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8화 〉 368. 거악의 불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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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과 곽사는 군사적 능력이 뛰어난 맹장으로 평가받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황을 뒤집는 것은 그들에게도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은 병력은 겨우 2천 남짓.
이각과 곽사를 따라 장안성을 탈출했던 병력이 6천 명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처참할 따름이었다.
“이각을 잡아라!”
“번쩍이는 투구를 쓴 놈이 이각이다!”
농서동씨 가문의 사병들이 달려들었다.
늑대가 사정없이 달려들 듯,
복수심에 찬 사병들은 곧장 이각을 노렸다.
사태의 불리함을 직감한 이각은 말머리를 돌리면서 달아났다. 그리고 화려한 장식이 달린 투구를 벗어던지면서 추격을 따돌리려 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 물귀신 같은 년을 봤나?!’
메마른 황야를 떠돌다가 마적들에게 죽었을 것이라고 여겼던 동백이 살아있다.
나와 곽사를 죽이려 했던,
그 무자비한 년이 기어코 돌아왔다.
절치부심의 한을 품은 복수귀는 이각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아 복수를 결행하는 동백의 지독함에 혀를 내둘렀다.
“당장 저 년을 죽여라!!”
헐레벌떡 도망치던 이각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명령을 받들 무관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괴리현에 도착했음에 안도하고 있던 병력들은 예상치 못한 급습으로 와해되었다. 단기필마로 급히 도망치는 신세가 된 이각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비명을 내질렀다.
“장군!”
“어서 장군을 구하라!”
동백군의 기병들에게 죽을 위기에 내몰렸던 이각은 가까스로 부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창끝이 닿기 직전,
부하들이 가세하여 추격을 격퇴했다.
투구까지 벗어던진 채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던 이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하들의 호위를 받게 된 이각은 곧바로 철퇴를 결정했다.
“동백, 저 물귀신 같은 년의 병력들이 괴리현에 매복하고 있다니…! 분명 괴리현의 병력들이 모두 동백에게 당한 게 틀림없다. 당장 진창(??) 방면으로 말머리를 돌려라!”
동백은 독사처럼 교활한 계집이다. 저 사특한 계집이 반격의 여지를 줄 리가 없었다.
승산이 없음을 판단한 이각은 부하들과 함께 진창으로 달아나려 했다.
괴리현을 탈출하여 진창으로 향한 뒤,
양주(?)에 속한 한양군(???)으로 속히 달아난다면 놈들도 감히 추격해오지 못하리라.
“하지만 장군, 곽사 장군이…!”
“지금 곽사의 안위를 걱정할 여유가 있느냐!”
곽사는 현재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적들의 급습으로 흩어진 뒤,
지금까지 곽사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마다 부하들을 계속 버렸던 것처럼 곽사를 단념하기로 했다. 내 목숨조차도 건사하기 힘든 마당에 누구를 걱정한단 말인가?
“어서 달려라!”
“예, 장군!”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각은 부하들과 함께 괴리현에서 멀리 달아났다.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으나,
서쪽에서 불어온 모래바람이 이각을 구해주었다.
황량한 모래벌판에서 대패를 당한 이각은 진창현으로 피신했다. 동백은 실질적인 수괴였던 이각을 놓쳤다는 사실에 통한을 금할 수 없었다.
“이각, 시궁창의 쥐새끼 같은 놈이…!”
회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이를 빠득 갈았다.
그녀의 손에는,
핏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곽사의 목이 있었다.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끔찍한 고통들에 시달렸던 곽사는 비명에 물든 표정을 지은 채였다.
* * *
하후돈의 선봉군이 장안성에 당도했다.
바람에 펄럭이는 조조군의 군기,
그것을 본 장안성의 병력들은 곧바로 투항해왔다.
낙양대전에서 끔찍한 대패를 치렀던 동탁의 잔당들은 조조군의 군기를 몹시 두려워했다. 군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사방에 시산혈해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리다!”
“모, 목숨만은 살려주시오! 우리들은 방화와 아무런 관계가 없소!”
장안성을 불바다로 만든 원흉은 이각과 곽사다.
우리들은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그들에게 버림을 받고 말았다.
온몸에 그을음을 뒤집어쓴 채로 장안성을 빠져나온 병사들은 싸울 기력조차 없는 상태였다. 그들 대부분이 비무장이기까지 했다.
“닥쳐라, 이 역도들!”
“역적에게 충성해온 네놈들은 죽어 마땅하다!”
두 팔을 번쩍 든 채 투항해온 병사들에게 조조군은 욕설과 함께 창끝을 겨눴다.
무고를 부르짖고 있으나,
조조군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역적을 따랐던 역도들에 불과했다.
불바다에 휩싸인 장안성의 정경을 목격한 조조군은 매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당장이라도 뻔뻔하게 투항해온 놈들을 모조리 찔러죽일 듯했다.
“어서 불길을 잡아라!”
“아, 안 됩니다! 장안성의 불길이 너무 거셉니다!”
선봉군 병력들 중 일부가 진화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거센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타오르고 있었다.
