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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360화 (360/616)

〈 360화 〉 360. 무엇도 버릴 수 없기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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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마저 표기장군 이성휘를 옹호하면서 공융과 동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되었다.

귀비(??) 동씨를 이용하여 황제 유변을 설득하려 했던 작전이 지지부진하게 흘러간 탓이었다.

만약 유변이 손을 들어줬다면 황실에 충성하는 충의지사들을 파벌로 끌어들일 수 있었겠으나, 결국 미인계마저 불발되면서 패국조씨 가문의 통치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힘을 잃고 말았다.

“부관, 정말 수고 많았네.”

흑발의 여인이 갸름한 얼굴에 미소를 띄우면서 사내의 목덜미에 두 팔을 둘렀다.

계속 그리웠는지,

까칠하던 기색이 온데간데없었다.

이성휘는 연모하는 아내의 허리를 두 팔로 꼭 끌어안은 채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면서 그녀의 부드러운 뺨에 짧은 입맞춤을 했다.

쪽,

비단보다 부드러운 뺨에 자국이 새겨졌다.

남편의 자상한 애정행각에 조조의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저는 괜찮습니다.”

병사들의 손아귀에 붙잡힌 채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어린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지러지듯 절규를 쏟아내던 젊은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괜찮다.

아무렇지 않게 이겨낼 수 있다.

상냥하고 자애로운 아내의 모습을 바라본 이성휘는 토악질이 올라올 것 같은 죄책감을 애써 억눌렀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겐가?”

그늘이 진 듯한 남편의 얼굴에 위화감을 느낀 것일까.

조조가 물었다.

아내의 물음에 이성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혹시라도 걱정을 끼칠까봐 이성휘는 차마 마음속에 담긴 죄책감을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억누르며,

애써 아무 일도 없는 척 연기했다.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이성휘의 모습에 조조는 불안감을 느꼈다.

“조정에서 설치던 그 발칙한 놈들을 보았는가?”

“혹시 소부와… 화음후 말씀이십니까.”

이성휘의 대답에 조조는 두 눈을 사납게 번뜩이면서 분개를 토해냈다.

어지간히도 꾹꾹 억누르고 있던 듯하다.

“공융! 동승! 내 기필코 놈들의 팔다리를 저잣거리에서 쭉쭉 찢어버릴 걸세!”

이게 정녕 귀여운 아들을 둔 유부녀의 입에서 나올 말이던가.

무슨 갓 쪄낸 떡도 아니고,

쭉쭉 찢어버리겠다는 아내의 살벌한 말에 이성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따스한 모성애로도 그녀의 살벌한 본성만큼은 막을 수 없었던 듯하다.

“공융은 공자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동승은 황상의 장인이지 않습니까.”

공융은 훗날 조조에게 살해당하며,

동승은 황실에 충성하는 심복들과 함께 반란을 주도한다.

그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이성휘가 조조를 애써 만류하는 것은 원소군에게 전쟁의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안 된다.

적어도,

원소군을 멸망시킨 다음에.

하북까지 모두 석권한 이후에 본색(?色)을 드러내더라도 결코 늦지 않을 터였다.

“하, 하지만…! 그들은 부관을 참소하지 않았나! 감히 이 조맹덕의 남편을 음해했단 말일세!”

부드러운 뺨에 바람을 넣은 흑발의 여인이 마치 투정을 부리듯 매달렸다.

분통을 참을 수 없었는지,

애꿎은 흙바닥을 쿡쿡 내리찍었다.

자신을 건드리는 것을 못 참으며, 또한 남편을 건드리는 것 또한 참지 않는 조조다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그들을 쳐낼 마땅한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명분이야 만들면 되지 않은가.”

복잡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저들이 내 남편을 무고하게 참소하였듯,

나 또한 저들을 거짓증거들을 내세우면서 참소하면 될 일이 아닌가.

두 눈을 껌뻑껌뻑 뜨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아내의 모습에 이성휘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 * *

공융과 동승을 괘씸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유협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라비한테,

감히 ‘우리 오라비’나 다름없는 사람에게!

침소로 돌아온 소녀는 한 달 동안 계속해서 오라비를 참소하며 헐뜯었던 공융과 동승에게 이를 빠득 갈았다.

“내가 남양하씨 일가에게 번번이 위협받았을 때 아무것도 안 했던 주제에…! 오라버니께서 서량의 역적들에게 붙잡혔을 때도 가만히 있었던 주제에…!!”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도.

오라버니께서 역적들에게 붙잡혔을 때도.

한나라 황실이 위험에 처했을 때마다 번번이 나서서 구원해준 인물은 이성휘였다.

충의지사 흉내를 내며 고고한 척 위선을 떨기 바쁜 공융과 동승 같은 무리들은 유협이 천하에서 가장 경멸하는 족속이었다.

“전하, 이제 경연청에 드실 시간이옵니다.”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을 때,

침소 바깥에 있던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대관들과 함께 경전을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공융과 동승에게서 느꼈던 불쾌감을 곱씹은 유협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돈한 다음에 침소를 나섰다.

