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1화 〉 361. 무엇도 버릴 수 없기에(3)
* * *
===========================
이각과 곽사는 농서동씨 일가를 참살하고 그 수급을 황실과 조정에 보내면서 사면(??)을 요청했다.
그리고 또한,
국적(國?)을 토벌한 자신들에게 관직과 봉토를 하사해달라는 요청까지 덧붙였다.
실로 후안무치한 철면피나 다름없는 요청들이었다.
“이런 찢어죽일 놈들…!”
“황실과 조정을 어디까지 기만할 셈인가!”
동탁의 권력에 빌붙어서 온갖 가렴주구를 일삼았던 역적들이 감히 사면을 입에 담고 있다.
심지어,
지금까지 충성해온 농서동씨 가문을 배신하고 멸족시키기까지 했다.
악랄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다.
누구보다도 동씨 일가의 멸족을 고대해온 조정대신들조차 더러운 배신행각에 치를 떨 정도였다.
“궤짝의 수급들을 모두 궐문에 매달아라.”
“예!”
이성휘의 명령에 무관들이 소금기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궤짝들을 들고 나갔다.
그 과정이 탐탁지 않으나,
살해당한 인원들은 분명 대역죄인의 혈육이다.
역적들의 비참한 말로를 만천하에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 그럼… 삼보 지역의 백성들은 이 철면피 같은 무리들에게 수탈을 당하고 있단 말인가?”
농서동씨 일가를 참살한 뒤 권력을 장악한 이각과 곽사가 장안성을 점거했다.
그 말은 즉,
삼보 지역의 백성들이 이각과 곽사의 폭정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결코 동탁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터.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릴 횡정(??)과 가렴(??)을 일삼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것을 안타깝게 여긴 유변은 옥좌에 몸을 기댄 채 안타까움에 물든 시름을 토해냈다.
“폐하, 표기장군이 충용무쌍한 군세를 이끌고 서량의 역적들을 모두 참살할 것입니다.”
흑발의 여인이 한 걸음 내딛으면서 한숨을 푹 내쉬던 유변에게 말했다.
토벌은 어렵지 않다.
동탁의 잔당들은 일초지적조차 되지 않으리라.
불패의 전설을 이어나가고 있는 천하제일검이 만승천자의 군대를 이끌고 진격한다면 한 달 이내로 장안성에 황실의 군기를 꽂을 수 있을 터였다.
“…….”
“…….”
조조와 유협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침묵을 머금은 채,
싸늘하게 내려앉은 시선을 쏘았다.
그 살벌한 모습은 마치 일촉즉발을 연상하게 했다.
“표기장군, 그대가 정벌군을 이끌어 주겠는가! 횡정과 가렴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출해주게!”
유변이 간곡하게 호소하듯 부탁했다.
옥좌에서 벌떡 일어날 것처럼,
온몸을 들썩이면서 이성휘를 바라보았다.
백성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황제의 간절한 모습에 이성휘는 예를 취하면서 입을 열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동탁의 잔당들을 격멸하고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모두 해방시키겠다.
먼저 조조에게 허락을 받아냈던 이성휘는 백성들을 걱정하는 황제의 명령을 따랐다.
* * *
대전에서 굴욕을 당한 뒤,
병가를 내고 잠적하던 공융은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무려 수백 명에 달하는 유생들을 대동한 공융은 그들과 함께 궐문으로 나섰다.
바닥에 거적을 펼친 공융은 그 위에 엎드리면서 궐문 너머로 보이는 대궐을 향해 통곡하듯 소리쳤다.
“폐하! 황실과 조정을 기만해온 역적들을 토벌하여 준엄한 법도를 세워주시옵소서!”
뒤이어 공융을 따라나섰던 유생들이 바닥에 엎드리면서 소리쳤다.
역적들의 간악함이 도를 넘었다.
응당 하늘을 대신하여 벌을 내려야 마땅하리라.
지금까지 동탁의 무리들이 범한 죄상들을 일목요연하게 작성한 표문을 읽은 공융은 강직한 선비의 모습을 연기하며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다.
“과연 성현의 후손이군.”
“젊을 적부터 의협으로 명망이 높은 분이셨지 않은가. 소부 어르신이야말로 선비들의 으뜸일세.”
관모를 벗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간원하는 그 모습에 감탄하지 않는 백성이 없었다. 공융이야말로 한나라의 진정한 충신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수많은 백성들이 지나다니는 궐문 앞에서 보여주기식의 정치공작을 벌인 공융은 여론의 지지를 통해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잘 죽었다, 망할 동씨 놈들!”
“제 부하들에게 결국 멸족당했다지! 하늘께서 놈들에게 천벌을 내리신 걸세!”
