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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378화 (378/616)

〈 378화 〉 378. 전쟁의 풍운으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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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를 옮기게 되면서 조정대신들도 허도로 이주하게 되었다.

낙양이 폐허가 되었고,

장안성은 역도들에게 유린당했다.

한나라를 재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도가 필요했기에 조정대신들은 만장일치로 조조군의 천도를 받아들였다.

“와아, 새 집임! 엄청 으리으리함!”

인형처럼 아기자기한 용모를 자랑하는 흑발의 소녀가 방방 뛰면서 기뻐했다.

청려한 색채를 내는 기왓장,

완만하면서도 날렵한 처마곡선은 유려함을 한껏 더하고 있었다.

게다가 저택에 사용된 목재는 겨울에 벌목한 소나무였다. 최고급 목재를 아낌없이 투자했기에 더욱 고아하고 장엄한 풍치가 돋보이는 듯했다.

“궁궐처럼 으리으리하구나.”

“하내군의 본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겠군요.”

부친 사마방의 말에 장남 사마랑 또한 경탄에 물든 시선으로 새 저택을 바라보았다.

진류군에서 허도로 이주하게 된 다른 조정대신들도 모두 으리으리한 저택을 선물로 받았겠지. 지금쯤 자신들처럼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으리라.

“어쩌면 중달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사마랑의 말에 사마방이 의아하다는 모습을 보이면서 물었다.

그에 사마랑은 광활한 마당을 돌아다니고 있는 여동생의 뒷모습을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중달이 표기장군의 속관이지 않습니까. 분명 중달이 표기장군부에서 열심히 봉행해온 덕분에 충심을 인정받게 된 겁니다.”

“하하, 그렇겠구나.”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던가.

사마방과 사마랑은 모두 표기장군부의 속관으로 임명된 장녀 덕분이라며 칭찬했다.

만약 사마의가 잔인하고 무자비한 성정으로 유명한 조조에게 ‘성격 나쁜 노처녀’라고 뒷담화를 했던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사마방과 사마랑은 아연실색한 채 사공부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으리라.

“그런데 아버지, 그 소문 들으셨습니까?”

“표기장군이 사도의 수양딸과 연분이 났다는 그 소문 말이냐.”

“예.”

낙양제일미로 유명한 사도 왕윤의 수양딸이 천하제일검의 아이를 회임했다는 소문으로 세간이 떠들썩했다.

영웅호색이라고 했던가.

과연 대단한 여성편력이 아닐 수 없었다.

두 처제들에 이어 낙양제일미마저 취한 천하제일검은 당대 최고의 권력자조차 막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호색한이었다.

“크흠.”

“왜 그러십니까, 아버지?”

사마방이 돌연 헛기침을 했다.

이윽고 고개를 들어,

천진난만하게 저택을 돌아다니고 있는 딸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보았다.

“혹여라도 표기장군이 중달에게까지 관심을 가진다면 어찌해야 될지….”

“예, 예?!”

아버지의 시름 섞인 중얼거림에 사마랑이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를 냈다.

설마,

표기장군이 여동생까지 건들겠는가.

아직 여동생은 관례도 치르지 않은 어린아이였으니까.

그러나 안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두 처제들로도 모자라 낙양제일미마저 연인으로 삼아버린 천하제일검의 전적은 꽃다운 나이의 여식들을 두고 있는 사대부 가문을 두려움에 빠트렸다.

“서, 설마 그러겠습니까! 홍농양씨 가문의 여식이라면 모를까…!”

여동생은 또래들에 비해 발육이 느렸으므로 여전히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홍농양씨 가문의 여식은 정반대였다.

여동생과 두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았음에도 성숙미가 물씬 느껴지는 미녀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고아한 얼굴과 아름다운 용모,

숲길을 누비는 암사슴처럼 늘씬한 몸매까지.

특히 풍만함을 자랑하는 그녀의 ‘학식 주머니’는 수많은 사대부 자제들을 홀리게 만들었을 정도였다.

“네 말은 그러니까… 만약 표기장군이 우리 중달에게 추파를 던지는 모습을 보이거든, 홍농양씨 가문의 여식을 끌어들여 위기를 모면하라는 뜻이구나!”

“…….”

아니다.

결코 그런 뜻이 아니다.

그런 더러운 모략은 염두에 둔 적 없다.

하지만 쾌재를 부르는 아버지에게 얼음물을 끼얹을 순 없었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 * *

이성휘에게 포로로 붙잡힌 동백은 허도로 압송되었다.

역적 동탁의 손녀.

농서동씨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

회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소녀는 포승줄에 단단히 묶인 채 병사들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면서 궁궐에 들어섰다.

“참으로 딱하군.”

“외견에 속지 말게. 역적의 손녀일세.”

창검으로 무장한 병사들에게 압송되고 있는 동백의 모습을 본 관료들이 혀를 끌끌 차면서 중얼거렸다.

실로 안타까우나,

역적의 핏줄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마땅했다.

특히 농서동씨 가문의 폭정에 시달려온 조정대신들은 동탁의 마지막 혈육이 비참하게 죽기를 원하고 있었다.

“저주받아 마땅한 핏줄이다!”

“농서동씨 가문을 멸문지화로 다스려야 하오!”

무거운 압박감이 가해지는 순간에도 결연한 자태를 유지하던 동백은 사방에서 가해지는 저주의 속삭임을 듣게 되었다.

동정하는 자는 극히 일부,

대부분의 인원들이 자신의 죽음을 원하고 있었다.

