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3화 〉 373. 폭풍이 치기 전의 고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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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성을 집어삼켰던 불바다는 무려 열흘 동안이나 이어졌다.
궁궐이 전소되었음은 물론,
백성들의 터전 또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잿더미가 되었다.
청야전술을 위한 이각과 곽사의 만행으로 조조군의 삼보 정벌은 절반에 불과한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장안성이 불타고 수십만 명이 넘는 이재민들이 발생했어요.”
“급히 무관들을 사예주 3군으로 파견하여 이재민들을 수용할 것을 명령하셨사옵니다.”
여포, 장료와 함께 장안성으로 돌아온 이성휘는 순유와 가후에게 사후대책을 보고받았다.
장안성의 소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피난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해낸 두 군사들에게 이성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활약을 치하했다.
“주군, 주군.”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가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에,
이성휘의 얼굴은 경직되었다.
분명 이 치녀가 음탕한 농담을 해올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매번 그래왔으니까.
“동탁의 손녀를 살려두셨다면서요?”
“황상의 명령이니까.”
“정말… 그 이유뿐인가요?”
“그뿐이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이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짓는 순유의 물음에 이성휘는 짧게 대답했다.
황제의 명령.
그리고 한순간의 변덕.
오직 그것뿐인 행동이었으니까.
자신을 어서 죽이라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치던 소녀를 떠올렸다.
후환을 끊어내고자 검을 치켜들었던 자신은 원망을 부르짖던 소녀를 결국 죽이지 못했다. 반드시 죽이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했음에도 말이다.
자신의 행동에 이성휘는 아직까지도 동요하고 있었다.
“황제의 명령이니 영예로우신 주군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옵니다.”
가후가 이성휘를 대변하듯 순유에게 말했다.
치녀를 힐끗 노려보면서,
‘영예로운 주군을 곤란하게 만들지 마.’라는 속마음을 내비쳤다.
“물론 저도 주군의 의중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겠지만요.”
순유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의 주군께서,
결코 그릇된 판단을 했을 리 없으니까.
또한 주군을 끝까지 보필하는 것이 바로 참모의 역할이었기에 순유는 이성휘의 결정을 옹호했다.
“너희들의 고견을 듣고 싶다.”
“고견이라고 하옵시면….”
“동탁의 손녀를 살릴 방법에 대해서다.”
이성휘의 말에 두 군사들은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대역죄인의 손녀이며,
농서동씨 가문의 잔당들을 이끌었던 우두머리.
포로로 잡은 동백을 구할 방법을 묻는 이성휘의 행동에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폐하의 처우에 생사를 맡기겠지만…. 결국 전장에서 살린 이상, 죽게 놔두지는 않을 거다.”
순유와 가후는 자신들이 보필하는 주군이 우둔하게 여겨질 정도로 강직한 성정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철천지원수의 손녀를,
증오와 멸시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소녀를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이성휘의 결정에 당혹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될… 이유가 있사옵니까?”
가후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주군의 강직한 성정을 알고 있으나,
대역죄인의 혈육은 감싸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탁은 영원토록 만인들로부터 지탄과 조롱을 받게 될 만고의 역적이다.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동탁의 손녀를 구명하는 것은 천하제일검의 입지와 명성에 금이 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책임을 질 뿐이다.”
죄책감 때문이든,
아니면 일말의 동정심 때문이든.
결국 목숨을 살린 이상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물론 사력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있는 소녀에게 좋은 말을 듣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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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정벌들의 성공으로 조조군은 사예주의 군현들을 모두 제패하게 되었다.
또한,
원술군의 영토였던 북양주(北??)를 점령했다.
정벌의 성공으로 바닥까지 떨어졌던 황실과 조정의 권위가 회복되었으며, 또한 중원 전역을 제패한 조조군의 위명을 다시금 만천하에 떨칠 수 있었다.
“소식 들었는가? 장안성이 모두 불탔다더군!”
“이런 죽일 놈들! 낙양에 이어 장안성까지 모두 불태우다니!”
농서동씨 가문의 잔당들이 장안성을 불태웠다는 소식에 백성들은 분개를 금치 못했다.
낙양과 장안,
전(?) 수도들이 환난에 삼켜졌다.
백성들은 규탄과 탄식을 이어나가는 한편, 새 수도로 선정된 허도(??)에 관심을 보였다. 곧 황실과 조정이 허도로 이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백성들은 모두 무사한가?!”
삼보 지역에서 날아든 비보에 유변은 대경실색하는 반응을 보였다.
결코 벌어져선 안 될 재앙이,
역도들에 의해 다시금 되풀이되고 말았다.