“오셨습니까, 전하.”

사도(??) 왕윤이 경연청으로 발걸음을 한 유협을 반겼다.

사손서. 등현. 선번. 충소.

조정을 대표하는 고관대작들이 고개를 숙이면서 예를 취했다.

경연청에 참석한 대관들의 면면을 훑던 유협은 지금까지 결석하는 법이 없었던 공융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부가 보이질 않는구나.”

“예,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합니다.”

왕윤의 대답에 유협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코웃음을 쳤다.

피치 못할 사정은 무슨.

어전에서 개망신을 당했으니 집에 들어앉은 거지.

공자의 후손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배포가 작고 도량도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사도.”

“예, 전하.”

경연을 시작했을 때,

두터운 경전을 넘기던 유협은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왕윤을 불렀다.

“요즘 선아가 안 보이는데… 혹시 아픈 것인가?”

“으음.”

유협의 물음에 왕윤이 침음을 삼켰다.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처럼,

굳은 표정을 지은 왕윤은 꺼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반응에 유협은 걱정이 앞서게 되었다.

낙양에서 함께 피신했던 이후부터 친자매처럼 지내왔던 관계가 아니던가. 유협은 짐짓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몸에 좋은 탕약이라도 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분명 지난번에도 잔병을 앓았던 적이 있을 텐데!”

일전에 초선은 잔병치레를 심하게 앓았던 적이 있었기에 더욱 걱정이 들었다.

고뿔이라도 걸린 걸까.

어쩌면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중병에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

노심초사하며 걱정하던 유협은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처럼 온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 * *

변방에서 올라온 공물이 먼 길을 거친 끝에 진류군으로 배송되었다.

장안성에서 보내온 공물로,

농서동씨 가문을 배신하고 장안성을 장악한 이각과 곽사가 보낸 것이었다.

서량의 교활한 이리들이 황실과 조정으로 진상품을 보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그들에게 곤혹을 겪은 바 있었던 조정대신들은 크게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진상품이라뇨! 얼토당토않은 일입니다!”

“필시 제 목숨을 구걸하려는 더러운 수작질이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서량의 무리들에게 얼마나 많은 치욕들을 당해왔던가.

특히,

황제 유변과 함께 목숨을 건 피난길에 올랐던 조정대신들이 격노하는 반응을 보였다.

절대로 받아선 안 된다.

애초에 그 도적들에게 받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 와서 진상품이라니. 농서동씨 가문과 함께 황실과 조정을 능멸했던 주구들의 목을 모두 베어도 시원찮을 일이었다.

“이, 이것은… 수급이옵니다!”

“거병을 꾀한 이각과 곽사가 동탁의 구족을 모조리 베어 그 목을 보냈다고 합니다!”

수레들에 실린 채 도착한 궤짝들을 열어본 무관들이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온통 수급이다.

소금에 절여진 채로 배달된 수급들이 궤짝에 가득했다.

도합 100여 구는 될 것 같았다.

동탁의 모친인 지양군은 물론,

황실과 조정을 겁박하여 대장군과 표기장군의 벼슬을 얻어냈던 동민과 동황의 수급도 있었다.

수백 번을 죽여도 시원찮을 철천지원수의 수급들이 들어있음을 알게 된 조정대신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보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동민과 동황의 수급도 있단 말이냐!”

“예, 그러하옵니다…! 놈들이 틀림없습니다!”

심하게 부패하긴 했으나 철천지원수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분명했다.

황실과 조정을 능멸했던 역적들의 수급이었다.

동민. 동황.

그들의 썩어문드러진 얼굴을 본 조정대신들은 당장 창대에 매달아 궐문에 세워야 한다며 목청을 높였다.

“동민, 이 찢어죽일 역적아!”

“네 이놈! 네놈이 편히 죽을 줄 알았더냐!!”

옥좌에 앉은 채 질겁한 표정으로 수급들이 든 궤짝을 바라보고 있던 유변 또한 그들과 마음이 같았다.

동황,

그 자에게 얼마나 많은 겁박을 당했던가.

유약한 성정의 유변조차도 분노를 금치 못할 정도였다.

“이것들이 정녕 미쳤나…?”

이각과 곽사가 농서동씨 일가를 모두 살해한 뒤 수급을 보내왔다.

그것을 본 조조는 경황을 드러냈다.

동탁이 죽었으니 휘하 장수들이 결국 더러운 야망을 드러낼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으나, 설마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저지를 줄은 미처 몰랐다.

“살고 싶어서 발악하는 겁니다.”

이성휘가 말했다.

그 뒤,

조조에게 입을 열었다.

“원술 다음은 분명 자신들의 차례가 될 테니까요.”

과연 짐승 같은 놈들이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지금까지 섬겨온 주인의 가문을 망설임 없이 도륙할 정도로 본능에 충실했다.

그러나 놈들은,

결코 조조군의 창검을 피할 순 없을 터였다.

원술군을 멸망시킨 조조군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후환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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