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0화 〉 380. 전쟁의 풍운으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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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시녀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조조와 담판을 짓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여포와 장료는 다급한 발걸음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분명 그 성격 나쁜 빨래판에게,
살해협박을 위시한 온갖 압박에 시달렸음이 분명했기에.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초선은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본가에 돌아왔다.
“봉선? 문원? 어찌 그러시옵니까…?”
조조가 마련해준 사두마차를 타고 본가로 돌아오게 된 초선이 고개를 갸웃하며 여포와 장료에게 물었다.
새파랗게 질린 낯빛을 한 채,
소스라치게 놀라는 여포와 장료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곧 정신을 차린 여포는 초선의 몸을 급히 진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옷소매를 홱 걷으면서 가느다란 팔과 어깨를 살피기까지 했다.
“보, 봉선?!”
초선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거친 손아귀로 앞섶을 풀어헤치는 여포의 막무가내 같은 행동에 놀란 탓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 빨래판 여자 말이야! 얼음장처럼 살벌한 여자가 치도곤이라도 가한 건 아니지?!”
남편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두 사촌동생들의 면전에서 칼자루를 뽑았던 독부가 아닌가.
분명,
선배에게 해코지를 했음이 틀림없다.
만약 친애하는 선배에게 말 못할 정도로 심한 해코지를 가했다면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당장 방천화극을 뽑을 기세로 두 눈을 부릅떴다.
“아무 일도 없었사옵니다. 오히려 사공께서는 소녀에게 산부의 건강에 좋은 탕약까지 주셨사옵니다.”
작약꽃처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미녀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자애로운 본처께서는 남편과 바람을 피운 여자에게 약재를 하사하는 아량을 베푸셨다. 초선은 그런 조조에게 깊은 경애를 느꼈다.
“지, 진짜?!”
“그게 사실인가요!”
여포와 장료가 두 눈을 크게 뜨면서 소리쳤다.
이런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질투와 시기의 화신과도 같은 그 여자가 불륜을 당당하게 고백한 상간녀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호색한의 상징이 되어버린 이성휘가 갑자기 금욕생활을 선언했다는 말처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에 후배 시녀들은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옵니다. 탕약은 물론, 소녀의 안부까지 염려해주셨사옵니다.”
“…….”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질투와 시기의 독부가,
자애로운 포용을 품은 선녀가 되다니.
여포와 장료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의아함을 증폭시켰다.
“뭐, 멀쩡하다니 다행이네.”
곁눈질을 힐끗 보내면서 방긋 웃고 있는 초선의 얼굴을 본 여포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런 준비조차 없이 독단으로 사공부로 향했다는 말을 듣고서 얼마나 놀랐던가.
엉뚱하면서도 담대한,
한없이 부드러운 성품이면서도 외골수처럼 드센 고집을 자랑하는 선배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선아!”
사내의 아이를 품은 낙양제일미가 선배를 끔찍이도 아끼는 후배 시녀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을 때,
이성휘가 다급한 모습으로 달려왔다.
그도 사공부의 소식을 들은 것일까.
방금 두 시녀들이 보였던 모습처럼 크게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며, 명공…!”
경애를 마지않는 명공의 얼굴을 본 초선은 두 어깨를 바르르 떨면서 망설였다.
지금까지 임신 사실을 비밀리에 붙인 것에 대해 명공에게 노여움을 받게 될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명공의 아이를 가져도 되는 걸까.
혹여 명공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계속 우려와 걱정을 품어온 초선은 끝내 아이의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한 채 고민을 이어왔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심려에 물든 표정을 지은 이성휘가 두 팔을 뻗으면서 초선을 꼭 끌어안았다.
아이를 보살피듯,
상냥한 손길로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경애하는 명공의 품에 안기게 된 초선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도 그리웠던 온기에 두 눈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알아차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아니옵니다! 소녀가 명공을 기만한 것이옵니다. 어찌 명공께서 소녀에게 사과하시옵니까…!”
고개를 숙이면서 스스로의 우매함을 사과하는 이성휘의 행동에 초선이 어깨를 떨면서 외쳤다.
어찌,
명공께서 사과하십니까.
시커먼 의심암귀에 빠져 고백하기를 망설여온 계집의 어리석음 때문인 것을.
하늘과도 같은 명공을 계속 기만한 것도 모자라 걱정마저 끼치고 말았다. 세찬 물결처럼 몰아치는 죄책감을 느낀 초선은 눈물에 젖은 시선으로 이성휘를 올려다보았다.
“어째서 사공부로 가기 전에 미리 상의하지 않았습니까. 먼저 알았다면 맹덕 님을 설득했을 겁니다.”
이성휘가 짐짓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서 그때까지,
절박한 심정에 내몰린 순간에조차 내게 일언반구조차 귀띔해주지 않았는가.
일이 끝난 다음에야 사실을 알게 된 이성휘는 당연히 초선에게 야속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명공에게… 폐가 끼칠 것 같았사옵니다. 하늘과도 같은 명공을 곤혹에 빠트리고 싶지 않았사옵니다.”
