 하고 싶은 말도 있으니까.”

“예.”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부탁.

은연중에 마음을 전하는 하후돈의 얼굴이 노을빛처럼 물들었다. 부끄러움에 젖은 그녀의 미소는 한없이 고혹적이었다.

“자, 이제 가자. 숙부님께서 기다리시겠다.”

“알겠습니다.”

이성휘의 진지한 눈길과 심장을 옥죄는 부끄러움을 계속 견딜 수 없었던 하후돈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급히 지어낸 핑계를 대며,

얼굴만 쳐다봐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내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러면 안 되는 건 알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분명 자렴과 자효도 이런 심정이었겠지.’

사촌의 연인에게 반해버릴 줄이야.

설마,

연애상담의 짝사랑 상대에게 반해버리다니.

무려 2년 동안이나 조조의 연애상담을 해온 하후돈은 대상이었던 이성휘에게 반해버린 현실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무거운 죄책감조차도 그를 향한 연심만큼은 흔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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