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6화 〉 356. 조조의 우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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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군 세력이 멸망했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함락시킨 뒤,
원술을 따르던 잔당들까지 모두 소탕했다.
구강군에서 날아든 승전보를 듣게 된 조정대신들은 불패의 전설을 이어나가고 있는 천하제일검에게 크게 열광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연 천하제일검이로군!”
“견고한 철옹성마저 단숨에 함락시켰소이다!”
반년은 족히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던 수춘성 공략이 겨우 한 달 만에 종결되었다.
원술군이 멸망했다.
구강군의 군현들이 조정의 품으로 돌아왔음을 의미했다.
승전보를 들은 조정대신들은 구강군 인근에 위치한 군벌들을 토벌하기 위해 유비군을 투입했다. 청주 전선에서 큰 활약을 한 유비가 계속 전선으로 복귀하기를 원하고 있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원술의 최후에 대해 들으셨소?”
“크흠, 그 떠들썩한 소문을 어찌 모르겠소이까.”
수춘성 함락.
원술군 멸망.
뒤이어 원술의 비참한 최후와 관련된 소식이 진류군에 알려졌다.
가축들의 분뇨가 흩뿌려진 연못을 나뒹굴다가 최후를 맞이한 여남원씨 가문의 적통. 표기장군 이성휘에게 굴욕적인 최후를 맞이한 원술의 말로는 실로 끔찍했다.
“사세삼공의 명성이 땅에 떨어졌구려.”
“여남원씨 가문의 적손이… 그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줄이야.”
분뇨가 둥둥 떠다니는 똥물을 나뒹굴다가 죽어버린 원술의 비참한 말로는 이미 세간에 파다했다.
진류군은 물론,
중원 전역이 그 소문으로 떠들썩할 정도였다.
곧이어 원소가 차지한 하북 4개 주에도 소문이 알려지겠지. 세간의 명사들은 원술의 비참한 최후를 듣게 될 원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알력다툼을 하던 적대관계였다고 하나, 어찌 사세삼공의 명성을 계승한 적통을 그리 끔찍하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표기장군은 인의라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오.”
소부(少?) 공융이 자신을 따르는 관료들을 동원하여 표기장군 이성휘를 규탄하는 여론을 형성했다.
제아무리 철천지원수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인의와 의협이 있는 법이다.
천하제일검은 천인공노할 만행을 범했다.
지아비의 총애를 독차지했던 척부인을 시기한 여태후가 그녀의 팔다리를 끔찍하게 잘라낸 다음, 돼지우리에 처넣었던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 포악한 인물이 어떻게 황실과 조정의 이름을 짊어질 수 있겠냐며, 공융은 표기장군 이성휘를 소환하여 엄히 문책할 것을 주장했다.
“광록대부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오?”
공융이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성에게 물었다.
그에 광록대부(光?大?) 양표가 입을 열었다.
“무, 물론… 나도 표기장군이 지나쳤다고 생각하고는 있소이다만….”
양표는 원술의 누이와 혼인한 인척이었기에 이성휘의 행동을 크게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여남원씨 가문은 물론,
이번 일로 인해 홍농양씨 가문 또한 명성에 큰 오명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생의 비참한 말로를 듣고 오열하던 아내 원씨의 모습을 떠올린 양표는 공융의 말에 낯빛을 어둡게 흐리면서 의견에 가세했다.
“하지만 원술은 황실과 조정을 기만한 역적이지 않은가.”
“그래도 여남원씨 가문은 4대에 걸쳐 큰 공을 세운 가문이 아닙니까? 그 공헌을 조금은 참작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관료들은 물론,
조정대신들도 이번 일을 두고서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원술의 매형(??)인 양표를 아군으로 끌어들인 공융은 관료들과 의견을 수렴하여 황실에 상소문을 제출하려 했다.
‘비천한 출신 주제에 황실과 조정의 총애를 독차지하다니…! 이번 기회에 제 주제를 깨닫게 해주겠다.’
공융이 표기장군 이성휘의 탄박에 열성하는 이유는 노골적인 ‘시기심’ 때문이다.
비천한 출신의 무부 따위가,
명망 높은 사대부들을 제쳐두고 황실과 조정의 총애를 받는 것이 실로 못마땅했다.
게다가 이성휘는 조조의 남편이자 군부를 상징하는 전쟁영웅이었으므로, 그를 권력에서 떨어트려 조조군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속셈이었다.
* * *
연이은 파상공세에 원술군이 결국 멸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조조는 파안대소하듯 기뻐했다.
드디어 원술이 죽었다.
그 빌어먹을 놈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역시 해내실 줄 알았어요!”
조홍이 붉은 눈동자를 반짝 빛내면서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 원수였던 놈을 죽였다.
패국조씨 가문을 ‘환관 집안’이라며 조롱해온 망나니에게 마땅한 응보를 내렸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무너뜨리고 원술과 그 일당들을 모두 도륙했다는 승전보에 조홍은 온몸을 들썩이면서 기뻐했다.
“경하드립니다, 언니.”
조인이 상석에 앉은 사촌언니에게 축하를 건넸다.
그에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공로가 죽었다면 더 이상 남방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여남원씨 가문을 추종하던 손가 놈이 강동으로 향한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양주의 폭군을 배신한 강동의 호랑이가 단양군으로 향했다는 소식에 조조가 우려를 드러냈다.