애처롭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는 초선의 모습을 눈에 담은 이성휘가 입을 열면서 대답했다.
“저한테 폐를 끼쳐도 됩니다. 곤혹에 빠트리더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소저를 위해서라면 말입니다.”
“며, 명공…!”
애처로운 사랑이 범람하는 장면을 응시하던 장료는 옆에서 “훌쩍!”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금발을 늘어뜨린 여성이,
붉게 물든 두 눈을 끔뻑이면서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주인님과 선배 시녀의 사랑에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일까. 의외로 감수성이 풍부한 성격이었던 병주의 비장은 감격에 몸을 떨기까지 했다.
“아이의 성씨는… 명공에게 받고 싶사옵니다.”
초선이 수줍은 표정을 지으면서 아랫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이가 태어난다면,
명공의 성씨를 붙이고 싶다.
이씨(?).
낙양이씨(??)의 성씨를 가진 아이를 낳고 싶다는 의사를 보냈다. 그에 이성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순순히 허락했다.
“상관없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태원왕씨 가문의 가계에 두지 않아도.”
“괜찮사옵니다.”
왕윤에게는 두 명의 아들과 두 명의 조카들이 있었다. 패국조씨 가문처럼 승계를 목적으로 모친의 성씨를 따를 이유가 없었다.
“가까운 시일 내로… 이름을 짓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사옵니다, 명공!”
겸연쩍은 듯 이성휘가 뺨을 긁으면서 말했다.
그에 초선은 헤실헤실 웃으면서 경애하는 명공에게 매달렸다.
“나, 나도 낳아줄 수 있는데. 열 명 정도….”
“봉선 님?”
“아무것도 아냐!”
주인님과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나누고 있는 선배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여포가 중얼거렸다.
장료가 되묻자,
여포는 고개를 돌리면서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그 새침한 모습에 장료는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 * *
별가종사(????) 미축이 유비군을 방문했다.
도겸군이 멸망한 뒤,
미축과 손건 등의 관료들은 조조군에 편입되었다.
서주자사에 임명된 차주의 휘하에서 민정을 도맡게 된 미축은 유비의 서신을 받고 구강군에 애써 발걸음 했다.
“좌장군이 되신 것을 경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별가종사.”
구강군 일대를 정벌하면서 수많은 군벌들을 복속시킨 유비는 황실과 조정으로부터 전공을 인정받으면서 좌장군(???)에 임명되었다.
그 뒤,
의성정후(????)에 책봉되기까지 했다.
수많은 전공들과 황실의 종친이라는 고귀한 혈통이 드디어 진가를 드러냈다. 덕분에 유비는 구강군과 여강군을 비롯한 회남(??) 일대를 복속시킨 군벌로서 입지를 견고하게 다질 수 있었다.
“헌데 좌장군은 어떤 연유로 한낱 미관말직에 불과한 저를 부르셨는지요?”
미축과 유비는 면식을 나눈 적 없는 생면부지의 관계였다.
서한을 보낼 이유도,
구태여 수춘성에 초대할 이유 또한 없었다.
그럼에도 미축은 서한을 받자마자 유비군을 방문했다. 수많은 전장에서 전공을 세운 용맹무쌍한 여장부의 모습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으음, 서로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요? 서주와 양주, 엎드리면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니까요.”
갓 내려앉은 눈송이처럼 아름다운 백발을 늘어뜨린 미녀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호의에서 비롯된 감정이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유비의 대답에 미축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좌장군께서는 서주자사에게 서한을 보내시는 것이 오히려 적합하지 않았겠습니까.”
“으음, 글쎄요.”
조조의 명령으로 서주자사에 임명된 차주는 표면적인 간판에 불과하다.
차주는 서주 출신이 아니다.
그렇기에 서주의 사대부와 호족들을 다스림에 있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차주는 미축, 손건을 비롯한 사대부 출신의 관료들을 우대하면서 자치권을 하사했다.
“그냥 별가종사가 더 마음에 들었다고 해두죠.”
미축의 대답에 유비는 손가락으로 제 뺨을 툭툭 두드리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별가종사는 제가 원망스럽지 않으신가요.”
“예…?”
갑작스러운 유비의 발언에 미축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도겸 어르신의 제안을 뿌리쳤잖아요.”
“으음!”
조조군의 침공을 받았을 당시,
고립무원의 처지에 직면하게 되었던 도겸군은 청주 전선의 유비군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 있었다.
서주자사의 관인을 양도하겠다.
도겸은 파격적인 제안까지 건네면서 유비군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그에 유비는 제안을 거절했고, 결국 도겸은 조조군의 맹공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분명 그때… 군사지원을 요청하는 서한을 대신 작성했던 참모가 별가종사였죠?”
“그렇습니다.”
설마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유비의 말에 미축은 쓴웃음을 흘렸다.
“서한은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예?”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유비의 말에 서주의 별가종사가 되물었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 되물음에 유비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