수년 동안 이어진 가뭄으로 인해 관서 지역은 비쩍 메마른 상태였다. 고목처럼 쩍쩍 갈라진 건물들은 장작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로 인해 불길은 삽시간에 장안성의 시가지를 모두 불태우기에 이르렀다.
“불길 때문에 내부로 진입할 수 없다면…, 일단 살아남은 백성들이라도 안전한 장소로 호송해. 최소한이라도 살려야지….”
“예, 알겠습니다.”
무사히 탈출한 백성들은 2만에 달했다.
조조군 병력은 백성들을 안전한 장소로 이끌었다.
마침내 조정군이 도착했다.
그 소식을 들은 장안성 백성들은 눈물을 주륵 흘리면서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조정군이다!”
“드디어 조정군이 우리들을 구하러 왔다!”
마침내 폭정에서 풀려났다.
농서동씨 일가가 절멸한 뒤,
이각과 곽사의 가렴주구에 시달려야 했던 백성들은 그제야 고통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조정군이 당도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많은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새로운 군세의 등장에 눈치를 살피던 백성들이 모두 조조군을 의지했다.
“큭! 조조군 놈들!”
“낙양에서의 원한을 잊었을 줄 알았더냐!”
장안성의 병력들 중 일부가 피난민의 대피를 유도하던 조조군을 급습했다.
그 소식을 들은 하후돈은 수십 기의 기병들을 이끌고서 반격에 나섰다.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걸의 언월도가 번뜩일 때마다 적들이 쓰러졌다.
“이 버러지들이!!”
패국의 여걸이 광분하여 소리쳤다.
인간의 도의를 저버린 채,
백성들의 피난에 훼방을 벌이는 흉적들에게 망설임 없이 철퇴를 가했다.
맹수처럼 날뛰면서 언월도를 휘두르는 하후돈의 용맹에 급습은 곧바로 저지되었다. 급습을 가한 잔당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백성들의 피난을 막는 자는 이 하후원양이 사지를 비틀어서 죽일 것이다!!”
암사자가 포효하듯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언월도를 바닥에 쿵 내리찍으며,
용맹스러운 사자후로 군중을 단번에 압도했다.
소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하여 혼란을 조장하려 했던 장안성의 잔당들은 여장부의 사자후에 전의가 꺾이고 말았다.
“원양 님.”
수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의 피난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을 때,
마침내 본대가 도착했다.
곧바로 이성휘는 하후돈에게 상황을 보고받았다.
이각과 곽사가 한나라의 수도를 불바다로 만들었을 때처럼 장안성에도 방화를 저질렀다는 보고에 이성휘는 격분을 금치 못했다.
“표기장군, 이각과 곽사는 장안성의 부하들을 모두 버리고 심복들과 함께 서량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투항해온 잔당들을 심문하여 정보를 알아낸 후성이 이성휘에게 보고했다.
이각과 곽사가 서량으로 도망쳤다.
장안성에 불을 지른 뒤에 곧바로 줄행랑을 친 것이리라.
“비겁한 놈들!”
“제 안위를 위해 장안성을 불태웠단 말인가!”
두 역적들의 만행은 상식을 아득하게 초월했다.
동탁은 낙양에 거주하던 인구의 반절을 장안성으로 이주시키기라도 했지, 이각과 곽사는 그 어떤 대책조차 없이 장안성을 불태워버렸다.
분명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할 터.
장안성의 대방화는 미증유의 참화로 역사에 기록되리라.
“백성들의 피난을 계속 지휘해주십시오.”
“알았어.”
명령을 내렸던 이성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원양 님께서 대처를 신속하게 해주신 덕분에 수많은 백성들을 대피시킬 수 있었습니다.”
“내가 마땅히 해야 될 일이지.”
하후돈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답했다.
당연히 해야 될 일이다.
무인으로서,
또한 사람으로서 해야 될 책무였으니까.
하후돈은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등을 돌렸다.
패국의 여걸은 걸걸한 고함을 내지르면서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을 곧바로 소집했다.
“봉선. 문원.”
이성휘가 여포와 장료를 불렀다.
“지금부터 도망친 두 역적들을 쫓는다.”
장안성을 버리고 도망친 역적들은 절대로 살려둬선 안 될 괴물이다.
원술에게 그러하였듯,
이각과 곽사에게도 치욕과 죽음을 안겨주리라.
여포와 장료가 지휘하는 기마군단을 동원한 이성휘는 가후와 순유에게 지휘권을 위임했다. 그리고 고순과 휘하 장수들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걱정 마, 반드시 잡을 테니까!”
토끼사냥을 앞둔 사냥개처럼 여포가 잔악한 희열을 드러냈다.
놈들이 어디로 도망치더라도,
세상 끝까지 추격하여 숨통을 끊어낼 것이다.
방천화극을 짊어진 여포는 우렁찬 목소리를 내지르면서 기병들을 이끌었다. 그에 기병들은 기필코 역적들을 붙잡겠다며 두 눈을 부릅떴다.
“기필코 놈들을 죽일 것이다.”
이각은 진창현으로 도주했고,
곽사는 동백에게 결국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던 이성휘는 여포와 장료를 거느린 채 괴리현으로 말머리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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