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0화 〉 370. 역도의 말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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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포위한 조조군과 사면초가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 동백군이 대치했다.
당장이라도 부딪칠 듯,
아슬아슬한 일촉즉발의 상황을 이어나갔다.
자그마한 불씨라도 내던져지게 된다면 거대한 폭발로 번지게 될 터. 양군 병사들은 침묵한 채 병장기를 들어올렸다.
“죄인 동백은 황실의 명령에 무릎을 꿇어라.”
이성휘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말의 회유도 엿볼 수 없는,
무력을 전제로 한 강제적인 명령이었다.
황실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즉시 쓸어버리겠다.
위압감이 담긴 이성휘의 명령은 일촉즉발의 상황에 기름을 뿌린 격이었다. 동백을 호위하던 장수들이 일제히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감히!”
감히 자신의 주인님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동백군의 모습에 여포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쿵!
방천화극을 내리찍었다.
굶주린 맹수처럼 무자비한 여포의 모습에 동백군은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서 한 걸음 물러섰다. 전쟁터를 유린했던 여포는 이성휘와 마찬가지로 동백군에게 있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날 어쩔 셈이지?”
동백이 물었다.
그에 이성휘가 대답했다.
“너를 진류군으로 압송하라는 황상의 명령이다.”
“그 황제가…?”
천둥을 무서워하는 망아지처럼 유약하던 황제 유변의 모습을 떠올린 동백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공개 처형할 생각이거나,
아니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 요량이거나.
소심한 성정의 황제가 무자비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 리가 없었으므로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유변은 남들에게 한 번도 쓴소리를 해본 적 없는 사내였으니까.
“하지만 널 살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스릉.
이성휘가 검을 뽑았다.
천하제일검이 검을 뽑아들자 동백을 호위하던 장수들이 일제히 병장기를 치켜들었다.
또한 이성휘의 휘하 장수들도 병장기를 치켜들면서 동백군에게 응수했다.
“제 욕망과 영달을 위해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려온 너희 일가는 멸족되어 마땅한 저주받을 일족이다. 기필코 내 손으로 씨를 말리겠다.”
저주받을 일족,
이성휘가 무거운 살의를 담아 말했다.
계속해서 농서동씨 가문이 일으켰던 처참한 학살극들을 떠올리면서 검을 늘어뜨렸다.
마지막 생존자까지 죽여 완전히 멸족시키겠다.
원술 일가를 끝장냈던 이성휘는 동탁의 손녀까지도 죽여 후환을 말소하려 했다.
“설마 말 잘 듣는 황실의 개가 황명을 거역할 줄은 미처 몰랐네. 결국 그 알량한 충심도 미움을 이길 수는 없었나봐?”
동백이 비꼬듯이 말했다.
조부의 원수를 향해,
두 눈을 부릅뜨며 증오와 모멸을 드러냈다.
매달릴 생각은 없다.
목숨을 구걸할 생각 또한 없었다.
설령 유약한 만승천자가 자비를 내려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할아버지를 시살한 네놈에게 무릎이라도 꿇을 것 같았어? 너는 가문을 몰살시켰던 이각과 곽사보다 더한 철천지원수야. 절대로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갈 수 없는 원수라고.”
동백이 칼끝을 겨눴다.
그녀를 따라,
호위하던 장수들 또한 이성휘에게 칼끝을 뻗었다.
결국 결사항전을 선택한 동백은 장렬하게 마지막을 장식하기로 결심했다.
“폭군의 더러운 핏줄은 절대로 남기지 않겠다. 태평성대를 이룩하게 될 후세를 위해서라도.”
원술의 딸을 살려준 것은 후환의 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백은 후환이 되고도 남을 위험요소였다.
우여곡절의 상황 속에서 부하들을 규합하여 이각과 곽사를 쓰러트리지 않았던가. 곽사의 수급을 본 이성휘는 동백이 후환으로 남게 될 것을 확신했다.
“놈들을 모조리 척살하라!”
이성휘가 격앙된 목소리로 일갈했다.
그 순간,
여포와 장료가 병장기를 휘둘렀다.
철통처럼 사방을 포위하던 조조군 병력이 노도처럼 들이치면서 백병전이 시작되었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메마른 대지에 뜨거운 핏물이 흩뿌려졌다.
“농서동씨 가문의 잔당들이다!”
“역도들을 죽여라! 절대로 역도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마라!”
포위된 동백군에게 달려드는 조조군의 모습은 강철로 된 파도를 보는 듯했다.
크게 물결치며,
날카로운 기세로 동백군을 강타했다.
여포와 장료를 주축으로 결집한 포위망은 올가미처럼 적의 숨통을 옭아매었다. 발악할수록 더욱 거칠게 목을 옥죄는 올가미처럼 연쇄적인 공세를 퍼부었다.
“위양군!”
“어서 위양군을 모셔라!”
동백군 무장들이 이성휘에게 칼끝을 겨누면서 동백을 피신시켰다.
상대는 괴물,
십만 대군을 패주시킨 무인이다.
결코 승산이 없다는 것은 무장들이 오히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목숨을 다해 이성휘의 앞을 막아섰다.
“크악!”
“무, 물러서지 마라!”
부하들의 손길에 끌려가던 동백은 병장기를 치켜들고 있던 용맹한 장수들이 쓸려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거대한 맹수가 달려든 것처럼,
날카로운 비명들과 함께 핏물이 솟구쳤다.
