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1화 〉 371. 역도의 말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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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렁쩌렁 울리는 비명소리.
살을 찢어발기는 파찰음이 뒤이어 들려왔다.
죽음이 엄습해온다.
부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온 동백은 아연실색한 채 말에 올랐다.
“크아악!”
“위양군을 지켜라!”
주군을 구하고자 죽음을 불사하는 장졸들의 희생은 실로 처절했다.
죽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인간의 탈을 쓴 짐승에게 달려들었다.
병장기를 휘두르면서 달려든 장졸들은 곧 날카로운 참격에 썰려나가고 말았다.
“놈들은 독 안에 든 쥐다!”
“절대 포위망이 뚫려선 안 된다!”
전황은 학살에 가까웠다.
대요현을 완전히 포위한 조조군 병력이 사면초가에 놓인 동백군을 밀어붙였다.
과연 포위망을 뚫을 수 있을까.
불과 5천의 병력으로 3배가 넘는 정예군단을 돌파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상대는 천하제일검 이성휘다.
그리고 여포와 장료가 무위를 떨치면서 파상공세를 이끌고 있었다.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한 동백군의 총공세는 번번이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쏴라!”
“역적의 손녀가 저기 있다!”
활을 든 궁수들이 대요현을 가로지르면서 도망치던 동백을 발견했다.
이윽고 활을 겨누고는,
회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소녀에게 활을 쏘았다.
파바바박!!
쏟아지는 화살세례를 발견한 동백의 부하들이 온몸을 내던지면서 막아섰다.
“크윽!”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라!”
제 몸을 방패로 삼아 화살들을 장렬히 막아내는 장졸들의 모습은 실로 용맹했다.
결국 역도로 몰려 죽더라도,
끝까지 충성을 관철하겠다는 모습이었다.
동백군의 필사적인 모습에 화살세례를 가했던 궁수들은 경악에 떨어야만 했다.
“흐윽!”
말을 탄 채 질주하던 동백이 침음을 토해냈다.
눈 먼 화살이,
소녀의 가냘픈 어깻죽지에 박혔다.
부하들의 안타까운 희생에도 불구하고 모든 화살들을 막아낼 순 없었던 듯했다.
“위, 위양군…!”
동백을 호위하던 고석이 놀라 소리쳤다.
화살촉이 깊게 꽂힌 것은 아니나,
반쯤 꽂힌 것만으로도 가냘픈 소녀에게는 치명상이 될 수 있었다.
필사적인 도주를 감행하던 중에 화살을 맞게 된 동백의 모습에 고석은 두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죽음이 만연한 사지(死?)에서 결코 도망칠 수 없음을 인지한 것이리라.
“자, 장군! 이성휘가 지척까지 왔습니다!”
고개를 뒤로 돌린 채로 전황을 주시하던 무관이 놀라 소리쳤다.
피칠갑을 한 괴물이,
부하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면서 다가오고 있다.
전력질주로 내달리면서 아군 군세를 분쇄하는 천하제일검의 모습은 악몽에 등장할까 두려울 정도였다.
“큭!”
고석이 근심에 젖은 침음을 삼켰다.
그 뒤,
고삐를 힘껏 당기면서 말머리를 돌렸다.
결국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은 고석은 부하들과 함께 질주했다. 그 방향은 부하들을 계속해서 참살하고 있는 이성휘가 있는 곳이었다.
“고, 고석 장군!”
상체를 푹 숙인 채 어깻죽지에 꽂힌 화살을 바라보던 동백이 비명을 내질렀다.
충직스러운 장수가,
우여곡절 속에서도 충심을 관철했던 심복이 죽음을 각오한 듯 이성휘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기 위함이리라.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결연한 희생정신을 품고 괴물에게 달려드는 고석의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부하들을 희생시킬 뿐인 본인의 무력한 비참함에서 비롯된 격정의 응어리였다.
냉혈과 무자비함을 두른 소녀조차도 부하의 무조건적인 희생에 안타까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놈!!”
고석이 월극을 내지르면서 달려들었다.
두려움을 애써 잊으려는 듯,
사나운 고함소리를 내며 이성휘에게 맞섰다.
어린 주군을 위해 희생을 불사하는 그의 모습은 용맹하기 그지없었다. 그 일념은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쩌어어어엉!!!
금속이 절단되는 굉음과 함께,
월극을 휘두르면서 달려든 고석이 핏물을 뿜어내면서 나가떨어졌다.
질주하던 말과 함께 절단된 채 흙바닥을 굴렀다.
불과 찰나였다.
동백군의 충장은 일합조차 겨뤄보지 못하고 천하제일검에게 참살당했다.
“장군!”
“네 이놈!”
고석의 최후를 두 눈 부릅뜨며 지켜보고 있던 장수들이 분개하며 이성휘에게 공세를 가했다.
“…마치 야차들이로군.”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지면서 달려드는 동백군의 모습에 이성휘가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찰나 당황했을 뿐,
늘어뜨린 칼날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참격과 함께 핏물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 * *
부하들의 희생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동백은 고통을 애써 참으면서 질주했다.
말이 거칠게 울음소리를 냈다.