손견,
분명 양주에서 거병할 것이 틀림없었다.
원술군의 산하에서 전쟁을 수행하면서 세력을 쌓은 손견은 무려 1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병력을 이끌고서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단양군을 정복할 것이리라.
“무식한 무골이 혼자서 뭘 할 수 있겠어요? 원술의 밑에서 뒤나 닦아주던 녀석이잖아요.”
단양군으로 도망친 손견을 우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언니에게 조홍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물론 손견이 뛰어난 맹장인 것은 사실이다.
이성휘와 함께 공투했던 숭산 전투, 낙양 전투에서 용맹과 무략을 입증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뛰어난 맹장이라고 하여 뛰어난 군주가 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텅 빈 공터나 다름없는 양주에서 분탕질을 치며 거들먹대다가 제 풀에 지쳐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설령 손가 놈이 지금부터 세력을 쌓는다고 한들… 그때쯤이면 나는 천하를 손에 넣었을 것이다.”
손견은 결코 선두를 앞지를 수 없는 후발주자에 불과했다.
조조와 원소,
이미 1등을 다투는 유력주자들이 선두를 점거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거병에 성공하더라도 중원 세력에게 먹힐 수밖에 없는 가련한 운명에 지나지 않으리라.
“설마 그 견실하던 부관이 원공로에게 그런 치욕을 당하게 만들 줄이야….”
가축들의 분뇨를 가득 쏟아부은 연못에 원술을 빠트려 죽였다는 소식에 조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남원씨 가문의 적통을,
그토록 처참하고 잔인하게 죽일 줄이야.
부관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일을 저질렀을 리가 없다.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음이 틀림없었다.
“원술은 어릴 적부터 언니를 조롱해온 천하의 파락호잖아요. 언니를 진심으로 연모하는 우리 부군이 당연히 가만둘 리 없죠.”
조홍의 ‘우리 부군’이라는 말에 조조가 미간을 찌푸렸다.
결국 관계를 인정해주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뒤끝이 남아있는 듯했다.
심기가 불편해진 언니의 모습에 조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물론 눈치가 없는 조홍은 계속해서 남편자랑을 해대면서 사촌언니의 심기를 쿡쿡 찔러댔다.
“주군!”
결국 참다못한 조조가 입을 열려고 했을 때,
문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사좨주 곽가입니다.”
“…들어오라.”
조홍을 날카롭게 노려보던 조조는 고개를 돌리면서 곽가를 안으로 들였다.
문이 열리면서 주황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조심스러운 몸짓과 함께 들어왔다.
“주군, 조정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수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표기장군 이성휘를 음해하는 여론이 조정 내부에서 들끓고 있습니다.”
“뭐…?”
곽가의 말에 조조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조홍과 조인 또한,
곽가의 말에 놀란 기색을 보였다.
전쟁에서 대승을 거둬낸 불패의 명장을 칭송하지는 못할망정 전공을 깎아내고 명성을 음해하려 들다니.
“…좨주, 상세히 말해보라.”
조조의 붉은 눈동자가 차갑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 * *
광록대부 양표의 여식인 양수는 오늘도 마찬가지로 가택에서 경전을 읊고 있었다.
한나라 최고의 신동답게,
이미 모든 가르침을 통달하였음에도 절차탁마를 계속 이어나갔다.
천부적인 재능과 뼈를 깎는 노력이 합쳐진 천재.
부지런히 학문을 닦고 덕행을 쌓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 아가씨의 모습에 덕망이 높은 명사들은 칭찬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오늘은 날씨가 무척 화창하네요.”
내실에서 경전을 읊던 아가씨는 잠시 답답함을 느꼈는지 마당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따사로운 햇살.
뺨을 간질이는 산들바람.
작금이 난세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으읏!”
마당을 한 바퀴 돌면서 산보를 즐기던 아가씨가 가느다란 두 팔을 뻗으면서 기지개를 켰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흉부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곧 성년식을 치르는 묘령의 나이였음에도 홍농양씨 가문의 여식은 성인 여성들보다 우월한 가슴을 자랑했다.
커다란 포탄형 가슴.
조홍과 조인에 필적할 정도로 컸다.
“무, 무슨 일이오! 여기가 어디라고…!”
홍농양씨 가문의 아가씨가 따사로운 햇볕을 쬐면서 산책을 즐기고 있었을 때,
대문 바깥에서 빗자루질을 하던 노복이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경악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생업에 종사하던 홍농양씨 가문의 노복들은 일과를 멈춘 채 대문으로 고개를 향했다.
“궁수 앞으로!”
말을 탄 무관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그에,
가택 앞에 집결한 궁수들이 활을 치켜들었다.
여남원씨 가문, 영천순씨 가문과 함께 대명문가로 칭송받는 홍농양씨 가문의 가택을 포위해버린 병력은 조조군이 분명했다.
“쏴라!”
무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날카로운 화살들이 대문과 담벼락에 작렬했다.
파바바박!
화살들이 대문과 담벼락에 박혔다.
그리고 눈 먼 화살들이 담벼락을 넘어 가택 내부까지 날아들었다. 화살이 내리꽂히는 모습에 놀란 양수는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주저앉고 말았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노복들이 뛰어들어 양수의 상태를 살폈다.
쏟아지는 물음에 홍농양씨 가문의 아가씨는 경악에 물든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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