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2화 〉 382. 전쟁의 풍운으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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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의는 조조군의 후지기수들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성장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개국공신 가문의 후예이며,
또한 고관대작들을 두루 역임했던 아버지를 정치적 후견인으로 두고 있었기에 더욱 출세가 빨랐다.
표기장군 이성휘의 총애를 받아 표기장군부의 속관에 임명된 사마의는 주변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배신마! 배신마의!”
“낭고의 상이래! 분명 배신할 거야!”
궁궐에 갓 들어온 어린 궁녀들이 흑발의 소녀를 보더니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겨우 열 살 정도 됐을 법한,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어린 소녀들이었다.
대체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어린 소녀들은 사마의를 보며 ‘배신자’ ‘낭고의 상’이라며 수군거렸다.
“보, 본좌 배신한 적 없음!”
사마의가 억울함을 토로했다.
배신이라니!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성격파탄자(조조)의 휘하에서 눈칫밥이나 먹으면서 일하고 있지 않은가.
목숨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을 직장상사로 섬기고 있었기에 배신은 언감생심조차 낼 수 없었다.
“들었어! 앉은 채로 고개를 뒤로 돌릴 수 있대!”
“맞아! 그게 바로 낭고의 상이랬어!”
개구쟁이들의 장난에 시달리게 된 사마의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학당에서 당한 괴롭힘이 떠오른 걸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눈망울을 보건데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중달.”
곤혹스러움을 마주하게 된 사마의는 자신을 부르는 남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성휘였다.
우연히 놀림당하고 있는 사마의를 목격한 듯했다.
낯선 남성의 모습을 본 어린 궁녀들은 후다닥 달아났다. 마치 맹금을 만난 종달새들을 연상했다.
“본좌 방금 무서웠음! 못된 꼬맹이들이 순진무구한 본좌를 배신자라고 놀렸음!”
“…배신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배신자하면 사마의,
사마의라면 배신자 아닌가.
물론 이쪽 사마의는 학당 출석거부, 방구석지기, 저택경비원의 속성이 붙은 괴짜 꼬맹이였지만.
‘낭고(?)의 상이라….’
뺨에 바람을 주입하면서 분기를 터트리는 사마의의 모습을 슬쩍 쳐다보았다.
뿌뿌!
사마의는 방금까지 자신을 놀렸던 꼬맹이들을 떠올리면서 유치한 장난을 하고 있었다.
설마 이게 모두 방심시키려는 기만책이 아닐까.
그렇게 잠깐 생각했던 이성휘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이 아이는 바보가 분명하다.’라고 정의했다.
“방금 사라졌던 아이들은 궁궐에 갓 들어온 궁녀들로 보이던데.”
“맞음! 건방지고 괘씸했음! 본좌를 낭고의 상이라고 놀리기까지 했음!”
“…….”
두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억울함을 힘껏 토로하는 소녀의 모습에 이성휘는 침묵했다.
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낭고의 상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네가 용서해줘라. 궁궐에 들어오는 궁녀들은 대부분 어려운 사정들 때문에 온 것일 테니.”
입을 줄이기 위해.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정쟁과 모략들이 판을 치는 궁궐에 스스로 발을 들이는 이유가 대부분 가난 때문이다.
분명 방금 보았던 어린 궁녀들도 사정이 있기 때문에 들어온 것일 터… 그렇기에 안쓰러울 수밖에 없었다.
“흥! 칫! 뿡!”
토라진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반응들을 보인 사마의는 고개를 홱 돌렸다.
화난 기색이 역력했지만,
결국 그 아이들을 용서해주기로 한 듯했다.
그 기특한 모습에 이성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특별히 꼬맹이들을 봐주는 거임!”
“그래.”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돌아서는 사마의의 기특한 모습에 이성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인에게 매달리는 강아지처럼,
흑발의 소녀는 고개를 갸웃갸웃 흔들면서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받아들였다.
낭고의 상.