들썩들썩 흔들릴 때마다 화살에 뚫린 어깻죽지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뜨거운 핏물이 어깨와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동백은 애써 참아내면서 도주를 이어나갔다.
히이잉!!
“큭!”
호흡을 헐떡이면서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던 군마가 울음소리와 함께 흙바닥에 쓰러졌다. 결국 체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리라.
말 위에 타고 있던 동백은 흙바닥을 나뒹굴게 되었다.
“커, 커헉! 콜록콜록!!”
입에 가득 머금었던 진흙을 토해냈다.
그 뒤,
바들바들 떨리는 두 손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어깻죽지에서 가해진 극심한 고통에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낙마의 충격으로 화살이 안쪽까지 파고든 것 같았다.
‘결국… 이렇게 죽는 건가?’
상처투성이가 된 짐승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
서서히 말라죽거나,
다른 짐승에게 묵히거나.
지금까지 관철해온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사냥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였다.
“위양군 동백.”
서슬퍼런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포식자가,
목숨을 끊어내기 위해 온 것이리라.
최후를 통보하는 사내의 목소리에 농서동씨 가문의 여식은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이성휘.”
핏물과 흙먼지를 뒤집어쓴 동백이 철천지원수를 응시했다.
평생 증오하며,
또한 죽어서도 증오할 이름을 입에 담았다.
당장이라도 칼자루를 뽑아 철천지원수의 목숨을 위협하고 싶었지만 너덜너덜해진 몸으로는 불가능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나.”
유음을,
사세(?世)로 떠날 망자의 마지막 말을 들어주겠다.
이성휘의 물음에 동백은 체념에 물든 한숨을 폭 흘렸다.
“패배도, 배신도… 모두 약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남길 말은 없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강자는 승리하며,
약자는 도태된다.
자신은 그저 약했기 때문에 죽는 것이었다.
“뭔가 착각하는 게 있군.”
검을 늘어뜨린 채 말에서 내린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뒤이어,
주저앉은 동백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었다.
“너희 농서동씨 가문이 패망한 것은 가렴주구로 천하를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원망이 결국 오늘을 만들어낸 것이지.”
이성휘의 말에 동백이 웃음을 터트렸다.
유자가 내뱉을 법한,
실로 현실성에 뒤떨어지는 말이다.
황실과 조정을 위협해온 사악을 처단한 천하제일검에게 참으로 잘 어울리는 말이기도 했다.
“주인님!”
두 손으로 쥔 검을 내리치려 했을 때,
흑발의 여인이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를 내지르면서 현장에 개입했다.
어깨가 움찔 떨렸다.
검을 치켜든 채로 행동을 잠시 멈췄다.
“분명 황상께서 살려줄 것을 간청하셨잖아요.”
“정에 휩쓸린 결정일 뿐이다.”
“주인님….”
장료의 말에 짧게 대답한 이성휘는 평생 후환이 될 게 분명한 소녀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곽사를 죽였다.
만약 자신들이 없었다면,
멀리 도망친 이각까지 추격하여 죽였겠지.
살려둔다면 평생 화근이 될 터.
위기를 울리는 경종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했다.
“후환은 반드시 없애야 한다. 백성들을 도탄지고에 빠트렸던 저주받을 일가라면 더더욱.”
각오를 밝힌 이성휘가 검을 휘둘렀다.
* * *
한양군(???)까지 달아났던 역도들은 일확천금에 눈이 먼 군중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저항하던 심복들은 살해당했고,
이각은 백성들에게 산 채로 붙잡히고 말았다.
연이은 매질에 피범벅이 된 이각은 산 채로 붙잡히는 치욕을 견딜 수 없었는지, 두 눈을 부릅뜨면서 촌부들을 노려보았다.
“네 이놈들…!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이각이 노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복들을 모두 잃게 된 이각은 한낱 좀도둑에 불과했다.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린 좀도둑 말이다.
“제 주인을 죽이고 재물들을 빼앗은 도둑놈이 뭐라고 지껄이는 게야?”
“커헉!”
넝마를 걸친 사내가 이각을 걷어찼다.
참으로 가소롭다는 듯,
바닥에 쓰러진 이각을 노려보았다.
“비천한 똥개들도 제 주인은 물지 않는 법이다, 이 도둑놈아!”
이름도 모를 촌부 따위에게 모욕을 당한 이각은 분개를 금치 못했다.
네놈이 대체 뭘 안다고,
한낱 무지렁뱅이가 뭘 안다고 지껄인단 말이냐!
출세와 재물에 눈이 멀어버린 군중들에게 끌려가게 될 위기에 봉착했음에도 이각은 오만함을 과시했다.
“촌로들끼리 이야기를 잘 끝냈네.”
끼익.
헛간 안으로 촌부들이 들어왔다.
촌부들은 날카롭게 벼린 낫을 쥐고 있었다.
백정처럼 우악스럽게 생긴 촌부들이 낫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에 이각은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쓸모없는 몸은 산기슭에 버리고 머리만 툭 잘라서 가지고 가세.”
촌부들이 밧줄에 묶인 이각에게 달려들었다.
이윽고,
헛간에서 쩌렁쩌렁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낫들이 온몸을 헤집고 찢어발기면서 푹푹 찌를 때마다 이각의 비명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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