구름처럼 몰려든 군중들 틈으로 파고든 호사가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여론의 선동이 목적인 듯,
농서동씨 가문과 주구들을 향한 비분강개를 이용하여 정벌을 주장하는 공융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의도적으로 여론을 조성하는 호사가는 화음후(???) 동승의 세객들이었다. 말재주가 뛰어난 세객들은 여론을 선동함에 있어 능숙한 모습을 보였다.
‘하늘께서 이 공문거의 충심에 감복하여 기회를 내려주시는군! 등을 돌린 사대부들을 다시 끌어들일 좋은 기회다. 들불처럼 퍼진 여론을 장악한다면 조정대신들도 감히 나를 업신여기진 못할 터!’
백성들을 선동하여 세간을 뒤흔드는 행위는 절대로 해선 안 될 만행이다.
그럼에도 공융은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고자 망설임 없이 정치공작을 벌였다. 뛰어난 학식과 도덕심을 갖춘 자신은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오만함이 깔린 행동이었다.
“서량의 역적들을 처단하셔야 하옵니다, 폐하!”
공융이 부르짖으며 외쳤다.
뒤이어,
유생들도 소리치면서 공융의 뜻에 동참했다.
곧이어 사방에서 몰려든 백성들이 공융과 유생들에게 호응하면서 주전론(?戰?)이 힘을 얻게 되었다.
* * *
수춘성이 함락되고 원술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게 된 원소군은 소요에 휩싸이게 되었다.
여남원씨 가문의 적통이,
가장 더럽고 끔찍한 방식으로 죽었다.
마치 돼지처럼 더러운 분뇨 속을 이틀 동안 허우적대다가 목숨이 끊어졌다. 원술의 최후를 들은 원소군 참모들은 당혹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저, 정녕 사실인가?”
“원술이 그토록 비참하게 죽다니….”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과 냉정을 잃지 않았던 전풍과 심배조차 경악을 토해냈다.
원술의 죽음 때문은 아니다.
결국 수춘성이 함락된 뒤,
조조군에 의해 살해당할 것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방식’이다.
표기장군 이성휘가 대군벌 원술을 처형했던 방법이 너무도 비참하고 잔인했다.
내심 원술이 살해당하기를 기대했던 원소군의 관료들도 경악할 정도이니, 여남원씨 가문에 충성하는 장졸들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여남원씨 가문을 향한 도전입니다!”
“이것은 주군을 향한 선전포고가 분명합니다!”
도전이다.
선전포고가 틀림없다.
원소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장수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소리쳤다.
사세삼공의 대명문가인 여남원씨 가문의 명성을 웃음거리로 전락시켰다. 원술의 비참한 죽음은 여남원씨 가문의 견실한 명성에 먹칠을 한 격이 되었다.
“이성휘, 이놈…!”
“전장에서 기필코 생포하겠나이다!”
안량과 문추가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소리쳤다.
분노를 금할 수 없었던 듯,
살의에 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두 장군들의 말이 지당합니다. 표기장군 이성휘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정로장군(????) 국의가 말했다.
두 눈을 뱀처럼 번뜩이면서,
구강군에서 날아든 급보에 쾌재를 불렀다.
여남원씨 가문의 역린을 찌른 이성휘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 터. 그를 향했던 주군의 마음을 완전히 잘라낼 좋은 기회였다.
‘주군은 결국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빌어먹을 놈을 포기할 수밖에 없겠지! 반드시 전장에서 놈을 참살하여 주군의 부마가 되겠다!’
여남원씨 가문의 부마가 될 자격이 있는 사내가 누구인지를 주군에게 보여줄 좋은 기회였다.
또한,
주군의 마음속에 있는 잔열을 지울 기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주군과 그 빌어먹을 놈이 맺어질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종사(??) 진림에게 분부하여 표기장군 이성휘가 저지른 천인공노할 만행을 만천하에 밝히심이 옳습니다. 한나라의 표기장군이라는 작자가 어떻게 이런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입니까.”
정로장군 국의가 비분강개하고 있는 휘하 장수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에 수많은 장수들이 찬동했다.
이성휘는 불구대천의 원수라며 이를 빠득 갈았다.
전장에서 마주한다면 기필코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주겠노라고 소리칠 정도로 격앙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로장군의 말이 옳소!”
“대군을 동원하여 연주를 불태워버립시다!”
원술은 물론,
그의 일곱 살 아들까지 비참하게 죽었다.
또한 여남원씨 가문의 종제들마저 처형장의 이슬이 되면서 격노는 더욱 심해졌다.
원술의 아내 진씨와 딸 원엽을 제외한 모든 인원들이 참살되었음에 전쟁을 향한 의지가 폭발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나를 취할 셈인가요. 정말이지 교활하기 짝이 없군요, 국의.’
독사처럼 교활한 속내를 가진 국의의 모습에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내가 성휘를 연모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결코 화해할 수 없도록 철저히 갈라놓으려는 것이리라.
사내의 탐욕스러운 눈빛이 자신의 몸을 끈적끈적하게 훑고 있음을 느낀 원소는 경멸을 내비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