그럼에도 이성휘는 사마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 * *
조조의 천거를 받아 주부(??)로 임명된 홍농양씨 가문의 여식은 매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문서와 기록들의 정리는 물론,
군부의 공문서들 또한 양수가 도맡아서 관리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서고에서 문서들을 정리하던 양수는 한편에 쌓아둔 죽간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 죽간들이 모두 여기 있네요.”
표기장군 이성휘.
그가 전선에서 올린 장계들이었다.
수춘성 공방전.
삼보 토벌전.
연이은 정벌로 숙적들을 멸망시킨 이성휘의 전공은 수많은 장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었다. 군부에 소속된 양수 또한 이성휘가 올린 장계들을 몇 번이고 살폈을 정도로 그의 전과를 높게 평가했다.
“분명 사공부에서 제출하라고 할 테니까 여기 한꺼번에 보관해둔 걸까요?”
모든 전선들에서 올라오는 장계들은 모두 사공부로 전달된다.
조조는 황실과 조정을 장악한 것은 물론, 군부까지 틀어쥐고 있었기에 중요한 문서들이 무조건 사공부의 재가를 받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장계를 가지고 왔다만.”
똑똑.
손기척을 보낸 남성이 서고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색의 시무복을 걸친 사내는 문서들을 정리하던 양수에게 두루마리를 건넸다. 굵은 금실로 봉인된 두루마리였다. 위에 봉인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제법 일처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네요. 일자무식의 무인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세련되고 깔끔한 일처리. 꼼꼼하게 잘 정리한 두루마리만 봐도 알 수 있다.
틀린 글자는 기본,
까막눈에 일자무식이 판을 치는 곳이 군부였으므로 양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남성이 물었다.
그에 양수가 고개를 숙이면서 입을 열었다.
“주부에 임명된 양수라고 합니다.”
“아, 그런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한 사내는 고개를 돌리면서 용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문서들이 보관된 책장들을 어슬렁거렸다.
그에 양수가 입을 열었다.
“혹시 찾고 계신 문서가 있다면 저한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제가 찾아드리겠습니다.”
“음.”
불과 열흘 만에 서고에 보관되어 있는 문서들의 위치를 파악한 천재가 자신감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검은색 시무복을 보건데,
분명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 틀림없었다.
자신의 천부적인 두뇌를 자랑하고 싶어 근질근질했던 양수는 기꺼이 도와주겠다며 콧대를 높였다. 한없이 자신만만한 그 모습은 ‘관종’의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홍농양씨 가문인가. 광록대부의 여식이겠군.”
“예, 그렇습니다.”
고관대작인 아버지에게 경칭을 붙이지 않는 사내의 행동에 잠시 불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용서하기로 했다.
서고를 방문한 사내가 매우 잘생겼기 때문이다.
고개를 든 채 문서들을 훑고 있는 사내의 옆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양수는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헛기침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런데 어디서 만난 것처럼 느껴지네요. 으음, 이렇게 잘생긴 미남을 잊을 리 없을 텐데.’
맹금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자랑하는 사내.
사대부의 곱상한 자제들과는 달리,
눈앞의 사내는 날카롭게 벼려낸 칼끝처럼 치명적인 매력을 품고 있었다.
“잘 지내고 있나? 원술의 여식 말이다.”
“아….”
폭군의 딸.
가족들을 모두 잃은 비운의 여식.
저택에 머물고 있는 소녀를 떠올린 양수는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한순간에 천애고아가 되어버린 원엽을 불쌍하게 여겨 성심성의껏 돌봐주고 있었다. 가문의 부주의로 인해 모친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이었기에 깊은 책임감을 느꼈다.
“잘… 지내고 있어요.”
“다행이군.”
살피던 서적을 툭 내려놓은 사내는 짧은 대답과 함께 발걸음을 돌렸다.
눈꺼풀을 반쯤 내린 채,
죄책감에 물든 씁쓸한 눈빛을 흘렸다.
사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홍농양씨 가문의 아가씨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 * *
무자비한 전쟁을 무려 두 차례나 겪었던 서주는 빠르게 평온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도겸을 보필했던 관료들이 조조군에 재등용되어 내정에 투입된 덕분이었다.
