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1화 〉 381. 전쟁의 풍운으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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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언니나 다름없는 초선이 이성휘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유협은 제 일처럼 축하해주었다.
낙양에 있을 때부터 초선이 계속 그를 연모하고 있었음을 알기에 더욱 기뻐했다.
딸일까, 아들일까.
유협은 시녀들과 함께 쑥덕거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천하제일검을 빼닮은… 산군처럼 용맹한 사내아이가 태어날 거예요!”
“아냐! 낙양제일미라 불린 초선 아씨처럼 아름다운 딸아이가 태어날 게 분명해!”
아들이라면 천하제일검의 용맹을,
딸이라면 낙양제일미의 아름다운 미모를 쏙 빼닮을 터.
어렵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어려웠다.
아버지가 천하제일검이며, 또한 어머니가 낙양제일미였기 때문에 시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물론 둘 다 닮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가장 지배적이었지만 말이다.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으응….”
한 시녀가 물었다.
그에 금발을 늘어뜨린 소녀는 팔짱을 낀 채 고르기 어렵다는 듯 입술을 우물거렸다.
어느 한쪽을 고를 수 없을 정도로 부모가 완벽했기 때문이다. 결국 유협은 부모를 모두 닮았으면 좋겠다는 다수의 의견을 선택했다.
“둘 다… 닮았으면 좋을 것 같다.”
뛰어난 무용도,
아름다운 미모도 좋지만.
이성휘와 초선의 자애로운 성품을 물려받은 아이가 태어났으면 좋겠다.
황태제에게 있어 이성휘와 초선은 금은보화와도 같은 존재였다. 만약 그들의 헌신과 노력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결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테니까.
그렇기에 유협은 항상 이성휘와 초선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전하, 경연에 나가실 시간입니다.”
관모를 쓴 환관이 고개를 푹 숙이면서 시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유협에게 통보했다.
벌써 경연에 나갈 시간인가.
금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입술을 삐죽였다.
마치 투정을 부리는 듯한 귀여운 모습이었다.
“또 경연이냐! 1주일에 두 번이라니… 싫다!”
제아무리 뛰어난 신동이라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이다.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것보다,
바깥에서 노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특히 유협은 내원에서 궁녀들과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다. 게다가 조정대신들과 몇 시간씩 경전을 공부하는 경연은 무척이나 따분했기 때문에 학을 뗄 정도로 싫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힘내시옵소서.”
“다과를 준비하고 전하를 기다리겠사옵니다.”
시녀들이 입술을 삐죽 내미는 유협을 달랬다.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작은 황태제가 좋아하는 다과들을 동원하여 설득했다.
달콤한 설득에 넘어간 황태제는 군소리를 투덜투덜 늘어놓으면서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꼭 다과를 대령해야 한다!”
만약 자신이 불참해버리면 오라비가 홀로 경연장에서 조정대신들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학습이 매우 더딘 오라비는 조정대신들에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탈탈 털리고는 했기에 도와줘야 했다.
“늦었다, 어서 서두르자!”
신발을 신은 소녀가 바쁜 걸음으로 내달렸다.
짧은 다리를 도도 움직이며,
조정대신들이 모인 경연장으로 향했다.
* * *
언니가 태원왕씨 가문의 불여우를 용서해주었다.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조홍은 계속해서 빈객들에게 자세한 소식을 알아보도록 주문했다.
결국 빈객들의 계속된 수소문으로 진위를 확인하게 된 조홍은 질투와 시기의 화신이었던 언니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귀여운 조카를 낳은 뒤로… 너그러운 성품으로 변한 게 분명해!’
두 사촌동생들에게 칼자루를 뽑아들 정도로 가차없던 언니가 너그러워졌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지만…,
분명 언니의 심중에 많은 변화가 생긴 것은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남편과 바람을 피운 것으로 모자라 임신까지 한 태원왕씨 가문의 불여우를 용서해줄 리 없었으니까.
“으음, 그 불여우가 임신을 했단 말이죠?”
“그렇습니다.”
흐응.
팔짱을 낀 조홍이 침음을 흘렸다.
아이를 회임한 무거운 몸을 이끌고서 사촌언니에게 허락을 받아냈다는 낙양제일미의 일화에 크게 관심이 생긴 듯했다.
본인도 비슷한 처지이기 때문일까.
조홍은 첩으로 인정을 받았음에도 번번이 언니에게 견제와 경계를 받았기에 계속 눈칫밥을 먹고 있었다.
‘그냥 나도 서방님의 아이를 임신해버려?’
조금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전례가 생겼으니,
어쩌면 나도 성공할지도 모르니까.
‘예전부터… 서방님의 아이를 가지고 싶었으니까.’
연모하는 남성의 아이를 임신하는 것은 여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리라.