검을 세차게 휘두르면서 무장들을 도륙하는 이성휘의 모습을 목격한 동백은 낙양에서 겪은 공포를 떠올렸다. 이각과 곽사에게 버림받은 채 이성휘에게 쫓길 때였다.
“위양군 동백을 죽여라.”
금세 피칠갑이 된 이성휘가 장수들에게 명령했다.
“동씨 계집을 죽여라!”
“난세를 불러온 동탁의 혈육이다!”
병장기를 치켜든 조조군 장수들이 소리쳤다.
* * *
천신만고 끝에 이각은 한양군(???)에 도착했다.
드디어,
악귀처럼 달라붙던 놈들을 따돌렸다.
한양군에 속한 청수현(???)에 발을 들인 이각은 오랜 도주극에 허기가 밀려들었는지 부하들에게 먹을 것을 찾도록 명령했다.
“지금까지 무소식인 것을 보면… 결국 곽사는 동씨 계집에게 죽은 게로군.”
곽사가 죽었다.
그러나 이각은 슬퍼하지 않았다.
만약 놈이 죽지 않았다면,
분명 동씨 계집은 한양군까지 추격해왔을 테니.
어쩌면 하늘이 도운 천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여긴 이각은 뇌리에서 곽사를 지워버렸다.
“장군, 지금쯤이면 동백은 이성휘를 상대하고 있을 겁니다.”
“크하하! 그야말로 이이제이로군!”
자신을 대신하여 괴물에게 물어뜯기고 있을 악독한 계집의 모습을 떠올렸다.
제아무리 독한 년이라도,
그 괴물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지금쯤이면 까마귀의 밥이 되었을 터.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이각은 웃음을 터트리면서 이를 드러냈다.
“주군, 술을 구해왔습니다!”
“닭과 소를 잡아왔으니 안심하십시오.”
현지조달에 나섰던 이각의 부하들은 술과 고기들을 수레에 가득 싣고서 돌아왔다.
그들의 온몸에는 피로 가득했다.
청수현의 민가들을 습격하여 살인과 약탈을 자행한 부하들은 일말의 가책도 없이 배를 채웠다.
살인과 약탈,
그들에게 있어 죽이고 빼앗는 일은 숨을 내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기현(??)이겠군.”
노릇노릇하게 구운 돼지 뒷다리를 게걸스럽게 뜯어먹던 이각이 지도를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마침내 양주에 도착했다.
더 이상 추격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터.
현지조달로 식량을 마련한 이각은 여유롭게 농서군으로 향할 생각에 부풀었다. 수많은 역경들을 돌파해낸 자신에게 감개무량을 느끼는 듯했다.
“농서동씨 일가가 모두 죽었으니, 농서군은 무주공산의 영역이 아니겠습니까!”
“장군께서 농서군을 취하십시오!”
농서군.
한양군. 안정군.
양주 3군은 거대한 군벌이 탄생하지 않은 무주공산의 땅과 다름없었다.
수많은 군소 세력들이 있었으나,
뛰어난 용맹과 무략을 겸비한 이각을 상대할 수 있는 적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장안성을 탈출하여 변경을 떠도는 처지가 되었음에도 야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부하들은 이각에게 양주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할 것을 간언했다.
“흐하하! 그거 썩 괜찮은 말이구나!”
부하들의 사탕발림에 가슴이 벅차오른 이각은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면서 소리쳤다.
동탁이 해낸 대업을,
이 이각이 해내지 못할 리 없다.
서량의 군벌들을 모두 규합하여 정벌군을 일으킨다면 장안성을 탈환할 수 있을 터. 장안성과 관서 일대를 모두 거머쥔다면 천하를 노려볼 만도 했다.
“이각이다!”
“제 주인을 죽인 도적이 저기 있다!”
낫과 곡괭이 등의 농기구를 든 백성들이 노성을 내지르면서 달려왔다.
그를 본 이각과 부하들은 벌떡 일어서면서 검을 빼들었다. 성난 군중들의 등장에 이각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비천한 촌부들 따위가…!”
백성들에게 날카로운 칼끝을 겨눈 이각이 노여움에 물든 목소리를 내질렀다.
한낱 촌부들 주제에,
감히 이 이각을 노린단 말인가.
벼락출세와 일확천금을 위해 농기구를 들고 달려온 촌부들의 모습에 이각은 격노를 토해냈다.
“모조리 죽여주마!”
짐승처럼 울음소리를 내지른 이각이 검을 휘두르면서 달려들었다.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베어버리며,
핏물을 왈칵 쏟은 채 쓰러진 시체를 짓밟았다.
과연 무용이 뛰어난 서량 출신의 장수다웠다. 이각은 비명을 내지르는 백성들을 가차없이 쓰러트리면서 광기에 찬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으하하하! 감히 나를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더냐!”
피칠갑을 한 이각이 소리쳤다.
그러나,
승리의 함성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게 섯거라, 이각아!”
“놈을 죽이면 면천할 수 있다!”
농기구로 무장한 백성들이 재차 몰려들었다.
마치 파도가 들썩이듯,
방금 패주시킨 군중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대규모의 인원들이 군집했다.
10여 명의 백성들을 살육하면서 기세 좋은 모습을 보였던 이각은 아연실색한 채 벌벌 떨었다.
수많은 몰이꾼들에게 쫓기는 사냥감이 되었다.
일확천금과 벼락출세의 야망에 몰려든 군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각의 목을 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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