관료들의 활약으로 서주 백성들의 공포와 두려움은 빠르게 누그러들었다.
“평화롭구먼.”
“다시 생업에 종사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일세.”
촌부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쑥덕거렸다.
팽성이 함락되었을 당시,
서주 전역은 공포의 도가니에 휩쓸렸다.
도겸에 이어 우리들까지 모두 죽일 게 틀림없다!
아버지와 부하를 잃을 뻔한 조조가 수십만 명의 백성들을 모두 진멸할 것이라며 공포에 몸부림쳤다.
하지만 서주를 점령한 조조군은 불안을 해소하려는 듯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세금을 감면하고 구휼미를 나눠주는 등, 많은 유화책들을 펼치면서 백성들의 민심을 수습했다.
“난리통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양도현도 다시 평화를 되찾았군. 정말 천만다행이다.”
시골벽지에 가끔씩 찾아오는 상인에게 서적들을 구입한 젊은 남성은 집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새로운 서적들을 잔뜩 구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동생도 크게 기뻐할 터.
타고난 책벌레인 여동생을 위해 꼭두새벽부터 상인을 기다렸던 사내는 기쁨에 찬 여동생의 반응을 기대했다.
“많이 늦으셨네요. 그러게 운동 좀 하시라니까.”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여동생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오히려 여동생은 늦장을 부린 오라버니를 타박하는 매정함을 보였다.
머쓱해진 오라비는 뒷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달구지에 실고 돌아온 서적들을 보여주었다. 그제야 여동생은 마루에서 벌떡 일어나 오라비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량아야, 학당은 언제쯤에 갈 생각이니?”
“타고난 천재는 안 가도 돼요.”
오라비의 물음에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한 여동생은 서적을 집자마자 마루에 벌러덩 누웠다.
사르륵.
아름다운 은발이 부채꼴로 흩어졌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방울꽃처럼 아름다운 용모를 품은 소녀가 보석처럼 빛나는 벽안을 반짝였다.
“촌구석 선생들이 잘 가르쳐봤자 얼마나 잘 가르치겠어요? 뭐, 용하다는 수경 선생이라면 모를까.”
촌철살인처럼 학당의 선생들을 폄하한 소녀는 독서에만 몰두했다.
바깥사정은 아무래도 좋다.
나는 그저 책을 읽고 싶을 뿐이니까.
천하를 향한 관심을 일절 끊은 채 서적에만 시선을 두었다. 어지러운 난세 따위보다도 독서가 훨씬 재밌기 때문이다.
“후우….”
여동생의 나태한 모습에 오라비는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집안 어른들이 어릴 적부터 전무후무한 신동이라며 치켜세웠기 때문일까. 성격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만약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재수 없어.”라는 말을 덧붙였으리라.
“아, 그 소식은 어떻게 됐어요?”
“뭐가 말이냐.”
자신의 물음을 오히려 되물어보는 오라비의 행동에 은발의 소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한숨을 내쉰 뒤,
오라비에게 재차 입을 열었다.
“천하제일검 말이에요. 야차처럼 사람을 슉슉 베어버린다는 전설의 무인.”
“아아.”
천지신명이 내린 신동이라 불리는 여동생이 유일하게 관심을 두고 있는 대상.
천하제일검 이성휘.
서적을 구하러 간 사내는 가장 먼저 상인에게 이성휘에 관한 소식들부터 수소문했다. 뒤틀린 성격의 여동생을 바깥으로 끄집어낼 귀중한 동기가 되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빨리요, 빨리!”
마루에서 벌떡 일어난 은발의 소녀가 두 어깨를 들썩이면서 채근했다.
제갈량.
세간을 등진 채 누운 용.
자아도취가 뚜렷한…, 흔히 재수 없는 성격을 자랑하는 소녀는 오라비 제갈근을 바라보면서 천하제일검의 이야기에 한껏 흥미를 드러냈다.
서적들을 잔뜩 가져왔을 때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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