아들을 둔 언니가 부러웠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의 재롱을 보면서 기뻐하는 언니의 모습을 동경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조홍은 초선의 일화를 듣자마자 연모하는 사내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부르셨습니까, 도호장군.”
소식을 전한 빈객이 나간 뒤,
이윽고 주황빛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이 내실 안으로 들어왔다.
군사좨주(????) 곽가였다.
주당으로 유명한 곽가의 술친구였던 조홍은 다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의 도움을 받았다.
“언니는 지금 어떠세요?”
혹시라도 태원왕씨 가문의 불여우 때문에 언니께서 심기가 불편해진 상황은 아닐까.
조홍은 언니의 심복인 곽가에게 속사정을 물었다.
그에 곽가가 대답했다.
“평소와 다름없으십니다. 업무를 최대한 빨리 끝낸 다음에 공자님을 보러 가십니다.”
“그, 그럴 리가 없는데….”
조홍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분명 길길이 날뛰고도 남았을 텐데.
낙양제일미를 용서해준 것도 이상했고, 그 뒤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언니의 모습도 수상했다.
“아이를 가진 가냘픈 모습이 주군의 마음을 자극했을지도 모르죠.”
곽가가 어깨를 으쓱였다.
주군은 철혈의 군주이나,
동시에 한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후계자를 출산한 이후부터 조조는 관대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조의 최측근이었던 곽가가 그 변화를 놓칠 리 없었다.
“요컨대 아이를 임신하면 된다는 거죠?”
“예, 뭐 그렇죠.”
과연 불여우 1호답게 불여우 2호의 방법을 그대로 써먹으려 했다.
꾀가 많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어수룩하다고 해야 할지.
두 눈을 빛내면서 응큼한 속셈을 품고 있는 조홍의 모습에 곽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좀 도와주세요, 봉효.”
“네?”
“서방님의 아이를 임신한 다음에 언니의 허락을 받아내려면… 봉효의 도움이 필요할 거 같아요.”
“…….”
조홍의 부탁에 곽가가 입을 다물었다.
물론 전례가 생겼으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만약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주군이 숙청을 휘두른다면 자신도 꼼짝없이 조홍과 형장으로 직행할 터.
칠전팔기로 들어온 직장에서 면직을 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비극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곽가는 부탁을 거절하려 했다.
“제가 어렵사리 구한 명주가 있는데….”
조홍이 찬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붉은색으로 점철된 술병,
그윽한 향기가 일품인 머루주가 분명했다.
예주 최고의 주조가(??家)가 최상급 머루들을 빚어서 만든 과일주.
유일한 취미가 음주일 정도로 뼛속까지 애주가였던 곽가가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뇌물이었다.
“제,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조홍에게 머루주를 건네받은 곽가가 물었다.
군사좨주 곽가.
사공(??) 조조가 가장 신임하는 참모.
그녀는 술 한 병에 주군과의 신의를 잠시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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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 병으로 곽가를 포섭한 조홍은 곧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곽가에게 언니를 전담하도록 한 뒤,
도둑고양이처럼 이성휘의 침소에 몰래 숨어들었다.
오늘 밤에 반드시 서방님의 아이를…!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침소에 도달한 조홍은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박동을 느꼈다.
‘흥! 출신도 모를 수양딸한테 선수를 빼앗길 순 없어! 서방님의 처음을 가져간 여자는 나라고!’
만약 사촌언니가 들었다면 황하에 재차 담가버렸을 지껄인 조홍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감히 시녀 따위가,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을 앞지르려 하다니.
방심한 틈에 기정사실을 만들어버린 초선의 과감한 행동에 위기감을 감지한 조홍은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나서야만 했다.
“서방님!”
드륵.
흑발의 여인이 당찬 목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다.
서방님의 침소를 담당하는 노복들은 돈으로 매수한 뒤였다. 노복들을 통해 사랑하는 서방님이 침소에 들었다는 것을 확인하였기에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으응… 으으응!”
살금살금 들어온 도둑고양이의 눈에 비춰진 광경은 실로 야릇하기 짝이 없었다.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흑발의 여인이 야생마처럼 허리를 들썩이고 있었다.
철퍽. 철퍽.
허리가 부딪칠 때마다 음란한 소리가 났다.
커다란 가슴과 풍만한 엉덩이를 자랑하는 경국지색의 미녀는 불청객의 등장에도 아랑곳 않고 행동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표, 표기장군의 물건… 훌륭합니다♡”
으읏.
으으응…!
복숭아처럼 새하얀 얼굴을 물들인 여인이 달콤하게 젖은 속삭임으로 사내를 칭찬했다.
몸을 빠짐없이 즐기겠다는 듯,
대담하게 사내의 위에 올라탄 여인은 더욱 크게 교성을 토해냈다.
“야, 이 도둑년아!”
달콤한 기대감을 품고서 서방님의 침소에 쳐들어온 조홍이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순서를 빼앗은 도둑년,
사촌 조인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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