낙양에 이어 장안성마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잿더미가 되었다. 위대한 선황들께서 남긴 유산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 안타까운 결과에 유변은 침음을 삼키면서 좌절했다.
“사직을 떠받쳐온 선황들을 대체 어떻게 뵈어야 할지 모르겠소.”
“폐하…!”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개를 떨어트린 유변의 숙연한 모습에 조정대신들은 통한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나라의 위대한 역사가,
난세의 참화 속에 흔적도 없이 일소되었다.
그 절망감과 허탈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대체 표기장군은 역도들이 장안성에 불을 지를 동안에 무엇을 했단 말인가! 신속하게 역도들을 제압하였다면 결코 참극이 벌어지지 않았을 걸세.”
조정회의에 참석한 중년 남성이 격앙된 고함소리를 내질렀다.
통한과 분개를 토해내며,
참극을 막아내지 못한 부분을 지적했다.
이 참상은 나태와 태업이 불러온 결과다.
군사 방면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전후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전적으로 이성휘에게 책임이 있음을 주장했다.
“표기장군의 태업입니다!”
“어찌하여 5만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였음에도 역도들의 함정에 넘어갔단 말입니까!”
소부(少?) 공융을 따르는 관료들이 의견을 지지했다.
잘 키운 앵무새처럼,
공융의 말을 되풀이하며 의견에 힘을 실었다.
대학자를 존경해온 학사 출신의 관료들답게 현실성이 결여된 억지에 능했다. 탁상공론을 지껄여대는 학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무슨 망발을 지껄이는 겐가! 표기장군이 함곡관에 도착했을 때부터 장안성이 불타고 있었네, 그를 어떻게 표기장군이 막을 수 있었겠는가!”
사도(??) 왕윤이 노성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지르면서 반박했다.
“병력을 은밀하게 기동하여 장안성을 들이쳤더라면 역도들은 방화를 저지르지 못하고 혼비백산하여 달아났을 것이오. 우직하게 정공을 꾀한 표기장군의 행동이 뼈저린 실책이었소.”
공융은 결코 주장을 바꿀 성정이 아니었다.
아집과 편견이 깊었고,
또한 반박과 설득에 결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맹신하는 외골수였기에 왕윤의 반박에도 공융은 고집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소부.”
끝까지 이성휘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공융의 행동에 왕윤이 격노를 토해내려 했을 때,
옥좌에 앉은 황제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계속 조정회의에 방관하는 모습을 보였던 유변이었기에 곧바로 관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찌 지금까지 황실과 조정을 보필해온 충신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모략하는 건가…!”
“폐하?”
정처없이 휘청휘청 움직일 뿐이었던 허수아비가 노여움에 물든 표정을 지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공융은 유약한 황제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표기장군이 천하와 만민들을 난세에서 구제하고자 피와 땀을 흘리고 있었을 때… 소부는 한나라를 위해 무엇을 노력했는가?”
불합리하며,
부조리한 경우였다.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충신이 대체 무슨 이유로 모함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공융의 연이은 망발에도 계속해서 억눌러왔던 유변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는지 불합리를 지적했다.
“소신은 나라를 걱정하였으며, 변방에서 사직과 국운을 위해 분골쇄신하였사옵니다. 어찌하여 폐하께서는 소신의 충심을 의심하나이까…!”
“우둔한 짐은… 소부가 대체 조정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소.”
황제의 말에 공융은 새파랗게 질린 낯빛을 한 채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설령 허수아비라고 해도,
만승천자에게는 막강한 영향력이 있었다.
만약 황제의 발언에 편승하여 조정대신들이 탄핵을 추진한다면 조정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소, 소신이 그만… 무례를 범하였사옵니다. 소신을 당장 죽여주시옵소서.”
마음에도 없는 사죄를 올린 공융은 급히 황제와 조정대신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왕윤과 사손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조정대신들을 규합하여 모략과 음해를 일삼는 간신을 탄핵하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에 공융을 계속해서 미워했던 황태제 유협은 탄핵을 통과시켜버렸다.
‘감히 소인배 따위가 어딜 우리 오라비한테…!’
청주에서 복귀한 뒤,
곧바로 구경(九?)의 벼슬에 올랐던 공융은 굴욕만을 떠안은 채 조정에서 퇴출되었다.
공융을 지지하는 유자 세력들이 탄핵에 반대한다는 상소문을 올렸으나 황실과 조정은 단번에 묵살했다.
오라비를 모함해온 간신을 쳐낼 기회만을 기다려온 황태제는 공융과 오랜 앙숙으로 유명한 어사대부(?史大?) 치려를 동원하여 조정에 다시 복귀할 기회마저 잘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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