입가를 올리면서 조소를 흘렸다.

농서동씨 가문의 권력 앞에 엎드린 채 굴종해온 그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는 모습은 그저 꼴사납고 우스꽝스러울 뿐이었으니까.

“크흠!”

병사들의 감시를 받으면서 대전에 들어서는 소녀의 모습에 사도 왕윤이 침음을 삼켰다.

분명하다.

틀림없는 동탁의 손녀였다.

동탁이 군세를 동원하여 궁궐에서 위세를 크게 떨쳤을 당시에 동백의 모습을 본 적 있었다. 이미 면식이 있었기에 동탁의 손녀임을 확신했다.

“대역죄인 동백은 무릎을 꿇어라.”

표기장군 이성휘가 명령했다.

쓴웃음을 지은 동백은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나는 패자일 뿐이다.

승자들의 오만을 뽐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터.

이성휘에게 포로로 붙잡히면서 패배를 받아들인 동백은 지금껏 숭상해온 약육강식의 법칙에 순종했다.

“구속이 너무 과한 것 같소. 일단 느슨하게 밧줄을 풀어주는 게 어떤가?”

유변이 황망함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처절하게 몰락한 동백의 모습을 본 유변은 두 눈을 바르르 떨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과거의 인연 때문일까.

장안성을 탈출했다가 붙잡혔던 자신을 끝까지 보호해준 동백에게 측은지심을 품었다.

만약 그녀가 보호해주지 않았다면 동탁의 부하들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했을 터. 그렇기에 유변은 은인의 대우를 봐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아니 되옵니다, 폐하!”

“역적의 핏줄입니다! 사정을 살펴줄 이유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동탁을 증오해온 조정대신들은 밧줄을 느슨하게 풀어주자는 제안에 격렬하게 반발했다.

동탁을 향한 증오와 원망이,

그의 유일한 핏줄에게 일제히 쏟아졌다.

천근처럼 무거운 증오에 소녀의 어깨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것이 안타까웠던 유변은 무관들에게 명령하여 밧줄을 풀도록 명령했다. 무관들은 황명을 따라 동백의 구속을 풀었다.

“대역죄인의 혈육이기 이전에, 역적을 도운 중죄인입니다!”

“극형으로 다스림이 마땅할 것이옵니다! 극형을 선고해주시옵소서, 폐하!”

만고의 역적이 범한 원죄는 당연히 그의 가문과 핏줄에게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연좌(??)라고 부른다.

원망과 증오는 관련된 자들에게까지 퍼져나가므로.

조정대신들의 격앙된 고함소리를 통해 그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

“죄인이 동탁을 보필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조부를 보좌하여 낙양 천도를 지휘했었습니다.”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무심한 눈길로 동백을 내려다보며,

그녀가 수십만 명의 백성들을 도탄지고에 빠트렸던 원흉들 중의 한 명임을 밝혔다.

“하지만 장안성에 불을 지르는 만행을 범한 이각과 곽사를 처단하여 천하를 안정시켰던 전공만큼을 참작해줘야 생각합니다.”

이성휘는 이각을 살해한 전공을 동백에게 돌렸다.

죄상을 밝힌 뒤,

곧바로 전공을 알림으로서 명분을 마련했다.

이각과 곽사를 죽였다는 이성휘의 말에 조정대신들이 크게 술렁였다. 장안성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이각과 곽사 또한 동탁에 못지않은 역적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황실과 조정을 기만하고 수많은 백성들을 혼란에 빠트린 대역죄인의 핏줄은 지엄하게 처벌하는 것이 원칙이지 않소.”

조정의 공론을 전하는 광록대부였던 양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물론 그 말에 일리가 있으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원칙을 깨트릴 순 없다.

대역죄인의 핏줄을 강경하게 처벌하지 않는다면 후세에 또 다른 원흉이 생겨날 터. 후환을 말소하기 위해서라도 응당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마땅하리라.

양표는 지극히 원론과 원칙에 따르고 있었다.

“그렇소이다!”

“광록대부의 말이 맞소!”

광록대부 양표의 주장에 조정대신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세했다.

전공은 전공일 뿐,

결코 대역죄인을 낳은 가문의 멸문지화만큼은 막을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표기장군의 말에도 일리가 있소.”

황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동백을 내려다본 뒤,

조정대신들의 면면을 훑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 죄인이 두 역적들을 참살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백성들이 피해를 입었을 것이오.”

이각과 곽사가 성공적으로 농서군에 입성했다면 정벌은 실패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농서군은 서량의 중심으로,

부흥을 꾀하기 좋은 변방의 요충지였다.

만약 그들이 농서군에서 항전을 이어나갔다면 정벌군은 병참의 불리함을 이기지 못한 채 병력을 물려야만 했으리라.

“표기장군의 진언을 받아들여… 형벌을 결정하도록 하시오.”

반론은 받지 않겠다.

옥좌에서 일어선 유변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일방적인 통보나 다름없는 명령을 전한 만승천자는 당혹감을 토해내는 조정대신들을 뒤로 하고서 대전을 빠져나갔다.

“…….”

도망치듯 서둘러 빠져나가는 유변의 뒷모습을 슬쩍 바라보던 이성휘는 고개를 돌려 동백을 응시했다.

그 시선을 알아챈 듯,

동백 또한 이성휘와 시선을 마주했다.

죄인의 신분으로 끌려온 소녀는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을 떠안은 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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